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위정(為政) 卷 2- 20
2-20) 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 如之何?" 子曰: "臨之以莊則敬, 孝慈則忠, 擧善而敎不能則勸."
(계강자문: "사민경충이권, 여지하?" 자왈: "임지이장즉경, 효자즉충, 거선이교불능즉권.")
계강자가 물었다. “백성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충성을 권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백성을] 엄숙함으로 대하면 공경하고 효도하고 자애로우면 충성하며, 선한 사람을 등용하여서 잘하지 않은 [백성을] 가르치면 권장이 됩니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季康子問:「使民敬、忠以勸,如之何?」(孔曰:「魯卿季孫肥。康,諡。」 ◎공안국이 말하였다:노(魯)나라의 경(卿)인 “계손비(季孫肥)”이며 “강(康)”은 시호이다.)子曰:「臨之以莊則敬,(包曰:「莊,嚴也。君臨民以嚴,則民敬其上。」 ◎포함이 말하였다:“장(莊)”은 엄숙함이다. 군주가 엄숙함으로 백성을 대하면, 백성들이 그 윗사람을 공경한다.)孝慈則忠,(包曰:「君能上孝於親,下慈於民,則民忠矣。」 ◎포함이 말하였다:군주가 위에서 어버이에게 효도를 잘하고, 아래로 백성들에게 자애로우면 백성들이 충성한다.)舉善而教不能則勸。(包曰:「舉用善人而教不能者,則民勸勉。」 ◎포함이 말하였다:선한 사람을 등용해 쓰고서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치면 백성을 힘쓰도록 권함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註疏】 「 季康」至「則勸」。
○【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계강(季康)]에서 [즉권(則勸)]까지
○正義曰:此章明使民敬、忠、勸善之法。
○正義曰:이 장(章)은 백성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충성하도록 권장하여 [백성을] 착하게 하는 방법을 밝힌 것이다.
「季康子問:使民敬、忠以勸,如之何」者,季康子,魯執政之上卿也。
[경문(經文)에서] "계강자가 물었다. '백성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충성을 권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 如之何]"라는 것의, 계강자(季康子)는 노(魯)나라의 정권을 잡은 상경(上卿)이다.
時以僭濫,故民不敬、忠、勸勉,故問於孔子曰:「欲使民人敬上盡忠,勸勉為善,其法如之何?」
이때 [계강자 가] 주제넘은 짓을 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공경하고 충성함을 힘쓰도록 권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공자께 묻기를 ‘백성들과 사람들로 하여금 윗사람을 공경하고 충성을 다하도록 권하여 선행을 실천하도록 하려면 그 방법을 어찌해야 하느냐?’고 한 것이다.
「子曰:臨之以莊則敬」者,此答之也。自上蒞下曰臨。莊,嚴也。言君臨民以嚴,則民敬其上。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엄숙함으로 대하면 공경하고[子曰 臨之以莊則敬]"라는 것은, 이것은 대답을 하신 것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을 ‘임(臨)’이라 하고, 장(莊)은 엄숙함이다. 군주가 백성을 엄숙함으로 대하면 백성들이 그 윗사람을 공경한다는 말이다.
「孝慈則忠」者,言君能上孝於親,下慈於民,則民作忠。
[경문(經文)에서] "효도하고 자애로우면 충성하며[孝慈則忠]"라는 것은, 군주가 위로 어버이께 효도를 잘하고 아래로 백성에게 자애로우면 백성들이 충성을 다한다는 말이다.
「舉善而教不能則勸」者,言君能舉用善人,置之祿位,教誨不能之人,使之材能,如此則民相勸勉為善也。
[경문(經文)에서] "선한 사람을 등용하여서 잘하지 않은 백성을 가르치면 권장이 됩니다[擧善而敎不能則勸]"라는 것은, 군주가 착한 사람을 등용하여 잘 써서 녹봉과 지위를 주고,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쳐 본받게하면 재주를 잘 사용하는데, 이와 같이 하면 백성들이 서로 권하여 선행을 힘써 실천한다는 말이다.
於時魯君蠶食深宮,季氏專執國政,則如君矣,故此答皆以人君之事言之也。
이때에 노(魯)나라 군주는 깊은 궁중을 잠식(蠶食)당하였으며, 계씨(季氏)가 국정을 잡고 전담하였는데 마치 군주와 같았기 때문에 이 대답은 모두 군주된 사람의 일로써 말씀하신 것이다.
○ 【集解】注「魯卿季孫肥。康,諡」。
○ 【집해(集解)】 주(注)의 “노나라의 경인 계손비이며 강(康)은 시호이다[魯卿 季孫肥 康 諡]까지"
○正義曰:知者,據《左傳》及《世家》文也。《諡法》云:「安樂撫民曰康。」
○正義曰:〈계강자(季康子)가 계손비(季孫肥)인 것을〉 안 것은 《춘추좌전(春秋左傳)》 과 《사기(史記)》 〈세가(世家)〉의 글에 의거해서이다. 시호 법에 이르기를 “안락하게 백성을 위무(慰撫)한 것을 강(康)이라 한다.”고 하였다.
'◑논어注疏[刑昺]'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논어주소(論語註疏)』 위정(為政) 卷 2- 22 (1) | 2024.04.18 |
---|---|
◎ 『논어주소(論語註疏)』 위정(為政) 卷 2- 21 (0) | 2024.04.16 |
◎ 『논어주소(論語註疏)』 위정(為政) 卷 2- 19 (1) | 2024.04.12 |
◎ 『논어주소(論語註疏)』 위정(為政) 卷 2- 18 (1) | 2024.04.10 |
◎ 『논어주소(論語註疏)』 위정(為政) 卷 2- 17 (1) | 2024.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