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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신(修身)/3.신라 향가(新羅 鄕歌)

≪풍요 (風謠)≫/신라 향가(新羅 鄕歌)

by 석담 김한희 202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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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요 (風謠)

- 사녀(士女)-

 

來如來如來如 (래여래여래여)

來如哀反多羅 (래여애반다라)

哀反多矣走良 (애반다의주량)

功德修叱如良來如 (공덕수질여량래여)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슬픔 많아라

슬픔 많은 우리 무리여

공덕 닦으러 오다

 

來如來如來如 (래여래여래여래여)

哀反多羅哀反多 (애반다라애반다의)

走良功德修叱如 (주량공덕수질여량)

 ~ ~(래여 ~ ~)

오세요 오세요 오세요 오세요!

~ 반달아 에~ 반달이

가걸랑 공덕이요 닦아지면 같걸랑

오세요! ~ ~ ~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진 4구체의 민요조의 노동요적 향가이다.

 

 

 

<1. 삼국유사(三國遺事) >

來如來如來如 (래여래여래여)

오다 오다 오다

來如哀反多羅 (래여애반다라)

오다 슬픔 많아라

哀反多矣走良 (애반다의주량)

슬픔 많은 우리 무리여

功德修叱如良來如 (공덕수질여량래여)

공덕 닦으러 오다

 

<2. 양주동 역>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다라

서럽다 의내여

功德 닷가라 오다

  

<3. 김완진 역>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럼해라

서럼하니 물아

功德 닷가라 오다

 

<4. 石潭 >

來如來如來如來如

(래여 래여 래여 래여)

오세요 오세요 오세요 오세요!

哀反多羅哀反多矣

(애 반다라 애 반다의)

~ 반달아 에~ 반달이

走良功德修叱如良

(주량공덕 수질여량)

주랑은 공덕인데 수질은 여랑이네

來如 ~ ~ ~

(래여)

오세요!

 

來如 來如 來如 來如

오세요 오세요 오세요 오세요!

哀 反多羅 哀 反多矣

~ 반달아 에~ 반달이

走良 功德 修叱 如良

가걸랑 공덕이요 닦아지면 같걸랑

來如 ~ ~ ~

오세요!

 

 

삼국유사(三國遺事)

卷 第四 義解第五>

 良志使錫>양지의 신이한 능력

 

 良志使錫

釋良志未詳祖考郷邑. 唯現迹於善徳王朝. 錫杖頭掛一布帒錫自飛至檀越家振拂而鳴. 户知之納齋費, 帒滿則飛還. 故名其所住曰錫杖寺. 其神異莫測皆類此. 旁通雜譽神妙絶比. 又善筆扎校勘 靈庙校勘 丈六三尊·天王像并殿塔之瓦·天王寺塔下八部神将·法林寺主佛三尊·左右金剛神等皆所槊校勘也. 書霊庙校勘 法林二寺額, 又嘗彫磚造一小塔并造三千佛安其塔, 置於寺中致敬焉. 其塑霊庙之丈六也, 自入定以正受所對爲揉式, 故傾城士女爭運泥圡.

風謡云.

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㓛徳修叱如良来如.

至今圡人㫪相校勘 役作皆用之, 蓋始于此. 像成校勘 之費入穀二萬三千七百碩. 或校勘 金時祖校勘. 議曰, 師可謂才全徳充, 而以大方隠於末技者也.

 양지사석 (良志使錫 )

() 양지(良志)의 조상과 고향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선덕왕(善德王) 때 자취를 나타냈을 뿐이다. 석장 끝에 포대 하나를 걸어놓으면 석장(錫杖)은 저절로 날아가 단월(檀越)의 집에 이르러 흔들면서 소리를 냈다. [] 집에서 이를 알고 재에 쓸 비용을 [여기에] 넣었고, 포대가 차면 날아서 되돌아온다. 이 때문에 그가 머무는 곳을 석장사(錫杖寺)라고 하였다. 그의 신이함을 헤아리기 어려움이 모두 이와 같은 것들이다.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기예에도 통달하여 신묘함이 비할 데가 없었다. 또한 [그는] 필찰(筆札)에도 능하여 영묘사(靈廟)의 장륙삼존상(丈六三尊)과 천왕상(天王像)과 전탑의 기와, 천왕사(天王寺) 탑 밑의 8부신장(八部神將), 법림사(法林寺)의 주불삼존과 좌우 금강신(金剛神) 등은 모두 [그가] 만든 것들이다. 영묘, 법림 두 절의 현판도 썼으며, 또 일찍이 벽돌을 다듬어 작은 탑 하나를 만들고 아울러 3천 불상을 만들어 그 탑에 모시어 절 안에 두고 공경하였다. 그가 영묘사의 장륙상을 만들 때는 스스로 입정(入定)하여 정수(正受)의 태도로 대하는 것을 법식(揉式)으로 삼으니 이 때문에 성 안의 남녀가 다투어 진흙을 날랐다.

풍요(風謠)는 다음과 같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슬픔 많아라

슬픔 많은 우리 무리여

공덕 닦으러 오다

지금도 그곳 사람들이 방아를 찧거나 다른 일을 할 때 모두 이 노래를 부르는데, 대개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장륙상을 처음 조성할 때 든 비용은 곡식 2 3 7백 섬이었다. 혹은 다시 도금할 때의 비용이라고도 한다. 평하건대, 스님은 재주가 온전하고 덕이 충족했으나, 대가로서 하찮은 재주에 숨었던 자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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