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論語集解(논어집해)』 卷七
【술이편(述而篇)】
7-1)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자왈: "술이불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노팽.")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술하되 지어내지는 않으며 믿고 옛 것을 좋아하니, 은근히 나를 노팽에 비교한다.”
【集解】子曰:「述而不作,信而好古,竊比於我老彭。」(包曰:「老彭,殷賢大夫,好述古事。我若老彭,但述之耳。」 ◎포함이 말하였다:“노팽”은 은나라의 현명한 대부로, 옛 일을 서술하기를 좋아했다. 내가 노팽과 같음은, 단지 서술함이란 뜻이다.)
7-2)子曰: "默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자왈: "묵이식지, 학이불염, 회인불권, 하유어아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묵묵히 기억하고, 배움에 싫증내지 않으며, 사람 가르치는데 게으르지 않다, 무엇이 나에게 있겠는가?”
【集解】子曰:「默而識之,學而不厭,誨人不倦,何有於我哉。」(鄭曰:「無是行於我,我獨有之。」 ◎정현이 말하였다:이것을 행함이 나에게 없음은 , 나에게 홀로 그것이 있음이다.)
7-3)子曰: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자왈: "덕지불수, 학지불강, 문의불능사, 불선불능개, 시오우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닦이지 않고, 학문이 외워지지 않으며, 옳음을 듣고 잘 옮기지 못하고, 선하지 않음을 잘 고치지 않는데, 이것이 나의 걱정이다.”
【集解】子曰:「德之不脩,學之不講,聞義不能徙,不善不能改,是吾憂也。」(孔曰:「夫子常以此四者為憂。」 ◎공안국이 말하였다:공부자께서는 일상으로 이 네 가지로서 근심하였다.)
7-4)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
(자지연거, 신신여야, 요요여야.)
공자께서 한가로이 머무르시면 활짝 편 듯이 하시고, 온화 한 듯 하셨다.
【集解】子之燕居,申申如也,夭夭如也。(馬曰:「申申、夭夭,和舒之貌。」 ◎마융이 말하였다:신신과 요요는 펼쳐서 어울리는 모습이다.)
7-5)子曰: "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자왈: "심의오쇠야! 구의오불부몽견주공!")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구나, 나의 쇠약함이여! 오래도록 내가 주공을 꿈에서 다시 뵙지 못하였다.”
【集解】子曰:「甚矣,吾衰也!久矣,吾不複夢見周公。」(孔曰:「孔子衰老,不複夢見周公。明盛時夢見周公,欲行其道也。」 ◎공안국이 말하였다:공자가 늙고 쇄약하여, 거듭하여 주공을 꿈에 뵙지 못하였다. 한창 성할 때 주공을 꿈에 보았는데, 그의 도가 행하여지기를 바랐다.)
7-6)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
(자왈: "지어도, 거어덕, 의어인, 유어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며, 어짊에 의지하고, 예에서 노닐어야 한다.”
【集解】子曰:「志於道,(志,慕也。道不可體,故志之而已。◎何晏 注 : “지”는 [뜻을] 그림이다. “도”는 몸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뜻을 세울 뿐이다.)據於德,(據,杖也。德有成形,故可據。◎何晏 注 : “거”는 지팡이 함이다. “덕”은 모양을 이룸이 있기 때문에, 근거 할 수 있다.)依於仁,(依,倚也。仁者功施於人,故可倚。◎何晏 注 : “의”는 의지함이다. 어진 사람은 남에게 공적을 베풀기 때문에, 의지 할 수 있다.)遊於藝。」(藝,六藝也,不足據依,故曰遊。◎何晏 注 : “예”는 육예이다. 의지해서 근거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논다’고 말했다.)
7-7)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스스로 포 한 묶음 이상을 행하면, 나는 일찍이 그것으로 가르침이 없은 적이 없다.”
【集解】子曰:「自行束脩以上,吾未嚐無誨焉。」(孔曰:「 言人能奉禮,自行束脩以上,則皆教誨之。」 ◎공안국이 말하였다:사람들이 예를 잘 받들어, 스스로 포 한 묶음 이상을 행한다면 모두 가르쳐 본받게 했다는 말이다.)
7-8)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자왈: "불분불계, 불비불발. 거일우불이삼우반, 즉불부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으며, 한 모퉁이를 들어주면 세 모퉁이로서 돌리지 않으면 다시 [들어 주지] 않는다.”
【集解】子曰:「不憤不啟,不悱不發,舉一隅不以三隅反,則不複也。」(鄭曰:「孔子與人言,必待其人心憤憤,口悱悱,乃後啟發為說之,如此則識思之深也。說則舉一隅以語之,其人不思其類,則不複重教之。」 ◎정현이 말하였다:공자는 사람들과 말씀을 나누면, 반드시 그 사람이 마음으로 크게 분해하고 입으로 표현 못할 듯이 되도록 기다리고, 비로서 뒤에 설득하여 알도록 일깨워 주는데, 이와 같이 하면 생각이 깊어져 기억한다. 설명은 곧, 한 모퉁이를 들어서 말했는데, 그 사람이 그 종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겹쳐 거듭하여 본받게 하지 않았다.)
7-9)子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
(자식어유상자지측, 미상포야.)
공자께서는 상을 치르고 있는 사람의 곁에서 식사하시면 일찍이 배부르게 드시지 않으셨다.
【集解】子食於有喪者之側,未嚐飽也。(喪者哀戚,飽食於其側,是無惻隱之心。◎何晏 注 : “상”이란 것은 슬픔과 근심인데, 그 곁에서 배불리 먹는다면, 이는 슬퍼함을 숨기는 마음이 없다.)
譯註 1: 『孟子』萬章下⇒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中略> 惻隱之心,仁之端也,羞惡之心,義之端也,辭讓之心,禮之端也,是非之心,知之端也。人之有是四端也,猶其有四體也。”
(『맹자』만장下⇒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모두 참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중략> ‘슬퍼하고 숨기려는 마음은 어짊[仁]의 첫머리이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옳음[義]의 첫머리이며, 주장하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첫머리이고, 옳타하고 그르다하는 마음은 앎[知]의 첫머리이다. 사람의 이 네 가지 발단이 있음은, 그것이 [사람에게] 사체가 있음과 같다.")
7-10)子於是日哭, 則不歌.
(자어시일곡, 즉불가.)
공자께서 이 곡 하신 날이면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
【集解】子於是日哭,則不歌。(一日之中,或哭或歌,是褻於禮容。◎何晏 注 : 하루 중에 혹 곡을 하고 노래하기도 하면, 이것은 예의 꾸밈을 더럽힘이다.)
7-11)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자위안연왈: "용지직행, 사지즉장, 유아여이유시부!" 자로왈: "자행삼군, 칙수여?" 자왈: "포호빙하, 사이무회자, 오불여야. 필야림사이구, 호모이성자야.")
공자께서 안연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써 주면 [직무]를 행하고 버리면 은둔하는데, 오직 나와 더블어 네가 이러함이 있는 사람이다.”
자로가 여쭈었다. “스승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범에 난폭하고 황하를 업신여기다[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고 황하를 달려서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가 없는 사람을, 나는 함께 하지 않는다. 반드시 [같이 해야 한다면]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고, 계책을 잘하여 성공하는 사람이다.”
【集解】子謂顏淵曰:「用之則行,舍之則藏,唯我與爾有是夫!」(孔曰:「言可行則行,可止則止,唯我與顏淵同。」 ◎공안국이 말하였다:행 할 수 있으면 행하고, 그칠 수 있으면 그침이, 오직 나와 안연이 한가지라는 말이다.)子路曰:「子行三軍則誰與?」(孔曰:「大國三軍。子路見孔子獨美顏淵,以為己勇,至於夫子為三軍將,亦當誰與己同,故發此問。」 ◎공안국이 말하였다:큰 나라는 삼군이 있다. 자로가 공자께서 안연을 홀로 찬미함을 보고서, 자기는 용기를 실천하므로, 스승님께서 삼군의 장수에 오르게 되면 또한 오직 자기와 한가지로 더블음이 마땅하기 때문에, 이러한 물음이 나왔다.)子曰:「暴虎馮河,死而無悔者,吾不與也。(孔曰:「暴虎,徒搏。馮河,徒涉。」 ◎공안국이 말하였다:“포호”는 도보로 두드려잡음이다. “빙하”는 도보로 건넘이다.)必也,臨事而懼,好謀而成者也。
譯註 1: 『詩經』小旻篇(195)⇒不敢暴虎、不敢馮河。人知其一、莫知其它。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
(『시경』소민篇(195)⇒감히 호랑이에게 사납게 [덤비지] 못하고, 감히 황하를 걸어서 [건너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 하나만 알고, 그 다름은 알지 못하네.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 해야 한다.)
7-12)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자왈: "부이가구야, 수집편지사, 오역위지; 여불가구, 종오소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를 구할 수 있으면, 비록 [말]채찍을 잡는 관리라 하여도 나 또한 그것을 하겠다. 만약 [부를] 구할 수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集解】子曰:「富而可求也,雖執鞭之士,吾亦為之。(鄭曰:「富貴不可求而得之當修德以得之。若於道可求者,雖執鞭之賤職,我亦為之。」 ◎정현이 말하였다:부귀를 구할 수 없다면, 얻음은 마땅히 덕을 닦음으로서 그것을 얻어야 한다. 만약 도로서 구할 수 있는 것이면, 비록 [말]채찍을 잡는 천한 직이라도 나 또한 그것을 한다.)如不可求,從吾所好。」(孔曰:「 所好者,古人之道。」 ◎공안국이 말하였다:좋아하는 바라는 것은, 옛 사람의 도이다.)
7-13)子之所愼, 齊·戰·疾.
(자지소신, 재·전·질.)
공자께서 삼가하신 바는, 재계와 전쟁과 질병이다.
【集解】子之所慎:齊,戰,疾。(孔曰:「此三者,人所不能慎,而夫子獨能慎之。」 ◎공안국이 말하였다:이 세 가지는 사람들이 잘 삼가하지 않는 바인데, 공부자께서 홀로 그것을 신중하게 잘 하셨다.)
7-14)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
(자재제문『소』, 삼월부지육미, 왈: "불도위악지지어사야!")
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시면서 “소” 음악을 들으시고, 석달 동안 고기 맛을 알지 못하셨는데, 말씀하시기를 “그 음악이 이러한 [경지에] 이르도록 만들었음을 그려보지 못했다.” 하셨다.
【集解】子在齊聞《韶》,三月不知肉味,(周曰:「孔子在齊,聞習《韶》樂之盛美,故忽忘於肉味。」 ◎주생열이 말하였다: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시면서, 《소》 음악의 성대하고 아름다움을 여러번 들었기 때문에, 홀연히 고기 맛을 잊었다.)曰:「不圖為樂之至於斯也。」(王曰:「為,作也。不圖作《韶》樂至於此。此,齊。」 ◎왕숙이 말하였다: “위”는 만들다이다. “소” 음악이 이러함에 이르도록 만들었을 줄을 그리지 못했다. “차”는 제나라이다.)
7-15)冉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入, 曰: "伯夷·叔齊, 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曰: "夫子不爲也."
(염유왈: "부자위위군호?" 자공왈: "낙, 오장문지." 입, 왈: "백이·숙제, 하인야?" 왈: "고지현인야." 왈: "원호?" 왈: "구인이득인, 우하원?" 출왈: "부자불위야.")
염유가 말하였다. “스승님께서 위나라를 주군으로 하실까요?”
자공이 말하였다. “좋아요, 내가 그것을 여쭈어 보지요.” 들어가서 말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현인이다.”
[자공이] 말하기를 “[세상을] 원망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짊을 구하여서 어짊을 얻었는데 또 무엇을 원망했겠느냐?”
[자공이] 밖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위나라 섬김]하지 않으실 겁니다.”
【集解】冉有曰:「夫子為衛君乎?(鄭曰:「為猶助也。衛君者,謂輒也。衛靈公逐太子蒯瞶,公薨而立孫輒。後晉趙鞅納蒯瞶於戚,衛石曼姑帥師圍之,故問其意助輒不乎。」 ◎정현이 말하였다: “위”는 돕다와 같다. “위군”이란 사람은 첩(輒)을 일컫는다. 위영공이 태자 괴외(蒯聵)를 쫓아내었는데, 영공이 죽자 손자인 첩을 세웠다. 후에 진나라 조앙(趙鞅)이 괴외를 척지방에 들여보내자, 위나라 군사의 우두머리인 석만고(石曼姑)가 그곳을 포위하였기 때문에, 그[공자]의 뜻이 첩을 도울지 아니지 여부를 물었다.)子貢曰:「諾,吾將問之。」入,曰:「伯夷、叔齊何人也?」曰:「古之賢人也。」曰:「怨乎?」曰:「求仁而得仁,又何怨?」(孔曰:「夷齊讓國遠去,終於餓死,故問怨邪。以讓為仁,豈有怨乎?」 ◎공안국이 말하였다:백이와 숙제는 나라를 양보하고 멀리 떠나서 끝내는 굶어 죽었기 때문에, 원망했는지 물은 것이다. 사양함으로 어짊을 삼았는데, 어찌 원망함이 있겠는가?)出,曰:「夫子不為也。」(鄭曰:「父子爭國,惡行。孔子以伯夷、叔齊為賢且仁,故知不助衛君明矣。」 ◎정현이 말하였다:부자가 나라를 다투고 미움을 행하였다. 공자는 그로서 백이와 숙제를 현명하고 또 어짊으로 하였기 때문에, 위나라 임금을 돕지 않을 것을 밝게 알았다.)
【石潭齋 案】 : 은자(隱者)⇒공자께서, “세상을 피하여 은거하는 사람은 금수와 같아서 나는 이들과 같이하지 않는다.「鳥獸不可與同群,(孔曰:「隱於山林 是同群。」” 하여 어짊을 실천하지 않고 숨어 사는 은자를 금수와 한 무리라고 하였다.
현자(賢者)⇒ 백이(伯夷)에 대한 공자님의 평가는 “현자”의 반열에 두고 단지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았으나 맹자는 백이를 “성자”의 반열에 두었다.
譯註 1: 『孟子』萬章下⇒孟子曰: “伯夷,聖之淸者也,伊尹,聖之任者也,柳下惠,聖之和者也,孔子,聖之時者也。
(『맹자』만장下⇒백이는 성스러움의 청렴한 분이고, 이윤은 성스러움의 책임감 있는 분이며 유하혜는 성스러움의 화합하는 분이고 공자는 성스러움의 시의에 딱 맞으신 분이시다)
7-16)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자왈: "반소식음수, 곡굉이침지, 락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물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서 베개하여도, 즐거움 또한 그 가운데 있다. 옳음이 아닌 부와 귀함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
【集解】子曰:「飯疏食飲水,曲肱而枕之,樂亦在其中矣。(孔曰:「疏食,菜食。肱,臂也。孔子以此為樂。」 ◎공안국이 말하였다: “소식”은 나물 밥이다. “굉”은 팔이다. 공자는 이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云。」(鄭曰:「富貴而不以義者,於我如浮云,非己之有。」 ◎정현이 말하였다:부와 귀함이 옳은 것이 아니면,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아서 자기의 있음이 아니다.)
7-17)子曰: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자왈: "가아수년, 오십이학『역』, 가이무대과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 해를 더하여 쉰 살까지 『역』을 배운다면, 큰 잘못이 없도록 할 수 있다.”
【集解】子曰:「加我數年,五十以學《易》,可以無大過矣。」(《易》「窮理盡性以至於命」。年五十而知天命,以知命之年讀至命之書,故可以無大過。◎何晏 注 : 《주역》에 “이치를 궁구(窮求)하고 본성을 다함으로서 천명에 이른다”하였다. 나이 50이면 천명을 아는데, 천명을 아는 나이로서 천명에 이르는 글을 읽기 때문에, 큰 잘못이 없게 할 수 있다.)
7-18)子所雅言, 『詩』·『書』·執『禮』, 皆雅言也.
(자소아언, 『시』·『서』·집례, 개아언야.)
공자께서 표준말로 하시는 말씀은 『시경』과, 『서경』 그리고 『예』의 집행할 적인데, 모두 표준말로 말씀 하시었다.
【集解】子所雅言,(孔曰:「雅言,正言也。」◎공안국이 말하였다: “아언”은 바르게 말함이다.)《詩》,《書》,執《禮》,皆雅言也。(鄭曰:「讀先王典法,必正言其音,然後義全,故不可有所諱。禮不誦,故言執。」 ◎정현이 말하였다:선왕[천자]의 법전을 읽으면, 반드시 그 음을 바른 말로 한 연후에 옳음이 완전해지기 때문에, 숨기는 바 있게 할 수 없다. 예는 암송이 아니기 때문에 집행한다라고 말했다.)
7-19)葉公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섭공문공자어자로, 자로불대. 자왈: "여해불왈: '기위인야, 발분망식, 락이망우, 부지로지장지운이'?")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하여 물었는데 자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어째서 말하지 않았느냐? ‘그분은 남을 위할 적에, 의욕이 생기면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으며, 늙어 감을 알지 못하는데, 장차 이르름에는 가깝다[邇,가까울 이]는 말이다’.”라고 하셨다.
【集解】葉公問孔子於子路,子路不對。(孔曰:「 葉公名諸梁,楚大夫,食菜於葉,僭稱公。不對者,未知所以答。」 ◎공안국이 말하였다: “섭공”은 이름이 제량이며 초나라 대부인데, 섭땅에서 나물밥을 먹으면서, 주제넘게 공이라 칭했다. 대답하지 않은 것은 아직 답할 바를 알지 못하였음이다.)子曰:「女奚不曰,其為人也,發憤忘食,樂以忘憂,不知老之將至云爾。」
7-20)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
(자왈: "아비생이지지자, 호고, 민이구지자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면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민첩함으로 구한 사람이다.”
【集解】子曰:「我非生而知之者,好古,敏以求之者也。」(鄭曰:「言此者,勸人學。」 ◎정현이 말하였다:이러한 것을 말함은 사람들에게 학문을 권함이다.)
7-21)子不語怪力亂神.
(자불어괴력란신.)
공자께서는 괴이함과 힘 쎔과 어지럽힘과 귀신의 일은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集解】子不語怪、力、亂、神。(王曰:「怪,怪異也。力,謂若奡蕩舟、烏獲舉千鈞之屬。亂,謂臣弒君、子弒父。神,謂鬼神之事。或無益於教化,或所不忍言。」 ◎왕숙이 말하였다:“괴”는 괴이함이다. “역”은 [힘으로] 배를 흔드는 오(奡)와, 3만근(천균)의 물건을 드는 [진나라의 장사] 오획(烏獲)과 같음을 일컫는다. “난”은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시해함을 일컫는다. “신”은 귀와 신의 섬김을 일컫는다. 어떤 것은 본받아 달라지면 이익이 없고, 어떤 것은 차마 말하지 못할 바이다.)
7-22)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자왈: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행하면, 반드시 그 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 그 선한 사람을 택하여서 따르고, 그 선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를] 고친다.”
【集解】子曰:「三人行,必有我師焉,擇其善者而從之,其不善者而改之。」(言我三人行,本無賢愚,擇善從之,不善改之,故無常師。◎何晏 注 : 나와 세 사람이 행함에는, 현명하고 어리석은 금본이 없으면, 선을 택해서 따르고 불선으로 [나를] 고치기 때문에, 일정한 스승이 없다는 말이다.)
7-23)子曰: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
(자왈: "천생덕어여, 환퇴기여여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셨는데, 환퇴가 나를 어찌하겠는가?”
【集解】子曰:「天生德於予,桓魋其如予何!」(包曰:「 桓魋,宋司馬。天生德者,謂授我以聖性,德合天地,吉無不利,故曰其如予何。」 ◎포함이 말하였다:“환퇴”는 송나라 사마이다. 하늘이 덕을 낳으신 것은, 나에게 준 것이 성스러운 성품인데, 덕이 하늘과 땅에 부합하고, 길함이 이롭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그가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말이다.)
7-24)子曰: "二三子, 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
(자왈: "이삼자, 이아위은호? 오무은호이. 오무행이불여이삼자자, 시구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내가 숨김을 하였겠느냐? 나는 너희들에게 숨김이 없다. 나는 행함을 제자들과 같이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바로 나[丘]이다.”
【集解】子曰:「二三子, 以我為隱乎?吾無隱乎爾。(包曰:「二三子謂諸弟子。聖人知廣道深,弟子學之不能及,以為有所隱匿,故解之。」 ◎포함이 말하였다: “이삼자”는 여러 제자를 일컫는다. 성인은 도를 넓고 깊게 알아서, 제자들이 배워서 잘 미치지 않는다면, 그로서 숨겨 감출 것이 있게 되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시켰다.)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是丘也。」(包曰:「我所為,無不與爾共之者,是丘之心。」 ◎포함이 말하였다:내가 실천한 것은, 너희들과 그것을 한가지로 함께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이 구의 마음이다.)
7-25)子以四敎: 文行忠信.
(자이사교: 문행충신.)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본받게 하셨으니, 학문, 행실, 충심, 믿음이다.
【集解】子以四教:文,行,忠,信。(四者有形質,可舉以教。◎何晏 注 : 네 가지는 형상과 바탕이 있어서, 이를 들어서 본받을 수 있다.)
7-26)子曰: "聖人, 吾不得而見之矣, 得見君子者, 斯可矣!" 子曰: "善人, 吾不得而見之矣, 得見有恒者, 斯可矣! 亡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 難乎有恒矣"
(자왈: "성인, 오불득이견지의, 득견군자자, 사가의!" 자왈: "선인, 오불득이견지의! 득견유항자, 사가의! 무이위유, 허이위영, 약이위태, 난호유항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성인을 내가 뵙지 못했는데, 군자를 보는 것, 이것이라도 좋겠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한 사람을 내가 뵙지 못했는데, 항심이 있는 사람을 본다면, 이것이라도 좋겠다! 없어졌는데 있는 체하고, 비었는데 가득한 체하며, 묶였는 큰 체한다면, 항심이 있기는 어렵다.”
【集解】子曰:「聖人,吾不得而見之矣。得見君子者,斯可矣。」(疾世無明君。◎何晏 注 : 세상이 병들어 밝은 임금이 없다.)子曰:「善人,吾不得而見之矣。得見有恆者,斯可矣。亡而為有,虛而為盈,約而為泰,難乎有恆矣。」(孔曰:「難可名之為有常。」 ◎공안국이 말하였다:이름의 떳떳함이 있게 할 수 있기는 어렵다.)
7-27)子釣而不綱, 弋不射宿.
(자조이불강, 익불사숙.)
공자께서는 낚시는 하시되 그물은 않으셨으며, 주살로 잠자는 [새를] 쏘아 잡지 않으셨다.
【集解】子釣而不綱,弋不射宿。(孔曰:「釣者,一竿釣。綱者,為大網以橫絕流。以繳係釣,羅屬著綱。弋,繳射也。宿,宿鳥。」 ◎공안국이 말하였다: “조”라는 것은, 하나의 낚싯대로 낚시함이다. “강”이란 것은 큰 그물로 횡으로 물을 끊어 설치함이다. 주살끈으로 낚시를 달아서 벌려서 이으면 그물이 드러난다. “익”은 주살끈으로 쏘는 것이다. “숙”은 잠자는 새이다.)
7-28)子曰: "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 多聞, 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
(자왈: "개유부지이작지자, 아무시야. 다문, 택기선자이종지, 다견이식지, 지지차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알지 못하면서 지어내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이러함이 없다.
많이 듣고 그 중에 선한 것을 택하여 따르고, 많이 보고 기억한다면, 앎의 버금이다.”
【集解】子曰:「蓋有不知而作之者,我無是也。(包曰:「時人有穿鑿妄作篇籍者,故云然。」 ◎포함이 말하였다:때로 사람이 깊이 연구[천착(穿鑿)]함으로 망령되이 책이나 서적을 짓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多聞,擇其善者而從之;多見而識之,知之次也。」(孔曰:「如此者,次於天生知之。」 ◎공안국이 말하였다:이와 같은 사람은, 하늘에 버금가는 앎을 낳았다.)
7-29)互鄕難與言, 童子見, 門人惑, 子曰: "與其進也, 不與其退也, 唯何甚? 人潔己以進, 與其潔也, 不保其往也."
(호향난여언, 동자현, 문인혹, 자왈: "여기진야, 불여기퇴야, 유하심? 인결기이진, 여기결야, 불보기왕야.")
호향 사람은 더불어 말하기 어려운데, [그곳] 동자가 공자를 뵙자, 문인들이 의심하기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침은] 그가 나아지면 같이하지만 물러나면 같이하지 않는데, 어찌 [아이에게] 심하게 하겠는가? 사람이 자기를 깨끗이 하고서 나아가면 그 깨끗함을 같이하지만, 그의 물러간 [뒷 일을] 보장하지 않는다.”
【集解】互鄉難與言,童子見,門人惑。(鄭曰:「互鄉,鄉名也。其鄉人言語自專,不達時宜,而有童子來見孔子,門人怪孔子見之。」 ◎정현이 말하였다:호향은 고을의 이름이다. 그 고을 사람들 말은 오로지 자기 말을 하여서, 시절에 마땅하게 통달하지 않았는데 동자가 공자를 뵈러 옴이 있어서, 문인들이 공자께서 그를 만남을 괴이하게 여겼다.)子曰:「與其進也,不與其退也,唯何甚?(孔曰:「教誨之道,與其進,不與其退。怪我見此童子,惡惡一何甚。」 ◎공안국이 말하였다:본받음과 가르침의 도는 그 나아짐을 같이하고 퇴보함을 같이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 동자를 만남을 괴이하게 여기니, 몹시 미워함이 어찌 하나같이 심한가?)人絜己以進,與其絜也,不保其往也。」(鄭曰:「往, 猶去也。人虛己自絜而來,當與之進,亦何能保其去後之行。」 ◎정현이 말하였다:“왕”은 떠남과 같다. 사람은 자기를 비우고 스스로 깨끗이 하고서 오면, 마땅히 그의 나아짐을 같이 하지만, 또한 어찌 그의 떠난 뒤의 행함까지 잘 보장하겠는가?)
7-30)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자왈: "인원호재? 아욕인, 사인지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짊이 멀리 있겠는가? 내가 어짐을 바라면, 이 어짊이 이르른다.”
【集解】子曰:「仁遠乎哉?我欲仁,斯仁至矣。」(包曰:「仁道不遠,行之即是。」 ◎포함이 말하였다:어짊의 도는 멀지 않은데, 행함이 곧 이것이다.)
7-31)陳司敗問: "昭公知禮乎?" 孔子曰: "知禮." 孔子退. 揖巫馬期而進之, 曰: "吾聞君子不黨, 君子亦黨乎? 君取於吳, 爲同姓, 謂之吳孟子. 君而知禮, 孰不知禮?" 巫馬期以告, 子曰: "丘也幸, 苟有過, 人必知之."
(진사패문: "소공지례호?" 공자왈: "지례." 공자퇴, 읍무마기이진지, 왈: "오문군자불당, 군자역당호? 군취어오, 위동성, 위지오맹자. 군이지례, 숙부지례?" 무마기이고, 자왈: "구야행, 구유과, 인필지지.")
진나라의 사패가 묻었다. “소공은 예를 알았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를 아셨습니다” 공자께서 물러나셨다.
사패가 무마기에 읍하며 나아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군자는 편당하지 않음을 들었는데, 군자도 또한 편당을 하는가? 임금[소공]이 오나라에서 부인을 취하여 같은 성으로 하였는데, 오맹자라고 일컬었다. 임금이 예를 안다하면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는가?”
무마기가 [이를] 알려 드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행복하구나! 진실로 허물이 있으면, 남들이 반드시 그것을 아는구나.”
【集解】陳司敗問:「昭公知禮乎?」(孔曰:「 司敗,官名,陳大夫。昭公,魯昭公。」 ◎공안국이 말하였다:“사패”는 관직의 이름이며, 진나라의 대부이다. “소공”은 노나라 소공이다.)孔子曰:「知禮。」孔子退,揖巫馬期而進之,曰:「吾聞君子不黨,君子亦黨乎?君取於吳,為同姓,謂之吳孟子。君而知禮,孰不知禮?」(孔曰:「巫馬期,弟子,名施。相助匿非曰黨。魯,吳俱姬姓,禮同姓不昏,而君取之;當稱吳姬,諱曰孟子。」 ◎공안국이 말하였다: “무마기”는 제자이며 이름은 “시”이다. 잘못을 숨기고 서로 도움을 “당”이라 말한다. 노나라와 오나라는 성이 함께 “희”이다. 같은 성이면 혼인하지 않음이 예법인데 임금이 그 [오나라 여인]을 취했으니 마땅히 오희라 불러야 하는데, 숨기고 맹자라고 말했다.)巫馬期以告。子曰:「丘也幸,苟有過,人必知之。」(孔曰:「以司敗之言告也。諱國惡,禮也。聖人道弘,故受以為過。」 ◎공안국이 말하였다:사패의 말로서 고하였다. 나라의 미움은 숨김이 예이다. 성인의 도는 넓기 때문에, 받아들여서 잘못으로 삼았다,)
【石潭齋 案】 나라 임금의 부끄러움은 숨기는 것이 예이기 때문에 진사패의 물음에 “소공은 예를 안다”라고 공자께서 답하였지만, 제자의 고해 주는 말 또한 맞기에 성인의 도로서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7-32)子與人歌而善, 必使反之, 而後和之.
(자여인가이선, 필사반지, 이후화지.)
공자께서 사람들과 더블어 노래를 하시다가 잘하면, 반드시 다시 부르게 하시고는 뒤에 어울리[같이 노래함]셨다.
【集解】子與人歌而善,必使反之,而後和之。(樂其善,故使重歌而自和之。◎何晏 注 : 그 선함에 즐겁기 때문에, 거듭 노래하게 하고 스스로 어울리셨다.)
7-33)子曰: "文, 莫吾猶人也. 躬行君子, 則吾未之有得."
(자왈: "문, 막오유인야. 궁행군자, 즉오미지유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문체는 내가 남들과 같음이 없지만, 몸으로 행하는 군자라면, 내가 아직 얻음이 있지 않다.”
【集解】子曰:「文莫,吾猶人也。(莫,無也。文無者,猶俗言文不也。文不吾猶人者,凡言文皆不勝於人。◎何晏 注 : “막”은 없음이다. “문무”라는 것은, 문체 나지 않는다는 속언과 같다. ‘문체는 내가 남과 같지 않다’라는 것은, 대체로 문체는 모두 남에게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다.)躬行君子,則吾未之有得。」(孔曰:「身為君子,己未能也。」 ◎공안국이 말하였다:몸이 군자를 실천함을, 자기는 아직 잘 하지 못한다.)
7-34)子曰: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
(자왈: "약성여인, 즉오개감? 억위지불염, 회인불권, 즉가위운이이의." 공서화왈: "정유제자불능학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성스러움과 어짊이라면 내가 어찌 감히 [말]하겠는가? 그러나 실천함을 싫어하지 않고,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게으르지 않다면 너의 말을 일컬을 수 있을 뿐이다.” 공서화가 말했다. "제자 누군들 올바르게 잘 배우지 못합니다."
【集解】子曰:「若聖與仁,則吾豈敢?(孔曰:「孔子謙,不敢自名仁聖。」 ◎공안국이 말하였다:공자는 겸손하여 감히 스스로 어짊과 성스러움을 이름하지 않았다.)抑為之不厭,誨人不倦,則可謂云爾已矣。」公西華曰:「正唯弟子不能學也。」(馬曰:「正如所言弟子猶不能學,況仁聖乎!」 ◎마융이 말하였다:제자들은 말한 바와 같이 오히려 올바르게 잘 배우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짊과 성스러움을 [칭]하겠는가?)
7-35)子疾病, 子路請禱. 子曰: "有諸?" 子路對曰: "有之, 誄曰: '禱爾于上下神祇.'" 子曰: "丘之禱久矣."
(자질병, 자로청도. 자왈: "유제?" 자로대왈: "유지, 뢰왈: '도이우상하신기.'" 자왈: "구지도구의.")
공자의 병이 심해지자 자로가 기도를 청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일이 있느냐?”
자로가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뇌》편에 말하기를 ‘너를 위와 아래의 하늘신과 땅신에게 기도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기도는 오래되었다.”
【集解】子疾病,子路請禱。(包曰:「 禱,禱請於鬼神。」 ◎포함이 말하였다:“도”는 기도하여 귀신에게 부탁함이다.)子曰:「有諸?」(周曰:「言有此禱請於鬼神之事。」 ◎주생열이 말하였다:귀신에게 부탁하여 기도하는 이런 일이 있다는 말이다.)子路對曰:「有之。《誄》曰:『禱爾於上下神祇。』」(孔曰:「子路失旨。《誄》,禱篇名。」 ◎공안국이 말하였다:자로가 뜻을 잃었다. “뢰”는 기도하는 편의 이름이다.)子曰:「丘之禱久矣。」(孔曰:「孔子素行合於神明,故曰『丘之禱久矣』。」 ◎공안국이 말하였다:공자께서 행함의 바탕이 신을 밝힘에 부합되기 때문에, ‘나의 기도가 오래되었다’라고 말하였다.)
7-36)子曰: "奢則不孫, 儉則固, 與其不孫也, 寧固."
(자왈: "사즉불손, 검즉고, 여기불손야, 녕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치하면 공손하지 않고, 검소하면 누추하지만, 그 공손하지 않음과 같이하기 보다는 차라리 누추함이 낫다.”
【集解】子曰:「奢則不孫,儉則固。與其不孫也,寧固。」(孔曰:「俱失之。奢不如儉,奢則僭上,儉不及禮。固,陋也。」 ◎공안국이 말하였다:모두 잃었다. 사치가 검소함과 같지 않은데, 사치하면 윗 [사람에] 주제넘고, 검소하면 예절에 미치지 못한다. “고”는 누추함이다.)
7-37)子曰: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
(자왈: "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평탄하고 매우 넓지만, 소인은 오래 크게 근심한다.”
【集解】子曰:「君子坦蕩蕩,小人長戚戚。」(鄭曰:「坦蕩蕩,寬廣貌。長戚戚,多憂懼。」 ◎정현이 말하였다:“탄탕탕”은 너그럽고 넓은 모양이다. “장척척”은 근심하여 두려워함이 많음이다.)
7-38)子溫而厲,威而不猛,恭而安。
(자온이려, 위이불맹, 공이안.)
공자께서는 온화하면서 닦달하시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으시며, 공손하면서도 편안하셨다.
◑子溫而厲, 威而不猛, 恭而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