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정의(周易正義)』
《주역정의(周易正義)》는 왕필(王弼, 226~249)의 주역 주(注)를 채용하여 공영달(孔穎達, 574~648)이 주석(注釋)을 하여 지었다.
58. 태괘(兌卦)[卦象:중택태]
☱ 兌上
☱ 兌下
태(兌)[澤.못]가 아래에 있고, 태(兌)[澤.못]가 또 위에 있다.
兌亨,利貞。 태(兌)는 형통하지만, 곧아야 이롭다. |
[孔穎達 疏]正義曰:兌,說也。《說卦》曰:「說萬物者莫說乎澤。」以兌是象澤之卦,故以「兌」為名。澤以潤生萬物,所以萬物皆說:施於人事,猶人君以恩惠養民,民無不說也。惠施民說,所以為亨。以說說物,恐陷諂邪,其利在於貞正。故曰「兌,亨利貞」。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태(兌, 바꿀 태)’는 설득함이며, 〈설괘전(說卦傳)〉에 말하기를 “만물(萬物)을 벗기는 것은 못[澤]보다 더 벗기는 것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그로써 태(兌)괘가 바로 못을 모습[象]한 괘(卦)이기 때문에 ‘태(兌)’로써 이름을 삼은 것이다. 못은 젖게함으로써 만물이 자라나니, 만물(萬物)이 모두 설득되는 까닭이며, 사람의 일에 베풀면 인군(人君)이 은혜를 가지고 백성을 길러주니 백성들이 설득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은혜를 베풀어 백성을 설득함은 형통함이 되는 까닭이다. 설득함으로써 남[사물]을 설득하면 아첨함과 간사함에 빠질까 두려워 그 이로움이 곧고 바름에 있게 했다. 그러므로 “바꿈[兌]은 형통하지만, 곧아야 이롭다[兌,亨利貞]”라고 말한 것이다.」 |
《彖》曰:兌,說也。剛中而柔外說, 以利貞, 《단전(彖傳)》에서 말하였다. "태(兌)는 설득함이다. 굳셈이 가운데인데도 부드러움이 밖을 설득하니, 그로써 곧아야 이롭다. 【王弼 注】 說而違剛則諂,剛而違說則暴,剛中而柔外,所以說以利貞也。剛中,故利貞;柔外,故說亨。 【왕필 주】 설득하여서 굳셈을 어기면 아첨함이고, 굳셈이면서 설득함을 어기면 사나움이며, 굳셈이 가운데이면서 부드러움이 밖이니 설득함은 곧음이 이로움을 가지고 하는 까닭이다. 굳셈이 가운데이기 때문에 곧아야 이롭고, 부드러움이 밖이기 때문에 설득이 형통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兌,說也」者,訓卦名也。「剛中而柔外,說以利貞」者,此就二、五以剛居中,上六、六三以柔處外,釋「兌亨利貞」之義也。外雖柔說,而內德剛正,則不畏邪諂。內雖剛正,而外跡柔說,則不憂侵暴。只為剛中而柔外,中外相濟,故得說亨而利貞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태(兌)는 설득함이다[兌 說也]”라는 것은, 괘(卦)의 이름을 세긴[訓] 것이다. “굳셈이 가운데인데도 부드러움이 밖을 설득하니, 그로써 곧아야 이롭다[剛中而柔外 說以利貞]”라는 것은, 이는 구2(九二)와 구5(九五)가 굳셈으로써 가운데[中]에 거주하고 상육(上六)과 육3(六三)이 부드러움으로써 밖에 처함을 가지고 ‘설득함[兌]은 형통하지만 곧아야 이로움[兌亨利貞]’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밖이 비록 부드럽게 설득하지만 안의 덕(德)이 굳세고 바르면 간사함과 아첨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안이 비록 굳세고 바르지만 밖의 자취가 부드럽게 설득하면 사납게 침해함을 근심하지 않는다. 다만 굳셈이 가운데[中]이면서 부드러움이 밖에 있으니 가운데와 밖이 서로 구제하기 때문에 ‘설득하여 형통함을 얻지만 곧아야 이롭게 되는 것이다.」 |
是以順乎天,而應乎人。 이로써 하늘을 따르면서 사람에게 응(應)하며, 【王弼 注】 天剛而不失說者也。 【왕필 주】 하늘은 굳세면서도 설득하는 것을 잃지 않는다. |
[孔穎達 疏]正義曰:廣明說義,合於天人。天為剛德而有柔克,是剛而不失其說也。今說以利貞,是上順乎天也。人心說於惠澤,能以惠澤說人,是下應乎人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설득함의 뜻이 하늘과 사람에 부합함을 넓혀 밝힌 것이다. 하늘은 굳센 덕(德)이 되는데 부드러움으로 이길 수 있으니, 이는 굳셈이지만 그 설득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금 설득함은 곧아야 이로움은 바로 위의 하늘에 순종함이고, 사람 마음이 은혜가 윤택(潤澤)함에 설득됨은 능히 은혜가 윤택(潤澤)함으로써 남을 설득함인데 이는 아래로 사람에 응(應)하는 것이다.」 |
說以先民,民忘其勞;說以犯難,民忘其死;說之大,民勸矣哉! 설득함으로써 백성들에게 먼저하면 백성들이 그 수고로움을 잊고, 설득함으로써 어려움을 범하면 백성들은 그 죽음을 잊으니, 설득을 함이 크면 백성들이 권면(勸勉)되도다.” |
[孔穎達 疏]正義曰:「說以先民,民忘其勞」,以下歎美說之所致,亦申明應人之法,先以說豫撫民,然後使之從事,則民皆竭力忘其從事之勞,故曰「說以先民,民忘其勞」也。「說以犯難,民忘其死」者,先以說豫勞民,然後使之犯難,則民皆授命,忘其犯難之死,故曰「說以犯難,民忘其死」也。施說於人,所致如此,豈非說義之大,能使民勸勉矣哉!故曰「說之大,民勸矣哉」。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설득함으로써 백성들에게 먼저하면 백성들이 그 수고로움을 잊고[說以先民 民忘其勞]“라고 함은, 이하는 설득함의 이루는 바를 탄미 하였고, 또한 사람에게 응(應)하는 법을 거듭 밝혔으며, 먼저 설득함으로써 백성을 미리 어루만진 연후에 그들로 하여금 일을 따르게 하면 백성들이 모두 힘을 다하여 그 일에 따르는 수고로움을 잊기 때문에 “설득함으로써 백성들에게 먼저하면 백성들이 그 수고로움을 잊는다[說以先民 民忘其勞]”라고 말한 것이다. “설득함으로써 어려움을 범하면 백성들은 그 죽음을 잊으니[說以犯難 民忘其死]”라는 것은, 먼저 설득함으로써 백성들을 미리 위로한 연후에 그들로 하여금 어려움을 범하게 하면 백성들이 모두 목숨을 바쳐서 그 어려움을 범함의 죽음을 잊기 때문에 “설득함으로써 어려움을 범하면 백성들은 그 죽음을 잊는다[說以犯難 民忘其死]”라고 말한 것이다. 설득함을 남에게 베풀면 이루어지는 바가 이와 같으니, 어찌 설득함의 뜻이 큼이 아니겠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잘 권면하게 하도다! 그러므로 “설득을 함이 크면 백성들이 권면(勸勉)되도다[說之大,民勸矣哉]”라고 말한 것이다.」 |
[孔穎達 疏] 正義曰:「說以先民,民忘其勞」,以下歎美說之所致,亦申明應人之法,先以說豫撫民,然後使之從事,則民皆竭力忘其從事之勞,故曰「說以先民,民忘其勞」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설득함으로써 백성들에게 먼저하면 백성들이 그 수고로움을 잊고[說以先民 民忘其勞]“라고 함은, 이하는 설득함의 이루는 바를 탄미 하였고, 또한 사람에게 응(應)하는 법을 거듭 밝혔으며, 먼저 설득함으로써 백성을 미리 어루만진 연후에 그들로 하여금 일을 따르게 하면 백성들이 모두 힘을 다하여 그 일에 따르는 수고로움을 잊기 때문에 “설득함으로써 백성들에게 먼저하면 백성들이 그 수고로움을 잊는다[說以先民 民忘其勞]”라고 말한 것이다.
「說以犯難,民忘其死」者,先以說豫勞民,然後使之犯難,則民皆授命,忘其犯難之死,故曰「說以犯難,民忘其死」也。
“설득함으로써 어려움을 범하면 백성들은 그 죽음을 잊으니[說以犯難 民忘其死]”라는 것은, 먼저 설득함으로써 백성들을 미리 위로한 연후에 그들로 하여금 어려움을 범하게 하면 백성들이 모두 목숨을 바쳐서 그 어려움을 범함의 죽음을 잊기 때문에 “설득함으로써 어려움을 범하면 백성들은 그 죽음을 잊는다[說以犯難 民忘其死]”라고 말한 것이다.
施說於人,所致如此,豈非說義之大,能使民勸勉矣哉!故曰「說之大,民勸矣哉」。
설득함을 남에게 베풀면 이루어지는 바가 이와 같으니, 어찌 설득함의 뜻이 큼이 아니겠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잘 권면하게 하도다! 그러므로 “설득을 함이 크면 백성들이 권면(勸勉)되도다[說之大,民勸矣哉]”라고 말한 것이다.」
《象》曰:麗澤兌,君子以朋友講習。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연속(連續)하여 적셔줌[澤]이 태(兌)괘인데, 군자가 그로써 벗들과 외우고 익힌다." 【王弼 注】 麗,猶連也。施說之盛,莫盛於此。 【왕필 주】 려(麗, 고울 려)는 연속(連續)함과 같다. 설득을 성대하게 시행하니 이보다 성(盛)함이 없다. |
[孔穎達 疏]正義曰:「麗澤兌」者,麗,猶連也,兩澤相連,潤說之盛,故曰「麗澤,兌」也。「君子以朋友講習」者,同門曰朋,同志曰友,朋友聚居,講習道義,相說之盛,莫過於此也。故君子象之以朋友講習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연속(連續)하여 적셔줌[澤]이 태(兌)괘인데[麗澤 兌]”라는 것은, 려(麗, 고울 려)는 연속(連續)함과 같으며, 두 못[澤]이 서로 연이어 적셔주고 설득함이 성(盛)하기 때문에 “연이어 적셔줌이 태(兌)괘이다[麗澤,兌]”라고 말한 것이다. “군자가 그로써 벗들과 외우고 익힌다[君子以朋友講習]”라는 것은, 문하가 같음[同門]을 ‘붕(朋)’이라 말하고 뜻이 같음[同志]를 ‘우(友)’라고 말하며, 붕우(朋友)가 모여 거주하고 도(道)와 의리[義]를 배우고 익힘은 서로 설득함의 성(盛)함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그것을 본떠[象]서 그로써 붕우(朋友)가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
初九,和兌 吉。 초구(初九)는 화목(和睦)하게 설득하니, 길하다. 【王弼 注】 居兌之初,應不在一,无所黨係,和兌之謂也。說不在諂,履斯而行,未見有疑之者,吉其宜矣。 【왕필 주】 설득[兌]함의 처음에 거주하여 응(應)이 한곳에 있지 않고 무리에 묶인 곳이 없으니 어울려 설득함을 일컫는다. 설득함이 아첨에 있지 않고 이를 밟고서 행하며 의심을 하는 자가 보이지 않으니 길함이 마땅하다. |
[孔穎達 疏]正義曰:初九居兌之初,應不在一,無所私說,說之和也,說物以和,何往不吉,故曰「和兌,吉」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초구(初九)가 설득[兌]의 처음에 거주하여 응(應)이 한곳에 있지 않아서 사사로이 설득하는 바가 없으니, 설득을 함이 화목(和睦)하며, 화목(和睦)으로서 남[사물]을 설득하니 어디로 간들 길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화목(和睦)하게 설득하니, 길하다[和兌,吉]”라고 말한 것이다.」 |
《象》曰:和兌之吉,行未疑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화목(和睦)하게 설득함이 길함은, 행함에 의심이 없음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行未疑」者,說不為諂,履斯而行,未見疑之者也,所以得吉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행함에 의심이 없음이다[行未疑]”라는 것은, 설득함이 아첨을 하지 않고, 이를 밟고서 행하면 의심을 하는 자를 보지 못하니, 길함을 얻는 까닭이다.」 |
九二,孚兌,吉,悔亡。 구이(九二)는 신실(信實)하게 설득하니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 【王弼 注】 說不失中,有孚者也。失位而說,孚吉乃悔亡也。 【왕필 주】 가운데[中]를 잃지 않고 설득하니 믿음이 있는 자이다. 자리를 잃고서 설득함은 신실(信實)하여 길하니 비로소 뉘우침이 없어짐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九二說不失中,有信者也。說而有信,則吉從之,故曰「孚兌,吉」也。然履失其位,有信而吉,乃得亡悔,故曰「孚兌,吉,悔亡」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구2(九二)가 가운데[中]를 잃지 않지 않고 설득하니 믿음이 있는 자이다. 설득하여서 믿음이 있으면 길함이 따라 가기 때문에 “신실(信實)하게 설득하니 길하다[孚兌,吉]”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밟은데가 그 지위를 잃었지만, 믿음이 있어서 길하고 마침내 뉘우침이 없음을 얻기 때문에 “신실(信實)하게 설득하니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孚兌,吉,悔亡]”라고 말한 것이다.」 |
《象》曰:孚兌之吉,信志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신실(信實)하게 설득함의 길함은, 뜻을 믿음이다." 【王弼 注】 其志信也。 【왕필 주】 그 뜻을 믿음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信志也」者,失位而得吉,是其志信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뜻을 믿음이다[信志也]”라는 것은, 지위를 잃었으나 길함을 얻었으니 바로 그 뜻을 믿음이다.」 |
六三,來兌,凶。 육삼(六三)은 , 와[進來]서 설득하니, 흉하다. 【王弼 注】 以陰柔之質,履非其位,來求說者也。非正而求說,邪佞者也。 【왕필 주】 음(陰)으로써 부드러움의 자질로 그 지위가 아닌데를 밟고서 [九二에] 내려와서 설득을 구하는 자이다. 바름이 아니면서 설득을 구하니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三為陽位,陰來居之,是進來求說,故言「來兌」;而以不正來說,佞邪之道,故曰:「來兌,凶」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육3(六三)은 양(陽)의 자리인데, 음(陰)이 와서 거주를 하였으니, 이는 들어와[進來]서 설득을 구하기 때문에 “와서 설득한다[來兌]”라고 말하였으며, 그리고 바르지 않음[양(陽)의 자리에 음(陰)이 있음]으로써 와서 설득함은 아첨하고 간사한 도(道)이기 때문에 “와서 설득하니, 흉하다[來兌,凶]”라고 말한 것이다.」 譯註 1: 『伊川易傳』 註⇒之内為來, 上下俱陽而獨之内者, 以同體而隂性下也, 失道下行也. 『이천역전』 주⇒안[内]으로 감을 래(來)라고 하는데, 위와 아래가 모두 양을 갖추었는데 홀로 안으로 가는 것은, 같은 몸이면서 음의 본성으로써 내려가니 아래로 행하여 도(道)를 잃었음이다. |
《象》曰:來兌之凶,位不當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九二에] 내려와서 설득함이 흉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음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位不當」者,由位不當,所以致凶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자리가 마땅하지 않음이다[位不當]”라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음을 말미암음은, 흉함을 불러들이는 까닭이다.」 |
九四,商兌未寧,介疾有喜。 구사(九四)는 헤아려 설득하지만 편안하지 못하고, 사이[六三]를 띄워 미워해야 기쁨이 있다. 【王弼 注】 商,商量裁制之謂也。介,隔也。三為佞說,將近至尊,故四以剛德裁而隔之,匡內制外,是以未寧也。處於幾近,閑邪介疾,宜其有喜也。 【왕필 주】 상(商)은 장사가 마름질하고 지어서 헤아림을 말한다. 개(介, 낄 개)는 사이를 띄움이다. 육3(六三)이 아첨하여 설득하는데 장차 지존[至尊:九五]이 가까워지기 때문에 구4(九四)가 굳센 덕(德)을 가지고 재제(裁制)하여서 격리를 하여 안을 바로잡고 밖을 재제(裁制)하니, 이로써 편안하지 못함이다. 거의 가까운 곳에 처하여 간사함을 막고 사이[六三]를 띄워 미워하니, 그 기쁨이 있음이 당연하다. |
[孔穎達 疏]正義曰:「商兌未寧」者,商,商量裁制之謂也。夫佞邪之人,國之疾也。三為佞說,將近至尊。故四以剛德,裁而隔之,使三不得進,匡內制外,未遑寧處,故曰「商兌未寧」。居近至尊,防邪隔疾,宜其有喜,故曰「介疾有喜」。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헤아려 설득하지만 편안하지 못하고[商兌未寧]”라는 것은, ‘상(商, 장사 상)’은 장사가 마름질하고 지어서 헤아림을 말한다. 그 아첨하고 간사한 사람은, 나라의 병통이며, 육3(六三)이 아첨으로 설득을 하여 장차 지존[至尊:九五]이 가까워지 때문에 구4(九四)가 굳센 덕(德)으로써 재제(裁制)하여서 격리를 하여 육3(六三)으로 하여금 나아가지 못하게 하여 안을 바로잡고 밖을 제어(制御)하니 편안히 처할 겨를이 없기 때문에 “헤아려 설득하지만 편안하지 못하다[商兌未寧]”라고 말한 것이다. 거처가 지존(至尊)에 가까워 간사함을 막고 병통을 격리하면 기쁨이 있음이 마땅하기 때문에 “사이[六三]를 띄워 미워해야 기쁨이 있다[介疾有喜]”라고 말한 것이다.」 |
《象》曰:九四之喜,有慶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구4(九四)의 기쁨은, 경사가 있음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有慶」者,四能匡內制外,介疾除邪,此之為喜,乃為至尊所善,天下蒙賴,故言「有慶」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경사가 있음이다[有慶]”라는 것은, 구4(九四)가 능히 안을 바로잡고 밖을 제어(制御)하여 사이[六三]를 띄워 미워하고 간사함을 제거하니, 이렇게 하여 기쁨이 되며 마침내 지존(至尊)이 좋아하는 바에 이르게 되어 천하(天下)가 그 혜택을 입기 때문에 “경사가 있다[有慶]”라고 말한 것이다.」 |
九五,孚于剝,有厲。 구오(九五)는 벗겨짐을 믿으면, 위태로움이 있다. 【王弼 注】 比於上六,而與相得,處尊正之位,不說信乎陽,而說信乎陰,孚于剝之義也。剝之為義,小人道長之謂。 【왕필 주】 상육(上六)에 가까우면서 서로 더블어 얻어서 높고 바른 자리에 처하며 양(陽)을 믿고 설득하지 않고서 음(陰)을 믿고 설득하니 벗겨짐을 믿음의 뜻이다. 벗겨짐의 뜻이 됨은, 소인(小人)의 도(道)가 자람을 말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剝」者,小人道長,消君子之正,故謂小人為剝也。九五,處尊正之位,下無其應,比於上六,與之相得,是說信於小人,故曰「孚於剝」。信而成剝,危之道也,故曰「有厲」。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벗겨짐[剝]”라는 것은, 소인(小人)의 도(道)가 자라서 군자(君子)의 바름을 없애기 때문에 소인을 일컫기를 ‘박(剝)’이라 한 것이다. 구5(九五)가 높고 바른 지위에 처하고 아래에 그 응(應)이 없으며 상육(上六)에 가까우니 더불어서 서로 뜻을 얻으니, 이는 소인에게 설득되어 믿기 때문에 “벗겨짐을 믿는다[孚於剝]”라고 말한 것이다. 믿어서 벋겨짐[剝]을 이룸은 위태로운 도(道)이다. 그러므로 “위태로움이 있다[有厲]”라고 말한 것이다.」 |
《象》曰:孚于剝,位正當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벗겨짐을 믿음은, 지위가 바르고 마땅함이다.” 【王弼 注】 以正當之位,信於小人而疏君子,故曰位正當也。 【왕필 주】 바르고 마땅함의 지위로써 소인(小人)을 믿으면서 군자(君子)에 소원(疏遠)하기 때문에 “자리가 바르고 합당하다.”라고 말했다. |
[孔穎達 疏]正義曰:「位正當」者,以正當之位,宜在君子,而信小人,故以當位責之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지위가 바르고 마땅함이다[位正當]”라는 것은, 그로써 바르고 합당한 지위가 마땅히 군자(君子)에게 있어야 하는데도 소인(小人)을 믿기 때문에 합당한 지위를 가지고 책망을 한 것이다.」 |
上六,引兌。 상육(上六)은 이끌어 설득함이다. 【王弼 注】 以夫陰質,最處說後,靜退者也。故必見引,然後乃說也。 【왕필 주】 그 음(陰)의 자질로써 가장 설득함의 뒤에 처하니 고요하게 물러나는 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끌어줌을 받은 연후에 비로소 설득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上六以陰柔之質,最在兌後,是自靜退,不同六三自進求說,必須他人見引,然後乃說,故曰「引兌」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상육(上六)이 부드러운 음(陰)의 자질을 가지고 설득함[兌]의 맨 뒤에 있으니, 이는 스스로 고요히 물러나 스스로 나아가 설득을 구하는 육3(六三)과는 같지 않으니, 반드시 모름지기 타인이 이끌어줌을 받은 연후에야 비로소 설득되기 때문에 “이끌어 설득한다[引兌]”라고 말한 것이다.」 |
《象》曰:上六引兌,未光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상육(上六)이 이끌어 설득함은, 빛나지 못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未光也」者,雖免躁求之凶,亦有後時之失,所以《經》無「吉」文,以其道未光故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빛나지 못함이다[未光也]”라는 것은, 비록 조급히 구하는 흉함을 면하였으나 또한 때에 뒤늦은 실수가 있으니, 경문(經文)에 길[吉]이라는 글이 없는 까닭이며, 그로써 그 도(道)가 빛나지 못한 연고(緣故)이다.」 |
※兌[易,바꿀태]⇒說[言,말씀설] 脫[物,벗을탈] 悅[心,기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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