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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卷二

【위정(為政)

 

2-1)子曰: "爲政以德, 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

(자왈: "위정이덕, 비여북신거기소이중성공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으로 정책을 펼침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그 곳에 머무르는데 여러 별들이 그를 따름과 같다.”

  

譯註 1: 禮記 禮運篇 王前巫而後史, 卜筮瞽侑皆在左右王中心無為也以守至正.”

             (예기 예운 천자는 앞에 무()가 있고 뒤에 사()가 있으며, 거북점과 시초점 및 맹인 악사와 돌보는 유인(侑人)이 모두 좌우에 있다. 천자는 가운데에서 마음 쓸 일이 없으며, 그로서 바르게 이르도록 지킨다.)

石潭齋 案 : 예기 예운 무위(無為)”는 하는 일이 없음이 아니고 각자 맡은 직분 이외의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包曰德者無為 덕있는 사람은 [맡은 직분만 하고 그외 일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2-2)子曰: "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자왈: "삼백, 일언이폐지, 왈사무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삼백 편을 한마디로 덮어 말하면 생각에 간사함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2-3)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자왈: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을] 정책으로서 인도하고 극형으로 가지런히 하면, 백성들이 면하여도 부끄러워함이 없다, 덕으로서 인도하고 예로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워함도 있고 또 올바르게 된다.”

 

 

2-4)子曰: "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어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세웠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으며, 마흔 살에 헷갈리지[迷心] 않게 되었고, 쉰 살에 천명을 알게 되었으며, 예순 살에 들음이 순해 졌으며, 일흔 살에는 마음이 바라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2-5)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 樊遲曰: "何謂也?" 子曰: ", 事之以禮; , 葬之以禮, 祭之以禮."

(맹의자문효, 자왈: "무위." 번지어, 자고지왈: "맹손문효어아, 아대왈: '무위.'" 번지왈: "하위야?" 자왈: ", 사지이례; , 장지이례, 제지이례.")

맹의자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어김이 없어야 한다라 말씀하셨다.

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는데, 공자께서 그 일을 일러주시기를, “맹손씨가 나에게 효에 대해 묻기에, 내가 어김이 없어야 한다라고 대답을 했다.”

번지가 무슨 말씀입니까?”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아계시면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에 따라 장례를 치르며, 예로써 제사를 지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譯註 1: 史記孔子世家孔子年十七, 魯大夫孟釐子病且死, 誡其嗣懿子曰ː孔丘, 聖人之後, 滅於宋. 其祖弗父何始有宋而嗣讓厲公. 及正考父佐戴··宣公, 三命茲益恭, 故鼎銘云ː一命而僂, 再命而傴, 三命而俯, 循牆而走, 亦莫敢余侮. 饘於是, 粥於是, 以餬余口.’ 其恭如是. 吾聞聖人之後, 雖不當世, 必有達者. 今孔丘年少好禮, 其達者歟? 吾卽沒, 若必師之.” 及 釐子卒, 懿子與魯人南宮敬叔往學禮焉. 是歲, 季武子卒, 平子代立.

            <사기공자세가공자 나이 17, 대부 맹희자가 병이 나서 죽음을 앞두고 그 후계자 의자(懿子)에게 공구는 성스러운 사람의 후손인데 [그 선조가] 송에서 해를 당했다. 당초 그 조상 불보하(弗父何)가 송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여공(厲公)에게 양보했다. 정고보(正考父)에 이르러 대공(戴公), 무공(武公), 선공(宣公)을 섬기면서 세 번이나 임명을 받았는지만 더욱 공경스러웠다.

             그래서 세발솥의 명문에 이르기를 첫 임명에 머리를 숙이고, 두 번째 임명에 허리를 굽히고, 세 번째 임명에 몸을 숙인 채 담장을 따라 걸으니 누구도 나를 업신여기지 않았다. 매일 한 그릇의 죽을 먹으며 지냈다라고 했을 정도로 공경스러웠다. 내가 듣기에 성스러운 사람의 후손은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는 못되더라도 틀림없이 무엇인가 통달한 사람이다. 지금 공구는 나이는 어리지만 예를 잘 아니 그가 통달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내가 죽으면 꼭 그를 스승으로 모시도록 해라라고 했다. 희자가 죽자 의자는 노 사람 남궁경숙과 [공자에게] 가서 예를 배웠다. 이 해(기원전 535), 계무자가 죽고 계평자가 뒤를 이었다.>

 

 

2-6)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문효, 자왈: "부모유기질지우.")

맹무백이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이 병들까 근심한다.”

 

 

2-7)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자유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요즈음의 효라는 것은 잘 부양함을 일컫는다. 개나 말에 이르기 까지 모두 잘 부양함이 있는데, 존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짐승과] 구별하겠는가?”

 

 

2-8)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문효, 자왈: "색난. 유사, 제자복기로; 유주식, 선생찬, 증시이위효호?")

자하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밝은] 기색은 어렵다. 섬길 일 있으면 아랫사람이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음식이 있으면 윗사람이 먼저 드시게 하는데, 일찍이 이것을 효도라고 하겠느냐?”

 

 

2-9)子曰: "吾與回言終日, 不違, 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자왈: "오여회언종일, 불위, 여우. 퇴이성기사, 역족이발, 회야불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와 안회가 더블어 종일 말해도 어기지 않았지만, 어리석은 듯 했다. 물러나서 그의 사생활을 살펴 보니, 또한 펼침이 충분하였다. 안회는 어리석지 않았다.”

 

 

2-10)子曰: "視其所以, 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 人焉廋哉?"

(자왈: "시기소이, 관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인언수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쓰이는 바를 보고, 그 말미암은 바를 관찰하며, 그 편안한 바를 살펴 본다면, 사람들이 어찌 숨기겠는가? 사람들이 어찌 숨기겠는가?”

 

 

2-11)子曰: "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연고를 찾아서 새 것을 안다면 스승이 될 수 있다.”

 

 

2-12)子曰: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한가지만 담는] 그릇이 아니다.”

 

 

2-13)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而後從之."

(자공문군자, 자왈: "선행기언이후종지.")

자공이 군자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그 말을 행하고, 뒤에 그[결과]에 따른다.”

 

 

2-14)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자왈: "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불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두루 하되 순종하지 않고, 소인은 순종하되 두루하지 않는다.”

  

譯註 1: 周易』《彖曰 比 吉也. 比 輔也 下順從也.

          (주역』《단사에 말하였다. “비는 길함이다. 비는 도움인데 아래로 순하게 따름이다.”)

  

 

2-15)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멍[惘 멍할 망]해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몸이] 위태롭다.”

 

 

2-16)子曰: "乎異端, 斯害也已."

(자왈: "공호이단, 사해야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시단에 다스려지면, 이미 이것은 해롭다.”

 

 

2-17)子曰: "! 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자왈: "!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줄까? 아는 것은 아는 것이라 하고, 알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 해야 이것이 앎이다.”

 

 

2-18)子張學干祿,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자장학간록, 자왈: "다문궐의, 신언기여, 즉과우; 다견궐태, 신행기여, 즉과회. 언과우, 행과회, 록재기중의.")

자장이 벼슬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 의심은 보류하며, 그 나머지 말을 삼가하면 허물이 적다. 많이 보고 위태로움은 보류하며, 그 나머지 행함을 삼가하면 후회가 적다. 말은 허물이 적고 행함에 후회가 적으면 벼슬이 그 가운데 있다.”

 

 

2-19)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

(애공문왈: "하위즉민복?" 공자대왈: "거직조제왕, 즉민복; 거왕조제직, 즉민불복.")

애공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곧은 사람은 등용하고 여러 굽은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들이 복종합니다, 굽은 사람을 등용하고 여러 곧은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譯註 1: 史記孔子世家孔子之去魯凡十四歲而反乎魯. 魯哀公問政, 對曰ː政在選臣.” 季康子問政, ː擧直錯諸枉, 則枉者直.” 康子患盜, 孔子曰ː苟子之不欲, 雖賞之不竊.” 然魯終不能用孔子, 孔子亦不求仕.

            (사기공자세가공자가 노를 떠난 지 14년 만에 노로 돌아왔다. 노 애공이 정치에 관해서 묻자 정치는 신하를 선발하는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곧은 사람을 천거하고 굽은 사람들은 버려두면 여러 굽은 사람들도 곧아집니다라고 했다. 계강자가 도둑을 걱정하자 공자는 그대가 진실로 욕심 부리지 않으면 상을 주고 훔치라고 해도 훔치지 않을 것이오라고 했다. 하지만 노는 끝내 공자를 등용함을 잘 하지 않았고, 공자 또한 벼슬을 구걸하지 않았다.)

  

 

2-20)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 如之何?" 子曰: "臨之以莊則敬, 孝慈則忠, 擧善而敎不能則勸."

(계강자문: "사민경충이권, 여지하?" 자왈: "임지이장즉경, 효자즉충, 거선이교불능즉권.")

계강자가 물었다. “백성을 존경 충성을 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씩씩함으로 [백성에] 임하면 삼가하게 되고, 효도와 자애로우면 충성하게 되며, 선한 사람을 등용하여서 잘하지 않은 [백성을] 본받게 하면 권장이 됩니다.”

 

 

2-21)或謂孔子曰: "子奚不爲政?" 子曰: " 孝乎惟?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혹위공자왈: "자해불위정?" 자왈: ": '효호유효, 우우형제, 시어유정.' 시역위정. 해기위위정?")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말했다. “선생께서는 어찌 정책을 펼치지 않으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경에 이르기를 오직 효도함 만 효도인가? 형제간에 우애함도, 정책을 베품이다라고 하였다.  [우애] 또한 정책을 실천함입니다. 어찌 그것을 해야만 정책을 펼침입니까?”

 

 

2-22)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자왈: "인이무신, 부지기가야. 대거무예, 소거무월, 기하이행지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가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큰 수레에 멍에 맬 데가 없고 작은 수레에 멍에 걸 데가 없으면, 그것으로 어떻게 그[수레]것이 갈 수 있겠느냐?”

 

 

2-23)子張問: "十世可知也?"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可知也; 周因於殷禮, 所損益可知也. 其或繼周者, 雖百世可知也."

(자장문: "십세가지야?" 자왈: "은인어하례, 소손익가지야; 주인어은례, 소손익가지야. 기혹계주자, 수백세가지야.")

자장이 여쭈었다. “십 세[왕조]를 알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나라는 하나라 예절을 따랐는데 덜고 더한 바는 알 수 있고, 주나라는 은나라 예절을 따랐는데 덜고 더한 바를 알 수 있다. 그 누군가 주나라 것을 이어간다면 비록 백 세[왕조]라도 알 수 있다.”

   

譯註 1: 朝鮮王朝實錄성종14(1483)  但喪制大事, 萬世不易之常經, 故殷因於夏禮, 所損益可知, 周因於殷禮, 所損益可知 文質三統, 可以損益, 三綱五常, 不可改也

            (조선왕조실록성종14다만 상례의 제도는 큰 일인데 만세에 바뀌지 않는 떳떳한 법이기 때문에, ()나라는 하()나라 예()에 인하였는데 덜고 더한 바는 알 수 있고, ()나라는 은나라 예를 인하였는데 덜고 더한 바를 알 수 있습니다. 문질 삼통(文質三統)은 덜고 더할 수 있으나 삼강 오상(三綱五常)은 고칠 수 없습니다.)

石潭齋 案 : 文質三統 : 왕조의 교체에 따라 문질(文質)이 교체되고 삼통이 순환한다는 이론을 말한다.

           ①문질(文質)이란 은나라는 본질[], 주나라는 문체[]를 숭상함과 같이 왕조의 혁명과 교체에 따라 순환되어 예제(禮制)의 개혁 원리로 사용되는 것이다.

           ②삼통(三統)이란 중국 고대의 예제(禮制)의 원리인데 하나라는 인통(人統), 은나라는 지통(地統), 주나라를 천통(天統)으로 삼았으며, 역법(曆法)으로 하나라는 인월(寅月)을 정월로 삼으니 인통이며, 은나라는 축월(丑月)을 정월로 삼으니 지통, 주나라는 자월(子月)을 정월로 삼으니 천통이다.

  

 

2-24)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자왈: "비기귀이제지, 첨야. 견의불위, 무용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이 귀가 아닌데 제사 지냄은 아첨이다. 옳음을 보고 실천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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