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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신(修身)/3.신라 향가(新羅 鄕歌)

▣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신라향가(新羅鄕歌)

by 석담 김한희 2022.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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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신라향가(新羅鄕歌)

    - 충담사(忠談師) -

 

咽嗚爾處米

露曉邪隱月羅理

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

沙是八陵隱汀理也中

耆郞矣貌史是史藪邪

逸烏川理叱積惡希

郞也持以支如賜烏隱

心未際叱 肹逐內良齊

阿耶 栢史叱枝次高支乎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 충담사(忠談師) -

 

咽嗚爾處米

(열오이처미)

열어 처밀어

露曉邪隱月羅理

(노효사은월라리)

나타난 달님아

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

(백운음간부거은안지하)

흰구름 좇아 떠가는게 아닌가

沙是八陵隱汀理也中

(사시팔릉은정이야중)

새파란 물가 가운데

耆郞矣貌史是史藪邪

(기량의모사시사수사)

기파랑의 모습이 있는데

逸烏川理叱積惡希

(일오천이질적오희)

일오천 가의 적오를

郞也持以支如賜烏隱

(낭야지이지여사오은)

기파랑이 잡아 집어서 오니

心未際叱肹逐內良齊

(심미제질힐축내양제)

마음이 미어져 따라 내려지노라

阿耶栢史叱枝次高支乎

(아야백사질기차고지호)

, 잣은 줄기차게 높지요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설시모동내호시화판야)

서리 모두 내리신 화랑 장이여!

 

 신라 경덕왕(景徳王, 35대 왕) 때 승려인 충담사(忠談師)가 기파랑을 추모하여 지은 10구체 향가이며 처음 3구는 달에게 물음이고 다음 5구는 달의 답사이며 그리고 마지막 2구의 결사로 3단으로 구성된 10구체 향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삼국유사2에 안민가(安民歌)의 아래에 찬기파랑가(讃耆婆郎歌)가 같이 기록되어 있다.

 

 

 1. 삼국유사(三國遺事) 

열치고

나타난 달이

흰 구름을 쫒아 떠가는 것이 아닌가

새파란 시내에

파랑의 모습이 있도다

일오천(逸烏川) 조약돌에서

낭이 지니신

마음가를 쫓으려 하노라

아아! 잣나무 가지 드높아

서리 모를 화판(花判)이여

 

 

2. 양주동 역

 

열치매

나타난 달이

흰구름 좇아 떠감이 아니아?

새파란 내()

기랑의 모양이 있어라!

이로 냇가 조약에

낭의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좇과저.

아으, ()가지 드높아

서리를 모르올 화랑장이여!

 

3. 김완진 역

 

흐느끼며 바라보매

이슬 밝힌 달이

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

모래 가른 물가에

耆郞의 모습이올시 수풀이여.

逸烏내 자갈 벌에서

이 지니시던 마음의 갓을 쫓고 있노라.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갈이여.

 

 

▣ 『삼국유사(三國遺事)

三國遺事 卷 第二

紀異第二 景徳王·忠談師·表訓大徳 <경덕왕이 충담사(표훈대덕)을 만나다>

<景徳王忠談師表訓大徳>

徳經等大王備禮受之. 王御國二十四年, 五岳三山神等時或現侍扵殿庭. 三月三日王御敀正門楼上謂左右曰, “誰能途中得一貟榮服僧來.” 扵是適有一大徳威儀鮮潔徜徉而行. 左右望而引見之, 王曰 非吾所謂榮僧也.” 退之. 更有一僧被衲衣負櫻筒 一作荷簣從南而來. 王喜見之邀致樓上視其筒中, 盛茶具已.  汝爲誰耶.” 僧曰 忠談”,  何所歸來.” 僧曰 僧每重三重九之日, 烹茶饗南山三花嶺彌勒世尊, 今兹旣献而還矣.” 王曰 寡人亦一甌茶有分乎.” 僧乃煎茶献之, 茶之氣味異常甌中異香郁烈. 王曰 朕甞聞師讃耆婆郎詞腦歌其意甚髙, 是其果乎.” 對曰  王曰 然則爲朕作理安民歌.” 僧應時奉勑歌呈之王佳之封王師焉, 僧再拜固辝不受.

安民歌曰

君隱父也,

臣隠愛賜尸母史也,

支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

民是愛尸知古如.

窟理叱大肹生以支所音物生,

此肹喰惡支治良羅.

此地肹捨遣只扵冬是去扵丁爲尸知,

國惡攴持以支知古如.

後句君如臣多支民隠如爲内尸等焉,

國惡太平恨音叱如.

讃耆婆郎歌曰.

咽嗚爾處米, 露曉邪隠月羅理, 白雲音逐于浮去隠安攴下. 沙是八陵隠汀理也中, 耆郎矣皃史是史藪邪. 逸烏川理叱磧惡希, 郎也持以攴如賜烏隠, 心未際叱肹逐内良齊. 阿耶, 栢史叱枝次髙攴好,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

[당나라에서 보낸] 도덕경(德經) 등을 태왕[효성왕(孝成王)]이 예를 갖추어 받았다. [경덕왕(景徳王)]이 나라를 다스린 지 24년에 오악(五岳)과 삼산(三山)의 신들이 때로는 혹 대궐 뜰에 나타나 [왕을] 모셨다.

3 3(765)에 왕이 귀정문(歸正門)의 누 위에 나가서 좌우의 측근에게 말하기를, “누가 길거리에서 위의(威儀) 있는 승려 한 사람을 데려올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이때 마침 위의가 깨끗한 고승 한 분이 배회하고 있었다. 좌우 측근들이 그를 보고 데려다 보이니, 왕이 말하기를, “내가 말하는 위의 있는 승려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를 물리쳤다. 다시 한 승려가 납의(衲衣)를 입고 앵통(櫻筒)을 지고서 또는 삼태기를 졌다고도 한다. 남쪽에서 왔다. 왕이 그를 보고 기뻐하면서 누 위로 맞아서 그 통 속을 보니, 다구(茶具)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왕이 묻기를, “그대는 누구요?”라고 하니, 승려가 대답하기를, “충담(忠談)이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묻기를, “어디서 오시오?”라고 하니, 승려가 대답하기를, “소승은 3 3(重三) 9 9(重九)에는 남산(南山)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彌勒世尊)에게 차를 다려 공양하는데, 지금도 차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과인에게도 차 한 잔을 줄 수 있소?”라고 하니, 승려가 곧 차를 다려 왕에게 드렸는데, 차의 맛이 이상하고 찻잔 속에는 특이한 향이 풍겼다. 왕이 말하기를, “짐이 일찍이 듣기로는 스님이 기파랑(耆婆郞)을 찬양한 사뇌가(詞腦歌)가 그 뜻이 매우 높다고 하던데, 과연 그러하오?”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그러하옵니다 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짐을 위해 백성을 편안히 다스릴 노래를 지어주시오라고 하니, 승려가 즉시 칙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왕이 그를 아름답게 여겨 왕사(王師)로 봉하니, 승려는 두 번 절하고 굳이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안민가(安民歌)는 이렇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 하실지면

백성이 그 사랑을 알리라

꾸물거리며 사는 물생(物生)에게

이를 먹여 다스린다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려 할지면

나라 안이 유지됨을 알리이다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지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이다.

찬기파랑가는 이렇다.

열치고

나타난 달이

흰 구름을 쫒아 떠가는 것이 아닌가

새파란 시내에

파랑의 모습이 있도다

일오천(逸烏川) 조약돌에서

낭이 지니신

마음가를 쫓으려 하노라

아아! 잣나무 가지 드높아

서리 모를 화판(花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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