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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

국풍(國風) 15 빈풍(豳風)

 

159. 구역(九罭, 아홉 코 그물)

九罭之魚鱒魴

(구역지어 준방)

아홉 코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송어와 방어인데

我覯之子袞衣繡裳

(아구지자 곤의수상)

우리 님 만나보니 용무늬 수놓은 의상을 입으셨네

 

鴻飛遵渚

(홍비준저)

기러기는 날아서 물가를 따라 가는데

公歸無所於女信處

(공귀무소 어여신처)

그분 돌아갈 곳 없으랴 너에게 잠시 머무셨다네

 

鴻飛遵陸

(홍비준육)

기러기는 날아서 육지를 따라 가는데

公歸不復於女信宿

(공귀불복 어녀신숙)

그분 다시 돌아오지 못해서 너에게 잠시 묶으셨네

 

是以有袞衣兮

(시이유곤의혜)

이 때문에 곤룡포 입고 계시는데

無以我公歸兮

(무이아공귀혜)

우리 그분 돌아가지 않게 하여서

無使我心悲兮

(무사아심비혜)

우리 마음이 슬프지 않게 하리라

 

九罭四章一章四句三章章三句

 

 

모시(毛詩)

전한(前漢)의 모형(毛亨) ()에 주석을 하여서 모시(毛詩)라고 하며 시경(詩經)의 별칭이다.

毛詩 序】 《九罭》,美周公也周大夫刺朝廷之不知也

모시 서 <구역(九罭)>은 주공(周公)을 찬미한 시()이다. 주()나라 대부들이 조정의 [성덕(聖德)] 알지 못함을 풍자한 것이다.

 

 모시전(毛詩傳)

모시전(毛詩傳)은 모형(毛亨) ()에 전()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九罭之魚鱒魴

(구역지어 준방)

아홉 코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송어와 방어인데

毛亨  興也九罭緵罟小魚之網也鱒魴大魚也

모형 전 일으킴[]이다. 아홉 코 그물[구역(九罭)], 날실이 여든 올의 그물이며 작은 물고기 잡는 그물이다. 송어[(, 송어 준)]와 방어[(, 방어 방)]는 큰 물고기이다.

我覯之子袞衣繡裳

(아구지자 곤의수상)

우리 님 만나보니 용무늬 수놓은 의상을 입으셨네

毛亨  所以見周公也袞衣卷龍也

모형 전 그로써 주공(周公)을 만나본 바로는, 곤룡포[]를 입었는데 용()을 수놓았음이다.

 

鴻飛遵渚

(홍비준저)

기러기는 날아서 물가를 따라 가는데

毛亨  鴻不宜循渚也

모형 전 기러기[]는 마땅히 물가를 돌아가지 않는다.

公歸無所於女信處

(공귀무소 어여신처)

그분 돌아갈 곳 없으랴 너에게 잠시 머무셨다네

毛亨  周公未得禮也再宿曰信

모형 전 주공(周公)이 아직 예()를 얻지 못했다. 이틀을 묵음을 신()이라 말한다.

 

鴻飛遵陸

(홍비준육)

기러기는 날아서 육지를 따라 가는데

毛亨  陸非鴻所宜止

모형 전 육지[]는 기러기가 마땅히 그치는 곳이 아니다.

公歸不復於女信宿

(공귀불복 어녀신숙)

그분 다시 돌아오지 못하니 너에게 잠시 묶으셨네

毛亨  宿猶處也

모형 전 (宿, 잘 숙)은 처소와 같음이다.

 

是以有袞衣兮

(시이유곤의혜)

이 때문에 곤룡포 입고 계시는데

無以我公歸兮

(무이아공귀혜)

우리 그분 돌아가지 않게 하여서

毛亨  無與公歸之道也

모형 전 ()께서 돌아가시는 길[]을 주지 마시라.

無使我心悲兮

(무사아심비혜)

우리 마음이 슬프지 않게 하리라

 

 

 모시전(毛詩箋)

()나라 정현(鄭玄, 127~200)이 모형(毛亨) 모시전(毛詩傳)에 전()을 달아서 모시전(毛詩箋)을 지었다.

 

九罭之魚鱒魴

(구역지어 준방)

아홉 코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송어와 방어인데

鄭玄  箋雲設九罭之罟乃後得鱒魴之魚言取物各有器也興者喻玉欲迎周公之來當有其禮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아홉 코의 그물을 설치하고 비로소 뒤에 송어와 방어 물고기를 얻었음은, 사물이 각각 취하는 그릇이 있음을 말함이다. 일으킨[] 것은, 주공(周公)께서 오시는데 맞이하고자 함이 마땅히 그 예()가 있음을 옥을 비유하였다.라고 하였다.

我覯之子袞衣繡裳

(아구지자 곤의수상)

우리 님 만나보니 용무늬 수놓은 의상을 입으셨네

鄭玄  箋雲王迎周公當以上公之服往見之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왕께서 주공(周公)을 맞이함은, 마땅히 상공(上公) 이상의 직책(職責)으로 와서 만나보아야 함이다.라고 하였다.

 

鴻飛遵渚

(홍비준저)

기러기는 날아서 물가를 따라 가는데

鄭玄  箋雲大鳥也不宜與鳧之屬飛而循渚以喻周公今與凡人處東都之邑失其所也

정현 전 ()에 이르기를 (, 기러기 홍)은 큰 새인데, 오리의 부류와 더블어 날아감은 마땅하지 않아서 물가를 돌아가니, 그로써 주공(周公)이 지금 보통 사람들과 더블어 동쪽 도읍에 처하여 그 처소를 잃었음을 비유하였음이다.라고 하였다.

公歸無所於女信處

(공귀무소 어여신처)

그분 돌아갈 곳 없으랴 너에게 잠시 머무셨다네

鄭玄  箋雲誠也時東都之人慾周公留不去故曉之雲公西歸而無所居則可就女誠處是東都也今公當歸複其位不得留也

정현 전 ()에 이르기를 (, 믿을 신), 진실함이다. 동쪽 도읍 시절의 사람들이 주공(周公)께서 떠나지 않고 머물기를 바라기 때문에 깨우쳐 주며 말하기를 ()께서 서쪽으로 돌아가 머무를 곳이 없으면 이 동쪽 도읍에서 나에게 잠시 처했다가 나아갈 수 있습니다.”고 하였다. 지금 공()께서 마땅히 그 지위에 다시 돌아가시니 머무르지 못함이다.라고 하였다.

 

鴻飛遵陸

(홍비준육)

기러기는 날아서 육지를 따라 가는데

公歸不復於女信宿

(공귀불복 어녀신숙)

그분 다시 돌아오지 못하니 너에게 잠시 묶으셨네

 

是以有袞衣兮

(시이유곤의혜)

이 때문에 곤룡포 입고 계시는데

鄭玄  箋雲是東都也東都之人慾周公留之為君故雲是以有兗衣」。

정현 전 ()에 이르기를 (, 이 시)는 이 동쪽 도읍이다. 동쪽 도읍의 사람들이 주공(周公)께서 군주가 되어 머물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르기를 이 때문에 곤룡포를 입고 계시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無以我公歸兮

(무이아공귀혜)

우리 그분 돌아가지 않게 하여서

鄭玄  謂成王所齎來兗衣原其封周公於此以兗衣命留之無以公西歸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성왕(成王)께서 가지고 오신 바의 곤룡포를 말하며, 근본은 주공(周公)을 이 자리에 봉하려 함이다. 곤룡포를 가지고 명하여 머무르게 하니 공()이 그로써 서쪽으로 돌아가지 못함이다.라고 하였다.

無使我心悲兮

(무사아심비혜)

우리 마음이 슬프지 않게 하리라

鄭玄  箋雲周公西歸而東都之人心悲恩德之愛至深也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주공(周公)이 서쪽으로 돌아가면 동쪽 도읍의 사람들 마음이 슬프며 은덕을 아낌이 지극히 심함이다.라고 하였다.

 

 

모시정의(毛詩正義)

()나라 모형(毛亨) 시경(詩經)에 전()을 짓고 정현(鄭玄)이 전()을 붙였으며 당()나라 공영달(孔穎達)이 소()를 지어 모시정의(毛詩正義)를 완성 하였다.

 

九罭》,美周公也周大夫刺朝廷之不知也(○本亦作」,於逼反。)

 

「《九罭四章首章四句下三章章三句不知」。○正義曰九罭詩者美周公也周大夫以刺朝廷之不知也此序與伐柯盡同則毛亦以為刺成王也周公既攝政而東征至三年罪人盡得但成王惑於流言不悅周公所為周公且止東方以待成王之召成王未悟不欲迎之故周大夫作此詩以刺王經四章皆言周公不宜在東是刺王之事鄭以為周公避居東都三年成王既得雷雨大風之變欲迎周公而朝廷群臣猶有惑於管蔡之言不知周公之誌者及啟金縢之書成王親迎周公反而居攝周大夫乃作此詩美周公追刺往前朝廷群臣之不知也此詩當作在歸攝政之後首章言周公不宜居東王當以袞衣禮迎之所陳是未迎時事也二章三章陳往迎周公之時告曉東人之辭卒章陳東都之人慾留周公是公反後之事既反之後朝廷無容不知序雲美周公者則四章皆是也其言刺朝廷之不知者唯首章耳

 

九罭之魚鱒魴興也九罭緵罟小魚之網也鱒魴大魚也箋雲設九罭之罟乃後得鱒魴之魚言取物各有器也興者喻玉欲迎周公之來當有其禮。○才損反沈又音撰魴音房子弄反又子公反字又作」。罟音古今江南呼緵罟為百囊網也。)

 

我覯之子袞衣繡裳所以見周公也袞衣卷龍也箋雲王迎周公當以上公之服往見之。○古本反六冕之第二者也畫為九章天子畫升龍於衣上公但畫降龍字或作」,音同卷冕反。)

 

九罭繡裳」。○毛以為九罭之中魚乃是鱒也魴也魴是大魚處九罭之小網非其宜以興周公是聖人處東方之小邑亦非其宜王何以不早迎之乎我成王若見是子周公當以袞衣繡裳往見之刺王不知欲使王重禮見之鄭以為設九罭之網得鱒魴之魚言取物各有其器以喻用尊重之大禮迎周公之大人是擬人各有其倫尊重之禮正謂上公之服王若見是子周公當以袞衣繡裳往迎之。○九罭大魚」。○正義曰:《釋器: 「緵罟謂之九罭九罭魚網也。」孫炎曰:「九罭謂魚之所入有九囊也。」郭樸曰:「今之百囊網也。」《釋魚」、「」。樊光引此詩郭樸曰:「鱒似鯇子赤眼者江東人呼魴魚為鯿。」陸機:「鱒似鯇而鱗細於鯇赤眼。」然則百囊之網非小網而言得小魚之罟者以其緵促網目能得小魚不謂網身小也驗今鱒魴非是大魚言大魚者以其雖非九罭密網此魚亦將不漏故言大耳非大於餘魚也傳以為大者欲取大小為喻王肅雲:「以興下土小國不宜久留聖人。」傳意或然。○設九其禮」。○正義曰箋解網之與魚大小不異於傳但不取大小為喻耳以下句袞衣繡裳是禮之上服知此句當喻以禮往迎故易傳以取物各有其器喻迎周公當有禮。○所以卷龍」。○正義曰傳解詩言袞衣繡裳是所以見公之服也畫龍於衣謂之袞故雲袞衣卷龍

 

鴻飛遵渚鴻不宜循渚也箋雲大鳥也不宜與鳧之屬飛而循渚以喻周公今與凡人處東都之邑失其所也。○鳧音符。,烏兮反又作」。)

 

公歸無所於女信處周公未得禮也再宿曰信箋雲誠也時東都之人慾周公留不去故曉之雲公西歸而無所居則可就女誠處是東都也今公當歸複其位不得留也。)

 

鴻飛信處」。○毛以鴻者大鳥飛而循渚非其宜以喻周公聖人久留東方亦非其宜王何以不迎之乎又告東方之人雲我周公未得王迎之禮歸則無其住所故於汝東方信宿而處耳終不久留於此告東方之人雲公不久留刺王不早迎。○鄭以為鴻者大鳥不宜與鳧之屬飛而循渚以喻周公聖人不宜與凡人之輩共處東都及成王既悟親迎周公而東都之人慾周公即留於此故曉之曰公西歸若無所居則可於汝之所誠處耳今公歸則複位汝不得留之美周公所在見愛知東人願留之。○鴻不宜循渚」。○正義曰言不宜循渚者喻周公不宜處東毛無避居之義則是東征四國之後留住於東方不知其住所也王肅雲:「以其周公大聖有定命之功不宜久處下土而不見禮迎。」箋為喻亦同但以為辟居處東故雲與凡人耳。○周公曰信」。○正義曰言周公未得王迎之禮也。「再宿曰信」,莊三年左傳公未有所歸之時故於汝信處處汝下國周公居東曆年而曰信者言聖人不宜失其所也再宿於外猶以為久故以近辭言之也。○信誠得留」。○正義曰:《釋詁:「信也。」是信得為誠也以卒章言無以公西歸是東人留之辭故知此是告曉之辭既以告曉東人公既西歸不得遙信故易傳以信為誠言公西歸而無所居則誠處是東都也此章已陳告曉東人之辭卒章始陳東人留公之辭此詩美周公不宜處東既言不宜處東因論告曉東人之事既言告曉東人須見東人之意故卒章乃陳東人之辭

 

鴻飛遵陸陸非鴻所宜止。)

公歸不複於女信宿宿猶處也。)

 

公歸不複」。○正義曰箋以為避居則不複當謂不得複位毛以此章東征則周公攝位久矣不得以不複位為言也當訓複為反王肅雲:「未得所以反之道。」傳意或然

 

是以有兗衣兮無以我公歸兮無與公歸之道也箋雲是東都也東都之人慾周公留之為君故雲是以有兗衣」。謂成王所齎來兗衣原其封周公於此以兗衣命留之無以公西歸。)

 

無使我心悲兮箋雲周公西歸而東都之人心悲恩德之愛至深也。)

 

是以心悲兮」。○毛以為首章言王見周公當以兗衣見之此章言王有兗衣而不迎周公故大夫刺之言王是以有此兗衣兮但無以我公歸之道兮王意不悟故雲無以歸道又言王當早迎周公無使我群臣念周公而心悲兮。○鄭以為此是東都之人慾留周公之辭言王是以有此兗衣兮王令齎來原即封周公於此無以我公西歸兮若以公歸我則思之王無使我思公而心悲兮。○無與公歸之道」。○正義曰周公在東必待王迎乃歸成王未肯迎之故無與我公歸之道謂成王不與歸也。○是東西歸」。○正義曰箋以為王欲迎周公而群臣或有不知周公之誌者故刺之雖臣不知而王必迎公不得言無與公歸之道故易傳以為東都之人慾留周公之辭首章雲迎周公當以上公之服往見之於時成王實以上公服往故東都之人即原以此衣封周公也。○周公至深」。○正義曰東都之人言已將悲故知是心悲念公也傳以為刺王不知則心悲謂群臣悲故王肅雲:「公久不歸則我心悲是大夫作者言已悲也。」此經直言心悲」,本或下有西」,衍字東山相涉而誤耳定本無西

 

九罭四章一章四句三章章三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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