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이루(離婁)-下
1章
孟子曰:「舜生於諸馮,遷於負夏,卒於鳴條,東夷之人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순(舜)임금께서는 제풍(諸馮)에서 태어나시어 부하(負夏)로 옮기셨다가 명조(鳴條)에서 돌아가셨으니, 동이(東夷)의 사람이시다.>
【趙岐 注】: 生,始。卒,終。記終始也。諸馮、負夏、鳴條,皆地名也。負海也,在東方夷服之地,故曰東夷之人也。
【조기 注】: 생(生)은 시작함이다. 졸(卒)은 마침이다. 마치고 시작함을 기록하였다. 제풍(諸馮), 부하(負夏), 명조(鳴條)는 모두 땅 이름이다. 짊어진 바다는, 동쪽 방향이 이복(夷服)의 땅에 있기 때문에 말하기를 동이(東夷)의 사람이라 말했다.
譯註 1: 『周禮』 夏官 職方氏⇒ 乃辨九服之邦國方千里曰王畿其外方五百里侯服又其外方五百里曰甸服又其外方五百里曰男服又其外方五百里曰采服又其外方五百里曰衛服又其外方五百里曰蠻服又其外方五百里曰夷服又其外方五百里曰鎭服又其外方五百里曰藩服.
<『주례(周禮)』하관(夏官) 직방씨(職方氏)⇒주나라 때는 천자의 직속된 왕성(王城)인 왕기(王畿)의 외방을 구복(九服)으로 나누어 오백 리 마다 차례로 후복(侯服), 전복(甸服), 남복(男服), 채복(采服), 위복(衛服), 만복(蠻服), 이복(夷服), 진복(鎭服), 번복(藩服)의 아홉 구역으로 하였다.>
文王生於岐周,卒於畢郢,西夷之人也。<문왕(文王)께서는 기주(岐周)에서 태어나시어 필영(畢郢)에서 돌아가셨으니, 서이(西夷)의 사람이시다.>
【趙岐 注】: 岐周、畢郢,地名也。岐山下周之舊邑,近畎夷。畎夷在西,故曰西夷之人也。《書》曰:「大子發上祭於畢,下至於盟津。」畢,文王墓,近於酆、鎬之地。
【조기 注】: 기주(岐周)와 필영(畢郢)은 땅의 이름이다. 기산(岐山)의 아래는 주(周)나라의 옛 도읍[舊邑]이며 견이(畎夷)에 가깝다. 견이(畎夷)는 서쪽에 있기 때문에 서이(西夷)의 사람이다. 《서(書)》에 말하기를 "태자 발(發)이 위에서 필(畢)땅에 제사지냈고 아래로 맹진(盟津)에 이르렀다."라고 했다. 필(畢)은 문왕의 묘이며 풍(酆)에 가까운 호(酆)의 땅이다.
地之相去也千有餘裏,世之相後也千有餘歲,得誌行乎中國,若合符節。先聖後聖,其揆一也。<[순임금과 문왕의] 땅이 서로 천여 리나 떨어져 있었고, 시대[世]가 서로 천여 년이나 뒤에 있었지만, 뜻을 이루어 중국(中國)에 행함에는 부절(符節)을 맞춘 것 같았다. 앞의 성인과 뒤의 성인이 그를 하나로 같이 헤아리셨다.>
【趙岐 注】: 土地相去千有餘裏,千裏以外也。舜至文王,千二百歲。得誌行政於中國,蓋謂王也。如合符節,節,玉節也,《周禮》有六節。揆,度也,言聖人之度量同也。
【조기 注】: 영토가 서로 천여 리나 떨어져 있음은 천리의 밖이다. 순(舜)에서 문왕(文王)에 이르름이 천 이백년이다. 뜻을 얻어서 중국(中國)에 정사를 행함은, 대개 왕을 일컬음이다. 부절(符節)을 맞춘 것 같음의 절(節)은 옥으로 만든 부절이며, 《주례(周禮)》에 6절(節)이 있다. 규(揆, 헤아릴 규)는 헤아림이다. 성인의 헤아림은 량이 같다는 말이다.
이루(離婁)-下
2章
子產聽鄭國之政,以其乘輿濟人於溱洧。<[정나라 대부] 자산(子産)이 정(鄭)나라의 정사를 들을 적에, 그의 타는 수레를 가지고 진수(溱水)와 유수(洧水)에서 사람들을 건네주었다.>
【趙岐 注】: 子產,鄭卿。為政,聽訟也。溱洧,水名。見人有冬涉者,仁心不忍,以其乘車度之也。
【조기 注】: 자산(子產)은 정(鄭)나라의 경(卿)이다. 정치를 함은 송사(訟事)를 들음이다. 진(溱)과 유(洧)는 강물의 이름이다. 사람이 겨울에 [강을] 건너는 자가 있음을 보고, 어짊을 차마 참지 못하고 그 타는 수레로써 건너게 했음이다.
孟子曰:「惠而不知為政。歲十一月徒杠成,十二月輿梁成,民未病涉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산(子產)이] 은혜롭지만 정사를 실천함은 알지 못하였다. 해의 11월에 무리의 외나무 다리를 놓고, 12월에 수레의 교량을 놓는다면, 백성들이 [강물을] 건넘을 병고(病苦)로 여기지 않았다.>
【趙岐 注】: 以為子產有惠民之心,而不知為政,當以時修橋梁,民何由病苦涉水乎?周十月,夏九月,可以成涉度之功。周十一月,夏十月,可以成輿梁也。
【조기 注】: 자산(子產)이 백성을 은애하는 마음이 있다고 여기면서도 정사를 할줄 알지 못하며, 마땅히 그로써 때맞게 교량을 수리하였다면 백성이 어찌 강물을 건너는 병고(病苦)를 말미암았을까? 주(周)나라는 10월에 하(夏)나라는 9월에, [강을] 건너는 법도의 공을 이룸으로 할수 있음이다. 주(周)나라는 11월에 하(夏)나라는 10월에, 수레가 [건너는] 교량을 놓음으로 할수 있었다.
君子平其政, 行辟人可也,焉得人人而濟之。故為政者每人而悅之,日亦不足矣。」 <군자가 정사를 공평하게 하자면, 행차할적에 사람들이 피하게 할수도 있는데, 어찌 사람 사람마다 [다리를] 건너가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정치하는 자가 매 사람마다 기쁘게 해주려 한다면, 날마다 해도 부족할 것이다.”>
【趙岐 注】: 君子為國家平治政事刑法,使無違失其道,辟除人,使卑辟尊可為也。安得人人濟渡於水乎?每人而悅之欲自加恩,以成其意,則日力不足以足之也。
【조기 注】: 군자는 나라와 집안의 정사와 형법을 고르게 다스려 그 도(道)를 어겨서 잃음이 없게 하면 사람을 덜어냄을 피하고 낮은 이로 하여금 높은 이를 피함을 하게 할수 있음이다. 어찌 사람 사람마다 강물에서 나루를 건네 주겠는가? 사람마다 그를 기쁘게 해주려고 스스로 은혜를 더하고, 그로써 그 뜻을 이룬다면 날마다 힘을 넉넉하게 함으로는 부족함이다.
이루(離婁)-下
3章
孟子告齊宣王曰:「君之視臣如手足,則臣視君如腹心。君之視臣如犬馬,則臣視君如國人。君之視臣如土芥,則臣視君如寇讎。<맹자께서 제(齊)나라 선왕(宣王)에게 말씀하셨다. “군주의 신하 살피기를 손이나 발처럼 하면 신하가 군주 살피기를 배나 심장처럼 하고, 군주의 신하 살피기를 개나 말처럼 하면 신하가 군주 살피기를 나라 [보통]사람처럼 하며, 군주가 신하를 흙이나 지푸라기처럼 보면 신하는 군주를 도적이나 원수[구수(寇讎)]처럼 봅니다.”>
【趙岐 注】: 芥,草芥也。臣緣君恩,以為差等,其心所執若是也。
【조기 注】: 개(芥, 겨자 개)는 풀과 티끌이다. 신하의 녹봉은 군주의 은혜인데 그로써 차등이 되며 그 마음을 잡는 바가 이와 같음이다.
王曰:「禮,為舊君有服,何如斯可為服矣?」 <왕이 말하였다. “예(禮)에 '옛 군주를 위하여 상복(喪服)을 입는다'고 했는데, 어찌하면 이와 같이 상복을 입게 할 수 있습니까?”>
【趙岐 注】: 宣王問禮舊臣為舊君服喪服,問君恩何如則可以為服。
【조기 注】: 선왕(宣王)께서 옛 신하가 옛 군주를 위하여 상복을 입는 예를 물었는데, 군주의 은혜를 어찌하면 상복을 입게 할수 있을까를 물었음이다.
曰:「諫行言聽,膏澤下於民;有故而去,則使人, 導之出疆,又先於其所往;去三年不反,然後收其田裏:此之謂三有禮焉。如此,則為之服矣。<[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간(諫)하면 행해지고 말하면 들어주며 은택(恩澤)이 백성에게 내려지고, [신하가] 연고가 있어 떠나면 [군주가] 사람을 시켜서 인도를 하여 국경을 나가게 하고 또 그가 가는 곳에 먼저 [기별]하며, 떠나서 3년을 돌아오지 않은 연후에야 그의 토지와 마을[주택]을 거두었으니, 이는 그곳에 세 번 예(禮)가 있다고 일컫습니다. 이와 같으면 그[군주]를 위해 상복(喪服)을 입습니다.>
【趙岐 注】: 為臣之時,謀行言從,惠澤加民。若有他故,不得不行,譬如華元奔晉、隨會奔秦是也,古之賢君遭此,則使人導之出境,又先至其所到之國言其賢良。三年不反,乃收其田裏。田,業也;裏,居也。此三者有禮,則為之服矣。
【조기 注】: 신하를 하는 때에, 도모하면 행하고 말하면 따르며 은혜(恩惠)로운 덕택(德澤)이 백성에게 더해짐이다. 만약 다른 연고(緣故)가 있음은, 부득불 행함인데 비유하면 화원(華元, 宋나라 장수)이 진(晉)나라로 달아남과 수회(隨會, 晉나라 신하)가 진(秦)나라로 달아남이 이와 같음이며, 옛날의 현명한 군주는 이러함을 만나면 사람을 시켜서 인도를 하여 국경을 나가게 하고 또 그가 가는 곳의 나라에 먼저 이르러서 그의 현명한 양인임을 말하였음이다. 3년을 돌아오지 않으면 이에 그 토지와 마을[주택]을 거두었음이다. 전(田)은 가업(家業)이며, 리(裏=里)는 거주(居住)함이다. 이 세가지 예(禮)가 있음은, 곧 그것을 위하여 상복(喪服)을 입는다.
今也為臣,諫則不行,言則不聽,膏澤不下於民;有故而去,則君搏執之,又極之於其所往;去之日,遂收其田裏:此之謂寇讎。寇讎何服之有?」 <지금은 신하가 되어 간(諫)하면 행해지지 않고, 말하면 들어주지 않아서 은택(恩澤)이 백성들에게 내려지지 않으며, [신하가] 연고(緣故)가 있어서 떠나면 군주가 그를 두드려 잡고, 또 그가 가는 곳에 극진(極盡)하게 하며, 떠나는 날에 드디어 그의 토지와 마을[주택]을 거두었으니, 이를 도적이나 원수[구수(寇讎)]라고 일컫습니다. 원수를 어찌 상복을 입어줄 수 있겠습니까?”>
【趙岐 注】: 摶執其族親也。極者,惡而困之也。遇臣若寇讎,何服之有乎?
【조기 注】: 그의 족친(族親)을 두드려 잡음이다. 극(極)이라는 것은, 미워하면서 곤란(困難)하게 함이다. 신하를 만나기를 원수[구수(寇讎)] 같이 하는데, 어찌 상복을 입어줄 수 있는가?
이루(離婁)-下
4章
孟子曰:「無罪而殺士,則大夫可以去。無罪而戮民,則士可以徙。」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죄가 없는데도 관리[士]를 죽이면 대부(大夫)를 달아나게 할 수 있고, 죄가 없는데도 백성을 도륙(屠戮)하면 관리[士]가 [자리를] 옮겨가게 할 수 있다.”>
【趙岐 注】: 惡傷其類,視其下等,懼次及也。語曰:「鳶鵲蒙害,仁鳥曾逝。」此之謂也。
【조기 注】: 그 무리를 미워하여 해(害)침을 그 아래 무리가 보면 두려움이 차례(次例)로 미치게됨이다. 속담[語]에 말하기를 "솔개가 어린 까치를 해치면, 어진 새들이 더하여 떠나간다."라고 했는데, 이를 일컬음이다.
이루(離婁)-下
5章
孟子曰:「君仁莫不仁,君義莫不義。」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주가 어질[仁]면 [나라에] 어질지 않은 이가 없고, 군주가 의(義)로우면 의롭지 않은 이가 없다.”>
【趙岐 注】: 君者,一國所瞻仰以為法,政必從之,是上為下則也。
【조기 注】: 군주[君]라는 것은, 한 나라가 우러러 보는 바를 법으로 여기며 정사를 반드시 따라 가는데 이는 위가 아래를 법칙으로 삼음이다.
이루(離婁)-下
6章
孟子曰:「非禮之禮,非義之義,大人弗為。」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예(禮)가 아닌 예와 의(義)로움이 아닌 의로움을, 대인(大人)은 행하지 않는다.”>
【趙岐 注】: 若禮而非禮,陳質娶婦而長拜之也。若義而非義,藉交報讎是也。此皆大人之所不為也。
【조기 注】: 만약 예(禮)인데도 예(禮)가 아님은, 폐백(幣帛)을 늘어놓고 아내를 맞아들이면서 어른에게 절을 함이다. 만약 의(義)로움인데도 의롭지 않으면, 사귐을 속이[깔아놓]고 원수(怨讐)를 갚음이 이것이다. 이는 모두 대인(大人)은 하지 않는 바이다.
이루(離婁)-下
7章
孟子曰:「中也養不中,才也養不才,故人樂有賢父兄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가운데 사람은 가운데 아닌 사람을 길러주고, 재주 있는 이는 재주 없는 이를 길러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명한 부형(父兄)이 계심을 즐거워한다. >
【趙岐 注】: 中者,履中和之氣所生,謂之賢。才者,是謂人之有俊才者。有此賢者,當以養育教誨不能,進之以善,故樂父兄之賢以養己也。
【조기 注】: 중(中)이라는 것은, 가운데 자리에 나아가 어울려서 기가 생겨나는 바를 일컫기를 현(賢)이라 한다. 재(才)라는 것은, 이는 사람이 뛰어난 재주가 있음을 가리킨 것이다. 이 현명함이 있다는 것은, 마땅히 길러 자라게 함으로써 본받아 가르침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착함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부형(父兄)의 현명함으로써 자기를 길러줌을 즐거워함이다.
如中也棄不中,才也棄不才,則賢不肖之相去,其間不能以寸。」 <만일 가운데가 가운데 아닌 데를 버리고, 재주가 재주 없음을 버린다면, 현명함과 그렇지 못함의 서로 물리친 그 사이는 한 치도 잘되지 않게 된다.”>
【趙岐 注】: 如使賢者棄愚,不養其所以當養,則賢亦近愚矣。如此,賢不肖相覺,何能分寸,明不可不相訓導也。
【조기 注】: 만약 현명한 자가 어리석은 이를 버린다면 그 바를 기름으로써 마땅히 기르지 않는다면 현명한 이 또한 어리석은 이에 가깝게 됨이다. 이와 같이 현명한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서로 깨우치면 어찌 한치라도 잘 나누어지겠으며 밝음이 불가불(不可不) 서로 가르쳐 인도하게 된다.
이루(離婁)-下
8章
孟子曰:「人有不為也,而後可以有為。」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하지 않음이 있은 뒤에야 함이 있음을 할 수 있다.”>
【趙岐 注】: 人不為苟得,乃能有讓千乘之誌也。
【조기 注】: 사람이 진실로 얻으려 하지 않으면 이에 수래 천대의 뜻이라도 잘 사양하게 된다.
이루(離婁)-下
9章
孟子曰:「言人之不善,當如後患何!」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의 착하지 않음을 말하다가 뒤에 같은 근심을 당(當)하면 어찌하겠는가?”>
【趙岐 注】: 人之有惡,惡人言之。言之,當如後有患難及己乎。
【조기 注】: 남을 미워함이 있으면 남이 미움을 그에게 말함이다. 말을 함은, 어려운 근심이 자기에게 미침이 있음을 뒤에 같이 당(當)하지 않겠는가?
이루(離婁)-下
10章
孟子曰:「仲尼不為已甚者。」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仲尼]께서는 이미 심하게 [잘못된] 것은 하지 않으셨다.”>
【趙岐 注】: 仲尼彈邪以正,正斯可矣,故不欲為已甚泰過也。孟子所以譏逾牆距門者也。
【조기 注】: 중니께서는 간사함을 탄핵(彈劾)함으로써 바로잡았는데, 이를 할 수 있음은 바름이기 때문에 이미 심하게 크게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맹자께서 문에서 떨어진 담을 넘은 것을 비웃었던 까닭이다.
이루(離婁)-下
11章
孟子曰:「大人者,言不必信,行不必果,惟義所在。」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대인(大人)된 자는 말을 반드시 믿음있으려 하지 않고, 행동은 반드시 과단(果斷)하려고 않으며, 오직 옳음(義)이 존재하는 바이다.”>
【趙岐 注】: 果,能也。大人仗義,義有不得必信其言,子為父隱也;有不能得果行其所欲行者,若親在不得以其身許友也;義或重於信:故曰惟義所在也。
【조기 注】: 과(果)는 잘함이다. 대인(大人)은 옳음(義)에 의지(依支)하고 옳음(義)은 그 말에 반드시 믿음을 얻지 않음이 있어서 자식은 아버지를 숨겨주려 하며, 그 행한 것을 바라는 바를 과단(果斷)한 행함을 잘 얻지 못함이 있어서, 친한 이가 그 자신이 벗을 허락(許諾)함으로써 얻지 못함이 존재함과 같으며, 옳음(義)이 혹 믿음 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말하기를 "오직 옳음(義)이 존재하는 바이다."라고 했다.
이루(離婁)-下
12章
孟子曰:「大人者,不失其赤子之心者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대인(大人) 된 자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자이다.”>
【趙岐 注】: 大人謂君。國君視民,當如赤子,不失其民心之謂也。一說曰:赤子,嬰兒也,少小之子,專一未變化,人能不失其赤子時心,則為貞正大人也。
【조기 注】: 대인(大人)은 군주를 가리킨다. 나라 군주가 백성을 보기를 마땅히 어린아이 같이 하면 백성의 마음을 잃지 않음을 일컬음이다. 한 가지 설에 말하기를 "어린아이[赤子]는 갓난아이인데, 작고 적은 자식이 오로지 한 가지로 변화하지 않음이며 사람이 그 어린아이 시절의 마음을 잘 잃지 않으면 곧고 바른 대인(大人)이 된다."라고 했다.
이루(離婁)-下
13章
孟子曰:「養生者不足以當大事,惟送死可以當大事。」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살아있는 자를 봉양(奉養)함은 큰 일에 해당함으로 넉넉하지 않고, 오직 죽은 이를 보냄[葬禮]이라야 큰 일에 해당될 수 있다.”>
【趙岐 注】: 孝子事親致養,未足以為大事,送終如禮,則為能奉大事也。
【조기 注】: 효자가 어버이 섬기는 부양함에 이르름은, 큰 일로 함으로는 넉넉하지 않으며, 죽은이 보냄[葬送]을 예(禮)와 같이 한다면 큰 일을 잘 받들게 됨이다.
이루(離婁)-下
14章
孟子曰:「君子深造之以道,欲其自得之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도(道)로서 [학문(學問)을] 깊게 지어 나감은, 그 스스로 그것[학문(學問)]을 얻고자 함이다. >
【趙岐 注】: 造,致也。言君子學問之法,欲深致極竟之以知道意,欲使己得其原本,如性自有之然也。故曰欲其自得之而已。
【조기 注】: 조(造, 지을 조)는 성취(成就)함이다. 군자가 학문의 법도를, 깊이 이르르는 경계를 지극하게 함으로써 뜻하는 도를 알게 하며, 자기로 하여금 그 근원하는 근본을 얻게 하여서 본성이 스스로 있는 것과 같은 듯이 함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그 스스로 그것[학문(學問)]을 얻고자 함이다.”라고 했다.
自得之,則居之安;居之安,則資之深;資之深,則取之左右逢其原:故君子欲其自得之也。」 <스스로 그것[學問]을 얻으면 거주하는데에 편안하고, 거주하는데에 편안하면 자질(資質)이 깊으며, 자본(資本)이 깊으면 좌우를 취해서 근원을 만나게 되기 때문에 군자는 스스로 그것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趙岐 注】: 居之安,若己所自有也。資,取也。取之深,則得其根也。左右取之,在所逢遇皆知其願本也。故使君子欲其自得之也。
【조기 注】: 거주하는 데에 편안함은, 자기가 스스로 있는바와 같음이다. 자(資, 재물 자)는 취함이다. 취함을 깊게 하면 그 뿌리를 얻게 됨이다. 좌우를 취하여 우연(偶然)히 만나는 바에 모두 그 원하는 근본을 앎이 존재함이다. 그러므로 군자로 하여금 그 스스로 그것을 얻고자 한다.
이루(離婁)-下
15章
孟子曰:「博學而詳說之,將以反說約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움을 널리 하면서 자세히 설명을 함은, 장차 그로써 돌이켜 묶어서 설명하려 함이다.”>
【趙岐 注】: 博,廣。詳,悉也。廣學, 悉其微言而說之者,將以約說其要,意不盡知,則不能要言之也。是謂廣尋道意,還反於樸,說之美者也。
【조기 注】: 박(博, 넓을 박)은 넓음이다. 상(詳, 자세할 상)은, 남김 없음이다. 배움을 널리 함은 적게 말하면서도 설명을 모두 하는 것이며, 장차 그로써 그 요점을 묶어서 설명해도 뜻을 다 알지 못하면 요점을 잘 말한 것이 아니다. 이는 도의 뜻을 널리 찾고 순박함에 돌이켜 돌려보내서 설명을 아름답게 하는 것을 일컬음이다.
이루(離婁)-下
16章
孟子曰:「以善服人者,未有能服人者也。以善養人,然後能服天下。天下不心服而王者,未之有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착함[善]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는 자는, 남을 잘 복종시키는 자가 없다. 착함[善]으로써 남을 길러준 연후에 천하를 잘 복종한다. 천하가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데도 왕을 하는 자는 아직 있지 않았다.”>
【趙岐 注】: 以善服人之道治世,謂以威力服人者也,故人不心服。以善養人,養之以仁恩,然後心服矣,若文王治於岐邑是也。天下不心服,何由而王也。
【조기 注】: 착함[善]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키는 세상을 다스리는 도(道)는, 위력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는 것을 가리킴이다. 그러므로 남을 마음으로 복종시키지 못한다. 착함[善]으로써 남을 길러줌은, 어진 은혜로 길러 준 연후에 마음으로 복종하는데, 문왕께서 기읍(岐邑)을 다스림이 이와 같았음이다. 천하가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무엇을 말미암아서 왕을 하겠는가?
이루(離婁)-下
17章
孟子曰:「言無實不祥。不祥之實,蔽賢者當之。」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에 진실(眞實)이 없으면 상서(祥瑞)롭지 않다. [말이] 상서(祥瑞)롭지 않은 진실은, 현명한 자[賢者]라면 마땅히 그것을 덮는다.”>
【趙岐 注】: 凡言皆有實,孝子之實,養親是也。善之實,仁義是也。祥,善。當,直也。不善之實何等也,蔽賢之人直於不善之實也。
【조기 注】: 대체로 말은 모두 진실(眞實)이 있는데, 효자의 진실은 어버이를 바르게 부양함이다. 착한 진실은, 인의(仁義)를 바르게 함이다. 상(祥, 상서 상)은 착함이다. 당(當, 마땅 당)은 곧음이다. 조금도 착하지 않은 진실은, 현명한 사람이 착하지 않은 진실을 곧바로 덮음이다.
이루(離婁)-下
18章
徐子曰:「仲尼亟稱於水,曰:『水哉水哉!』何取於水也?」 <[맹자의 제자] 서자(徐子)가 말하였다. “중니(仲尼)께서 자주 물을 일컬어 말씀하시기를 ‘물이여, 물이여!’ 하셨는데, 물에서 무었을 취하려 하셨습니까?”>
【趙岐 注】: 徐子,徐辟也。問仲尼何取於水而稱之也。
【조기 注】: 서자(徐子)는 서벽(徐辟)이다. 중니(仲尼)께서 물에서 무엇을 취함을 가리키려는 것인가 물었음이다.
孟子曰:「原泉混混,不舍晝夜,盈科而後進,放乎四海。有本者如是,是之取爾。<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근원의 셈물이 합하고 합해져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구덩이를 가득채운 뒤에 나아가 사해(四海)에 이르른다. 근본이 있는 것은 이와 같으니, 이러한 점을 취하신 것일세.>
【趙岐 注】: 言水不舍晝夜而進。盈,滿。科,坎。放,至也。至於四海者,有原本也。以況於事,有本者,皆如是是之取也。
【조기 注】: 물은 밤낮을 쉬지 않으면서 나아간다는 말이다. 영(盈, 찰 영)은, 가득 참이다. 과(科, 과목 과)는, 구덩이 이다. 방(放, 놓을 방)은, 이르름이다. 사해四海에 이르른다는 것은 근원하는 근본이 있음이다. 그로써 일에는 하물며 근본이 있는 것은 모두 이와 같이 이를 취함이다.
苟為無本,七八月之間雨集,溝澮皆盈,其涸也。可立而待也。<진실로 근본이 없게 한다면 7, 8월 사이에 빗물이 모여서 도랑이 모두 가득차더라도, 그것이 마르기를 서서도 기다릴 수 있다네. >
【趙岐 注】: 苟,誠也。誠令無本,若周七八月,夏五六月,天之大雨,潦水卒集,大溝小澮皆滿,然其涸也可立待之者,以其無本故也。
【조기 注】: 구(苟, 진실로 구)는 진실함이다. 진실로 근본이 없도록 령을 함이고, 주(周)나라의 7,8월은 하(夏)나라의 5,6월과 같으며, 하늘의 큰 비는 장마비가 모두 모여 큰 도랑과 작은 봇도랑에 모두 가득차는데, 그러한 그[물]가 마르기를 서서 기다릴 수 있는 것은 그로써 그 근본하는 연고(緣故)가 없음이다.
故聲聞過情,君子恥之。<그러므로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치는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하네.”>
【趙岐 注】: 人無本,行暴得善聲,令聞過其情,若潦水不能久也,故君子恥之。
【조기 注】: 사람이 근본이 없고 행함이 난폭한데도 좋은 명성을 들으면, 그 뜻을 잘못으로 듣게 함인데, 장마 빗물은 오래도록 잘 내리지 않기 때문에 군자가 그것을 부끄러워함과 같음이다.
이루(離婁)-下
19章
孟子曰:「人之所以異於禽獸者幾希,庶民去之,君子存之。<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이 거의 드문데, 여러 백성들은 그것마저 버리고 군자는 그것을 보존한다.>
【趙岐 注】: 幾希,無幾也。知義與不知義之間耳。眾民去義,君子存義也。
【조기 注】: 기희(幾希)는 거의 없음이다. 의리(義理)를 아는 것과 의리를 알지 못함의 사이일 뿐이다. 여러 백성들은 의리를 버리고 군자는 의리를 보존함이다.
舜明於庶物,察於人倫。由仁義行,非行仁義也。<순(舜)임금께서는 여러 사물에 밝으시고 사람의 윤리를 살피시며, 어짊[仁]과 옳음[義]을 따라서 행하셨지만 인의(仁義)를 [억지로] 행하려 하시지는 않으셨다.”>
【趙岐 注】: 倫,序。察,識也。舜明庶物之情,識人事之序。仁義生於內,由其中而行,非強力行仁義也。故道性善,言必稱於堯舜。但君子存之,庶民去之而不由爾。
【조기 注】: 륜(倫, 인륜 륜)은 차례이다. 찰(察, 살필 찰)은 [살펴] 앎이다. 순(舜)임금께서 여러 사물의 실정에 밝으시고 사람 일의 차례를 알았음이다. 어짊[仁]과 옳음[義]은 안에서 생겨나고 그 심중을 말미암으면서 행하며 인의(仁義)를 강한 힘으로 행함은 아니다. 그러므로 도(道)가 본성이 착함은 반드시 요(堯)와 순(舜)임금을 가리켜 말한다. 단지 군자는 그것을 보존하고 여러 백성은 그것을 버리면서 말미암지 않을 뿐이다.
이루(離婁)-下
20章
孟子曰:「禹惡旨酒而好善言。<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우(禹)임금께서는 맛있는 술을 싫어하시면서, 착[善]한 말을 좋아하셨다.>
【趙岐 注】: 旨酒,美酒也。儀狄作酒,禹飲而甘之。遂疏儀狄,而絕旨酒。《書》曰:「禹拜昌言。」
【조기 注】: 맛있는 술[旨酒]은, 술을 찬미하였음이다. 의적(儀狄)이 술을 만들고 우(禹)임금께서 드셨는데 그것[술]이 달았음이다. 드디어 의적(儀狄)을 멀리[疏遠]하면서 맞있는 술을 끊으셨다. 《서(書)》에 말하기를 "우(禹)임금께서 선량(善良)한 말에는 절을 하셨다."라고 했다.
譯註 1: 『戰國策』 魏策篇⇒ 魯君興, 避席擇言, 曰: “昔者帝女令儀狄作酒而美, 進之禹,。禹飮而甘之, 遂疏儀狄, 絶旨酒, 曰: ‘後世必有以酒亡其國者。’ ”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篇⇒ 노나라 군주가 일어나 자리를 피하며 말을 골라서 말하기를 “ 옛날에 임금의 딸이 의적(儀狄)을 시켜서 술을 만들었는데 [맛이] 좋아서 우(禹)임금에게 바쳤다. 우(禹)임금이 마셨는데 [술이] 달아서 드디어 의적(儀狄)을 멀리하고 맛있는 술을 끊으시고 ‘뒷 날에 반드시 술로써 그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라고 했다.
湯執中,立賢無方。<탕왕(湯王)께서는 중도中道를 잡으시고 어진 이를 세우시되 [편중(偏重)하는] 지역[方]이 없으셨다.>
【趙岐 注】: 執中正之道,惟賢速立之,不問其從何方來。舉伊尹以為相也。
【조기 注】: 가운데 바른 도(道)를 잡고 오직 현명한 이를 빨리 세우우며 그 따름이 어느 방향에서 왔는가를 묻지 않았음이다. 이윤(伊尹)을 등용하여 그로써 재상을 삼으셨다.
文王視民如傷,望道而未之見。<문왕(文王)께서는 백성을 다칠 듯이 보셨으며, 도(道)를 바라면서도 아직 보지 못한 듯이 하셨다.>
【趙岐 注】: 視民如傷者,雍容不動擾也。望道而未至,殷錄未盡,尚有賢臣,道未得至,故望而不致誅於紂也。
【조기 注】: 백성을 다칠 듯이 보시는 것은, 화목한 얼굴로 시끄럽게 움직이지 않았음이다. 도(道)를 바라보면서 아직 이르르지 않았음은, 은(殷)나라의 녹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현명한 신하가 있으며 도(道)가 아직 이르러 얻지를 못했기 때문에 바라면서도 주(紂)를 벌줌에 이르지는 않았음이다.
武王不泄邇,不忘遠。<무왕(武王)께서는 가까운 이[朝臣]를 빠트리지 않으시고, 먼 데[諸侯]를 잊지 않으셨다.>
【趙岐 注】: 泄,狎。邇,近也。不泄狎近賢,不遺忘遠善。近,謂朝臣。遠,謂諸侯也。
【조기 注】: 설(泄, 샐 설)은 친압(親狎)함이다. 이(邇, 가까울 이)는 가까움이다. 가까이 현명한 이를 친압(親狎)하여 빠트리지 않고 먼데 착한 이를 잊어서 남기지 않음이다. 가까이는 조정 신하[朝臣]를 말함이고 먼데는 제후(諸侯)를 가리킴이다.
周公思兼三王,以施四事,其有不合者,仰而思之,夜以繼日;幸而得之,坐以待旦。」 <주공(周公)께서는 삼왕(三王;禹, 湯, 文‧武)을 겸하여 사모하시고 그로써 네 분들의 일을 시행하시되, 그 들어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우러러보면서 그것을 생각하는데 밤과 낮을 이어서 하셨으며, 다행히도 터득을 하게 되면 앉아서 아침을 기다리셨다.”>
【趙岐 注】: 三王,三代之王也。四事,禹、湯、文、武所行之事也。不合,己行有不合也。仰而思之,參諸天也。坐以待旦,言欲急施之也。
【조기 注】: 삼왕(三王)은 삼대의 왕이다. 네가지 일[四事]은, 우(禹), 탕(湯), 문무(文‧武)왕께서 행하신 바의 일이다. 불합(不合)은, 자기가 행함과 들어맞지 않음이다. 우러러보면서 생각을 함은, 모두 하늘에 참여함이다. 앉아서 아침을 기다림은, 그것을 급히 시행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이루(離婁)-下
21章
孟子曰:「王者之跡熄而《詩》亡,《詩》亡 然後《春秋》作。<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성왕(聖王)의 자취가 사라지면서 시(詩)가 없어지고, 시(詩)가 없어진 뒤에 《춘추(春秋)》가 지어졌다.>
【趙岐 注】: 王者謂聖王也。太平道衰,王跡止熄,頌聲不作,故《詩》亡。《春秋》撥亂,作於衰世也。
【조기 注】: 왕자(王者)는 성왕(聖王)을 일컬음이다. 태평한 도(道)가 약해져 왕의 자취가 그치고 사라져서 칭송(稱頌)하는 노래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시(詩)》가 없어졌다. 《춘추(春秋)》는 세상이 쇠약해짐을 지어서 어지러움을 다스렸다.
晉之《乘》,楚之《檮杌》,魯之《春秋》,一也。『其事則齊桓、晉文,其文則史。』孔子曰:『其義則丘竊取之矣。』」 <진(晉)나라의 《승(乘)》과 초(楚)나라의 《도올(檮杌)》과 노(魯)나라의 《춘추(春秋)》는 [다같이] 하나이다. 그 일은 곧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일이고, 그 글월이 곧 사관(史官)의 글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옳음을 즉 내가[丘] 외람되이 취했다.’라고 하셨다.”>
【趙岐 注】: 此三大國史記之異名。「乘」者,興於田賦乘馬之事,因以為名;「檮杌」者,嚚凶之類,興於記惡之戒,因以為名;「春秋」,以二始舉四時,記萬事之名。其事,則五霸所理也,桓、文,五霸之盛者,故舉之。其文,史記之文也。孔子自謂竊取之,以為素王也。孔子人臣,不受君命,私作之,故言竊,亦聖人之謙辭爾。
【조기 注】: 이 세 가지 큰 나라 역사 기록의 이름이 다름이다. 「승(乘)」이라는 것은, 토지의 세금을 받으려고 말을 타는 일이며, 그로써 말미암아 이름 하였고, 「도올(檮杌)」이라는 것은, 어리석고 흉한 부류이며, 악함을 징계하여 기록 함이며, 그로써 말미암아 이름 하였으며, 「춘추(春秋)」는, 둘[春秋]로써 사시[春夏秋冬]를 비롯하여 들어서 모든 일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그 일은, 곧 다섯 패자(覇者)의 이치인 바인데 환공(桓公)과 문공(文公)이 다섯 패자에서 성대한 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예로] 들었음이다. 그 글월이 사관이 기록한 글이다. 공자(孔子)께서 스스로 외람되게 그것을 취했다고 말함은, 그로써 바탕을 왕으로 여겼음이다. 공자께서 신하된 사람이 군주의 천명을 받지 않았으면서 사사로이 그것[춘추]를 지었기 때문에 외람됨이라 말했으며 또한 성인의 겸손으로 말하였을 뿐이다.
이루(離婁)-下
22章
孟子曰:「君子之澤,五世而斬。小人之澤,五世而斬。予未得為孔子徒也,予私淑諸人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의 덕택(德澤)도 5대[世]가 지나면 끊어지고, 소인의 덕택(德澤)도 5대가 지나면 없어진다.
나는 공자의 제자가 되지는 못하였으나, 나는 여러 사람에게 [공자의 도를] 사숙(私淑)하였다.”>
【趙岐 注】: 澤者,滋潤之澤。大德大凶,流及後世,自高祖至玄孫,善惡之氣乃斷,故曰五世而斬。予,我也。我未得為孔子門徒也。淑,善也。我私善之於賢人耳,蓋恨其不得學於大聖人也。
【조기 注】: 택(澤)이라는 것은, 불어나서 윤택해짐의 택(澤)이다. 큰 덕과 크게 흉함은, 흘러서 후세에 미치고 고조로부터 현손에 이르기 까지 선(善)과 악(惡)의 기운이 이에 끊어지기 때문에 말하기를 ‘5대[世]이면 끊어진다.’고 했음이다. 여(予)는 나이다. 나는 아직 공자의 문도가 되지 못했음이다. 숙(淑, 맑을 숙)은 착함이다. 나는 사적으로 현명한 사람에게서 착해졌을 뿐이며 대개 큰 성인에게 배우지 못했음을 한탄하였음이다.
이루(離婁)-下
23章
孟子曰:「可以取,可以無取,取傷廉。可以與,可以無與,與傷惠。可以死,可以無死,死傷勇。」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취함으로 할 수도 있고 취하지 않음으로 할 수도 있는데, 취하면 청렴[廉]을 해치게 되고,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주면 은혜[惠]를 해치게 되며, 죽을 수도 있고 죽지 않을 수도 있는데, 죽으면 용기[勇]를 해치게 된다.”>
【趙岐 注】: 三者,皆謂事可出入,不至違義,但傷此名,亦不陷於惡也。
【조기 注】: 세 가지 것은, 모두 일을 출입(出入)할 수 있음을 말하는데 뜻을 어기고 이르지 않으면 단지 이 이름을 다치게 되며 또한 악함에 빠지지 않게 됨이다.
이루(離婁)-下
24章
逢蒙學射於羿,盡羿之道,思天下惟羿為愈己,於是殺羿。<방몽(逄蒙)이 예(羿)에게서 활쏘기를 배웠는데 예(羿)의 도술을 다 익히고서 ‘천하에서 오직 예(羿)가 자기 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이에 예(羿)를 죽였다. >
【趙岐 注】: 羿,有窮後羿。逢蒙,羿之家眾也。《春秋傳》曰:「羿將歸自田,家眾殺之。」
【조기 注】: 예(羿)는 유궁(有窮)씨의 후예이다. 방몽(逢蒙)은 예(羿)의 집안의 무리이다. 《춘추좌전(春秋傳)》에 말하기를 "예(羿)가 장차 사냥터에서 돌아왔는데 집안의 무리가 그를 죽였다."라고 했다.
孟子曰:「是亦羿有罪焉。」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에는 또한 예(羿)에게도 책임이 있다. >
【趙岐 注】: 罪羿不擇人也,故以下事喻之
【조기 注】: 예(羿)의 죄는 남이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래 일로써 그것을 깨우침이다.
公明儀曰:「宜若無罪焉。」曰:「薄乎云爾,惡得無罪?鄭人使子濯孺子侵衛,衛使庾公之斯追之。子濯孺子曰:『今日我疾作,不可以執弓,吾死矣夫!』 <[노나라 현인(賢人)] 공명의(公明儀)가 말하기를 ‘마땅히 죄가 없을 듯하다.’라고 하고, 이어 말하기를 '너에게 [죄를] 일러주는게 적다하여, 어찌 죄가 없겠는가?'라고 했었다. 정(鄭)나라 사람이 자탁유자(子濯孺子)로 하여금 위(衛)나라를 침략하게 하자, 위(衛)나라에서는 유공(庾公)의 사(斯)로 하여금 그를 쫓아 내게 하였다. 자탁유자가 말하기를 ‘오늘 나는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 없으니, 나는 그에게 죽는구나!’라고 하며,>
【趙岐 注】: 孺子,鄭大夫。庾公,衛大夫。疾作瘧疾。
【조기 注】: 유자(孺子)는 정(鄭)나라 대부이다. 유공(庾公)은 위(衛)나라 대부이다. 질(疾)은 학질[말라리아]에 걸렸음이다.
問其仆曰:『追我者誰也?』其仆曰:『庾公之斯也。』曰:『吾生矣。』 <그의 마부에게 묻기를 ‘나를 쫓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물으니, 그 마부가 대답하기를 ‘유공(庾公)의 사(斯)입니다.’고 하자, [자탁유자가] 말하기를 ‘나는 살았다.’고 하였다. >
【趙岐 注】: 仆,禦也。孺子曰:吾必生矣。
【조기 注】: 복(仆, 종 복)은 마부이다. 유자(孺子)가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살았다."라고 하였음이다.
其仆曰:『庾公之斯,衛之善射者也。夫子曰吾生,何謂也?』曰:『庾公之斯學射於尹公之他,尹公之他學射於我。夫尹公之他,端人也,其取友必端矣。』 <그 마부가 말하기를 ‘유공(庾公)의 사(斯)는 위(衛)나라의 활쏘기를 잘하는 자인데, 선생께서 내가 살았다고 말하시니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하자, 그[자탁유자]가 대답하기를 ‘유공의 사(斯)는 윤공(尹公)의 타(他)에게 활쏘기를 배웠고, 윤공의 타(他)는 나에게 활쏘기를 배웠다. 그 윤공의 타(他)는 단정(端正)한 사람이니, 그가 벗을 사귐에는 반드시 단정(端正)하였을 것이다.’고 하였다. >
【趙岐 注】: 端人,用心不邪辟。知我是其道本所出,必不害我也。
【조기 注】: 단인(端人)은 마음을 간사하고 편벽(偏僻)하지 않게 사용함이다. 나는 이[사람]는 그 도(道)가 나오는 근본이기에, 반드시 나를 해치지 않음을 안다.
庾公之斯至,曰:『夫子何為不執弓?』曰:『今日我疾作,不可以執弓。』曰:『小人學射於尹公之他,尹公之他學射於夫子,我不忍以夫子之道反害夫子。雖然,今日之事,君事也,我不敢廢。』抽矢叩輪,去其金,發乘矢而後反。」 <유공(庾公)의 사(斯)가 도착하여 말하기를 ‘선생은 왜 활을 잡지 않았습니까?’고 하자, [자탁유자가] 말하기를 ‘오늘 나는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가 없었네.’라고 대답하니, [유공의 사(斯)가] 말하기를 ‘소인은 활쏘기를 윤공 타(他)에게 배웠고, 윤공 타(他)는 활쏘기를 선생에게 배웠으니, 저는 차마 선생의 기술로써 돌이켜 선생을 해치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오늘의 일은 군주를 섬기는 일이니, 제가 감히 그만두지 못합니다.’라고 하고는, 화살을 뽑아 수레바퀴에 두들겨 그 화살촉을 빼버리고 네 대의 화살을 쏜 뒤에 돌아갔다.”>
【趙岐 注】: 庾公之斯至,竟如孺子之所言。而曰:我不敢廢君事,故叩輪去鏃,使不害人,乃以射孺子,禮射四發而去。乘,四也。《詩》云:「四矢反兮。」孟子言是以明羿之罪,假使如子濯孺子之得尹公之他而教之,何由有逢蒙之禍乎。
【조기 注】: 유공(庾公)의 사(斯)가 도착하여 도리어 자탁유자[孺子]의 말한 바와 같이 했음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는 감히 군주를 섬기는 일을 폐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레바퀴를 두드려 화살 촉을 빼버리고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여서 이에 유자(孺子)에게 활을 가지고 활쏘는 예(禮)로 네 대를 쏘고서 떠났음이다. 승(乘)은 넷이다. 《시(詩)》에 이르기를 ”화살 네 대를 쏘고 돌아갔다.“라고 했는데, 맹자께서 이로써 예(羿)의 죄를 밝히는데, 자탁유자(子濯孺子)가 윤공(尹公)의 타(他)를 얻음과 같이 가정(假定)을 하여서 그것을 본받게 하였으며, 무슨 연유로 방몽(逄蒙)의 잘못이 있는가를 말하였음이다.
이루(離婁)-下
25章
孟子曰:「西子蒙不潔,則人皆掩鼻而過之。<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미녀] 서시(西施)가 깨끗하지 않은데에 덮어졌으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지나간다.>
【趙岐 注】: 西子,古之好女西施也。蒙不潔,以不潔汗巾帽而蒙其頭麵。麵雖好,以蒙不潔,人過之者皆自掩鼻,懼聞其臭也。
【조기 注】: 서자(西子)는 옛날의 좋은 여자[好女]인 서시(西施)이다. 깨끗하지 않음에 덮어졌음[蒙不潔]은, 땀으로 깨끗하지 않은 수건과 모자를 가지고서 그의 머리와 낯을 덮었음이다. 얼굴이 비록 좋더라도 깨끗하지 않음으로 덮으면, 사람들이 지나가는 자가 모두 스스로 코를 막고 냄새를 맡게 됨이 두려워함이다.
雖有惡人,齋戒沐浴,則可以祀上帝。<비록 사람에 미움이 있더라도 재계하고 목욕을 하면 상제(上帝)에게 제사지낼 수 있다.”>
【趙岐 注】: 惡人,醜類者也。麵雖醜而齋戒沐浴,自治潔淨 ,可以待上帝之祀。言人當自治以仁義乃為善也。
【조기 注】: 악인(惡人)은, 부류가 못생긴 자이다. 낯은 비록 못생겼는데도 재계하고 목욕을 하고 스스로 깨끗하고 밝게 다스리면 상제(上帝)의 제사를 모실 수 있음이다. 사람은 마땅히 스스로 어짊과 옳음으로써 다스리면 이에 착하게 된다.
이루(離婁)-下
26章
孟子曰:「天下之言性也,則故而已矣。故者以利為本。<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의 본성[性]을 말함은, 곧 연고(緣故)일 뿐이다. 연고라는 것은 이로움으로써 근본으로 삼는다.>
【趙岐 注】: 今天下之言性,則以故而已矣。以言其故者,以利為本耳。若杞柳為杯棬,非杞柳之性也。
【조기 注】: 지금 천하의 본성[性]을 말함은, 곧 연고(緣故)로써 할 뿐이다. 그로써 연고(緣故)를 말하는 것은 이로움으로써 근본을 삼을 뿐이다. 만약 기류버들[杞柳]로 버들그릇[배권(桮棬)]을 만들면, 기류버들[杞柳]의 본성은 아님이다.
所惡於智者,為其鑿也。<지혜로운 자를 미워하는 바는 파헤치기 때문인데, >
【趙岐 注】: 惡人慾用智而妄穿鑿,不順物之性,而改道以養之。
【조기 注】: 남을 미워함은, 지혜를 쓰기 바라면서도 망령되게 천착(穿鑿)하고, 만물의 본성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도를 고쳐서 그로써 그것[도]을 기르려고 함이다.
如智者若禹之行水也,則無惡於智矣。禹之行水也,行其所無事也。<만약 지혜로운 자가 우(禹)임금의 물 흘러가게 하신 것 같으면, 지혜로움을 미워함이 없다. 우임금의 물 흘러가게 하심은, [물이 흘러가는] 그 곳에 탈이 없게 행하셨다.>
【趙岐 注】: 禹之用智,決江疏河,因水之性,因地之宜,引之就下,行其空虛無事之處。
【조기 注】: 우(禹)임금의 지혜를 쓰심은, 강을 터서 황하에 소통함인데, 물의 본성을 말미암고 땅의 마땅함을 말미암으며 끌고 가서 아래로 나아갔으니 그 텅 비어서 일의 머무름이 없게 행하였음이다.
如智者亦行其所無事,則智亦大矣。<만약 지혜로운 자가 또한 그 곳에 탈이 없게 행한다면 지혜가 또한 클 것이다.>
【趙岐 注】: 如用智者,不妄改作,但循理,若禹之行水於無事,則為大智也。
【조기 注】: 만약 지혜를 쓰는 자가, 망령되게 고쳐 짓지 않고 이치(理致)를 좇으며, 우(禹)임금과 같이 물을 탈 없이 흘러가게 한다면 큰 지혜가 됨이다.
天之高也,星辰之遠也,苟求其故,千歲之日至可坐而致也。」 <하늘이 높고 별들이 멀더라도, 진실로 그 연고(緣故)를 밝히면, 천 년의 동지(冬至)를 앉아서 도달할 수 있다.”>
【趙岐 注】: 天雖高,星辰雖遠,誠能推求其故常,千歲日至之日可坐而致也。星辰,日月之會。致,至也。知其日至在何日也。
【조기 注】: 하늘이 비록 높고 별들이 비록 멀어도 진실로 그 일정한 연고를 미루어서 구하면 천 년의 동지(冬至) 날자를 앉아서 도달할 수 있음이다. 성신(星辰)은 해와 달이 만남이다. 치(致, 이를 치)는 이르름이다. 그 동지(冬至)를 어느 날에 있는지 앎이다.
이루(離婁)-下
27章
公行子有子之喪。右師往吊,入門,有進而與右師言者,有就右師之位而與右師言者。<공항자(公行子)에게 아들의 상(喪)이 있었다. 우사(右師)가 조문하러 갔는데, 문에 들어가자 나와서 우사와 더블어 말하는 자가 있었고, 우사가 자기 자리로 가자 우사와 더블어 말하는 자가 있었다.>
【趙岐 注】: 公行子,齊大夫也。右師,齊之貴臣王,字子敖者。公行之喪,齊卿大夫以君命會,各有位次,故下云朝廷也。與言者,皆諂於貴人也。
【조기 注】: 공항자(公行子)는 제(齊)나라의 대부이다. 우사(右師)는 제(齊)나라의 왕의 귀한 신하이며 자(字)가 자오[子敖:왕환(王驩)]이다. 공항자(公行子)의 상(喪)에, 제(齊)나라의 경과 대부들이 군주의 명으로써 모였는데, 각각 자리의 차례가 있기 때문에 아래에 일러준 조정(朝廷)이다. 함께 말한 자는 모두 귀한 사람에게 아첨함이다.
孟子不與右師言,右師不悅,曰:「諸君子皆與言,孟子獨不與言,是簡也。」 <맹자(孟子)께서는 우사(右師)와 말씀을 나누지 않자, 우사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여러 군자들이 모두 더블어 말하는데 맹자가 홀로 더블어 말하지 못하니, 이는 쪼가리[조각]이다.”라고 하였다.>
【趙岐 注】: 右師謂孟子簡其無德,故不與言,是以不悅也。
【조기 注】: 우사(右師)가 일컫기를 “맹자는 그 덕이 없는 쪼가리[조각]이기 때문에 더블어 말하지 못하니 이것이 기쁘지 않음이다.”라고 했다.
孟子聞之曰:「禮,朝廷不曆位而相與言,不逾階而相揖也。我欲行禮,子敖以我為簡,不亦異乎」 <맹자께서 그것[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예(禮)에 조정에서는 [남의] 자리를 지나가면서 서로 더블어 말하지 않고, 품계를 뛰어넘어서 서로 읍(揖)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나는 예(禮)를 행하고자 하였는데, 자오(子敖)는 나더러 쪼가리[조각]라고 하니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하셨다.>
【趙岐 注】: 孟子聞子敖之言,曰:我欲行禮,故不曆位而言,反以我為簡異也。云以禮者,心惡子敖,而外順其辭也。
【조기 注】: 맹자께서 자오(子敖)의 쪼가리[조각]라는 말에 대답하시기를 “나는 예(禮)를 행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자리를 지나가면서 말하지 않았는데 도리어 나를 가지고 쪼가리[조각]라고 하니 이상하다.”라고 하셨음이다. 예(禮)로써 일러준 것은, 마음으로 자오(子敖)를 미워하면서도 밖으로 그 말에 순응하였음이다.
이루(離婁)-下
28章
孟子曰:「君子所以異於人者,以其存心也。君子以仁存心,以禮存心。仁者愛人,有禮者敬人。愛人者,人常愛之。敬人者,人常敬之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사람들과 다른 것의 까닭은, 그[어짊]로써 마음에 있게 하기 때문이다. 군자는 어짊[仁]을 가지고 마음에 있게 하고, 예(禮)를 가지고 마음에 있게 한다. 어진 자[仁者]는 남을 사랑하고, 예(禮)가 있는 자는 남을 공경한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남도 항상 그를 사랑하고, 남을 공경하는 자는 남도 항상 그를 공경한다.>
【趙岐 注】: 存,在也。君子之在心者,仁與禮也。愛敬施行於人,人亦必反報之於已也。
【조기 注】: 존(存, 있을 존)은 있음이다. 군자의 마음에 있는 것은 어짊과 예(禮)이다. 사랑과 공경을 남에게 베풀고 행하면, 남이 또한 반드시 반대로 자기에게 갚아 주게 된다.
有人於此,其待我以橫逆,則君子必自反也:『我必不仁也,必無禮也,此物奚宜至哉。』 <여기에 사람이 있는데 그가 나를 도리에 어긋나게 대한다면 , 군자는 반드시 자신을 반성하는데 ‘나는 반드시 어질지 않고, 반드시 예(禮)가 없는가보다. 이러한 일[物]이 어찌 마땅하게 이르렀겠는가?’라고 한다.>
【趙岐 注】: 橫逆者,以暴虐之道來加我也。君子反自思省,謂己仁、禮不至也,物,事也,推此人何為以此事來加於我也。
【조기 注】: 횡역(橫逆)이라는 것은, 사나움으로써 모짊의 도를 나에게 더해 옴이다. 군자는 돌이켜 스스로 살필 생각을 함인데, 자기가 어짊과 예에 이르지 않았음을 가리킴이다. 물(物)은 일이며, 이 사람들이 어찌 이러한 일로써 나에게 더하여 오게 하였는가를 미루어 봄이다.
其自反而仁矣,自反而有禮矣,其橫逆由是也,君子必自反也:『我必不忠。』 <스스로 돌이켜보았는데 어질었고, 스스로 돌이켜보았는데 예(禮)가 있었는데도, 이를 말미암아 도리에 어긋나게 한다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반성하기를 ‘내가 반드시 진실하지 못하였구나.’라고 한다.>
【趙岐 注】: 君子自謂我必不忠。
【조기 注】: 군자가 스스로 일컫기를 “내가 진실하지 못했구나.”라고 함이다.
自反而忠矣,其橫逆由是也,君子曰:『此亦妄人也已矣。如此,則與禽獸奚擇哉?於禽獸又何難焉?』 <스스로 돌이켜보았는데 진실하였는데도, 이를 말미암아 도리에 어긋나게 한다면, 군자는 말하기를 ‘이 또한 망령된 사람일 뿐이다.’고 하는데, 이와 같다면 금수(禽獸)와 더블어 어찌 가려내고, 금수에게 또 무엇을 꾸짖을 것인가?>
【趙岐 注】: 妄人,妄作之人。無知者與禽獸何擇異也?無異於禽獸,又何足難矣?
【조기 注】: 망인(妄人)은 망령됨을 만드는 사람이다. 지혜가 없는 자는 금수(禽獸)와 더블어 어찌 다름을 가려 내겠는가? 금수(禽獸)에 다름이 없으면 또 어찌 족히 꾸짖겠는가?
是故君子有終身之憂,無一朝之患也。乃若所憂則有之:舜,人也;我,亦人也。舜為法於天下,可傳於後世,我由未免為鄉人也,是則可憂也。<이 때문에 군자는 종신토록 하는 근심은 있어도, 하루 아침의 걱정은 없다. 이에 만약 근심하는 바라면 그것이 있는데, 순(舜)임금은 사람이고 나 또한 사람이지만, 순임금께서는 천하에 모범이 되어서 후세에 전해 질 수 있었으나, 나는 아직 시골 사람을 면하지 못했으니, 이것이라면 근심할 만함이다. >
【趙岐 注】: 君子之憂,憂不如堯舜也。
【조기 注】: 군자의 근심은, 근심이 요.순(堯舜)임금과 같지는 않음이다.
憂之如何?如舜而已矣。<근심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순(舜)임금 같이 할 뿐이다. >
【趙岐 注】: 憂之當如何乎?如舜而後可,故終身憂也。
【조기 注】: 근심을 함은 어떻게 해야 마땅함인가? 순(舜)임금 같이 한 이후에 할 수 있기 때문에 종신토록 근심함이다.
若夫君子所患則亡矣,非仁無為也,非禮無行也。如有一朝之患,則君子不患矣。」 <만약 그 군자가 걱정하는 바를 없앴다면, 어짊이 아니면 하지 않고,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만약 하루 아침의 걱정이 있다면 군자는 걱정하지 않는다.”>
【趙岐 注】: 君子之行,本自不致患,常行仁禮,如有一朝橫來之患,非己愆也。故君子歸天,不以為患也。【조기 注】: 군자의 행함은, 본래 스스로 걱정에 이르르지 않으며 항상 어짊과 예를 행하는데 만약 하루 아침의 도리가 아닌 걱정이 오더라도 자기를 허물하지 않음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하늘에 돌리고 그로써 걱정하지 않는다.
이루(離婁)-下
29章
禹、稷當平世,三過其門而不入。孔子賢之。顏子當亂世,居於陋巷,一簞食,一瓢飲,人不堪其憂,顏子不改其樂。孔子賢之。孟子曰:「禹、稷、顏回同道。禹思天下有溺者,由己溺之也;稷思天下有饑者,由己饑之也:是以如是其急也。禹、稷、顏子,易地則皆然。<우왕(禹王)과 후직(后稷)은 평안한 세상을 당하여, 세 번이나 그[집] 문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하셨는데, 공자(孔子)께서 어질게 여기셨다. 안자(顔子)는 어지러운 세상을 당하여 밥 한 그릇 먹고 물 한 바가지를 마시며 누추한 골목에 살았는데, 남들은 그 걱정[가난]을 견디지 못하였지만, 안자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으니, 공자께서 그를 어질게 여기셨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우왕(禹王)과 후직(后稷)과 안회(顔回)는 도가 같다. 우왕은 천하에서 물에 빠진 자가 있으면, 자기가 물에 빠지게 한 것처럼 생각했으며, 후직은 천하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자기가 굶주리게 한 것처럼 생각했다. 이것으로써 [그 일을] 이와 같이 급하게 하셨다. 우왕(禹王)과 후직(后稷)과 안자(顔子)는 [그들과] 처지(處地)를 바꾼다면 모두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趙岐 注】: 當平世,三過其門者,身為公卿,憂民者也;當亂世,安陋巷者,不用於世,窮而樂道者也:孟子以為憂民之道同,用與不用之宜若是也,故孔子俱賢之。禹、稷急民之難若是,顏子與之易地,其心皆然。不在其位,故勞佚異。
【조기 注】: 평안한 새상을 당하여 세 번이나 그[집] 문을 지났다는 것은, 자신이 공경(公卿)이 되었는데도 백성을 걱정하는 것이며, 어지러운 세상을 당하여 누추한 거리에 편안한 것은, 세상에 쓰이지 않아서 궁핍한데도 도(道)를 즐거워하는 것이며, 맹자께서 백성을 걱정하는 도(道)가 같다고 여기며 함께 사용함은 이와 같은 마땅함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께서 현명함을 갖추었다 하였음이다. 우왕(禹王)과 후직(后稷)이 백성의 어려움에 이와 같이 급하였음은, 안자(顔子)와 처지(處地)가 바뀐다면 그 마음이 모두 그러했음이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수고로움과 편안함이 달랐음이다.
【石潭齋案】 : 우왕(禹王)과 후직(后稷)
1. 우왕(禹王) ⇒우(禹)는 전욱(顓頊)의 손자이며, 곤(鯀)의 아들이다. 곤(鯀)이 요(堯)임금의 치세에 큰 홍수가 발생하여 홍수를 다스렸으나 실패하여 순(舜)에 의해 우산(羽山)으로 추방당하여 죽었다. 섭정인 순(舜)이 곤(鯀)의 아들 우(禹)에게 치수(治水)를 명하였는데 13년간 노력을 하여 치수에 성공하였다. 순(舜)임금이 죽자 제위를 계승하여, 나라 이름을 하(夏)나라로 고치고 안읍(安邑)에 도읍하였다.
2. 후직(后稷) ⇒직(稷)은, 주(周)나라 왕실의 시조(始祖)인 기(棄)이며 요(堯)임금 때 농사(農師)가 되고 순(舜)임금 때 후직(后稷)이 되어 직(稷)이라 칭하였다.
今有同室之人鬥者,救之,雖被發纓冠而救之可也。鄉鄰有鬥者,被發纓冠而往救之,則惑也,雖閉戶可也。」 <지금 같은 집의 사람들이 싸우는 자가 있으면 그것을 말리는데, 비록 머리를 풀어헤친 채 갓끈만 매고서 말리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고을의 이웃이 싸우는 자가 있는데, 머리를 풀어헤친 채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리면, 곧 의심(疑心)하니, 비록 문을 닫고 [모른 체해도] 될 것이다.”>
【趙岐 注】: 纓冠者,以冠纓貫頭也。鄉鄰,同鄉也。同室相救,是其理也,喻禹、稷。走赴鄉鄰,非其事,顏子所以閉戶而高枕也。
【조기 注】: 영관(纓冠)이라는 것은, 관의 끈을 머리에 걸침이다. 향린(鄉鄰)은, 같은 고향이다. 같은 집은 서로 말리는데, 이것이 도리이며, 우왕(禹王)과 후직(后稷)에게 깨우침이다. 고을의 이웃에 달려감은 그의 일이 아니며, 안자(顏子)가 문을 닫으면서 베개를 높이는 까닭이다.
이루(離婁)-下
30章
公都子曰:「匡章通國皆稱不孝焉。夫子與之遊,又從而禮貌之,敢問何也?」 <공도자(公都子)가 말하였다. “광장(匡章)은 나라 [사람] 모두 가리키기를 불효자(不孝子)로 통하는데, 선생님께서 그와 더블어 교유하시고 또 좇으면서 예우하시니, 감히 어째서인지 여쭙겠습니다.” >
【趙岐 注】: 匡章齊人也,一國皆稱不孝,問孟子何為與之遊,又禮之以顏色喜悅之貌也?
【조기 注】: 광장(匡章)은 제(齊)나라 사람이고, 한 나라가 모두 불효자(不孝子)라 칭하는데 맹자께서 어찌 더블어 교유를 하며 또 예우를 하면서 얼굴 색이 기뻐하는 모양인가를 물었음이다.
孟子曰:「世俗所謂不孝者五:惰其四支,不顧父母之養,一不孝也;博弈好飲酒,不顧父母之養,二不孝也;好貨財,私妻子,不顧父母之養,三不孝也;從耳目之欲,以為父母戮,四不孝也;好勇鬥很,以危父母,五不孝也。章子有一於是乎?<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세속에서 이른바 불효(不孝)라는 것이 다섯 가지인데, 그 사지를 게을리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음이 첫 번째 불효이고, 장기와 바둑 두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음이 두 번째 불효이며,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에 사사로이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음이 세 번째 불효이고, 귀와 눈의 욕망을 따름으로써 부모를 욕되게 함이 네 번째 불효이며, 용맹을 좋아하여 싸우거나 다툼으로써 부모를 위태롭게 함이 다섯 번째 불효인데, 장자(章子)가 이중에 한 가지라도 있는가?>
【趙岐 注】: 惰懈不作,極耳目之欲以陷罪,戮及父母。凡此五者,人所謂不孝之行。章子豈有一事於此五不孝中也。
【조기 注】: 게으르고 나태함을 만들지 않았지만 귀와 눈의 욕망을 다함으로써 죄에 빠지니 마침내 부모를 욕되게 함이다. 대체로 이 다섯 가지는, 사람이 일컬은 바 불효를 행함이다. 장자(章子)가 어찌 이 다섯 가지 불효 가운데에 한 가지라도 섬김이 있었는가?
夫章子,子父責善而不相遇也。責善,朋友之道也。父子責善,賊恩之大者。<그 광장[章子]은 자식이 아버지가 착하도록 책망(責望)하여서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착하도록 요구함은 친구의 도(道)이며, 부자간에 선을 요구함은 은혜를 크게 해치는 것이다.>
【趙岐 注】: 遇,得也。章子子父親教,相責以善,不能相得,父逐之也。朋友切磋,乃當責善耳。父子相責以善,賊恩之大者也。
【조기 注】: 우(遇, 만날 우)는, 얻음이다. 장자(章子)는 자식을 아버지가 친히 가르키면 서로 착하도록 책망하여 서로 잘 얻지 못하며 아버지가 [자식을] 좇아내게 된다. 친구는 갈아내고 끊으며, 이에 마땅히 착하도록 책망할 뿐이다. 부자가 서로 착하도록 책망하면 은혜를 크게 해치는 것이 된다.
夫章子豈不欲有夫妻子母之屬哉?為得罪於父,不得近,出妻屏子,終身不養焉。<그 광장[章子]이 어찌 부부(夫婦)와 자모(子母)의 속함에 있기를 바라지 않았겠는가마는, 아버지에게 죄를 얻음으로 하여서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되고, 아내에게서 나가 자식에게 물리쳐 져서 종신토록 봉양을 받지 못했다. >
【趙岐 注】: 夫章子豈不欲身有夫妻之配,子有子母之屬哉?但以身得罪於父,不得近父,故出去其妻,屏遠其子,終身不為妻子所養也。
【조기 注】: 그 광장[章子]이 어찌 자신의 부부(夫婦)와 짝함이 있으며, 광장[章子]이 자모(子母)의 속함에 있기를 바라지 않았겠는가? 단지 자신이 아버지에게 죄를 얻음으로써 아버지에 가까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처에게서 쫒겨 나가 그 자식에게 멀리 막혀서 종신토록 처와 지식이 봉양하는 바를 받지 못했음이다.
其設心以為不若是,是則罪之大者。是則章子已矣。」 <그[章子]가 마음을 세워서 그로써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이는 곧 큰 죄가 됨이라 여긴 것이며, 이러함이 곧 광장[章子]일 뿐이다.”>
【趙岐 注】: 章子張設其心,執持此屏妻子之意,以為得罪於父,而不若是以自責罰,是則罪益大矣。是章子之行已矣,何為不可與言。
【조기 注】: 광장[章子]이 그 마음을 베풀어 세워서 처와 자식이 물리치는 이 뜻을 잡아 가지고, 아버지에게 죄를 얻얻다고 여기면서 이와 같이 스스로 죄를 책망하지 않으면, 이는 곧 죄를 크게 더하게 됨이다. 이를 광장[章子]이 행하였을 뿐인데 어찌 말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는가?
이루(離婁)-下
31章
曾子居武城,有越寇。或曰:「寇至,盍去諸?」 <증자(曾子)께서 무성(武城)에 거주하시는데, 월(越)나라의 침략이 있었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적군이 쳐들어오는데, 어찌 떠나지 않으십니까?” >
【趙岐 注】: 盍,何不也。曾子居武城,有越寇將來,人曰寇方至,何不去之?
【조기 注】: 합(盍, 어찌 합)은, 어찌 아니하는가이다. 증자(曾子)께서 무성(武城)에 거주하시는데, 월(越)나라 적군의 침략이 장차 있었으며 사람들이 말하기를 "적들이 사방에 처들어오는데 어찌 달아나지 않는가?"라고 했음이다.
曰:「無寓人於我室,毀傷其薪木。」寇退,則曰:「脩我牆屋,我將反。」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집에 사람들을 살게하며, 섶이나 나무가 헐어서 상함이 없게 하라.”고 하였는데, 적들이 물러가자, 곧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담장과 집을 수리하라. 내가 장차 돌아갈 것이다.” >
【趙岐 注】: 寓,寄也。曾子欲去,戒其守人曰:無寄人於我室,恐其傷我薪草樹木也。寇退,則曰:治牆屋之壞者,我將來反。
【조기 注】: 우(寓, 부칠 우)는, 기탁(寄託)함이다. 증자(曾子)께서 떠나려 하시면서 그[집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경계하도록 말하며 "내 집을 사람들에게 기탁(寄託)하는데, 나의 풀섶이나 세운나무가 상함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적들이 물러가자, 곧 말씀하시기를 “나의 담장과 집의 무너진 것을 다스려라. 내가 장차 돌아갈 것이다.”라고 하였음이다.
寇退,曾子反。左右曰:「待先生如此其忠且敬也,寇職則先去以為民望,寇退則反,殆於不可。」 <적들이 물러가고 증자께서 돌아오셨는데, 좌우에서 말하기를 “선생님을 그들[무성 사람]이 이와 같이 충성스럽고 또 공경스럽게 대우했는데, 적군이 관직(官職)을 하자 곧 먼저 떠나가서 백성들이 본보기로 여겼으며, 적군이 물러가니 곧 돌아오셨는데, 해서는 않될 일에 가깝습니다.”라고 했다.>
【趙岐 注】: 左右相與非議曾子者,言武城邑大夫敬曾子,武城人為曾子忠謀,勸使避寇,君臣忠敬如此,而先生寇至則先去,使百姓瞻望而效之,寇退安寧則複來還,殆不可如是。怪曾子何以行之也。
【조기 注】: 좌우에서 서로 더블어 증자(曾子)와 논의하지 않은 것은, 무성읍 대부들이 증자를 공경하고 무성 사람들도 증자를 위하여 충심으로 도모(圖謀)하여 적군을 피하도록 권하고 군신의 충성과 공경함이 이와 같은데도 선생께서 적군이 쳐들어오자 먼저 떠나니 여러 성[百姓]들로 하여금 바라 보고 그것을 본받았으며 적군이 물러가고 편안하면 다시 돌아왔음은, 거의 이와 같이 해서는 않됨이다. 증자(曾子)께서 어찌 그로써 행동 하였는지 괴이하게 여겼음이다.
沈猶行曰:「是非汝所知也。昔沈猶有負芻之禍,從先生者七十人,未有與焉。」 <[증자의 제자] 심유행(沈猶行)이 말하였다. “이는 자네들이 아는 바가 아닐세. 옛적에 심유(沈猶) 집안에 부추(負芻)의 화(禍)가 있었을 적에 선생을 따르는 자 70명은 그[禍]에 참여한 자가 있지 않았다네.”>
【趙岐 注】: 沈猶行,曾子弟子也。行謂左右之人曰:先生之行,非汝所能知也。先生,曾子也。往者先生嚐從門徒七十人,舍吾沈猶氏,時有作亂者曰負芻,來攻沈猶氏,先生率弟子去之,不與其難。言賓師不與臣同耳。
【조기 注】: 심유행(沈猶行)은, 증자(曾子)의 제자이다. [증자(曾子)의] 행동을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선생의 행동은 자네들이 잘 알 바가 아니라네.”라고 하였음이다. 선생(先生)은 증자(曾子)이다. 갔다는 것은 선생께서 일찍이 문도 70인을 따라서 우리 심유씨(沈猶氏) 집에 난을 일으킨 자가 있을 때의 부하(負芻)를 말하며 심유씨(沈猶氏)를 공격하러 왔는데 선생이 제자들을 데리고 달아나서 그 난에는 참여하지 않았음이다. 빈객인 스승은 신하와 같이 참여하지 않음을 말함이다.
子思居於衛,有齊寇。或曰:「寇至,盍去諸?」子思曰:「如伋去,君誰與守?」 <자사(子思)께서 위(衛)나라에 거주할 적에 제(齊)나라의 침략이 있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적군이 이르는데 어찌 떠나가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자, 자사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내[伋]가 떠나가면 군주를 누구와 더불어 지키겠는가?”>
【趙岐 注】: 伋,子思名也。子思欲助衛君赴難。
【조기 注】: 극(伋)은 자사(子思)의 이름이다. 자사(子思)가 위나라 군주의 어려움에 나아가 돕기를 바랐음이다.
孟子曰:「曾子、子思同道。曾子,師也,父兄也。子思,臣也,微也。曾子、子思易地則皆然。」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증자(曾子)와 자사(子思)의 도(道)는 같으시다. 증자께서는 스승이시며 부형(父兄)이셨고, 자사께서는 신하이시며 미천하셨다. 증자와 자사께서 처지를 바꾸셨다면 모두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趙岐 注】: 孟子以為二人同道。曾子為武城人作師,則其父兄,故去留無毀。子思,微少也,又為臣,委質為臣當死難,故不去也。子思與曾子,易地皆然。
【조기 注】: 맹자(孟子)께서 두 사람이 같은 도(道)라고 여기셨음이다. 증자(曾子)를 무성(武城) 사람들이 스승으로 만들게 하였으면 그 부형(父兄)이기 때문에 머무름을 훼손(毁損)함이 없이 떠났음이다. 자사(子思)는 미약하고 적었으며 또 신하가 되었으니 본질(本質)을 맏겨서 신하가 되었으며 마땅히 어려움에 죽어야 하기 때문에 떠나지 않았음이다. 자사(子思)는 증자(曾子)와 더블어 처지를 바꾸면 모두 그렇게 하였음이다.
이루(離婁)-下
32章
儲子曰:「王使人間夫子,果有以異於人乎?」 <[제나라 재상] 저자(儲子)가 말하기를 “왕께서 사람을 시켜 선생을 엿보게 하셨는데, 사람들과 다르게 잘함이 있습니까?”라고 하였는데,>
【趙岐 注】: 儲子,齊人也。間,視也。果,能也。謂孟子曰:王言賢者身貌必當有異,故使人視夫子能有異於眾人之容乎?
【조기 注】: 저자(儲子)는 제(齊)나라 사람이다. 문(間)은 주시함이다. 과(果)는 잘함이다. 맹자에게 물어 말하기를 “왕께서 현명한 것을 말함은 자신의 모습이 반드시 마땅히 다름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시켜서 선생을 엿보게 하였는데 여러 사람의 용모 보다 잘하는 다름이 있는가?”라고 했음이다.
孟子曰:「何以異於人哉!堯舜與人同耳。」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사람들 보다 다르겠습니까? 요순(堯舜)께서도 사람들과 더블어 같을 뿐입니다.”>
【趙岐 注】: 人生同受法於天地之形,我當何以異於人哉?且堯舜之貌與凡人同耳。其所以異,乃以仁義之道,在於內也。
【조기 注】: 사람은 천지의 모양을 법으로 받아서 함께 사는데, 나도 마땅히 무었을 가지고 남들 보다 다르겠는가? 또 요순(堯舜)의 모양은 보통 사람들과 더블어 같을 뿐이다. 그 다른 까닭은, 이에 어짊과 옳음의 도(道)를 가지고 [마음] 안에 있음이다.
이루(離婁)-下
33章
齊人有一妻一妾而處室者。其良人出,則必饜酒肉而後反。其妻問所與飲食者,則盡富貴也。<제(齊)나라 사람이 아내 한 명과 첩 한 명으로 집에 거처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 남편이 나가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은 뒤에 돌아왔다. 그 아내가 남편에게 함께 마시고 먹는 자를 물어 보는 바이면 모두 부유하고 귀하다고 하였다. >
【趙岐 注】: 良人,夫也。盡富貴者,夫詐言其姓名也。
【조기 注】: 양인(良人)은 남편(男便)이다. 모두 부유하고 귀하다[盡富貴]는 것은, 남편이 그 성과 이름을 속여서 말하였음이다.
其妻告其妾曰:「良人出,則必饜酒肉而後反,問其與飲食者,盡富貴也,而未嚐有顯者來。吾將間良人之所之也。」 <그 아내가 첩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남편이 외출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은 뒤에 돌아오는데, 더블어 마시고 먹는 자를 물어보면, 모두 부유하고 귀하다고 하는데, 일찍이 나타나 온 자가 없었으니, 내가 장차 남편이 가는 곳을 엿[물어]보려 하네.”고 하고서,>
【趙岐 注】: 妻疑其詐,故欲視其所之。
【조기 注】: 아내가 그 속임을 의심했기 때문에 그 가는 바를 보기를 바랐음이다.
蚤起,施從良人之所之,遍國中無與立談者。卒之東郭墦間之祭者,乞其餘;不足,又顧而之他。此其為饜足之道也。<일찍(蚤=早) 일어나 남편이 가는 곳을 붙좇아 따라가보니, 나라 안을 두루 다녀도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가 없었다. 마침내 동쪽 성곽 무덤 사이의 제사지내는 자에게 그 남은 음식을 빌어먹고, 부족하면 또 돌아보고 다른데로 갔다. 이것을 넉넉히 포식하는 방도(方道)로 하였다. >
【趙岐 注】: 施者,邪施而行,不欲使良人覺也。墦間,郭外塚間也。乞其祭者所餘酒肉也。
【조기 注】: 시(施, 베풀 시)라는 것은, 부당하게 실시하면서 행동하기에, 남편으로 하여금 깨닫기를 바라지 않았음이다. 번간(墦間)은, 성곽 밖의 무덤 사이이다. 그 제사지내는 자의 술과 고기가 남는 바를 빌어먹음이다.
其妻歸告其妾曰:「良人者,所仰望而終身也。今若此!」與其妾訕其良人,而相泣於中庭。<그 아내가 돌아와서 첩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남편이란 자는, 우러러 바라보면서 자신을 마치는 곳 인데, 지금 이와 같다네.”라고 하며, 그 첩과 더블어 남편을 비방(誹謗)하면서 뜰 가운데에서 서로 마주 울고 있었다. >
【趙岐 注】: 妻妾於中庭悲傷其良人,相對涕泣而謗毀之。
【조기 注】: 뜰 가운데에서 처와 첩이 그 남편에게 슬퍼서 아파하며, 서로 마주하여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헐뜯고 비방(誹謗)을 했음이다.
而良人未之知也,施施從外來,驕其妻妾。<그런데 남편은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하고, 의기양양하여 밖에서 좇아 와서는 그 아내와 첩에게 교만(驕慢)을 떨었다.>
【趙岐 注】: 施施猶扁扁喜悅之貌。以為妻妾不知,如故驕之也。
【조기 注】: 시시(施施)는 두루 두루 즐거워 기뻐하는 모양과 같음이다. 처와 첩이 알지 못함으로 여겼기 때문에 교만(驕慢)을 떨었음이다.
由君子觀之,則人之所以求富貴利達者,其妻妾不羞也而不相泣者,幾希矣。<군자의 도리(道理)로 살펴 보면, 사람이 부귀와 영달을 구하는 것의 까닭이니, 그 아내와 첩이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서로 마주하여 울지 않을 자가 거의 드물 것이다.>
【趙岐 注】: 由,用也。用君子之道觀之,今求富貴者,皆以枉曲之道,昏夜乞哀而求之,以驕人於白日。此良人為妻妾所羞而泣傷也。幾希者,言今苟求富貴,妻妾雖不羞泣者,與此良人妻妾何異也。
【조기 注】: 유(由)는 사용함이다. 군자가 사용하는 도로 살펴 보면, 지금 부귀를 구하는 자가 모두 휘어져 굽은 도를 가지고 어두운 밤에 슬프게 구걸을 하면서 그것[음식]을 구하면서도 그로써 대낮에는 남에게 교만(驕慢)을 떨었음이다. 이 남편이 처와 첩이 부끄러워하는 바가 되어서 울면서 속상해함이다. 기희(幾希)라는 것은, 지금 진실로 부귀를 구함을 말함인데, 처와 첩이 비록 부끄러워 울지 않는 것이 이 남편과 더블어 처와 첩이 어찌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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