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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卷三

팔일(八佾)

 

3-1)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위계씨: "팔일무어정, 시가인야, 숙불가인야?")

공자께서 계씨를 일컫기를 뜰에서 팔일로 춤추었는데, 이것을 참을 수 있다면 누구엔들 참을 수 없겠는가?라고 하셨다.

 

 

3-2)三家者以, 子曰: "'相維,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

(삼가자이, 자왈: "'상유벽공, 천자목목,' 해취어삼가지당?")

세 집안 사람이 시경 을 노래하면서 제기를 거두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후손 제후들이 제사를 돕는데, 천자께서는 장엄 하시다를 어찌 세 대부집안의 대청(大廳)에서 쓰는가?”

   

譯註 1: 詩經 周頌 雝篇有來雝雝至止肅肅相維天子穆穆

             (시경 주송 오시는 모습 화락하고, 머무르는 모습 엄숙하네. 후손 제후들이 제사를 도와서 천자의 모습 장엄하시네.)

  

 

3-3)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자왈: "인이불인, 여례하? 인이불인, 여락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서, ()를 어떻게 하는가?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서, ()을 어떻게 하는가?”

  

 

3-4)林放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

(임방문례지본, 자왈: "대재문! 례여기사야, 녕검; 상여기이야, 녕척.")

임방이 예의 근본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대단한 질문이다! 예는 사치스럽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검소함이 낫다. 상례는 그것을 바꾸려 하기 보다는 차라리 슬퍼함이 낫다.”

 

譯註 1: 禮記』《中庸》⇒故君子居易以俟命小人行險以徼幸

           (예기』《중용그러므로 군자는 머무름이 바뀌면 천명을 기다리는데, 소인은 험한 행동을 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鄭玄 注] 猶平安也俟命聽天任命也謂傾危之道[정현 주] “은 평안함과 같다. “사명은 하늘이 맏기는 명을 들음이다. “은 도가 기울어져 위태함을 일컫는다.

 

 

3-5)子曰: "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也."

(자왈: "이적지유군, 불여제하지무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적은 임금 있는데, 여러 중원의 [임금이] 없어진 것과 같지 않다.”

 

 

3-6)季氏旅於泰山, 子謂冉有曰: "女弗能救與?" 對曰: "不能." 子曰: "嗚呼! 曾謂泰山, 不如林放乎?"

(계씨려어태산, 자위염유왈: "녀불능구여?" 대왈: "불능." 자왈: "오호! 증위태산, 불여림방호?")

계손씨가 태산에서 여제를 지내려 하자, 공자께서 염유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자네가 잘 막을 수 없는가?”

염유가 대답하였다. “잘 막을 수 없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호라!, 일찍이 태산이 임방과 같지 않다라고 일컬을 수 있겠느냐?”

 

 

3-7)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자왈: "군자무소쟁, 필야사호? 읍양이승, 하이음, 기쟁야군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는데, 반드시 있다면 활쏘기 이겠지? 사양하는 읍하고 오르며, 내려와서는 [벌주를] 마시는데, 그것이 군자의 다툼이다.”

 

 

3-8)子夏問: "'巧笑倩,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하문: "'교소천혜, 미목반혜, 소이위현혜,' 하위야?" 자왈: "회사후소." : "례후호?" 자왈: "기여자, 상야! 시가여언시이의.")

자하가 여쭈었다. “‘고운 웃음이 미쁘고, 아름다운 눈동자가 또렷한데, 흰 바탕을 무늬로 삼았네!’는 무엇을 일컬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을 그린 뒤에 흰 바탕을 그린다.” 자하가 말하였다. “예는 나중 이라는 말씀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으키는 사람이 상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譯註 1: 주례 冬官考工記篇 畫繢 土以黃其象方天時變. 火以圜. 山以章. 水以龍鳥獸蛇. 雜四時五色之位以章之謂之巧. 凡畫繢之事後素功.

           (주례 동관 고공기 화궤 는 황색으로 그 흙은 하늘이 사시에 변함을 아울러 본떳고, “는 원()으로 은 장()으로, “ ,,,으로, 썩어서 4계절과 5색의 자리로서 빛냄을 일컫기를 라고 한다. 대체로 그림과 수놓는 일은, 뒤에 흰 바탕을 드러난다.) 

  

 

3-9)子曰: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자왈: "하례오능언지, 기부족징야; 은례오능언지, 송부족징야. 문헌부족고야. 족즉오능징지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라의 예를 내가 잘 말하지만, [그 후손인] 기나라 징험이 부족하다. 은나라의 예를 내가 잘 말하지만, [후손] 송나라 징험이 부족하다. 글과 현자의 연고가 부족한데, 충분하다면 내가 그것을 잘 증명할 수 있다.”

 

 

3-10)子曰: ", 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자왈: ", 자기관이왕자, 오불욕관지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체 제사에, 이미 강신주를 비우고 부터 지나간 것은, 내가 그[노나라의 무례한 예법]것을 관찰하고 싶지 않다.”

  

譯註 1: 禮記王制天子七廟, 三昭, 三穆, 與大祖之廟而七. 諸侯五廟, 二昭, 二穆, 與大祖之廟而五. 大夫三廟, 一昭, 一穆, 與大祖之廟而三. 士一廟. 庶人祭於寢.

              (예기 왕제천자는 칠묘인데, 삼소와 삼묘에 태조의 묘를 더블어서 칠묘이다. 제후는 오묘인데, 이소 이목에 태조의 묘를 더블어서 오묘이다. 대부는 삼묘인데, 일소 일목에 태조의 묘를 더블어서 삼묘이다. 관리는 일묘이다. 서인은 침에서 제사 지낸다.)

 

譯註 2: 禮記제법是故王立七廟, 一壇, 一墠, 曰考廟, 曰王考廟, 曰皇考廟, 曰顯考廟, 曰祖考廟, 皆月祭之, 遠廟爲祧, 有二祧, 享嘗乃止. 去祧爲壇, 去壇爲墠. 壇墠有禱焉祭之, 無禱乃止. 去墠曰鬼. <中略> 大夫立三廟, 二壇, 曰考廟, 曰王考廟, 曰皇考廟, 享嘗乃止. 顯考 祖考無廟, 有禱焉, 爲壇祭之. 去壇爲鬼. <中略> 庶士庶人無廟, 死曰鬼.

           (예기제법 이러한 때문에 왕[천자] 7묘와 일단 일선을 세우는데, 고묘라 말하고, 왕고묘라 말하며, 황고묘라 말하고, 현고묘라 말하며, 시조고묘라 말하는데 모두 매월 그곳에 제사지낸다, 체묘(遞遷)한 원묘는 조묘(祧廟)로 하여서 2(二祧)가 있는데 사철향사에 그친다. ()를 떠나 단()으로 하고 단을 떠나 선()으로 한다. 단과 선은 그곳에 빌 일이 있으면 그 단과 선에 제사 지내고 빌 일이 없으면 이에 그친다. 선에서 나가면 ()”라고 말한다. <중략> 대부는 3묘와 2단을 세우는데, 부묘[考廟], 조부묘[王考廟], 증조부묘[皇考廟]라 말하며 사철 향사에 그친다. 고조[顯考]와 시조[祖考]의 묘는 없으며, 이 고조와 시조에 빌 일이 있으면 단을 만들어 그곳에 제사 지낸다. 단에서 나가면 라 하였다. <중략> 여러 관리와 서인은 묘가 없으며 죽으면 라 말한다.

 

 

3-11)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혹문체지설, 자왈: "부지야. 지기설자지어천하야, 기여시제사호?" 지기장.)

어떤 사람이 체 제사의 속설을 물어보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알지 못합니다. 천하에서 그 속설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모두 이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지요?” 하면서 그의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3-12)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 祭, 如不祭."

(제여재, 제신여신재. 자왈: "오불여제, 여불제.")

제사는 계신 듯이 하고, 신에 제사 지내면 신이 계신 듯이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 지내지 않음과 같다.”

 

 

3-13)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왕손가문왈: "'여기미어오, 녕미어조,' 하위야." 자왈: "불연, 획죄어천, 무소도야.")

왕손가가 물었다. “그 깊은 곳[안방 아랫목 신()]에 더블어 아첨하기 보다는 차라리 부엌신에 아첨함이 낫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

 

 

3-14)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자왈: "주감어이대, 욱욱호문재! 오종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 두 나라[]를 본받아 문화가 크게 찬란하게 되었도다! 나는 주나라를 따른다.”

 

 

3-15)子入大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大廟, 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

(자입대묘, 매사문. 혹왈: "숙위추인지자지례호? 입대묘, 매사문." 자문지왈: "시례야.")

공자께서 [주공의] 사당에 들어가시면 매사를 물으셨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누가 추 땅 사람의 아들이 예를 안다 말하였는가?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묻더라하였다.

공자께서 그것을 듣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예이다.”

 

 

3-16)子曰: "射, 不主皮 爲力, 不同科 古之道也."

(자왈: "사, 불주피 위력, 불동과 고지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활쏘기는 [과녁의] 가죽이 주체로 하지 않고 힘 쓰며, 품등을 한가지로 않음이 옛날의 도이다.”

 

 

3-17)子貢欲去告朔之餼.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자공욕거고삭지희양. 자왈: "사야, 이애기양, 아애기례.")

자공이 초하루에 희생으로 양을 바쳐 고하는 [조향(朝享)]을 없애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지만 나는 예를 아낀다.”

 

 

3-18)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자왈: "사군진례, 인이위첨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했더니, 사람들이 아첨함이라 여겼다.”

 

 

3-19)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정공문: "군사신, 신사군, 여지하?" 공자대왈: "군사신이례, 신사군이충.")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예로써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충심으로써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

 

 

3-20)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 " 관저, 락이불음, 애이불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속상하지는 않는다.”

 

 

3-21)哀公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曰使民戰栗." 子聞之, :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

(애공문사어재아. 재아대왈: "하후씨이송, 은인이백, 주인이률, 왈사민전률." 자문지, : "성사불설, 수사불간, 기왕불구.")

애공이 재아에게 사()를 물었다. 재아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하나라 왕조는 소나무로 하였고, 은나라 사람들은 측백나무로 하였으며,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로 하였는데, 백성들을 벌벌 떨도록 함이라 말했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그것을 전해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이루어진 일은 설득하지 않고, 따를 일은 간언하지 아니하며, 이미 지나갔으면 허물하지 않는다.”

 

 

3-22)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然則管仲知禮乎?" :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자왈: "관중지기소재!" 혹왈: "관중검호?" : "관씨유삼귀, 관사불섭, 언득검?" "연즉관중지례호?" : "방군수색문, 관씨역수색문. 방군위량군지호, 유반점, 관씨역유반점. 관씨이지례, 숙부지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그릇됨이 작았도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첩실이 셋이나 있으면서, 가신들의 일은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하겠습니까?”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의 임금이라야 병풍 나무로 문을 가리는데, 관중도 또한 병풍 나무로 문을 가렸습니다. 나라의 임금이라야 두 임금을 즐겁게 하는 술잔 돌리는 자리가 있는데, 관중도 또한 반점이 있었습니다.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군들 예를 알지 못 하겠습니까?”

 

 

3-23)子語魯大師樂, : "樂其可知也. 始作, 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자어로대사악, : "악기가지야. 시작, 흡여야; 종지, 순여야, 교여야, 역여야, 이성.")

공자께서 노나라 악관 태사에게 말씀하셨다. "음악으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작은 [소리가] 합한 듯 합니다.  [음악을] 세로로 펼칠 적에는, 순수한 듯 하고, 명료한 듯 하며, 풀어지는 듯 하는데 그로서 이루어집니다.“

 

 

3-24)儀封人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 : "二三子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의봉인청견왈: "군자지지어사야, 오미상불득견야." 종자현지. , : "이삼자하환어상호? 천하지무도야구의, 천장이부자위목탁.")

의 땅의 국경 관리가 뵙기를 청하며 말했다. “군자께서 이 곳에 이르시면 내가 만나보지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

공자를 따르던 제자가 뵙도록 해 주었다.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째서 [벼슬] 잃음을 걱정하십니까? 천하의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하늘이 장차 공부자를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3-25)子謂 : "盡美矣, 又盡善也." : "盡美矣, 未盡善也."

(자위: "진미의, 우진선야." : "진미의, 미진선야.")

공자께서 소악을 일컫기를 아름다움을 다하였고 또 선함도 다하였다라고 하셨고, 무악을 일컫기를 아름다움은 다하였지만 아직 선함은 다하지 못했다라고 하셨다.

 

 

3-26)子曰居上不寬為禮不敬臨喪不哀吾何以觀之哉 ?

(자왈: "거상불관, 위례불경, 임상불애, 오하이관지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윗자리에 머무르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행하는데 경건하지 않으며, 상사를 맞아서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관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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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卷二

【위정(為政)

 

2-1)子曰: "爲政以德, 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

(자왈: "위정이덕, 비여북신거기소이중성공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으로 정책을 펼침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그 곳에 머무르는데 여러 별들이 그를 따름과 같다.”

  

譯註 1: 禮記 禮運篇 王前巫而後史, 卜筮瞽侑皆在左右王中心無為也以守至正.”

             (예기 예운 천자는 앞에 무()가 있고 뒤에 사()가 있으며, 거북점과 시초점 및 맹인 악사와 돌보는 유인(侑人)이 모두 좌우에 있다. 천자는 가운데에서 마음 쓸 일이 없으며, 그로서 바르게 이르도록 지킨다.)

石潭齋 案 : 예기 예운 무위(無為)”는 하는 일이 없음이 아니고 각자 맡은 직분 이외의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包曰德者無為 덕있는 사람은 [맡은 직분만 하고 그외 일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2-2)子曰: "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자왈: "삼백, 일언이폐지, 왈사무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삼백 편을 한마디로 덮어 말하면 생각에 간사함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2-3)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자왈: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을] 정책으로서 인도하고 극형으로 가지런히 하면, 백성들이 면하여도 부끄러워함이 없다, 덕으로서 인도하고 예로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워함도 있고 또 올바르게 된다.”

 

 

2-4)子曰: "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어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세웠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으며, 마흔 살에 헷갈리지[迷心] 않게 되었고, 쉰 살에 천명을 알게 되었으며, 예순 살에 들음이 순해 졌으며, 일흔 살에는 마음이 바라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2-5)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 樊遲曰: "何謂也?" 子曰: ", 事之以禮; , 葬之以禮, 祭之以禮."

(맹의자문효, 자왈: "무위." 번지어, 자고지왈: "맹손문효어아, 아대왈: '무위.'" 번지왈: "하위야?" 자왈: ", 사지이례; , 장지이례, 제지이례.")

맹의자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어김이 없어야 한다라 말씀하셨다.

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는데, 공자께서 그 일을 일러주시기를, “맹손씨가 나에게 효에 대해 묻기에, 내가 어김이 없어야 한다라고 대답을 했다.”

번지가 무슨 말씀입니까?”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아계시면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에 따라 장례를 치르며, 예로써 제사를 지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譯註 1: 史記孔子世家孔子年十七, 魯大夫孟釐子病且死, 誡其嗣懿子曰ː孔丘, 聖人之後, 滅於宋. 其祖弗父何始有宋而嗣讓厲公. 及正考父佐戴··宣公, 三命茲益恭, 故鼎銘云ː一命而僂, 再命而傴, 三命而俯, 循牆而走, 亦莫敢余侮. 饘於是, 粥於是, 以餬余口.’ 其恭如是. 吾聞聖人之後, 雖不當世, 必有達者. 今孔丘年少好禮, 其達者歟? 吾卽沒, 若必師之.” 及 釐子卒, 懿子與魯人南宮敬叔往學禮焉. 是歲, 季武子卒, 平子代立.

            <사기공자세가공자 나이 17, 대부 맹희자가 병이 나서 죽음을 앞두고 그 후계자 의자(懿子)에게 공구는 성스러운 사람의 후손인데 [그 선조가] 송에서 해를 당했다. 당초 그 조상 불보하(弗父何)가 송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여공(厲公)에게 양보했다. 정고보(正考父)에 이르러 대공(戴公), 무공(武公), 선공(宣公)을 섬기면서 세 번이나 임명을 받았는지만 더욱 공경스러웠다.

             그래서 세발솥의 명문에 이르기를 첫 임명에 머리를 숙이고, 두 번째 임명에 허리를 굽히고, 세 번째 임명에 몸을 숙인 채 담장을 따라 걸으니 누구도 나를 업신여기지 않았다. 매일 한 그릇의 죽을 먹으며 지냈다라고 했을 정도로 공경스러웠다. 내가 듣기에 성스러운 사람의 후손은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는 못되더라도 틀림없이 무엇인가 통달한 사람이다. 지금 공구는 나이는 어리지만 예를 잘 아니 그가 통달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내가 죽으면 꼭 그를 스승으로 모시도록 해라라고 했다. 희자가 죽자 의자는 노 사람 남궁경숙과 [공자에게] 가서 예를 배웠다. 이 해(기원전 535), 계무자가 죽고 계평자가 뒤를 이었다.>

 

 

2-6)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문효, 자왈: "부모유기질지우.")

맹무백이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이 병들까 근심한다.”

 

 

2-7)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자유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요즈음의 효라는 것은 잘 부양함을 일컫는다. 개나 말에 이르기 까지 모두 잘 부양함이 있는데, 존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짐승과] 구별하겠는가?”

 

 

2-8)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문효, 자왈: "색난. 유사, 제자복기로; 유주식, 선생찬, 증시이위효호?")

자하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밝은] 기색은 어렵다. 섬길 일 있으면 아랫사람이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음식이 있으면 윗사람이 먼저 드시게 하는데, 일찍이 이것을 효도라고 하겠느냐?”

 

 

2-9)子曰: "吾與回言終日, 不違, 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자왈: "오여회언종일, 불위, 여우. 퇴이성기사, 역족이발, 회야불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와 안회가 더블어 종일 말해도 어기지 않았지만, 어리석은 듯 했다. 물러나서 그의 사생활을 살펴 보니, 또한 펼침이 충분하였다. 안회는 어리석지 않았다.”

 

 

2-10)子曰: "視其所以, 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 人焉廋哉?"

(자왈: "시기소이, 관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인언수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쓰이는 바를 보고, 그 말미암은 바를 관찰하며, 그 편안한 바를 살펴 본다면, 사람들이 어찌 숨기겠는가? 사람들이 어찌 숨기겠는가?”

 

 

2-11)子曰: "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연고를 찾아서 새 것을 안다면 스승이 될 수 있다.”

 

 

2-12)子曰: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한가지만 담는] 그릇이 아니다.”

 

 

2-13)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而後從之."

(자공문군자, 자왈: "선행기언이후종지.")

자공이 군자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그 말을 행하고, 뒤에 그[결과]에 따른다.”

 

 

2-14)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자왈: "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불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두루 하되 순종하지 않고, 소인은 순종하되 두루하지 않는다.”

  

譯註 1: 周易』《彖曰 比 吉也. 比 輔也 下順從也.

          (주역』《단사에 말하였다. “비는 길함이다. 비는 도움인데 아래로 순하게 따름이다.”)

  

 

2-15)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멍[惘 멍할 망]해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몸이] 위태롭다.”

 

 

2-16)子曰: "乎異端, 斯害也已."

(자왈: "공호이단, 사해야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시단에 다스려지면, 이미 이것은 해롭다.”

 

 

2-17)子曰: "! 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자왈: "!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줄까? 아는 것은 아는 것이라 하고, 알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 해야 이것이 앎이다.”

 

 

2-18)子張學干祿,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자장학간록, 자왈: "다문궐의, 신언기여, 즉과우; 다견궐태, 신행기여, 즉과회. 언과우, 행과회, 록재기중의.")

자장이 벼슬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 의심은 보류하며, 그 나머지 말을 삼가하면 허물이 적다. 많이 보고 위태로움은 보류하며, 그 나머지 행함을 삼가하면 후회가 적다. 말은 허물이 적고 행함에 후회가 적으면 벼슬이 그 가운데 있다.”

 

 

2-19)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

(애공문왈: "하위즉민복?" 공자대왈: "거직조제왕, 즉민복; 거왕조제직, 즉민불복.")

애공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곧은 사람은 등용하고 여러 굽은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들이 복종합니다, 굽은 사람을 등용하고 여러 곧은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譯註 1: 史記孔子世家孔子之去魯凡十四歲而反乎魯. 魯哀公問政, 對曰ː政在選臣.” 季康子問政, ː擧直錯諸枉, 則枉者直.” 康子患盜, 孔子曰ː苟子之不欲, 雖賞之不竊.” 然魯終不能用孔子, 孔子亦不求仕.

            (사기공자세가공자가 노를 떠난 지 14년 만에 노로 돌아왔다. 노 애공이 정치에 관해서 묻자 정치는 신하를 선발하는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곧은 사람을 천거하고 굽은 사람들은 버려두면 여러 굽은 사람들도 곧아집니다라고 했다. 계강자가 도둑을 걱정하자 공자는 그대가 진실로 욕심 부리지 않으면 상을 주고 훔치라고 해도 훔치지 않을 것이오라고 했다. 하지만 노는 끝내 공자를 등용함을 잘 하지 않았고, 공자 또한 벼슬을 구걸하지 않았다.)

  

 

2-20)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 如之何?" 子曰: "臨之以莊則敬, 孝慈則忠, 擧善而敎不能則勸."

(계강자문: "사민경충이권, 여지하?" 자왈: "임지이장즉경, 효자즉충, 거선이교불능즉권.")

계강자가 물었다. “백성을 존경 충성을 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씩씩함으로 [백성에] 임하면 삼가하게 되고, 효도와 자애로우면 충성하게 되며, 선한 사람을 등용하여서 잘하지 않은 [백성을] 본받게 하면 권장이 됩니다.”

 

 

2-21)或謂孔子曰: "子奚不爲政?" 子曰: " 孝乎惟?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혹위공자왈: "자해불위정?" 자왈: ": '효호유효, 우우형제, 시어유정.' 시역위정. 해기위위정?")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말했다. “선생께서는 어찌 정책을 펼치지 않으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경에 이르기를 오직 효도함 만 효도인가? 형제간에 우애함도, 정책을 베품이다라고 하였다.  [우애] 또한 정책을 실천함입니다. 어찌 그것을 해야만 정책을 펼침입니까?”

 

 

2-22)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자왈: "인이무신, 부지기가야. 대거무예, 소거무월, 기하이행지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가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큰 수레에 멍에 맬 데가 없고 작은 수레에 멍에 걸 데가 없으면, 그것으로 어떻게 그[수레]것이 갈 수 있겠느냐?”

 

 

2-23)子張問: "十世可知也?"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可知也; 周因於殷禮, 所損益可知也. 其或繼周者, 雖百世可知也."

(자장문: "십세가지야?" 자왈: "은인어하례, 소손익가지야; 주인어은례, 소손익가지야. 기혹계주자, 수백세가지야.")

자장이 여쭈었다. “십 세[왕조]를 알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나라는 하나라 예절을 따랐는데 덜고 더한 바는 알 수 있고, 주나라는 은나라 예절을 따랐는데 덜고 더한 바를 알 수 있다. 그 누군가 주나라 것을 이어간다면 비록 백 세[왕조]라도 알 수 있다.”

   

譯註 1: 朝鮮王朝實錄성종14(1483)  但喪制大事, 萬世不易之常經, 故殷因於夏禮, 所損益可知, 周因於殷禮, 所損益可知 文質三統, 可以損益, 三綱五常, 不可改也

            (조선왕조실록성종14다만 상례의 제도는 큰 일인데 만세에 바뀌지 않는 떳떳한 법이기 때문에, ()나라는 하()나라 예()에 인하였는데 덜고 더한 바는 알 수 있고, ()나라는 은나라 예를 인하였는데 덜고 더한 바를 알 수 있습니다. 문질 삼통(文質三統)은 덜고 더할 수 있으나 삼강 오상(三綱五常)은 고칠 수 없습니다.)

石潭齋 案 : 文質三統 : 왕조의 교체에 따라 문질(文質)이 교체되고 삼통이 순환한다는 이론을 말한다.

           ①문질(文質)이란 은나라는 본질[], 주나라는 문체[]를 숭상함과 같이 왕조의 혁명과 교체에 따라 순환되어 예제(禮制)의 개혁 원리로 사용되는 것이다.

           ②삼통(三統)이란 중국 고대의 예제(禮制)의 원리인데 하나라는 인통(人統), 은나라는 지통(地統), 주나라를 천통(天統)으로 삼았으며, 역법(曆法)으로 하나라는 인월(寅月)을 정월로 삼으니 인통이며, 은나라는 축월(丑月)을 정월로 삼으니 지통, 주나라는 자월(子月)을 정월로 삼으니 천통이다.

  

 

2-24)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자왈: "비기귀이제지, 첨야. 견의불위, 무용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이 귀가 아닌데 제사 지냄은 아첨이다. 옳음을 보고 실천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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