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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향가(新羅鄕歌)

통일신라시대 때 성행하다가 말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고려 초까지 존재하였던 한국 고유의 정형시가(定型詩歌)이다. 순수한 우리 글로 표현되지 못하고 향찰(鄕札) 및 이두(吏讀), 즉 한자(漢字)의 음(:소리)과 훈(:새김)을 빌어서 표기되었으며, 삼국유사 14, 균여전 11수 도합 25수가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신라 향가

 

1.서동요(薯童謠)

- 서동(薯童) -

善化公主主隱 (선화공주주은)

他密只嫁良置古(타밀지가량치고)

薯童房乙夜矣 (서동방을야의)

卯乙抱遣去如 (유을포견거여)

선화(善化)공주 님은

남 몰래 샛 서방 두고

서동(薯童)의 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는 가요?

 

백제의 서동(薯童: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지었다는 민요 형식의 노래이다이두(吏讀)로 표기된 원문과 함께 그 설화(說話)가 삼국유사(三國遺事)》 무왕조(武王條)에 실려 전한다무왕이 어릴 때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사모하던 끝에 머리를 깎고 중처럼 차려 신라 서울에 와서 마[]를 가지고 성 안의 아이들에게 선심을 쓰며 이 노래를 지어 그들에게 부르도록 하였다.

 

내용은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것이었는데이 노래가 대궐 안에까지 퍼지자 왕은 마침내 공주를 귀양 보내게 되었다이에 서동이 길목에 나와 기다리다가 함께 백제로 돌아가서 그는 임금이 되고 선화는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2.혜성가(彗星歌)

- 융천(融天) 선사-

舊理東尸汀叱乾達婆

(구리동시정질건달파의)

遊烏隱城叱兮良望良

(유오은성질혜양망양고)

倭理叱軍置來叱

(왜리질군치래질다)

烽燒邪隱邊也藪

(봉소사은변야수야)

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

(삼화의악음견사오시문고)

 

月置八切爾數於將來尸波

(월치팔절이수어장래시파의)

道尸掃尸星利望良

(도시소시성리망양고)

彗星也白反也人是有姪

(혜성야백니반야인시유질다)

後句 達阿羅浮去伊叱等

(후구달아나부거이질등사)

此也友物北所音叱慧叱只有叱

(차야우물비소음질혜질지유질고)

 

삼국유사》 융천사혜성가조(融天師彗星歌條)에 실려 있다5거열랑(居烈郞) ·6실처랑(實處郞) ·7보동랑(寶同郞등 세 화랑이 풍악(楓岳:금강산)으로 유람차 떠나려고 하는데마침 혜성이 나타나 심대성(心大星:28宿中 心宿의 大星)을 범하는 성괴(星怪)가 일어났다이런 괴변은 가끔 국토에 불길한 변란을 가져오므로세 화랑은 금강산 유람을 포기하였다이때 융천사가 향가를 지어 불렀더니 천체(天體)의 괴변은 간 곳이 없고 국토를 침범한 왜병(倭兵)들이 모두 달아나 버려 도리어 경사가 되었다 한다.

 

이 혜성가는 해학적인 가풍(歌風)과 교묘한 직유법으로 구성되어 있어 향가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이다향가에 주술적(呪術的힘이 있다고 신성시하던 당시의 유풍을 엿볼 수 있다.

 

 

3.풍요(風謠)

- 사녀(士女)-

來如來如來如來 

(래여래여래여래여)

哀反多羅哀反多 

(애반다라애반다의)

走良功德修叱如 

(주량공덕수질여량)

 ~ ~(래여 ~ ~)

오세요 오세요 오세요 오세요!

~ 반달아 에~ 반달이

가걸랑 공덕이요 닦아지면 같걸랑

 

오세요! ~ ~ ~

 

양지사석가(良志使錫歌)라고도 한다선덕여왕 때의 명승(名僧양지(良志)는 석장(錫杖:승려들의 지팡이머리에 포대를 걸어두면 저절로 시주(施主)의 집으로 날아가 포대가 차면 다시 날아 돌아오는 등 신이(神異)함이 많았는데그가 영묘사(靈廟寺)의 장륙존상(丈六尊像)을 지을 때 성 안의 남녀가 진흙을 나르는 역사(役事)를 하면서 불렀다는 일종의 불교가요이다.

 

이 노래를 노동요(勞動謠)로 보는 의견도 있으나부처의 본을 뜨기 위하여 진흙을 나르는 일을 노동이라 보기 어렵고한줌의 흙이라도 이토시주(泥土施主)가 되겠다는 기원에서 나온 노래라 하겠다삼국유사》 양지사석조()에 실려 전하는 풀이와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오다 오다 오다오다 서럽더라서럽다 어내여(우리들이여), 공덕 닦으러 오다(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功德修叱如良來如)”.

 

 

4.원왕생가(願往生歌)

- 광덕 -

月下 伊底亦

(월하 이저역)

달님이시여이제

西方念丁 去賜里遣

(서방념정 거사리견)

서방정토까지 가시려는가

無量壽佛前乃

(무량수불전내)

무량수불 앞에

惱叱古音多可支 百譴賜立

(뇌질고음다가지 백견사립)

알리어 여쭈옵소서.

誓音 深史隱 尊衣希 仰支

(서음 심사은 존의희 앙지)

맹세 깊으신 부처님께 우러러

兩 手 集刀花乎白良

(량 수 집도화호백량)

두 손 모아서

願往生 願往生

(원왕생 원왕생)

왕생을 원합니다왕생을 바랍니다

慕 人 有如 自遣賜立

(모 인 유여 자견사립)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옵소서.

阿邪 此身 遺也 譴賜

(아사 차신 유야 견사)

아아이 몸을 버려두고

四十八大願 成譴賜去

(사십팔대원 성견사거)

마흔 여덟 가지 큰 소원을 이루실까.

 

 

작자의 깊은 미타신앙(彌陀信仰)을 읊은 축도(祝禱)의 노래로 경건과 엄숙미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삼국유사(三國遺事)》 5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에 원문과 유래가 실려 전한다.

 

광덕이 죽은 뒤에 친구인 중 엄장이 광덕의 아내에게 동침을 요구하였으나 그녀는 스님이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구하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낚는 것과 같다.”면서 광덕을 본받으라고 호되게 나무랐다엄장은 깊이 뉘우쳐 이후 수도에 열중하였고 마침내 서쪽으로 올라갔다고 한다이 향가의 작자가 광덕의 아내라는 이설(異說)이 있었으나그것은 원전(原典)을 잘못 읽은 데서 온 결과이다.

 

 

5.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 득오(得烏) -

 

去隱春皆林米

(거은춘개림미)

간 봄 그리워하매

毛冬居叱哭屋尸以憂音

(모동거질사곡옥시이우음)

못 살으사 울어 설워하더이다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아동음내질호지사오은)

애닯음 나토시던 모습이

貌史年數就音墮支行齊

(모사년수취음타지행제)

해 거듭하는 즈음에 가이더이다

目煙廻於尸七史伊衣

(목연회어시칠사이의)

눈 돌이킬 새

逢烏支惡知作乎下是

(봉오지악지작호하시)

만나 뵙기 어찌 지으오리까

郞也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

(랑야 모리시심미 행호시도시)

낭이여, 그리는 마음에 가올 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봉차질항중숙시야음유질하시)

다봊 마을에 잘 밤 있사오리까

 

32대 효소왕(孝昭王:재위 692702) 때 낭도인 득오(得烏)가 화랑 죽지(竹旨)를 사모하여 지은 8구체(八句體) 향가이다. 향찰(鄕札)로 된 가사의 원문이 삼국유사(三國遺事) 2 <효소왕대 죽지랑조(孝昭王代竹旨郞條)>에 실려 전한다.

 

 

6.헌화가(獻花歌)

- 어느 노인(老人) -

紫布岩乎过希,

(자포암호과희)

자주빛 바위 가에

執音乎手母牛放教遣,

(집음호수모우방교견)

잡은 손 암소 놓아 버리시고

吾肹不喻慚肹伊賜等,

(오힐불유참힐이사등)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시면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화힐절질가헌호리음여)

꽃을 꺾어다가 드리오리다.

 

삼국유사 2 수로부인조(水路夫人條) 해가(海歌)와 함께 실려 전한다.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로 부임하는 길에 그의 부인인 수로(水路)가 바닷가의 천길이나 되는 절벽 위에 피어 있는 철쭉꽃을 탐내었으나 꽃이 험한 바위 위에 있으므로 아무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소를 몰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부인의 이 말을 듣고 기꺼이 올라가 꽃을 꺾어다 바치며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하는데, 그 노인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한다.

 

 

7.원가(怨歌)

- 신충(信忠) -

物叱乎支栢史

(물질호지백사)

물질 좋은 잣이

秋察尸不冬爾屋支墮米

(추찰시부동이옥복타미)

가을 채 안되어 떨어지네

汝於多支行齊

(여어다지행제)

너 어디 진즉에

敎因隱仰頓隱面矣改衣賜乎隱冬矣也

(교인은앙돈은면의개의사호은동의야)

가르침에는 우러러 보던 낯이 계시온데

月羅理影支古

(월나리영지고)

달날이 그림자 지고

理因潤之叱行尸浪阿叱沙矣以支

(리인윤지질행시랑아질사의이지)

이치는 연못 가세 물결질 사이이지

如支貌史沙叱望阿乃

(여지모사사질망아내)

여직 모습이사 바라보니

世理都之叱逸烏隱第也

(세리도지질일오은제야)

세상 모두를 잃은 처지라네

< 後句亡 >

 

<후구(後句) 없어졌다>

 

원래는 10구체 형식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후구(後句)가 없는 8구체로 전한다삼국유사(三國遺事)》 5 <신충괘관(信忠掛冠)>에 실려 전해지는 유래는 다음과 같다.

34대 효성왕(孝成王)이 즉위하기 전에 작자는 그와 함께 잣나무 아래서 바둑을 두었는데후일 임금이 되어도 신충을 잊지 않겠다고 잣나무를 두고 맹세하였다후에 그가 임금이 되었으나 그 약속을 잊고 돌보지 않자작자가 원망하는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붙였더니 나무는 시들어 버렸다이에 임금이 약속을 잊고 있었음을 깨닫고 신충을 불러들여 벼슬을 내리자 나무는 되살아났다고 한다이는 곧 향가의 주력(呪力)을 나타내는 대목이라 하겠다. 

 

 

8.도솔가(兜率歌)

- 월명사(月明師) -

今日此矣散花唱良

(금일차의산화창량)

오늘 이에 산화가를 불러

巴寶白乎隱花良汝隱

(파보백호은화량여은)

파 보내오는 꽃아 너는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직등은심음의명질사이오지)

곧은 마음의 명을 부리어져

彌勒座主陪立羅良

(미륵좌주배립라량)

미륵좌주 모셔 놔라

 

 

760(경덕왕19) 4월 초하루해가 둘 나타나서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으므로왕명에 따라 연승(緣僧)으로 뽑힌 월명사(月明師)가 산화공양(散華供養)을 하면서 <산화가(散花歌)>도 부르고 이 노래도 지어 부르자괴변이 곧 사라졌다는 유래가 삼국유사(三國遺事)》 5에 전한다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은 이 노래를 <산화가>가 아니라 <도솔가>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였는데삼국유사에 이두(吏讀)로 된 4구체(四句體)의 원가(原歌)와 한역시(漢譯詩)가 함께 실려 있어향가의 해독(解讀)과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조선고가연구(양주동)의 해독문을 보면 오이에 散花 블어/고자 너는/고 브리디/彌勒座主 뫼셔라이다도솔은 미륵을 지칭한 말로서미래불로서의 미륵불을 모시는 단을 모아놓고 이 노래를 불러 미륵불을 맞이하려고 한 것이다떨기 꽃을 통하여 미륵불을 모시겠다는 뜻이므로전형적인 찬불가(讚佛歌)이다.

 

 

9.제망매가(祭亡妹歌)

- 월명사(月明師) -

生死路隱

(생사로은)

삶과 죽음의 길을

此矣有阿米次伊遣

(차의유아미차힐이견)

여기에 있다 하며 머뭇거리더니

吾隱去內如辭叱都

(오은거내여사질도)

나는 간다는 말도

毛如云遣去內尼叱古

(모여운견거내니질고)

못 여의고 갔는 지고

於內秋察早隱風未

(어내추찰조은풍미)

어느 가을 참 좋은 바람에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이의피의부량낙시엽여)

여에 저기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一等隱枝良出古

(일등은지량출고)

한 등어리 가지에서 나오고

去奴隱處毛冬乎丁

(거노은처모동호정)

가는 곳은 모두어 져서

阿也彌陀刹良逢乎吾

(아야미타찰량봉호오)

, 미타 저랑 만나오면

道修良待是古如

(도수량대시고여)

도 딱는 량이 되시구려

 

위망매영재가(爲亡妹營齋歌)라고도 한다월명사가 죽은 여동생을 위하여 이 노래를 지어 제사지내니 갑자기 광풍이 지전(紙錢)을 날리어 서쪽으로 없어졌다고 한다형제를 한 가지에 난 나뭇잎에 비유하고누이동생의 죽음을 나뭇잎이 가을철에 떨어져가는 것에 비하여 누이를 그리워하며미타찰(彌陀刹곧 극락에서 도를 닦아 기다려 달라는 내용으로 되었다.

 

이와 같은 시가(詩歌)는 이따금 천지신명을 감동시키는 일이 많다 하여향가를 신성시하던 당시의 예를 여기서 볼 수 있다향찰(鄕札)로 표기된 원문이 삼국유사(三國遺事)》 5권에 실려 전한다.

 

 

10.안민가(安民歌)

- 충담사(忠談師) -

 

君隱父也

(군은부야)

임금은 아버지요

臣隱愛賜尸母史也

(신은애사시모사야)

신하는 사랑 주실 어머니요

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

(민언광시한아해고위사시지)

백성을 어리석은 아이라고 해 주시지

民是愛尸知古如

(민시애시지고여)

백성이 이 사랑을 알고요

窟理叱大兮生以支所音物生

(굴리질대혜생이지소음물생)

굴러 질대로 생겨져서는 만물 생기면

此兮食惡支治良羅

(차혜식악지치량나)

이를 먹여져 다스리라

此地兮捨遣只於冬是去於丁爲尸知

(차지혜사유지어동시거어정위시지)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고져 하실지

國惡支持以支如右如

(궁악지지이지지고지)

나라 오지 잡으지요 우여

後句 君如臣多支民隱如爲內尸等焉

(후구군여신다지민은여위내시등언)

임금요 신하는 많지 백성은요 해내시 들면

國惡太平恨音叱如

(위내시등언 국악태평한음질여)

나라가 태평해 져요

 

삼국유사(三國遺事) 2에 실려 전한다. 노래를 지은 유래는 다음과 같다. 765(경덕왕 23) 3 3일 왕이 귀정문(歸正門)에 올라 신하들에게 거리에 나가 훌륭한 스님을 한 분 모셔오라 하였다. 신하들이 한 명승(名僧)을 모셔왔으나, 왕은 자기가 찾는 스님이 아니라 하여 돌려보내고 다시 모셔온 분이 바로 충담사였다.

왕은 그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지은 스님임을 알고 안민가(安民歌)를 지으라 하였다. 이에 충담사가 노래를 지어 바치니 왕이 기꺼이 여겨 왕사(王師)에 봉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다고 한다. 이때 그가 지은 향가 안민가는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각각 자기 본분을 지키면 나라가 태평하리라는 소박한 내용으로, 유교 사상이 짙은 노래이다.

 

 

11.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 충담사(忠談師) -

咽嗚爾處米

(열오이처미)

열어 처밀어

露曉邪隱月羅理

(노효사은월라리)

나타난 달님아

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

(백운음간부거은안지하)

흰구름 좇아 떠가는게 아닌가

沙是八陵隱汀理也中

(사시팔릉은정이야중)

새파란 물가 가운데

耆郞矣貌史是史藪邪

(기량의모사시사수사)

기파랑의 모습이 있는데

逸烏川理叱積惡希

(일오천이질적오희)

일오천 가의 적오를

郞也持以支如賜烏隱

(낭야지이지여사오은)

기파랑이 잡아 집어서 오니

心未際叱肹逐內良齊

(심미제질힐축내양제)

마음이 미어져 따라 내려지노라

阿耶栢史叱枝次高支乎

(아야백사질기차고지호)

, 잣은 줄기차게 높지요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설시모동내호시화판야)

서리 모두 내리신 화랑 장이여!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향찰(鄕札)로 표기된 가사와 이 노래에 관한 실화가 실려 전한다. , 안민가(安民歌)를 짓게 된 전설 속에 간단히 등장하는 것으로, 경덕왕이 영복승(榮服僧)을 찾다가 충담사를 만나 그대가 지은 찬기파랑가, 사뇌가(詞腦歌)의 뜻이 매우 깊다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라고 묻자, 충담사가 그렇다고 대답하였다는 대목이다.

가사의 내용은 구름 속에 나타난 달과 하늘에서 기파랑의 순결한 모습을 보고, 은하수와 잣나무에서 그의 이상과 절조를 찬미하며 읊은 노래이다.

 

 

12.도천수관음가(燾千手觀音歌)

- 희명(希眀) -

古召

(슬힐고소며)

무릎을 고추며

二尸掌音毛乎內良

(이시장음모호복내량)

두 손을 모아 보내어

千手觀音叱前良中

(천수관음질전량중)

천수관음 앞 중에

祈以白屋尸置內乎多

(기이복백옥시치내호다)

빌어서 씻쳐 내옵니다

千隱手叱千隱目

(천은수질천은목힐)

천 개 손과 천 개 눈을

一等下叱放一等除惡

(일등하질방일등힐제악복)

하나를 아래 놓고 하나는 제해 보고

二于萬隱吾羅

(이은만은오라)

둘 은 많이 오시라

一等沙隱賜以古只內乎叱等邪

(일등사은사이고지내호질등사)

하나는 숨은사이 고쳐내어 지두시라

阿邪也吾良遺知賜尸等焉

(아사야오량견지복사시등언)

아아, 오라 견주어 보사 시두어라

放冬矣用屋尸慈悲也根古

(방동의용옥시자비야근고)

놓인데에 쓰실시 자비의 뿌리 되고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 《천수대비가라고도 한다. 10구체의 노래로서삼국유사(三國遺事)》 3 <분황사천수대비(芬皇寺千手大悲)>에 이두문(吏讀文)으로 실려 있다경덕왕(景德王때 한기리(漢岐里)에 살던 희명이란 여자의 아들이 난 지 5년 만에 눈이 멀어 분황사 천수관음(千手觀音앞에서 이 노래를 지어 아이에게 부르게 하자 눈을 떴다고 한다향가를 영이(靈異)한 것으로 신성시하던 당시의 예를 여기서 볼 수 있다. 

 

 

13.우적가(遇賊歌)

- 영재(永才) 스님-

自矣心米

(자의심미)

저의 마음을

皃史毛達只將來呑隱日

(모사모달지장래탄은일)

모아 모두어 장래() 타는 

遠島逸□□過出知遺

(원도일□□과출지유)

먼길을 □□ 지나가지요

今呑藪未去遺省如

(금탄수미거유성여)

이제 단숨에 가야 성한데

但非乎隱焉破

(단비호은언파)

단지 아니하온  

次弗□□史內於都還於尸郞也

(차불□□사내어도환어시랑야)

 □□  어데로 돌아서랴

此兵物叱沙過乎

(차병물질사과호)

  물건  가오

好尸曰沙也內乎呑尼

(호시왈사야내호탄니)

좋은  사야 내것 되네

阿耶 唯只伊吾音之叱恨隱㵛陵隱

(아야유지이오음지질한은선릉은)

아아, 오직  소리질러  선업은

安支尙宅都乎隱以多

(안지상택도호은이다)

아직사 택도 없소이다.

 

영재는 풍류에 뛰어난 화랑으로 향가에 능하였다 하는데, 90세에 뜻을 세워 승려가 되고자 남악(南岳:지리산)으로 가는 도중 대현령(大峴嶺)에 이르러 60여 명의 도둑떼를 만났다도둑들이 노래 잘하는 영재임을 알고 노래를 지으라고 하자 즉석에서 이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도둑들이 감동하여 그를 따라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5 <영재우적(永才遇賊)>에 그 유래와 가사가 실려 전하나노래 가운데 결실자(缺失字)가 간간이 눈에 띈다.

 

 

 

 

14.처용가(處容歌)

- 처용(處容) -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동경명기월량)

동경 밝근 달에

夜入伊遊行如可

(야입이유행여가)

밤들이 노니다가

入良沙寢矣見昆

(입량사침의견곤)

돌아와 자리를 보고

脚烏伊四是良羅

(각오이사시량라)

가랑이가 넷이 러라

二肹隱吾下於叱古

(이힐은오하어질고)

둘은 내해 이고

二肹隱誰支下焉古

(이힐은수지하언고)

둘은 뉘해 인고

本矣吾下是如馬於隱

(본의오하시여마어은)

본디 내해 이었지 마는

奪叱良乙何如爲理古

(탈질량을하여위리고)

뺏긴 것을 어찌 하릿고

 

879(헌강왕 5) 처용(處容)이 지었다고 하는 무당노래[巫歌]의 일종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 2 ‘처용랑 망해사(處容郞望海寺)’에 실려 전한다. 내용은 용의 아들인 처용이 헌강왕을 따라 경주(慶州)에 와서 벼슬을 하는데, 어느날 밤 자기 아내를 범하려는 역신(疫神)에게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역신이 물러갔다고 한다.

 

이 노래를 향가 중에서도 무가(巫歌)로 보는 것은 악귀를 달래어 쫓을 때 부르는 구나의식요(驅儺儀式謠)’로 생각되기 때문이다형식은 팔구체(八句體)이며향찰(鄕札)로 표기되었다.

 

<신라 향가(新羅鄕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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