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고자(告子)-下
1章
任人有問屋廬子曰:「禮與食,孰重?」 <임(任)나라 사람이 옥려자(屋廬子)에게 물었다. “예절[禮]과 음식[食] 중에서 무엇이 중요합니까?”>
【趙岐 注】: 任國之人問孟子弟子屋廬連,問二者何者為重。
【조기 注】: 임(任)나라 사람이 맹자제자(孟子弟子) 옥려연(屋廬連)에게 물었는데 두가지 중에 어느것이 중요한가를 물었음이다.
曰:「禮重。」 <[옥려자가] 말하였다. “예(禮)가 중요합니다.”>
【趙岐 注】: 答曰:禮重。
【조기 注】: 대답하기를 "예(禮)가 중요하다."라고 했음이다.
「色與禮,孰重?」曰:「禮重。」 <“여색[色]과 예(禮)에서는 무엇이 중요합니까?” [옥려자(屋廬子)가] 말했다. "예(禮)가 중요합니다.”>
【趙岐 注】: 重如上也。
【조기 注】: 중요함이 위와 같음이다.
曰:「以禮食則饑而死,不以禮食則得食,必以禮乎?親迎則不得妻,不親迎則得妻,必親迎乎?」 <[임나라 사람이] 말했다. “예(禮)로써 먹으면 굶어서 죽고, 예(禮)로써 먹지 않으면 밥을 얻더라도 반드시 예(禮)로써 해야 합니까? 친영(親迎)을 하면 아내를 얻지 못하고, 친영을 하지 않으면 아내를 얻더라도 반드시 친영을 해야 합니까?” >
【趙岐 注】: 任人難屋廬子,云若是則必待禮乎?
【조기 注】: 임(任)나라 사람이 옥려자(屋廬子)에게 어려움을 이르기를 "이와 같다면 반드시 대(待)하기를 예(禮)로 하는가?"라고 했음이다.
屋廬子不能對。明日之鄒,以告孟子,孟子曰:「於! 答是也何有? <옥려자(屋廬子)가 응대(應對)를 잘하지 못하고 다음날 추(鄒)나라에 가서 그로써 맹자께 아뢰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 답변(答辯)에 무엇이 어렵겠는가?>
【趙岐 注】: 於音烏,歎辭也。何有為不可答也。
【조기 注】: 어(於)의 음은 오(烏)인데, 감탄사(感歎辭)이다. 무엇이 답변(答辯)을 할 수 없게 함이 있겠는가?
不揣其本,而齊其末,方寸之木,可使高於岑樓;金重於羽者,豈謂一鉤金與一輿羽之謂哉!取食之重者與禮之輕者而比之,奚翅食重?取色之重者與禮之輕者而比之,奚翅色重?」 <그 근본을 헤아리지 않고서 그 끝을 가지런히 한다면, 사방(四方) 한 치의 나무를 높은 누각보다 높게 할 수 있으며, 쇠가 깃털보다 무겁다는 것이, 어찌 쇠갈고리 한 개를 가리키며 깃털 한 수레를 함께 말함이겠는가? 음식[食]의 중요한 것과 예(禮)의 가벼운 것을 함께 취하여서 비교를 한다면, 어찌 음식이 중요하겠으며, 여색[色]의 중요한 것과 예(禮)의 가벼운 것을 함께 취하여서 비교를 한다면, 어찌 여색[色]이 중요하겠는가?>
【趙岐 注】: 孟子言夫物當揣量其本,以齊等其末。知其大小輕重乃可言也。不節其數,累積方寸之木,可使高於岑樓。岑樓,山之銳嶺者,寧可謂寸木高於山邪?金重於羽,謂多少同而金重耳,一帶鉤之金,豈重一車羽邪?如取食、色之重者,比禮之輕者,何翅食、色重哉!翅,辭也。若言何其重也。
【조기 注】: 맹자(孟子)께서 대저 사물은 마땅히 그 근본의 량을 헤아리고, 그로써 그 끝을 가지런히 나눈다고 말함이다. 그 크고 작음과 가볍고 무거움을 알면 이에 말을 할 수 있다. 그 수를 제한하지 않고 사방 한자의 나무를 여러번 쌓으면 높은 누각 보다 높게 할 수가 있음이다. 잠루(岑樓)는, 산의 뽀족한 봉우리인데 어찌 한치의 나무를 말하며 산 보다 높게 할 수가 있겠는가? 쇠가 깃털 보다 무거움이, 많고 작음을 같게 말하면 쇠가 무거울 뿐인데 혁대 걸이 하나의 쇠가 어찌 깃털 한 수레 보다 무겁겠는가? 음식[食]과 여색[色]의 중요한 것을 예(禮)의 가벼운 것에 비교함과 같은데 어찌 음식[食]과 여색[色]이 중요하겠는가? 시(翅, 날개 시)는 사(辭)이다. 어찌 중요하겠는가라는 말과 같음이다.
往應之曰:「『紾兄之臂而奪之食,則得食,不紾則不得食,則將紾之乎?逾東家牆而摟其處子,則得妻,不摟則不得妻,則將摟之乎?』」 <가서 그[임(任)나라 사람의 질문]에게 응대(應對)하여 말하기를 ‘형의 팔을 비틀어서 음식을 빼앗으면 음식을 얻고, 비틀지 않으면 음식을 얻지 못한다면 장차 그것[형의 팔]을 비틀겠는가? 동쪽 집안의 담을 넘어서 그 처녀를 끌어안으면 아내를 얻고, 끌어안지 않으면 아내를 얻지 못한다면 장차 그[처녀]를 끌어안겠는가?’라고 대답하게.”>
【趙岐 注】: 教屋廬子往應任人如是。紾,戾也。摟,牽也。處子,處女也。則是禮重,食、色輕者也。
【조기 注】: 옥려자(屋廬子)가 가서 임(任)나라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응대(應對)하도록 가르켰다. 진(紾, 비틀 진)은 어그러트림이다. 루(摟, 끌어모을 루)는 끌어당김이다. 처자(處子)는 처녀이다. 즉 이는 예(禮)가 음식[食]과 여색[色]의 가벼운 것 보다 무거움이다.
고자(告子)-下
2章
曹交問曰:「人皆可以為堯、舜,有諸?」孟子曰:「然。」 <조교(曹交)가 물었다. “사람은 모두 요순(堯舜)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말이 있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趙岐 注】: 曹交,曹君之弟。交,名也。答曰然者,言人皆有仁義之心,堯、舜行仁義而已。
【조기 注】: 조교(曹交)는 조(曹)나라 군주의 아우이며 교(交)는 이름이다. 대답을 그렇다고 말한 것은, 사람은 모두 인의(仁義)의 마음이 있으며 요순(堯舜)도 인의(仁義)를 행할 뿐임을 말하였다.
「交聞文王十尺,湯九尺。今交九尺四寸以長,食粟而已,如何則可?」 <“제[交]가 들으니 문왕(文王)은 키가 10척(尺)이고, 탕(湯)왕은 9척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저[交]는 9척 4촌(寸)으로써 장신(長身)인데도 곡식만 먹을 뿐이니, 어찌하면 할 수 있습니까?”>
【趙岐 注】: 交聞文王與湯皆長而聖。今交亦長,獨但食粟而已,當如之何?
【조기 注】: 제[交]가 들으니 문왕(文王)과 탕(湯)왕이 모두 장신(長身)이면서 성스러웠는데, 지금 제[交]가 또한 장신(長身)인데도 홀로 단지 곡식을 먹을 뿐이니 어덯게 해야 마땅합니까?
曰:「奚有於是?亦為之而已矣。有人於此,力不能勝一匹雛,則為無力人矣。今曰舉百鈞,則為有力人矣。然則舉烏獲之任,是亦為烏獲而已矣。夫人豈以不勝為患哉?弗為耳。<[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이것[長身]에 있겠습니까? 또한 그것[요순]이 될 뿐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이, 병아리 한 마리도 잘 이기지 못하는 힘이면 힘이 없는 사람이 되는데, 이제는 3천 근을 든다고 말한다면 힘이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확(烏獲)이 맡았던 것을 든다면 이는 또한 오확이 될 뿐입니다. 그 사람을 어찌 이기지 못함을 가지고 걱정을 하겠습니까? 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趙岐 注】: 孟子曰:何有於是言乎?仁義之道,亦當為之乃為賢耳。人言我力不能勝一小雛,則謂之無力之人。言我能舉百鈞,百鈞,三千斤也,則謂之有力之人。烏獲,古之有力人也,能移舉千鈞。人能舉其所任,是為烏獲才也。夫一匹雛不舉,豈患不能勝哉?但不為之耳。
【조기 注】: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여기에 있다고 말하십니까? 인의(仁義)의 도는, 또한 마땅히 그것을 하게 되면 이에 현명하게 될 뿐입니다. 사람들은 내 힘이 작은 병아리 한 마리를 잘 이기지 못한다면 일컫기를 힘이 없는 사람이라 한다는 말이다. 내가 3천 근을 잘 드는데, 백균(百鈞)은 3천 근이며, 즉 일컫기를 힘이 있는 사람이라 한다는 말이다. 오확(烏獲)은 옛날에 힘이 센 사람인데, 3백만 근을 들고 잘 옮겼다. 사람이 그가 맡았던 [3백만 근을] 잘 들면 이는 오확(烏獲)의 재능이 됨이다. 그 병아리 한 마리를 들지 못하는데 어찌 잘 이기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다만 그것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徐行後長者謂之弟,疾行先長者之不弟。夫徐行者,豈人所不能哉!所不為也。<천천히 가서 어른보다 뒤에 감을 일컫기를 ‘공손함[弟]’이라 하지만, 빨리 가서 어른보다 앞에서 감은 공손하지 않음인데, 그 천천히 가는 것을 어찌 사람이 잘 하지 못할 바 이겠습니까? 하지 않는 바입니다.>
【趙岐 注】: 長者,老者也。弟,順也。人誰不能徐行者,患不肯為也。
【조기 注】: 장자(長者)는 늙은 사람이다. 제(弟)는 순응함이다. 사람은 누구나 천천히 잘 가지 않는 것은 근심을 즐겨 하지 않음이다.
堯、舜之道,孝悌而已矣。子服堯之服,誦堯之言,行堯之行,是堯而已矣。子服桀之服,誦桀之言,行桀之行,是桀而已矣。」 <요순(堯,舜)의 도(道)는 효도와 공손함뿐입니다. 당신께서 요(堯)임금의 옷을 입고 요임금의 말씀을 외우며 요임금의 행실을 행한다면 바로 요임금 일뿐입니다. 당신이 걸왕(桀王)의 옷을 입고 걸왕의 말을 외우며 걸왕의 행실을 행한다면 바로 걸왕과 같을 뿐입니다.”>
【趙岐 注】: 孝悌而已,人所能也。堯服,衣服不逾禮也。堯言,仁義之言。堯行,孝悌之行。桀服,譎詭非常之服。桀言,不行仁義之言。桀行,淫虐之行。為堯似堯,為桀似桀而已矣。
【조기 注】: 효도와 공손함뿐임은, 사람이 잘하는 바이다. 요(堯)임금의 옷은, 의복이 예(禮)를 뛰어넘지 못함이다. 요(堯)임금의 말씀은, 인의(仁義)의 말씀이다. 요(堯)임금의 행실은, 효도와 공손함의 행실이다. 걸왕(桀王)의 옷은, 속임수로 속이며 떳떳한 옷이 아니다. 걸왕(桀王)의 말은, 인의(仁義)를 행하지 않는 말이다. 요(堯)임금을 실천하면 요임금을 닮고 걸왕(桀王)을 실천하면 걸왕을 닮을 뿐이다.
曰:「交得見於鄒君,可以假館,願留而受業於門。」 <[조교(曹交)가] 말했다. “제[交]가 추(鄒)나라 군주를 뵈면 관사(館舍)를 빌릴 수 있는데, 머물면서 문하(門下)에서 학업(學業)을 배우시기를 원합니다.”>
【趙岐 注】: 交欲學於孟子,願因鄒君假館舍,備門徒也。
【조기 注】: 조교(曹交)가 맹자에게 배우게 하고자, 추(鄒)나라 군주를 만나서 관사(館舍)를 빌리고 문하의 무리가 되기를 원했음이다.
曰:「夫道,若大路然,豈難知哉?人病不求耳。子歸而求之,有餘師。」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대저 도(道)는 큰 길[大路]과 같이 그러한데, 어찌 알기 어렵겠습니까? 사람들이 [도(道)를] 구하지 않음이 결점(缺點)일 뿐이며, 당신이 돌아가서 구하려 한다면 스승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趙岐 注】: 孟子言堯、舜之道,較然若大路,豈有難知,人苦不肯求耳。子歸曹而求行其道。有餘師,師不少也,不必留館學也。
【조기 注】: 맹자께서 요순(堯,舜)의 도(道)는, 큰 길에 비교되는 것처럼 같음인데 어찌 알기가 어려움이 있겠으며, 사람들이 힘써서 구하기를 즐겨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씀하셨음이다. 당신이 조(曹)나라에 돌아가서 그 도(道)를 구하여 행하십시오. 스승이 남아 있음은, 스승이 적지 않으니 반드시 관사(館舍)에 머물지 않아도 배움이다.
고자(告子)-下
3章
公孫醜問曰:「高子曰:『《小弁》,小人之詩也。』」孟子曰:「何以言之?」曰:「怨。」 <공손추(公孫丑)가 여쭈었다. “고자(高子)가 말하기를 ‘《시경》 소반(小弁)은 소인(小人)의 시(詩)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가?” [공손추가] 말했다.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趙岐 注】: 高子,齊人也。《小弁》,《小雅》之篇,伯奇之詩也。怨者,怨親之過,故謂之小人。
【조기 注】: 고자(高子)는 제(齊)나라 사람이다. 《소반(小弁)》은 《소아(小雅)》의 편인데, 백기[伯奇; 주나라 재상인 윤길보(尹吉甫)의 아들]의 시이다. 원(怨)이라는 것은, 어버이의 잘못을 원망했기 때문에 말하기를 소인이라 하였다.
曰:「固哉!高叟之為詩也。有人於此,越人關弓而射之,則己談笑而道之,無他,疏之也。其兄關弓而射之,則己垂涕泣而道之,無他,戚之也。《小弁》之怨,親親也。親親,仁也。固遙夫,高叟之為詩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고루(固陋)하구나, 고수(高叟)의 시를 해석함이여! 여기에 사람이 있는데 월(越)나라 사람이 활을 당겨서 쏘려고 하는데도 자기는 웃으면서 타일러[道] 말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가 소원하기 때문이고, 그 형이 활을 당겨서 쏘려 하면 자기가 눈물을 흘리며 타이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친척이기 때문이네. 《소반(小弁)》의 원망은 친한 이를 친하게 하였음이며, 친한 이를 친하게 함은 어짊[仁]이라네. 고루하구나, 고수의 시(詩)를 해석함이여!”>
【趙岐 注】: 固,陋也。高子年長,孟子曰:陋哉!高父之為詩也。疏越人,故談笑。戚,親也,親其兄,故號泣而道之,怪怨之意也。伯奇,仁人,而父虐之,故作《小弁》之《詩》曰:何辜於天?親親而悲怨之辭也。重言固陋,傷高叟不達詩人之意也。
【조기 注】: 고(固, 굳을 고)는, [완고(頑固)하여] 볼품없음이다. 고자(高子)가 나이가 많은데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볼품없도다! 고선생의 시(詩)를 해석함이”라고 했다. 월(越)나라 사람은 소원하기 때문에 웃으며 말함이다. 척(戚, 친척 척)은 친함이며 그 형에 친하기 때문에 소리쳐 울면서 타일러 주는 원망함의 뜻을 괴이해 했음이다. 백기(伯奇)는 어진 사람이며 아버지가 학대를 했기 때문에 《소반(小弁)》의 시(詩)를 지어서 말하기를 “어찌 하늘을 허물하겠는가?”라고 하였는데, 친한 이를 친히 하면서 원망하여 비난하는 말이다. 거듭하여 고루함을 말하였음은, 고수(高叟)가 시를 지은 사람의 뜻에 도달하지 못하여 아파함이다.
曰:「《凱風》何以不怨?」 <[공손추가] 말했다. “《시(詩)》 〈개풍(凱風)〉에서는 어찌하여 그로써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趙岐 注】: 《詩•邶風•凱風》之篇也。公孫醜曰:《凱風》,亦孝子之詩,何以獨不怨?
【조기 注】: 《시•패풍•개풍(詩•邶風•凱風)》의 편(篇)이다. 공손추(公孫醜)가 말하기를 “《개풍(凱風)》은 또한 효자의 시인데, 어찌 그로써 홀로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했음이다.
曰:「《凱風》,親之過小者也。《小弁》,親之過大者也。親之過大而不怨,是愈疏也。親之過小而怨,是不可磯也。愈疏,不孝也。不可磯,亦不孝也。孔子曰:『舜其至孝矣,五十而慕。』」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개풍(凱風)》은 어버이의 과실이 적은 것이고, 《소반(小弁)》은 어버이의 과실이 큰 것이네. 어버이의 과실이 큰데도 원망하지 않으면 이는 더욱 소원해지고, 어버이의 과실이 적은데도 원망한다면 이는 부딪칠 수가 없어지네. 더욱 소원해짐도 불효(不孝)이고, 부딪칠 수 없게 함도 또한 불효라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순(舜)임금께서는 효(孝)가 지극하셨는데, 50세가 되어서도 부모를 그리워하셨다.’라고 하셨다.”>
【趙岐 注】: 孟子曰:《凱風》言「莫慰母心」,母心不悅也,知親之過小也。《小弁》曰「行有死人,尚或墐之」,而曾不閔己,知親之過大也。愈,益也。過已大矣。而孝子不怨思其親之意何為如是!是益疏之道也,故曰不孝。磯,激也。過小耳,而孝子感激,輒怨其親,是亦不孝也。孔子以舜年五十而慕其親不殆,稱曰孝之至矣,孝之不可以已也。知高叟譏《小弁》為不得矣。
【조기 注】: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개풍(凱風)》은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함이 없는데, 어머니의 마음이 기뻐하지 않음은 어버이의 잘못이 적음을 알았음을 말함이고, 《소반(小弁)》에서 말하기를 ”길가다가 사람이 죽어 있으면 오히려 어떤이는 묻어 준다“라고 했는데, 일찍이 자기에 우환이 아니지만 어버이의 잘못이 큼을 알았음이다. 유(愈, 나을 유)는 더함이다. 잘못이 이미 큼이다. 효자는 어버이의 뜻을 그리워하며 원망하지 않음인데 어찌 이와 같이 하는가! 이는 소원함의 도를 더함이며, 그러므로 불효라고 말하였다. 기(磯, 물가 기)는 격렬(激烈)함이다. 잘못이 적을 뿐인데도 효자가 격하게 느끼고 번번이 그 어버이를 원망하면 이는 또한 불효이다. 공자께서 순(舜)임금이 나이 50세 인데도 그 어버이를 그리워함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칭하여 효(孝)를 행함이 지극하였음을 말하였는데, 효(孝)를 행함은 그만 둘 수가 없음이다. 고수(高叟)가 《소반(小弁)》을 비웃었음은 시의 뜻을 얻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았음이다.
고자(告子)-下
4章
宋巠將之楚,孟子遇於石丘,曰:「先生將何之?」 <송경(宋牼)이 장차 초(楚)나라로 가는데, 맹자께서 석구(石丘)에서 만나 말씀하셨다. “선생은 장차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趙岐 注】: 宋巠,宋人, 名巠,學士年長者,故謂之先生。石丘,地名也。道遇,問欲何之也。
【조기 注】: 송경(宋巠)은 송(宋)나라 사람이고 이름이 경(巠)이며 학사(學士)가 나이 많은 자이기 때문에 말하기를 선생(先生)이라 했다. 석구(石丘)는 땅 이름이다. 길에서 만나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를 물었음이다.
曰:「吾聞秦、楚構兵,我將見楚王說而罷之。楚王不悅,我將見秦王說而罷之。二王我將有所遇焉。」 <[송경이] 말하였다. “우리가 진(秦)나라와 초(楚)나라가 전쟁을 구상(構想)함을 들었는데, 내가 장차 초왕(楚王)을 만나 설득해서 [전쟁을] 그만두게 하려는데, 초왕이 기뻐하지 않으면 내가 장차 진왕(秦王)을 만나 설득해서 그만두게 할 것입니다. 두 왕께서 나와 장차 그곳에서 만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趙岐 注】: 巠自謂往說二王,必有所遇,得從其誌也。
【조기 注】: 송경(宋巠)이 스스로 말하기를 두 왕에게 가서 설득하면 반드시 만나는 바가 있으며 그 뜻을 따름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曰:「軻也請無問其詳,願聞其指,說之將何如?」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제[軻]가 청함은, 그 상세함을 묻는게 아니라 설득을 하실 취지를 듣기 원하는데, 장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趙岐 注】: 孟子敬宋巠,自稱其名曰軻。不敢詳問,願聞其指,欲如何說之。
【조기 注】: 맹자(孟子)께서 송경(宋巠)을 공경하여 스스로 이름을 칭하여 가(軻)라고 말했음이다. 감히 상세하게 물음이 아니고, 그 지적(指摘)을 어떻게 설득 하려고 하는지를 듣기 원함이다.
曰:「我將言其不利也。」 <[송경이] 말하였다. “내가 장차 그[전쟁]의 불리(不利)함을 말하려고 합니다.” >
【趙岐 注】: 巠曰:「我將為二王言興兵之不利也。
【조기 注】: 송경이 말하기를 “내가 장차 두 왕을 위하여 전쟁의 불리함이 일어남을 말하겠습니다."라고 했다.
曰:「先生之誌則大矣,先生之號則不可。先生以利說秦、楚之王,秦、楚之王悅於利,以罷三軍之師,是三軍之士樂罷而悅於利也。為人臣者,懷利以事其君;為人子者,懷利以事其父;為人弟者,懷利以事其兄:是君臣、父子、兄弟終去仁義,懷利以相接,然而不亡者,未之有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생의 뜻함인즉 크지만 호령(號令;指摘)하심이라면 불가합니다. 선생께서 이로움을 가지고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왕을 설득하면, 진과 초의 왕은 이로움을 기뻐하며 그로써 삼군(三軍)의 군대를 파하는데, 이를 삼군의 관리들은 파함을 즐거워하면서 이로움을 기뻐합니다. 신하 된 자는 이로움을 품고 그로써 임금을 섬기고, 자식 된 자는 이로움을 품고 그로써 부모를 섬기며, 아우 된 자는 이로움을 품고 그로써 형을 섬기는데, 이 군신(君臣)과 부자(父子)와 형제(兄弟)가 마침내 인의(仁義)를 버리고 이로움만 품고 그로써 서로 접촉(接觸)하는데, 그렇게 하면서도 망하지 않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
【趙岐 注】: 孟子曰:先生誌誠大矣,所稱名號不可用也。二王悅利罷三軍,三軍士樂之而悅利,則舉國尚利以相接待,而忘仁義,則其國從而亡矣。
【조기 注】: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생의 뜻이 진실로 크지만, 지적[名號]하여 칭하신 바를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두 왕이 이로움을 기뻐하며 삼군을 파하면 삼군의 관리가 즐거워 하면서 이로움을 기뻐하면 나라는 오히려 이로움을 들고 그로써 서로 접대(接待)하면서 인의(仁義)를 잊어버리면 그 나라를 따라서 망하게 된다.
先生以仁義說秦、楚之王,秦、楚之王悅於仁義而罷三軍之師,是三軍之士樂罷而悅於仁義也。為人臣者,懷仁義以事其君;為人子者,懷仁義以事其父;為人弟者,懷仁義以事其兄:是君臣、父子、兄弟去利懷仁義以相接也,然而不王者,未之有也。何必曰利?」 <선생이 인의(仁義)를 가지고 진(秦)과 초(楚)의 왕을 설득하면, 진(秦)과 초(楚)의 왕이 인의에 기뻐하면서 삼군의 군대를 파하는데, 이 삼군의 관리들은 파함을 즐거워하면서 인의에 기뻐합니다. 신하 된 자는 인의를 품고 그로써 임금을 섬기고, 자식 된 자는 인의를 품고 그로써 부모를 섬기며, 아우 된 자는 인의를 품고 그로써 형을 섬길 것이니, 이 군신(君臣)과 부자(父子)와 형제(兄弟)가 이로움을 버리고 인의를 품고 그로써 서로 접촉(接觸)하는데, 그렇게 하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자는 있지 않습니다. 어째서 반드시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趙岐 注】: 以仁義之道,不忍興兵,三軍之士悅,國人化之,鹹以仁義相接,可以致王,何必以利為名也。
【조기 注】: 인의(仁義)의 도로써 차마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고 삼군의 군사가 기뻐하며 나라 사람들이 달라지고 모두 인의(仁義)로써 서로 접촉(接觸)하며 왕을 다스릴 수 있는데 어찌 반드시 이로움을 가지고 지적[名號]하는가?
고자(告子)-下
5章
孟子居鄒。季任為任處守,以幣交,受之而不報。處於平陸,儲子為相,以幣交,受之而不報。<맹자께서 추(鄒)나라에 거주하실 적에 계임(季任)이 임나라의 처수(處守)가 되었는데, 폐백을 가지고 사귀려하자 그것[폐백]을 받고서 보답(報答)하지 않으셨다. [제나라] 평륙(平陸)에 계실 적에 저자(儲子)가 정승[相]이 되었는데, 폐백으로써 사귀려하자 맹자께서 폐백을 받기만 하고 답례하지 않으셨다.>
【趙岐 注】: 任,薛之同姓小國也。季任,任君季弟也。任君朝會於鄰國,季任為之居守其國,致幣帛之禮以交孟子,受之而不報。平陸,齊下邑也。儲子,齊相也,亦致禮以交於孟子,孟子而不答之也。
【조기 注】: 임(任)나라는 설(薛)나라와 같은 성(姓)인 작은 나라이다. 계임(季任)은 임(任)나라 군주의 막내 아우이다. 임(任)나라 군주의 조회에 이웃나라에 모여서 계임(季任)이 그 나라에 유수(留守)가 되었는데 폐백의 예를 드리고 그로써 맹자를 사귀려 하였으나 그것을 받고서 보답(報答)을 하지 않았다. 평육(平陸)은, 제(齊)나라의 작은 읍이다. 저자(儲子)는 제(齊)나라의 제상[相]이며 또한 예를 드리고 그로써 맹자를 사귀려 하였으나 맹자께서 그것에 보답(報答)을 하지 않았다.
他日,由鄒之任,見季子;由平陸之齊,不見儲子。屋廬子喜曰:「連得間矣!」問曰:「夫子之任見季子,之齊不見儲子,為其為相與?」 <다른 날에 추(鄒)나라로 부터 임(任)나라에 가셔서 계자(季子)를 만나보시고, 제(齊)나라 평륙(平陸)에 가셔서는 저자(儲子)를 만나보지 않으셨다. 옥려자(屋廬子)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제[連]가 여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옥려자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임(任)나라에 가셔서는 계자를 만나보시고, 제(齊)나라에 가셔서는 저자(儲子)를 만나보지 않으셨는데, 그[儲子]가 재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까?”>
【趙岐 注】: 連,屋廬子名也。見孟子答此二人有異,故喜曰:連今日乃得一見夫子與之間隙也。俱答二人,獨見季子,不見儲子者,以季子當君國子民之處,儲子為相,故輕之邪。
【조기 注】: 연(連)은 옥려자(屋廬子)의 이름이다. 맹자를 뵙고 답이 이 두 사람과 다름이 있기 때문에 기뻐하며 말하기를 “제[連]가 오늘 이에 선생님을 언 듯 보고 더블어 간극(間隙)을 알았습니다. 두 사람의 답이 모두 계자(季子)를 홀로 보고 저자(儲子)를 만나보지 않은 것은, 계자(季子)는 마땅히 나라의 군주로써 백성을 자식처럼 여김에 처하였으나 저자(儲子)는 정승[相]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가벼이 했다.
曰:「非也。《書》曰:『享多儀,儀不及物,曰不享。惟不役誌於享。』為其不成享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서경(書經)》 〈낙고(洛誥)〉에 말하기를 ‘대접[享]은 거동[禮儀]이 중(重)하고, 거동(擧動)이 예물에 미치지 못하면 대접을 못했다고 말하며, 오직 대접[享]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그[儲子]가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세.”>
【趙岐 注】: 孟子曰:非也。非以儲子為相,故不見。《尚書•洛誥篇》曰「享多儀」,言享見之禮多儀法也。物,事也。儀不及事,謂有闕也,故曰不成享禮。儲子本禮不足,故我不見也。
【조기 注】: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닐세, 저자(儲子)가 정승[相]이 되었음이 아니기 때문에 만나지 않았으며, 《상서.낙고(尚書•洛誥)》편에 말하기를 ‘대접[享]은 거동[禮儀]이 중(重)하다.’라고 했는데, 대접[享]은 거동[禮儀]의 법도가 중(重)한 예절을 보임이다. 저자(儲子)가 본래 예절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내가 만나지 않았다.”라고 하셨다.
屋廬子悅。或問之,屋廬子曰:「季子不得之鄒,儲子得之平陸。」 <옥려자(屋廬子)가 기뻐하자 어떤 사람이 까닭을 물으니, 옥려자가 말하였다. “계자(季子)에게는 추(鄒)나라에 갈 수 없었지만, 저자(儲子)에게는 평륙에 갈 수 있었음이네.”>
【趙岐 注】: 屋廬子已曉其意,聞義則服。人問之曰:「何為若是?屋廬子曰:季子守國,不得越境至鄒,不身造孟子可也;儲子為相,得循行國中,但遙交禮,為其不尊賢,故禮答而不見之也。
【조기 注】: 옥려자(屋廬子)가 이미 그 뜻이 밝은데 뜻을 물으니 다시 했음이다. 사람들이 묻기를 “어째하여 이와 같이 하였는가? 옥려자가 말하기를 ‘계자(季子)는 나라를 지켜서 추(鄒)나라에 이르러도 국경을 넘지 못하니 맹자께서 자신이 할 수가 없었으며, 저자(儲子)는 정승[相]이 되어서 나라 가운데를 순행하니 다만 사귀는 예가 멀며 그가 현명함이 높지 않게 하였기 때문에 예에 답하여서 만나지 않았다.’”라고 했다.
고자(告子)-下
6章
淳於髡曰:「先名實者,為人也。後名實者,自為也。夫予在三卿之中,名實未加於上下而去之,仁者固如此乎?」 <순우곤(淳于髡)이 말하였다. “명예(名譽)와 실적(實績)을 앞세우는 것은 남을 위함이고, 명예와 실적을 뒤로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함입니다. 선생께서 삼경(三卿)의 가운데에 계셨으나 명예와 실적이 위와 아래에 더해지지 않았는데 떠나셨으니, 인자(仁者)도 진실로 이와 같습니까?”>
【趙岐 注】: 淳於,姓。髡,名也。齊之辨士。名者,有道德之名。實者,治國惠民之功實也。齊,大國,有三卿,謂孟子嚐處此三卿之中矣。未聞名實,下濟於民,上匡其君,而速去之。仁者之道,固當然邪?
【조기 注】: 순우(淳於)는 성(姓)이고 곤(髡)은 이름이다. 제(齊)나라의 변론하는 관리이다. 이름[名]이라는 것은, 도(道)와 덕(德)의 이름이 있음이다. 실적[實]이라는 것은, 나라의 은혜(恩惠)로 백성의 공과 실적을 다스림이다. 제(齊)나라는, 큰 나라이고 삼경(三卿)이 있으며 맹자께서 일찍이 이 삼경의 가운데에 처하셨음을 말함이다. 아래로 백성을 구제(救濟)하고 위로는 군주를 보좌(補佐)한 명예(名譽)와 실적(實績)을 듣지 못하시고 속히 떠나셨다. 어진 자의 도(道)는 당연히 확고하지 않는가?
孟子曰:「居下位,不以賢事不肖者,伯夷也。五就湯,五就桀者,伊尹也。不惡汙君,不辭小官者,柳下惠也。三子者,不同道,其趨一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낮은 자리에 거주하면서 어짊으로써 못남을 섬기지 않은 이는 백이(伯夷)였고, 다섯 번 탕왕(湯王)에게 나아가고 다섯 번 걸왕(桀王)에게 나아간 이는 이윤(伊尹)이었으며, 더러운 군주도 싫어하지 않고 낮은 관직도 사양하지 않은 이는 유하혜(柳下惠)였는데, 이 세 분들은 도(道)는 같지 않았지만 그 추구(追求)함은 하나였다.” >
【趙岐 注】: 伊尹為湯見貢於桀,桀不用而歸湯,湯複貢之,如此者五。思濟民,冀得施行其道也。此三人雖異道,所履則一也。
【조기 注】: 이윤(伊尹)이 탕왕(湯王)을 위하여 걸왕(桀王)에게 공물(供物)을 가지고 만났는데 걸왕(桀王)이 써주지 않아서 탕왕에게 돌아오니 탕왕이 다시 공물(供物)을 보냈는데, 이와 같이 한 것이 다섯 번이다. 백성을 구제(救濟)할 생각은, 그 도(道)를 베풀어 행하기를 바람이다. 이 세 사람이 비록 도(道)는 다르지만 실행하는 바는 곧 하나이다.
「一者何也?」 <하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趙岐 注】: 髡問一者何也。
【조기 注】: 순우곤[髡]이 하나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음이다.
曰:「仁也。君子亦仁而已矣,何必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짊[仁]이다. 군자 또한 어짊일 뿐인데 어찌 반드시 같아야 하는가?”>
【趙岐 注】: 孟子言君子進退行止,未必同也,趨於屢仁而已。髡為其速去,故引三子以喻意也。
【조기 注】: 맹자께서 군자는 나아가고 물러남과 행하고 그침이 반드시 같지는 않음을 말함이다. 자주 어짊을 추구(追求)할 뿐이다. 순우곤[髡]이 그가 속히 떠났다고 하였기 때문에 세 분을 비유하여 뜻을 인용하였다.
曰:「魯繆公之時,公儀子為政,子柳、子思為臣,魯之削也滋甚。若是乎賢者之無益於國也。」 <[순우곤이] 말하였다. “노(魯)나라 목공(繆公) 때에는 공의자(公儀子)가 정치를 하였고, 자류(子柳)와 자사(子思)는 신하가 되었는데도, 노나라[땅]의 줄어듦이 더욱 심했는데, 현자(賢者)가 나라에 이익 없음이 이와 같습니까?”>
【趙岐 注】: 髡曰:魯繆公時,公儀休為執政之卿。子柳,泄柳也;子思,孔子之孫伋也,二人為師傅之臣。不能救魯之見削奪亡其土地者多。若是,賢者無所益於國家者,何用賢為?
【조기 注】: 순우곤[髡]이 말하기를 “노(魯)나라 목공(繆公) 때에는 공의휴(公儀休)가 정사를 집행하는 경이 되었다.”고 하였다. 자류(子柳)는 [성명이] 설류(泄柳)이다. 자사(子思)는 공자의 손자인 급(伋)이며, 두 사람은 스승의 신하가 되었다. 노나라의 그 토지를 많이 빼앗겨 없어져 줄어듦을 보고도 잘 구하지 못했다. 이와 같이 현자(賢者)가 나라와 집안에 이익 되는 바가 없는 자인데 어찌 현자(賢者)를 쓰라고 하는가?
曰:「虞不用百裏奚而亡,秦繆公用之而霸。不用賢則亡 , 削何可得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우(虞)나라는 백리해(百里奚)를 쓰지 않아서 망하였고,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그를 등용해서 패자(霸者)가 되었으며, 현자를 쓰지 않으면 망하는데, 국토가 줄어듦을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趙岐 注】: 孟子云:百裏奚所去國亡,所在國霸,無賢國亡,何但得削?豈可不用賢也!
【조기 注】: 맹자께서 일러주시기를 “백리해(百里奚)를 버린 곳은 나라가 망했고 있는 곳은 나라가 패자(霸者)이며 현자(賢者)가 없으면 나라가 망하는데 어찌 단지 줄어듦을 얻겠는가? 어찌 현자(賢者)를 쓰지 않으려 할 수 있으랴!
曰:「昔者王豹處於淇,而河西善謳。綿駒處於高唐,而齊右善歌。華周、杞梁之妻善哭其夫,而變國俗。有諸內必形諸外,為其事而無其功者,髡未嚐睹之也。是故無賢者也,有則髡必識之。」 <[순우곤이] 말하였다. “옛적에 왕표(王豹)가 기수(淇水)의 가에 머무르면서 황하 서쪽[사람들]이 노래를 잘하였고, 면구(綿駒)가 고당(高唐)에 머무르면서 제(齊)나라 오른쪽[사람들]이 노래를 잘하였으며, 화주(華周)와 기량(杞梁)의 아내가 그 남편의 곡(哭)을 잘하면서 나라의 풍속이 변했습니다. 안에 [마음이] 여러가지 있으면 반드시 밖으로 여러 가지가 나타나는데, 그 일을 하였는데도 그 공(功)이 없는 것을 저[髡]는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이 연고(緣故)의 현자(賢者)는 없습니다. 있다면 제[髡]가 반드시 알았을 것입니다.”>
【趙岐 注】: 王豹,衛之善謳者。淇,水名。《衛詩•竹竿》之篇曰:「泉源在左,淇水在右。」《碩人》之篇曰:「河水洋洋,北流活活。」衛地濱於淇水,在北流河之西,故曰處淇水而河西善謳,所謂鄭衛之聲也。綿駒,善歌者也。高唐,齊西邑。綿駒處之,故曰齊右善歌。華周,華旋也。杞梁,杞殖也。二人,齊大夫,死於戎事者,其妻哭之哀,城為之崩,國俗化之,則效其哭。髡曰:如是歌、哭者尚能變俗,有中則見外。為之而無功者,髡不聞也。有功,乃為賢者,不見其功,故謂之無賢者也。如有之,則髡必識之矣。
【조기 注】: 왕표(王豹)는 위(衛)나라의 노래를 잘하는 자이다. 기(淇)는 강물 이름이다. 《위시. 죽간(衛詩•竹竿)》의 편에 말하기를 “샘의 근원은 왼쪽에 있는데 기수(淇水)는 오른쪽에 있다.”라고 했고, 《석인(碩人)》편에 말하기를 “황하의 강물이 도도한데 북쪽으로 콸콱 흘러 간다.”라고 했는데, 위(衛)나라의 땅이 기수의 가에 있고 북쪽에 있으며 황하의 서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기수에 머무르는데 황하 서쪽이 노래를 잘한다고 말함은, 정(鄭)나라와 위(衛)나라의 소리를 일컬음이다. 면구(綿駒)는 노래를 잘하는 자이다. 고당(高唐)은 제(齊)나라 서쪽 읍이다. 면구(綿駒)가 머물렀기 때문에 제(齊)나라 오른쪽이 노래를 잘하였음이다. 화주(華周)는 화선(華旋)이고, 기량(杞梁)은 기식(杞殖)인데, 두 사람은 제(齊)나라 대부이고 군사의 일로 죽은 자이며 그 처의 곡(哭)이 애처로워 성이 무너지게 되었으며 나라 풍속이 달라지고 그 곡(哭)을 본받았다. 순우곤[髡]이 말하기를 “이와 같은 노래는 곡(哭)하는 것이 오히려 풍속에 잘 변하며 그 마음에 있으면 밖으로 보임이다. 했는데도 공(功)이 없는 것을, 곤[髡]이 듣지 못했음이다. 공(功)이 있음은 이에 현자가 됨이고 그 공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기를 현자가 없다고 하였다. 만약 그것이 있었으면 곤[髡]이 반드시 알았을 것이다.
曰:「孔子為魯司寇,不用,從而祭,燔肉不至,不稅冕而行。不知者以為為肉也,其知者以為為無禮也,乃孔子則欲以微罪行,不欲為苟去。君子之所為,眾人固不識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노(魯)나라의 사구(司寇)를 하실적에 따랐는데도 제사에 쓰이지 않았고, 제사 지낸 고기를 보내오지 않자 면류관을 벗지도 않고서 떠나셨는데, [공자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제사 고기 때문에 그리하셨다고 생각하고, 아는 자들은 [노나라가] 예(禮)가 없기 때문에 그리하셨다고 생각하였으나, 마침내 공자께서 곧 미세한 잘못을 가지고 떠나고자 하셨으며 구차하게 떠나려고 하지는 않으셨으며, 군자가 하는 바를 여러 사람들이 진실(眞實)로 알지는 못한다네.”>
【趙岐 注】: 孟子言孔子為魯賢臣。不用,不能用其道也。從魯君而祭於宗廟,當賜大夫以胙,燔肉不至。膊炙者為燔,《詩》云:「燔炙芬芬,反歸其舍。」未及稅冕而行,出適他國。不知者以為不得燔肉而慍也。知者以為為君無禮,乃欲以微罪行。燔肉不至我黨,從祭之禮不備,有微罪乎,乃聖人之妙旨,不欲為,誠欲急去也。眾人固不識君子之所為,謂髡不能知賢者之誌也。
【조기 注】: 맹자(孟子)께서 공자(孔子)께서는 노(魯)나라의 현명한 신하를 하였음을 말함이다. 불용(不用)은, 그 도(道)를 잘 쓰지 않음이다. 노나라 군주를 좇아서 종묘에 제사지내면 마땅히 제사고기를 대부에게 하사하는데 음복(飮福) 고기가 오지 않았음이다. 포(脯)와 산적[박적(膊炙)]이라는 것은, 구워서 만드는데, 《시(詩)》에 이르기를 “불고기와 산적이 향기로우니 돌이켜 그 집으로 돌아간다.”라고 했는데, 아직 관직을 벗어남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가려하며 타국에 나가서 맞았음이다. [공자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제사 고기를 얻지 못하게 되자 성냈다고 여겼으며, 아는 자들은 군주가 무례하여 이에 미세한 잘못을 가지고 떠나고자 그리하셨다고 여겼다. 음복(飮福) 고기가 우리 당(黨)에 오지 않으니 제사의 예(禮)를 따라 갖추지 않았는데 미세한 잘못이겠는가? 이에 성인의 미묘한 뜻이 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진실로 급하게 떠나려 하였겠는가? 여러 사람들이 진실(眞實)로 군자가 하려는 바를 알지 못하며 순우곤(髡)이 현자의 뜻함을 잘 알지 못함을 말함이다.
고자(告子)-下
7章
孟子曰:“五霸者,三王之罪人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제후 중에] 다섯 으뜸[五霸]된 자는 삼왕(三王)의 죄인이고, >
【趙岐 注】: 五霸者,大國秉直道以率諸侯,齊桓、晉文、秦繆、宋襄、楚莊是也。三王:夏禹、商湯、周文王是也。
【조기 注】: 오패(五霸)된 자는, 큰 나라를 곧은 도(道) 잡고 그로써 제후를 거느리는데, 제(齊)나라 환공、진(晉)나라 문공、진(秦)나라 목공、송(宋)나라 양공、초(楚)나라 장공이 이들이다. 삼왕(三王)은, 하(夏)나라 우왕、상(商)나라 탕왕、주(周)나라 문왕이 이들이다.
今之諸侯,五霸之罪人也。今之大夫,今之諸侯之罪人也。<지금의 제후(諸侯)들은 오패(五霸)의 죄인이며, 지금의 대부(大夫)들은 지금의 제후의 죄인이다.>
【趙岐 注】: 謂當孟子之時諸侯及大夫也。諸侯,臣,總謂之大夫。罪人之事,下別言之。
【조기 注】: 맹자의 시절에는 제후와 대부가 마땅했음을 말함이다. 제후의 신하는 모두 일컫기를 대부라고 한다. 죄인을 섬김은, 아래를 분별하여 말을 함이다.
天子適諸侯曰巡狩,諸侯朝於天子曰述職。春省耕而補不足,秋省斂而助不給。入其疆,土地辟,田野治,養老尊賢,俊傑在位,則有慶,慶以地。入其疆,土地荒蕪,遺老失賢,掊克在位,則有讓。一不朝則貶其爵,再不朝則削其地,三不朝則六師移之。是故天子討而不伐,諸侯伐而不討。五霸者,摟諸侯以伐諸侯者也。故曰五霸者,三王之罪人也。<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 말하고, 제후가 천자에게 조회함을 ‘술직(述職)’이라 말하는데, [천자가] 봄에 밭갊을 살펴서 부족함을 보충해 주고, 가을에는 수확을 살펴서 넉넉하지 못한데를 도와준다. 그[제후]의 강역에 들어갔는데 토지가 개간됐고 밭과 들이 다스려졌으며, 노인을 봉양하고 현자(賢者)를 높이며 우수한 인재가 벼슬자리에 있으면 상을 주는데 땅으로 상을 주며, 그[제후]의 강역에 들어갔는데 토지가 황폐하고 노인이 버려지고 현자가 [자리를] 잃었으며 세금을 수탈(收奪)하고 지위에 있으면 꾸짖음이 있다. [제후가] 한 번 조회하지 않으면 그 관작(官爵)을 낮추고, 두 번 조회하지 않으면 그 땅을 삭감하며, 세 번 조회에 안 오면 천자의 군대가 그[군주]를 바꿔버린다. 이 연고는 천자가 성토(聲討)를 하지만 정벌(征伐)은 하지 않고, 제후는 정벌만 하고 성토는 하지 않는데, 오패(五霸)된 자가 제후를 끌어모아 제후를 정벌하였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패(五霸)된 자는 삼왕(三王)의 죄인’이라고 하였다.>
【趙岐 注】: 巡狩、述職,皆以助人民。慶,賞也。養老尊賢,能者在位,賞之以地,益其地也。掊克不良之人在位,則責讓之。不朝而至三,則討之以六師,移之,就之也。討者,上討下也。伐者,敵國相征伐也。五霸強摟牽諸侯以伐諸侯,不以王命也,於三王之法,乃為之罪人也。
【조기 注】: 순수(巡狩)와 술직(述職)은 모두 그로써 사람들과 백성을 도움이다. 경(慶)은 상을 줌이다. 노인을 봉양하고 현자(賢者)를 높임은, 잘하는 자가 지위에 있으니 땅으로서 상을 주는데 그 땅을 더해줌이다. 어질지 않은 사람이 세금을 수탈(收奪)하여 지위에 있으면 책임을 꾸짖는다. 조회에 가지 않음이 세 번에 이르면 천자의 군대[六師]로써 성토(聲討)를 하여 쫓아낸다. 토(討, 칠 토)는, 위에서 아래를 쳐냄이다. 벌(伐, 칠 벌)은, 대적하는 나라가 서로 정벌(征伐)함이다. 오패(五霸)는 제후들을 강제로 끌어모아 끌고 그로써 제후를 정벌(征伐)함인데, 왕의 명으로써가 아니며 삼왕의 법도에는 이에 죄인으로 삼았음이다.
五霸桓公為盛,葵丘之會諸侯,束牲載書而不歃血。初命曰:‘誅不孝,無易樹子,無以妾為妻。’再命曰:‘尊賢育才,以彰有德。’三命曰:‘敬老慈幼,無忘賓旅。’四命曰:‘士無世官,官事無攝;取士必得,無專殺大夫。’五命曰:‘無曲防,無遏糴,無有封而不告。’ 曰:‘凡我同盟之人,既盟之後,言歸於好。’今之諸侯皆犯此五禁,故曰今之諸侯,五霸之罪人也。<오패(五霸)에서 환공(桓公)이 성대하였는데, 규구(葵丘)의 회맹(會盟)에서 제후들과 희생을 묶어놓고 [맹서] 글을 올려놓았지만 희생의 피를 마시지는 않고서, 첫 번째 명령하기를 ‘불효(不孝)는 처벌하고, 세자(世子)를 바꾸지 말며, 첩(妾)을 아내로 삼지 말라.’ 하였고, 두 번째 명령하기를 ‘현자를 높이고 인재를 기르며 그로써 덕(德)이 있는 이를 표창(表彰)하라.’ 하였으며, 세 번째 명령하기를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손님과 나그네를 소홀히 하지 말라.’ 하였고, 네 번째 명령하기를 ‘관리의 관직에 세습이 없게 하고, 관청의 일은 겸직시키지 말며, 관리의 등용은 필요할적에만 얻고, 멋대로 대부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며, 다섯 번째 명령하기를 ‘굽은 제방을 없애고, 쌀을 사 가는 것을 막지 말며, [대부를] 봉해주고서 고하지 않는 이가 없게 하라.’ 하고서 말하기를 ‘모든 우리와 함께 맹약한 사람들은 이미 맹약한 뒤에는 잘 지키고 돌아가자.’라고 하였다. 지금의 제후들은 모두 이 다섯 가지 금함을 범하였기 때문에 말하기를 ‘지금의 제후들은 오패의 죄인’이라 하였다.>
【趙岐 注】: 齊桓公,五霸之盛者也,與諸侯會於葵丘,束縛其牲,但加載書,不複歃血。言畏桓公,不敢負之,不得專誅不孝。樹,立也。已立世子,不得擅易也。不得立愛妾為嫡妻也。尊賢養才,所以彰明有德之人。敬老愛小,恤矜孤寡,客羈旅勿忘忽也。仕為大臣,不得世官,賢臣乃得世祿也。官事無攝,無曠庶僚也。取士必得賢也,立賢無方也。無專殺大夫,不得以私怒行戮也。無敢違王法而以己意設防禁也,無遏止穀糴不通鄰國也,無以私恩擅有封賞而不告盟主也。言歸於好,無構怨也。桓公施此五命,而今諸侯皆犯之,故曰罪人也。
【조기 注】: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오패(五霸)의 성대한 자인데, 제후들과 규구(葵丘)에서 회맹(會盟)하면서 희생을 묶어 메어놓았지만 단지 [맹서] 글만 올려 놓고 다시 희생의 피를 마시지는 않았음이다. 환공이 두려워 감히 짊어지지 못했음은 오로지 불효를 처벌을 하지 못했음을 말함이다. 수(樹)는 세움이다. 이미 세자를 세웠으면 멋데로 바꾸지 못함이다. 첩(妾)을 사랑하여 적처(嫡妻)를 삼아서 세우지 못함이다. 현자를 높이고 인재를 기름은, 덕(德)이 있는 사람은 밝음이 드러나는 까닭이다.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함은,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구휼하고 손님과 나그네를 소흘하여 잊지 말아야 함이다. 벼슬이 큰 신하가 되더라도 관직을 세습하지 못함은, 현명한 신하는 이에 세습하는 녹봉을 얻음이다. 관직의 일은 겸직이 없음은, 여러 동료를 비우지 못함이다. 관리를 얻음은 반드시 현자를 얻음이니, 현자를 세움은 무방함이다. 오로지 대부를 죽임이 없음은, 사사로이 노함으로써 죽임을 행하지 않음이다. 감히 왕의 법을 어기고서 자기의 뜻으로써 막아서 금함을 베풂이 없게 하고, 곡식과 쌀을 사가는데 이웃 나라에 통하지 못하게 막아서 기침이 없게 하며, 상으로 봉함이 있는데도 은혜를 멋데로 사사로움으로써 맹주에게 고하지 않음이 없게함이다. [맹약을] 잘 지키고 돌아가자[歸於好]라고 함은 원한을 품음이 없음을 말함이다. 환공(桓公)이 이 다섯가지 명을 시행하였는데도 지금 제후들이 모두 범했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말함이다.
長君之惡其罪小,逢君之惡其罪大。今之大夫皆逢君之惡,故曰今之大夫,今之諸侯之罪人也。<군주의 악(惡)을 조장(助長)함은 그 죄가 작지만, 군주의 악에 영합(迎合)함은 그 죄가 크다. 지금의 대부들은 모두 군주의 악에 영합(迎合)했기 때문에 말하기를 ‘지금의 대부들은, 지금의 제후에게 죄인’이라고 하였다.”>
【趙岐 注】: 君有惡命,臣長大而宣之,其罪在不能拒逆君命,故曰小也。逢,迎也。君之惡心未發,臣以諂媚逢迎之,而導君為非,故曰罪大。今諸侯之大夫皆逢君之惡,故曰罪人也。
【조기 注】: 군주가 악(惡)한 명을 내리면 신하가 장대하면서도 마땅하게 하였으니 그 죄는 군주의 명에 거역을 잘하지 않음이 있었기 때문에 작다고 말하였음이다. 봉(逢, 만날 봉)은, 맞이함이다. 군주의 악한 마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는데, 신하가 아첨(阿諂)하여 아양을 떨고 [악을] 맞이하여 영접(迎接)을 하며 군주가 잘못하도록 인도하였기 때문에 죄가 크다고 말하였다. 지금 제후의 대부가 모두 군주의 악을 맞이하였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말했음이다.
고자(告子)-下
8章
魯欲使慎子為將軍。孟子曰:“不教民而用之,謂之殃民。殃民者,不容於堯、舜之世。一戰勝齊,遂有南陽,然且不可。<노(魯)나라가 신자(愼子)를 장군(將軍)으로 삼고자 하였는데,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서 [전쟁에] 쓰려고 보냄을 일컫기를 "백성을 해침[殃民]이라 하며, 백성을 해치[殃民]는 자는, 요순(堯.舜)의 세상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한 번 싸움으로 제(齊)나라를 이겨서 드디어 남양(南陽) 땅을 차지하더라도 불가(不可)하다.”>
【趙岐 注】: 慎子,善用兵者。不教民以仁義而用之戰鬥,是使民有殃禍也。堯、舜之世,皆行仁義,故好戰殃民者,不能自容也。就使慎子能為魯一戰取齊南陽之地,且猶不可。山南曰陽,岱山之南,謂之南陽也。
【조기 注】: 신자(愼子)는 군대를 잘 사용하는 자이다. 백성을 인의(仁義)로서 가르치지 않으면서 전쟁의 싸움에 쓰려고 보내면 이는 재앙의 화가 있도록 시킴이다. 요순(堯.舜)의 세상에서는 모두 인의(仁義)를 행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전쟁의 재앙을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잘 용납하지 않았다. 신자(愼子)를 시켜 나아가서 노(魯)나라를 위하여 한 번 싸움을 잘하여 제(齊)나라 남양(南陽) 땅을 차지하더라도 불가함이다. 산의 남쪽을 양이라 말하고 대산(岱山)의 남쪽을 일컫기를 남양이라고 한다.
慎子勃然不悅,曰:“此則滑釐所不識也。<신자(愼子)가 발끈하며 기분 나빠하며 말하였다. “이는 제[골리(滑釐)]가 알지 못하는 바 입니다.”>
【趙岐 注】: 滑釐,慎子名。不悅,故曰我所不知此言何謂也?
【조기 注】: 골리(滑釐)는 신자(愼子)의 이름이다. 기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기를 "내가 알지 못하는 바인데 이는 무엇을 일컬어 말함인가?“라고 하였다.
曰:“吾明告子:天子之地方千裏,不千裏,不足以待諸侯。諸侯之地方百裏,不百裏,不足以守宗廟之典籍。周公之封於魯為方百裏也,地非不足,而儉於百裏。太公之封於齊也,亦為方百裏也,地非不足也,而儉於百裏。今魯方百裏者五,子以為有王者作,則魯在所損乎,在所益乎?徒取諸彼以與此,然且仁者不為,況於殺人以求之乎。<[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분명히 그대에게 일러주겠소. 천자(天子)의 땅은 사방 천 리인데 천 리가 안 되면 제후를 대접(待接)함으로 넉넉하지 못하고, 제후의 땅은 사방 백 리인데 백 리가 안 되면 종묘(宗廟)와 전적(典籍)을 지킴으로 넉넉지 않소. 주공(周公)을 노나라에 봉할 적에 사방 백 리로 하였는데, 땅이 부족하지 않았으면서도 백리에 검소(儉素)하였고, 태공(太公)을 제나라에 봉할 적에도 또한 사방 백리로 하였는데, 땅이 부족하지 않았으면서도 백리에 검소(儉素)하였소. 지금 노(魯)나라는 사방 백 리 되는 자가 다섯인데, 그대가 왕업을 이루는 자가 있다고 여긴다면 노(魯)나라는 [땅을] 덜어내야 하는 쪽에 있소? 땅을 더해주어야 하는 쪽에 있겠소? 무리를 저쪽에서 여럿을 취하여 그로써 이쪽에 주는 것 또한 인자(仁者)는 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을 죽여가면서 그것[영토]을 구하려 하겠소? >
【趙岐 注】: 孟子見慎子不悅,故曰:明告子,天子諸侯製製如是。諸侯當來朝聘,故言守宗廟,典籍,謂先祖常籍法度之文也。周公大公,地尚不能滿百裏,儉而不足也,後世兼侵小國,今魯乃五百裏矣。有王者作,若文王、武王者,子以為魯在所損之中邪、在所益之中也?言其必見損也。但取彼與此為無傷害,仁者尚不肯為,況戰鬥殺人以求廣土地乎!
【조기 注】: 맹자께서 신자(慎子)가 기뻐하지 않음을 보았기 때문에 말하기를 “분명히 그대에게 일러주겠소, 천자(天子)와 제후(諸侯)의 지음을 이와 같이 짓는데, 제후는 마땅히 조회에 불려 오기 때문에 종묘와 전적을 지킴은, 선조의 일상 서적과 법도의 글월을 가리켜서 말함이다. 주공(周公)과 태공(大公)은 땅이 오히려 백리를 잘 넘지 않고 검소(儉素)하면서 넉넉지 않았는데 후세에 작은 나라를 아울러 침략하여 지금 노(魯)나라는 마침내 오백리가 되었다. 왕업을 이루는 자가 있음은, 문왕(文王)과 무왕(武王)과 같은 자이며 그대는 노(魯)나라가 [땅을] 덜어내야 하는 쪽의 가운데에 있다고 여기는가? 덜어내는 쪽의 가운데에 있는가?”라고 하였다. 그는 반드시 [땅을] 빼앗기게 된다는 말이다. 다만 저쪽에서 취하여 이쪽에 준다면 이는 상해를 입힘이 없더라도 인자(仁者)는 오히려 즐겨하지 않는데 하물며 전쟁의 싸움에 사람을 죽임으로써 넓은 토지를 구하려 하는가?
君子之事君也,務引其君以當道,誌於仁而已。<군자가 군주를 섬김은, 그 군주를 인도하여 그로써 마땅한 도(道)에 힘쓰고 어짊[仁]에 뜻함일 뿐이오.”>
【趙岐 注】: 言君子事君之法,牽引其君以當正道者,仁也。誌仁而已,欲使慎子輔君以仁也。
【조기 注】: 군자가 군주의 법도를 섬기는데, 그 군주를 인도하여 그로써 마땅히 바른 도(道)를 이끌어야 하는 것이 어짊[仁]이다. 어짊[仁]에 뜻을 둘 뿐이며, 신자(慎子)로 하여금 군주를 도와서 그로써 어질[仁]게 하기를 바람이다.
고자(告子)-下
9章
孟子曰:“今之事君者皆曰:‘我能為君辟土地,充府庫。’ 今之所謂良臣,古之所謂民賊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은 군주를 섬기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나는 군주를 위하여 토지(土地)를 침략(侵略)하고 창고를 잘 채운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른바 어진 신하이지만, 옛날에는 이른바 백성의 도적이었다. >
【趙岐 注】: 辟[闢]土地,侵小國也。充府庫,重賦斂也。今之所謂良臣,於古之法為民賊。傷民,故謂之賊也。
【조기 注】: 토지를 개척(開拓;闢)함은, 작은 나라를 침략함이다. 창고를 채움은 세금을 부과하여 거둠이다. 지금은 이른바 어진 신하이지만, 옛날의 법에는 백성의 도적이 됨이다. 백성을 해치기 때문에 일컫기를 도적이라 했다.
君不鄉道,不誌於仁,而求富之,是富桀也。<군주가 도(道)에 향하지 않고 어짊[仁]에 뜻을 두지 않으면서 부유해지기를 구하면, 이는 [폭군] 걸왕(桀王)이 부유해짐이다.>
【趙岐 注】: 為惡君聚斂以富之,為富桀也。謂若夏桀也。
【조기 注】: 악한 군주가 모으고 거둠으로써 부유하게 되면 걸왕(桀王)이 부유하게 됨이다.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같음을 말함이다.
‘我能為君約與國,戰必克’。今之所謂良臣,古之所謂民賊也。<‘나는 군주를 위하여 함께하는 나라에 맹약을 잘 맺고, 전쟁하면 반드시 이긴다.’라고 하였으니, 지금은 이른바 훌륭한 신하이지만, 옛날에는 이른바 백성의 도적이었다. >
【趙岐 注】: 連諸侯以戰,求必勝之也。
【조기 注】: 제후(諸侯)들을 연횡(連衡)하여 그로써 전쟁하여 반드시 승리를 하도록 구함이다.
君不鄉道,不誌於仁,而求為之強戰,是輔桀也。<군주가 도(道)를 향하지 않고 어짊[仁]에 뜻을 두지 않으면서 그[桀王]를 위하여 강제로 전쟁을 요구하였으니, 이는 걸왕(桀王)을 도와줌이다.>
【趙岐 注】: 說與上同。
【조기 注】: 설명은 위와 더블어 같다.
由今之道,無變今之俗,雖與之天下,不能一朝居也。<지금의 도(道)를 따르고 지금의 풍속에 변함이 없다면, 비록 천하를 준다 해도 하루아침을 잘 거주하지 못할 것이다.”>
【趙岐 注】: 今之道非善道,今之世俗漸惡久矣,若不變更,雖得天下之政而治之,不能自安一朝之間居其位也。
【조기 注】: 지금의 도(道)는 착한 도가 아니고 지금의 세상 풍속은 점점 악함이 오래돼었는데, 만약 고쳐서 변하지 않으면 비록 천하의 정치를 얻어서 그것을 다스려도 스스로 하루아침을 그 자리에 거주함을 잘 못함이다.
고자(告子)-下
10章
白圭曰:“吾欲二十而取一,何如?。<백규(白圭)가 말하였다. “내가 20분의 1을 [조세(租稅)로] 취하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趙岐 注】: 白圭,周人也。節以貨殖,欲省賦利民,使二十而稅一。
【조기 注】: 백규(白圭)는 주(周)나라 사람이다. 절도(節度)로써 재물을 불리는데, 세금을 살펴서 백성을 이롭게 하고자 20분의 1로 하여금 세금(稅金)을 하였다.
孟子曰:“子之道,貉道也。萬室之國,一人陶,則可乎?。<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도(道)는 [오랑캐] 맥(貊)의 방법이오. 1만 가구의 나라에서 한 사람이 질그릇만들면 될 수 있겠소?” >
【趙岐 注】: 貉,夷貉之人,在荒服者也。貉之說,二十而取一。萬家之國,使一人陶瓦器,則可乎?以此喻白圭之所言而已矣。
【조기 注】: 맥(貊)은, 오랑케 맥(貊)의 사람들인데 황복(荒服)에 있는 자이다. 맥(貊)의 설은, 20분의 1을 세금으로 취한다. 만가(萬家)의 나라가 한 사람으로 기와와 그릇을 굽게하면 할 수 있겠는가? 이로써 백규(白圭)가 말한 바를 비유하였을 뿐이다.
曰:“不可,器不足用也。<[백규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그릇이 쓰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趙岐 注】: 白圭曰:一人陶,則瓦器不足以供萬室之用也。
【조기 注】: 백규가 말하기를 “한 사람이 질그릇구우면 기와와 그릇이 만 가구의 사용에 공급함으로는 부족하다."라고 했음이다.
曰:“夫貉,五穀不生,惟黍生之。無城郭宮室、宗廟祭祀之禮,無諸侯幣帛饔餮,無百官有司,故二十而取一而足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맥(貉)나라는 오곡(五穀)이 자라지 않고 오직 기장만 자라는데, 성곽(城郭)과 궁실(宮室) 종묘(宗廟)와 제사(祭祀)의 예(禮)가 없고, 제후들의 폐백과 음식 대접도 없으며, 백관(百官)과 담당관리도 없기 때문에 20분의 1만 취하여도 넉넉하오.>
【趙岐 注】: 貉在北方,其氣寒,不生五穀。黍早熟,故獨生之。無中國之禮,如此之用,故可二十而取一而足也。
【조기 注】: 맥(貉)나라는 북쪽 방향에 있는데, 그 기온이 차가워서 오곡이 자라지 못한다. 기장은 일직 여물기 때문에 홀로 자란다. 중국의 예(禮)에는 없는데 이와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20분의 1만 취하여도 넉넉하게 할 수 있음이다.
今居中國,去人倫,無君子,如之何其可也? 陶以寡,且不可以為國,況無君子乎!欲輕之於堯、舜之道者,大貉小貉也。欲重之於堯、舜之道者,大桀小桀也。<지금 중국에 거주하면서 인륜(人倫)을 버리고 군자를 없애면 어떻게 할 수 있겠소? 질그릇이 적으면 또한 나라를 운영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군자가 없어서야 되겠소? 요순(堯舜)의 도(道: 10분의 1)보다 [조세를] 가볍게 하려는 자는 큰 오랑캐[大貉]나 작은 오랑캐[小貉]이고, 요순의 도(道) 보다 무겁게 하려는 자는 큰 걸왕[大桀]과 작은 걸왕[小桀]이오.”>
【趙岐 注】: 今之居中國,當行禮義,而欲效夷貉無人倫之敘、無君子之道,豈可哉皋陶器者少,尚不可以為國,況無君子之道乎?堯、舜以來,什一而稅,足以行禮,故以此為道。今欲輕之,二十而稅一者,夷貉為大貉,子為小貉也。欲重之,過什一,則是夏桀為大桀,而子為之小桀也。
【조기 注】: 지금 중국에 거주하면서 마땅히 예의를 행하는데, 오랑캐인 맥(貉)을 본받아서 인륜(人倫)을 펼침이 없고 군자의 도(道)를 없게 하려고 하면 어찌 고요(皋陶)가 그릇만드는 것보다 적게 할 수 있으며 오히려 나라를 운영할 수 없는데 하물며 군자가 없어서야 되겠소? 요순(堯舜)의 이래로 10분의 1 세금으로 예를 행함이 넉넉했기 때문에 이로써 도를 삼았는데, 지금 [세금을] 가볍게 하여 20분의 1 세금으로 하려고 하는 자는, 오랑케인 맥(貉)나라의 큰 오랑캐[大貉]가 하였고 아들인 작은 오랑캐[小貉]가 하였으며, [세금을] 무겁게 하여 10분의 1을 넘게하려고 하면 이는 하(夏)나라 걸왕의 큰 걸왕[大桀]이 하여서 아들인 작은 걸왕[小桀]이 하게 되었다.
고자(告子)-下
11章
白圭曰:“丹之治水也,愈於禹。<백규가 말하였다. “저[丹]의 물 다스림이, 우왕(禹王)보다 낫습니다.”>
【趙岐 注】: 丹,名;圭,字也。當諸侯之時有小水,白圭為治除之,因自謂過乎禹也。
【조기 注】: 단(丹)은, 이름이다. 규(圭)는, 자(字)이다. 마땅히 제후의 시절에는 물이 조금 있었는데, 백규(白圭)가 그것[물]을 제거하여 다스리려고 하며 스스로를 말미암아 우왕(禹王)의 잘못이라 말했음이다.
孟子曰:“子過矣。禹之治水,水之道也,是故禹以四海為壑。今吾子以鄰國為壑,水逆行,謂之洚水。洚水者,洪水也。仁人之所惡也,吾子過矣。<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 [말은] 잘못됐소. 우왕(禹王)께서 물을 다스림은 물의 도(道)이시며, 이 때문에 우왕께서는 사방의 바다로써 골짜기[물 저장]를 삼으셨는데, 지금 우리그대는 이웃 나라를 가지고 골짜기[물 고임]를 삼았으며, 물이 거꾸로 흘러감[逆行]을 말하기를 홍수(洚水)라 하고, 홍수(洚水)라는 것은 홍수(洪水)이며, 어진 사람이 미워하는 바이니 우리그대가 잘못하였소.”>
【趙岐 注】: 子之所言過矣,禹除中國之害,以四海為溝壑以受其害水,故後世賴之。今子除水,近注之鄰國,觸於洚水之名,仁人惡為之,自以為愈於禹,是子亦過甚矣。
【조기 注】: 그대의 말이 잘못된 바는, 우왕(禹王)께서 나라 가운데의 해침을 없애려고 사방 바다를 가지고 구렁 골짜기로 삼아 그로써 그 물의 해침을 막았기 때문에 후세에 의지(依支)를 하였지만, 지금 그대는 물을 없애려고 가까운 이웃 나라에 물을 대어서 홍수의 이름에 닿게 하였는데 어진 사람이 그것을 미워였으며, 스스로 그로써 우왕(禹王)에 비유를 하였는데 이는 그대가 또한 심하게 잘못했음이다.
고자(告子)-下
12章
孟子曰:“君子不亮,惡乎執?。<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미덥지 않으면 어떻게 [일을] 집행(執行)을 하겠는가?”>
【趙岐 注】: 亮,信也。《易》曰:“君子履信思順。”若為君子之道,舍信將安所執之邪?。
【조기 注】: 량(亮, 밝을 량)은, 믿음이다. 《역(易)》에 말하기를 "군자는 믿음을 이행하고 순리를 생각한다."라고 했는데, 만약 군자의 도를 삼음이 믿음을 버리고서 장차 어찌 집행(執行)을 하는 바 있겠는가?
고자(告子)-下
13章
魯欲使樂正子為政。
<노(魯)나라에서 악정자(樂正子)로 하여금 정치를 맡게 하려 하자, >
【趙岐 注】: 樂正子,克也,魯君使之執政於國。
【조기 注】: 악정자(樂正子)는 극(克)이며, 노(魯)나라 군주가 나라에 정사를 맡게 하려고 하였다.
孟子曰:“吾聞之,喜而不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것[말]을 듣고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趙岐 注】: 喜其人道德得行,為之喜而不寐。
【조기 注】: 그 사람이 도덕을 행함에 기뻐하고, 그것을 위하여 기뻐하면서 잠을 못 잤음이다.
公孫丑曰:“樂正子強乎?”曰:“否。”“有知慮乎?”曰:“否。”“多聞識乎?”曰:“否。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악정자(樂正子)는 강합니까?” [맹자께서] 답하셨다. “아닐세.” “지혜와 사려가 있습니까?” 답하셨다. “아닐세.” “듣고 아는게 많습니까?” 답하셨다. “아닐세.”>
【趙岐 注】: 丑問樂正子有此三問之所能乎?孟子皆曰否,不能有此也。
【조기 注】: 공손추(公孫丑)가 악정자(樂正子)에게 묻기를, 이 세 가지 잘하는 바가 있는가를 물었는데, 맹자께서 모두 아니고, 이러한 잘함이 있지 않다고 말했다.
“然則奚為喜而不寐?。
<“그렇다면 어찌하여 기뻐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셨습니까?”>
【趙岐 注】: 丑問無此三者,何為喜而不寐。
【조기 注】: 공손추(公孫丑)가 묻기를 이 세 가지가 없는데도, 어찌 기뻐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셨습니까?라고 했다.
曰:“其為人也好善。
<[맹자께서] 답하셨다. “그의 사람됨이 선(善)을 좋아 한다네.” >
【趙岐 注】: 孟子言樂正子之為人也能好善,故為之喜。
【조기 注】: 맹자께서 악정자(樂正子)의 사람됨은 선(善)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여 기뻐했음이다.
“好善足乎?。
<“선(善)을 좋아하면 충분합니까?”>
【趙岐 注】: 丑問以但好善,足以治國乎?
【조기 注】: 공손추(公孫丑)가 묻기를 단지 선(善)을 좋아함으로써 나라를 다스림이 넉넉합니까?라고 했음이다.
曰:“好善優於天下,而況魯國乎?夫苟好善,則四海之內,皆將輕千裏而來告之以善。夫苟不好善,則人將曰:‘訑訑,予既已知之矣。’ 訑訑之聲音顏色,距人於千裏之外。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善)을 좋아하면 천하[다스림]에도 넉넉한데, 하물며 노(魯)나라이겠는가? 그가 진실로 선(善)을 좋아한다면 사해의 안에 모두가 장차 천 리를 가볍게 하면서 찾아와 선(善)을 알려 주지만, 그가 진실로 선(善)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기를 ‘잘난 체 으쓱거림을 내 이미 알았다.’라고 하는데, 잘난 체 으쓱거리는 음성과 얼굴빛이 사람들을 천 리 밖에서 막는다네. >
【趙岐 注】: 孟子曰:好善樂聞,善言是采用之也, 以此治天下,可以優之,舜是也,何況於魯不能治乎!人誠好善,四海之內皆輕行千裏以善來告之;誠不好善,則其人將曰訑訑,賤他人之言。訑訑者,自足其智,不嗜善言之貌。訑訑之人,發聲音,見顏色,人皆知其不欲受善言也。道術之士聞之,止於千裏之外而不來也。
【조기 注】: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善)을 좋아하고 듣기를 즐거워함은, 선은 옳은 풍채(風采)를 사용함을 말하며 그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넉넉하게 할 수 있음은 바로 순(舜)임금이신데 어찌 하물며 노(魯)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겠는가? 사람이 진실로 선(善)을 좋아하면 사해의 안에 모두가 가볍게 천 리를 가서 선(善)을 가지고 와서 알려 주고, 진실로 선(善)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이 장차 말하기를 ‘잘난 체 으쓱거리며 다른 사람의 말을 천하게 한다.’고 하였다.” 이이(訑訑, 으쓱거릴 이)라는 것은, 스스로 지혜가 넉넉하여 선(善)한 말을 즐기지 않는 모양이다. 잘난 체 으쓱거리는 사람은, 음성을 내고 안색을 보임에서 사람들이 모두 선(善)한 말을 주려고 하지 않음을 안다. 도(道)에 재주 있는 관리가 듣고서 천 리 밖에서 멈추고 오지 않았음이다.
士止於千裏之外,則讒諂麵諛之人至矣。與讒諂麵諛之人居,國欲治,可得乎?。
<관리가 천 리 밖에서 멈춘다면, 참소하고 아첨하며 면전에서 비위 맞추는 사람들이 올 것이니, 참소하고 아첨하며 면전에서 비위 맞추는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면,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여도 할 수가 있겠는가?”>
【趙岐 注】: 懷善之士止於千裏之外,不肯就之,則邪惡順意之人至矣。與邪惡居,欲使國治,豈可得乎?
【조기 注】: 선(善)을 품은 관리가 천 리 밖에서 멈추고 나아가기를 즐겨하지 않으면 사악한 뜻을 따르는 사람이 온다. 간사하고 악한 이와 함께 거주하면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여도 어찌 할 수가 있겠는가?
고자(告子)-下
14章
陳子曰:“古之君何如則仕?。<진자[진진(陳臻)]가 말하였다. “옛날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하였습니까?” >
【趙岐 注】: 陳臻問:古之君子謂何禮可以仕也。
【조기 注】: [맹자 제자] 진진(陳臻)이 물었다. “옛날의 군자가 벼슬 할 수 있음은 어떤 예(禮)를 말합니까?"
孟子曰:“所就三,所去三。迎之致敬以有禮,言將行其言也,則就之;禮貌未衰,言弗行也,則去之。其次,雖未行其言也,迎之致敬以有禮,則就之;禮貌衰,則去之。其下,朝不食,夕不食,饑餓不能出門戶,君聞之,曰:‘吾大者不能行其道,又不能從其言也。使饑餓於我土地,吾恥之。’周之,亦可受也,免死而已矣。<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벼슬에] 나아가는 바가 세 가지이고, 떠나는 바가 세 가지였네. 맞이함에 공경을 다함으로써 예(禮)가 있고, 말하면 장차 그 말을 행하면 그에게 나아가며, 예(禮)의 모양이 아직 쇠하지 않았지만, 말을 행하지 않으면 그를 떠나네.
그 다음은 비록 아직 그 말을 행하지 않았지만 맞이함에 공경을 다하고 예(禮)가 있으면 그에게 나아가고, 예(禮)의 모양이 쇠하면 그를 떠나네.
그 아래에는 아침을 먹지 못하고 저녁도 먹지 못하여 굶주리고 배고파서 문을 잘 나가지 못하는데, 군주가 그것을 듣고 말하기를 ‘내 큰 것은 그 도(道)를 잘 행하지 못하고 또 그 말을 잘 따르지는 못하는데, 내 땅에서 굶주리고 배고프게 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워한다.’라고 하며 주선(周旋)을 해주면, 또한 받을 수는 있지만 죽음을 면하고서 그치네.”>
【趙岐 注】: 所去就,謂下事也,禮者,接之以禮也;貌者,顏色和順,有樂賢之容。禮衰,不敬也;貌衰,不悅也。其下者,困而不能與之祿,則當去。矜其困而問之,苟免死而已。此三就三去之道。窮餓而去不疑也,故不言去,免死而留,為死故也。權時之宜,嫌其疑也,故載之也。
【조기 注】: 떠나고 나아가는 바는, 아래에서 섬김을 말하고, 예(禮)라는 것은, 예(禮)로서 접대를 함이며, 모양[貌]이라는 것은, 안색이 화목하여 순함이고 현명한 용모에 즐거움이 있음이다. 예(禮)가 쇠함은, 공경하지 않음이고, 모양[貌]이 쇠함은, 기뻐하지 않음이다. 그 아래라는 것은, 곤란(困難)한데도 녹을 잘 주지 않으면 마땅히 떠남이다. 그 곤란(困難)함을 자랑하면서 그것을 물으면 진실로 죽음을 면하고서 그침이다. 이는 나아가는 세 가지와 떠나는 세 가지의 도(道)인데, 궁하여 굶주리는데도 떠나기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떠남을 말하지 않고 죽음을 면하고서 머무르니 죽음으로 삼는 연고(緣故)이다. 잠시(暫時;權時)로는 마땅히 그 의심함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떠받들어 줌이다.
고자(告子)-下
15章
孟子曰:“舜發於畎畝之中,傅說舉於版築之間,膠鬲舉於魚鹽之中,管夷吾舉於士,孫叔敖舉於海,百裏奚舉於巿。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必先苦其心誌,勞其筋骨,餓其體膚,空乏其身,行拂亂其所為,所以動心忍性,曾益其所不能。<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순(舜)은 밭 이랑 가운데에서 일어났고, 부열(傅說)은 성벽 쌓는 곳에서 등용되었으며, 교격(膠鬲)은 어물과 소금을 팔다가 등용되었고, 관이오(管夷吾;管仲)는 [형옥] 관리에서 등용되었으며, 손숙오(孫叔敖)는 바닷가에 살다가 등용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시장에서 등용되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이 사람들에게 큰 임무를 내릴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의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 그의 몸과 피부를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궁핍하게 하는데, 그 하는 바가 어지러워서 행함이 어긋남은, 마음을 움직여 본성을 참게 하여, 그 잘하지 못하는 바에 유익(有益)함을 더하려는 까닭이다.>
【趙岐 注】: 舜耕曆山,二十徵庸。傅說築傅岩,武丁舉以為相。膠鬲,殷之賢臣,遭紂之亂,隱遁為商,文王於鬻販魚鹽之中得其人,舉之以為臣也。士,獄官也。管仲自魯囚執於士官,桓公舉以為相國。孫叔敖隱處耕於海濱,楚莊王舉之以為令尹。百裏奚亡虞適秦,隱於都巿,穆公舉之於巿而以為相也。言天將降下大事以任聖賢,必先勤勞其身,餓其體而瘠其膚,使其身乏資絕糧,所行不從拂戾而亂之者,所以動驚其心,堅忍其性,使不違仁,困而知勤,增益其素所以不能行之者也。
【조기 注】: 순(舜)은 역산(曆山)에서 농사지은지 20년에 불리어 등용되었고, 부열(傅說)은 부암(傅岩)에서 축성하다가 무정(武丁)에게 등용되어 재상이 되었으며, 교격(膠鬲)은 은(殷)나라의 어진 신하인데 주왕(紂王)의 난을 만나서 은둔하여 상(商)나라가 되어 문왕(文王)이 어물과 소금을 팔고 있는 가운데에서 그 사람을 얻어 등용하여 신하를 삼았다. 사(士)는 형옥 관리이다. 관중(管仲)은 노(魯)나라에서 죄수를 관리하는 벼슬을 맏고 있다가 환공(桓公)에게 등용되어 나라에 재상이 되었다. 손숙오(孫叔敖)는 바닷가에 은거한 곳에서 초(楚)나라 장왕(莊王)에게 등용되어서 그로써 영윤이 되었다. 백리해(百里奚)는 우공(虞公)에게 간(諫)할 수 없어서 진(秦)나라로 가서 도읍의 시장에 은거하다가 목공(穆公)이 시장에서 등용하여 그로써 재상이 되었다. 하늘이 장차 큰 일을 아래로 내릴적에 그로써 성현에 임하면 반드시 먼저 그의 몸을 수고롭게 하고,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여서 그 피부를 여위게 하며, 그의 몸으로 하여금 재물이 궁핍하여 식량이 끊어져 행하는 바가 어긋나 어그러져 따르지 않으면서 어지러워 지는 것은, 그 마음을 움직여 경계(警戒)하게 하여 그 본성을 굳게 참아서 어짊을 어기지 않게 하여 곤란해도 부지런함을 알게 하는 까닭인데, 그 본디 잘 행하지 못하는 것의 까닭에 유익(有益)함을 더하려 함이다.
人恒過,然後能改。困於心,衡於慮,而後作。徵於色,發於聲,而後喻。<사람은 항상 잘못한 연후에 고치기를 잘하고, 마음에 시달리고 생각에 견주어 본 뒤에야 일어나는데, 안색에 드러나고 소리에 나타난 뒤에야 깨닫는다.>
【趙岐 注】: 人常以有謬思過行,不得福,然後乃更其所為,以不能為能也。困瘁於心,衡,橫也,橫塞其慮於胸中,而後作為奇計異策、憤激之說也。徵驗見於顏色,若屈願憔悴,漁父見而怪之,發於聲而後喻,若甯戚商歌,桓公異之,是而已矣。
【조기 注】: 사람은 항상 생각에 그르침이 있음으로써 잘못을 행하여 복을 얻지 못한 연후에 이에 그 했던 바를 고치는데, 그로써 잘하지 못함을 잘하게 된다. 마음에 시달려 고달픔이고, 형(衡, 저울대 형)은, 뒤엉킴이며, 그 가슴 속에 생각이 뒤엉켜 막힌 이후에 기이한 계산과 다른 꾀가 되어 일어남인데 분함이 심함을 설명함이다. 징험(徵驗)이 안색에 나타남은, 원함을 굽힌 듯한 초췌(憔悴)한 어부를 보고서 그것이 괴이하였음이고, 소리에 나타난 이후에 깨우침은, 차라리 상나라 노래를 가까이 하는 듯함을 환공(桓公)이 이에 기이(奇異)하였을 뿐이다.
入則無法家拂士,出則無敵國外患者,國恒亡。然後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나라에] 들어가면 법도(法度)있는 집안과 보필하는 관리가 없고, 나가면 적국(敵國)과 외환(外患)이 없는 자는, 항상 나라가 망한 연후에야 우환(憂患)에서는 살고 안락함에서는 죽게 됨을 안다.”>
【趙岐 注】: 入,謂國內也。無法度大臣之家、輔弼之士。出,謂國外也。無敵國可難,無外患可憂,則凡庸之君驕慢荒怠,國常以此亡也。故知能生於憂患,死於安樂也。死,亡也。安樂怠慢,使人亡其知能者也。
【조기 注】: 들어감[入]은, 나라의 안을 말하며, 법도(法度)있는 큰 신하의 집안과 보필하는 관리가 없음이다. 나감[出]은, 나라의 밖을 말하며, 적국(敵國)을 어려워함이 없고 외환(外患)을 근심함이 없으면 대체로 용사하는 군주가 교만하여 거칠고 게으르며 나라가 항상 이로써 망한다. 그러므로 우환(憂患)에서 살고 안락함에서는 죽게 됨을 잘 안다. 사(死)는 망함이다. 안락(安樂)하고 태만(怠慢)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망함을 잘 알게 하는 것이다.
고자(告子)-下
16章
孟子曰:“教亦多術矣!予不屑之教誨也者,是亦教誨之而已矣。<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본받음은 또한 방법이 많다. 내가 달가워하지 않는 본받음을 가르치는 것은, 이 또한 본받음을 가르치려고 함일 뿐이다.”>
【趙岐 注】: 教人之道多術。予,我也。屑,絜也。我不絜其人之行,故不教誨之。其人感此,退自修學而為仁義,是亦教誨之一道也。
【조기 注】: 사람을 본받게 하는 도(道)의 방법은 많다. 여(予)는, 나이다. 설(屑, 달갑게 여길 설)은, 헤아림이다. 나는 그 사람들의 행함을 달갑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본받음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이를 느끼고 물러나 스스로 닦고 배워서 인의(仁義)를 실천하면, 이 또한 본받음을 가르치려고 하는 하나의 도(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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