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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論語)』

        卷​ 9

◎ 《자한(子罕)》篇

9 - 5)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자외어광, 왈: "문왕기몰, 문불재자호? 천지장상사문야, 후사자불득여어사문야; 천지미상사문야, 광인기여여하?")

공자께서 광(匡) 땅에서 두려울 적에 말씀하셨다.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으나, 문(文)은 나에게 있지 않은가? 하늘이 장차 이 문(文)을 없애려 하셨다면 내(≒後死者)가 이 문(文)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하늘이 아직 이 문(文)을 없애지 않으셨으니 광(匡) 땅의 사람들이 나를 어찌하겠는가?”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 子畏於匡,(包曰:「匡人誤圍夫子,以為陽虎。陽虎曾暴於匡,夫子弟子顏克時又與虎俱行。後克為夫子禦,至於匡。匡人相與共識克,又夫子容貌與虎相似,故匡人以兵圍之。」 ◎포함이 말하였다:광(匡) 땅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부자(夫子)를 포위하고 양호(陽虎)라고 여겼다. 양호가 일찍이 광에서 포악하였는데, 부자의 제자인 안극(顏克)이 당시 또 양호와 더블어 함께 갔었다. 뒤에 안극이 부자의 수레를 몰아서 광 땅에 이르자, 광 땅의 사람들이 서로 더블어 안극을 알아보았고, 또 부자의 용모가 양호와 서로 닮았기 때문에 광 땅의 사람들이 병기를 가지고 포위를 하였다.)曰:「文王既沒,文不在茲乎?(孔曰:「茲,此也。言文王雖已死,其文見在此。此,自謂其身。」 ◎공안국이 말하였다:“자(茲: 무성할 자)”는 여기이다. 문왕(文王)이 비록 이미 죽었지만, 그 문(文)이 여기에 있듯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차(此)는, 스스로 그 자신을 일컫음이다.)天之將喪斯文也,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孔曰:「文王既沒,故孔子自謂後死。言天將喪此文者,本不當使我知之。今使我知之,未欲喪也。」 ◎공안국이 말하였다:문왕(文王)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공자가 스스로 뒤에 죽는다고 말했다. 하늘이 장차 이 문(文)을 없앤다는 것은, 본래 나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였음이 마땅한데, 지금 나로 하여금 알게 하였으니 아직 없애려 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다.)天之未喪斯文也,匡人其如予何?」(馬曰:「其如予何者,猶言奈我何也。天之未喪此文則我當傳之。匡人慾奈我何,言其不能違天以害己也。」 ◎마융이 말하기를:그 ‘나를 어찌하겠는가[其如予何]’라는 것은, ‘나를 어찌 하겠는가[奈我何]’라는 말과 같다. 하늘이 아직 이 문(文)을 없애지 않았다면 우리가 마땅히 전해야 한다. 광(匡) 땅 사람들이 우리를 어찌 하고자 함은, 그들이 하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 【註疏】 “子畏”至“予何”。

○ 【註疏】 <경문(經文)의> “[자외(子畏)]에서 [여하(予何)]까지"

○正義曰:此章記孔子知天命也。

○ 正義曰 : 이 장(章)은 공자께서 천명(天命)을 아셨음을 기록한 것이다.

“子畏於匡”者,謂匡人以兵圍孔子,記者以眾情言之,故云“子畏於匡”。其實孔子無所畏也。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광(匡) 땅에서 두려울 적에[子畏於匡]"라는 것은, 광(匡) 땅 사람들이 병기(兵器)를 들고서 공자(孔子)를 포위한 것을 말함이며, 기록한 자가 〈포위당했던〉 무리의 마음을 말했기 때문에 이르기를 “공자께서 광(匡) 땅에서 두려워하셨다.”라고 했는데, 그 실제로는 공자(孔子)께서 두려워하신 바가 없으셨다.

“曰文王既沒,文不在茲乎”者,孔子以弟子等畏懼,故以此言諭之。茲,此也。

<경문(經文)에서> "말씀하셨다.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으나, 문(文)은 나에게 있지 않은가[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라는 것은, 공자(孔子)께서 그로써 제자(弟子)들이 몹시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 <제자들을> 깨우치신 것이다. 자(茲: 무성할 자)는 여기이다.

言文王雖已死,其文豈不見在我此身乎?言其文見在我此身也。

'문왕(文王)이 비록 이미 죽었지만, 그 문(文)이 어찌 우리에게 있고 이 몸에 드러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그 문(文)이 우리(我)에게 있고 이 몸(身)에 드러남을 말하는 것이다.

“天之將喪斯文也,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者,後死者,孔子自謂也。以文王既沒,故孔子自謂已為後死者。

<경문(經文)에서> "하늘이 장차 이 문(文)을 없애려 하셨다면 내(≒後死者)가 이 문(文)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지만[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라는 것은, 후사자(後死者)는 공자가 자신을 말한 것이다. 그로써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공자께서 스스로 자기가 '뒤따라 죽는 자[後死者]'라고 하셨다.

言天將喪此文者,本不當使我與知之。今既使我知之,是天未欲喪此文也。

하늘이 장차 이 문(文)을 없애려 한 것이라면, 본래 마땅히 우리로 하여금 더블어 알게 하지 않았을 것인데 지금 이미 우리(我)로 하여금 알게 하였으니, 이것은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려 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다.

“天之未喪斯文也,匡人其如予何”者,如予何,猶言奈我何也。

<경문(經文)에서> "하늘이 아직 이 문(文)을 없애지 않으셨으니 광(匡) 땅의 사람들이 나를 어찌하겠는가[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라는 것은, 여여하(如予何)는 '내아하(奈我何)'를 말하는 것과 같다.

天之未喪此文,則我當傳之。匡人其欲奈我何,言匡人不能違天以害已也。

하늘이 아직 이 문(文)을 없애지 않았으면 우리(我)가 마땅히 전해야 하는데, 광(匡) 땅 사람들이 장차 우리를 어찌하겠느냐고 했으며, 광(匡) 땅 사람들이 하늘을 어기고서 자기를 해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注“包曰”至“圍之”。

○ <집해(集解)> 주(注)의 “[포왈(包曰)]에서 [위지(圍之)]까지"

○正義曰:此注皆約《世家》,述其畏匡之由也。

○ 正義曰 : 이 주(注)는 모두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를 요약(要約)하였으며, 광(匡) 땅에서 두려움을 겪으신 이유를 서술한 것이다.

案《世家》云:“孔子去衛。將適陳,過匡。顏克為仆,以策指之曰:‘昔日吾入此,由彼缺也。’匡人聞之,以為魯之陽虎。陽虎嘗暴匡人,匡人於是遂止孔子。

살펴보건데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이르기를 “공자(孔子)께서 위(衛)나라를 떠나 장차 진(陳)나라로 가실적에 광(匡) 땅을 지났다. 안극(顔尅)이 수레를 몰았으며 채찍을 가지고 가리키며 말하기를 ‘일전에 내가 여기에 들어가면서 저 무너진 <성벽(城壁)을> 통해 들어갔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광(匡) 땅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서 <공자(孔子)를> 노(魯)나라의 양호(陽虎)로 오인하였다. 양호(陽虎)가 일찍이 광(匡) 땅 사람들에게 포악하였으므로 광인(匡人)들이 여기에서 마침내 공자(孔子)의 길을 막았다.

孔子狀貌類陽虎,拘焉五日。匡人拘孔子益急,弟子懼。孔子曰:‘文王既沒,文不在茲乎?’”已下文與此正同,是其事也。

공자(孔子)의 상태와 용모가 양호(陽虎)와 비슷하여 그것으로 5일 동안을 억류(抑留)하였다. 광(匡) 땅 사람들이 공자(孔子)를 더욱 급박하게 구금(拘禁)하니 제자(弟子)들이 두려워하였으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으니 문(文)이 나에게 있지 않느냐?’라고 하셨다.”라고 하였다. 이하(以下已下)의 글이 이것<논어의 글>과 모두 일치하며, 바로 그 일을 말한 것이다.

▣ 『論語』 원문

◎ 《子罕》篇 ​ 9 - 5

◆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논어집해(論語集解)》

子畏於匡,(包曰:「匡人誤圍夫子,以為陽虎。陽虎曾暴於匡,夫子弟子顏克時又與虎俱行。後克為夫子禦,至於匡。匡人相與共識克,又夫子容貌與虎相似,故匡人以兵圍之。」 )曰:「文王既沒,文不在茲乎?(孔曰:「茲,此也。言文王雖已死,其文見在此。此,自謂其身。」 )天之將喪斯文也,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孔曰:「文王既沒,故孔子自謂後死。言天將喪此文者,本不當使我知之。今使我知之,未欲喪也。」)天之未喪斯文也,匡人其如予何?」(馬曰:「其如予何者,猶言奈我何也。天之未喪此文則我當傳之。匡人慾奈我何,言其不能違天以害己也。」 )

◎《논어주소(論語註疏)》

疏“ 子畏”至“予何”。

○正義曰:此章記孔子知天命也。

“子畏於匡”者,謂匡人以兵圍孔子,記者以眾情言之,故云“子畏於匡”。其實孔子無所畏也。

“曰 : 文王既沒,文不在茲乎”者,孔子以弟子等畏懼,故以此言諭之。茲,此也。

言文王雖已死,其文豈不見在我此身乎?言其文見在我此身也。

“天之將喪斯文也,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者,後死者,孔子自謂也。以文王既沒,故孔子自謂已為後死者。

言天將喪此文者,本不當使我與知之。今既使我知之,是天未欲喪此文也。

“天之未喪斯文也,匡人其如予何”者,如予何,猶言奈我何也。天之未喪此文,則我當傳之。匡人其欲奈我何,言匡人不能違天以害已也。

○注“包曰”至“圍之”。

○正義曰:此注皆約《世家》,述其畏匡之由也。

案《世家》云:“孔子去衛。將適陳,過匡。顏克為仆,以策指之曰:‘昔日吾入此,由彼缺也。’匡人聞之,以為魯之陽虎。陽虎嘗暴匡人,匡人於是遂止孔子。孔子狀貌類陽虎,拘焉五日。匡人拘孔子益急,弟子懼。孔子曰:‘文王既沒,文不在茲乎?’”已下文與此正同,是其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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