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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 대학도(大學圖)

≪대학도(大學圖)≫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1)이 1568년(선조 1)에 왕(王)에게 올린 상소문 ≪진성학십도차병도(進聖學十圖箚幷圖)≫의 네 번째 그림이다. ≪대학도(大學圖)≫ 첫 부분의 “대학경(大學經)”은 예기(禮記)』 제42편에 실려 있는 ≪대학(大學)≫의 경문(經文)인데 송(宋)나라 주희(朱熹, 1130~1200)가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지으면서 경문의 말미에 있는 “此謂知本,此謂知之至也.”를 잘라낸 것이고, 이어서 “혹문(或問)”은 어떤사람이 “경(敬)을 어떻게 힘을 씁니까?”라고 물으니, 주희(朱熹)가 대답하여 설명하는 부분이며, 아래 “우공씨(右孔氏)”는 퇴계 이황이 쓴 글인데, 윗 글의 출처가 공자가 남긴 《대학》의 첫 장이고, 그림은 고려 말 1390년에 권근(權近,1352 ~1409)이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지으면서 도식을 만들었으며, 이어서 《대학》과 《소학》이 서로 통하는 부분이라는 설명을 하였다.

 

◎ 第四 대학도(大學圖)

 

 

◯ 大學經

大學之道。在明明德。在新民。在止於至善。知止而后有定。定而后能靜。靜而后能安。安而后能慮。慮而后能得。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修其身。欲修其身者。先正其心。欲正其心者。先誠其意。欲誠其意者。先致其知。致知。在格物。物格而后知至。知至而后意誠。意誠而后心正。心正而后身修。身修而后家齊。家齊而后國治。國治而后天下平。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修身爲本。其本亂而末治者否矣。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未之有也。

或曰。敬若何以用力耶。朱子曰。程子嘗以主一無適言之。嘗以整齊嚴肅言之。門人謝氏之說。則有所謂常惺惺法者焉。尹氏之說。則有其心收斂。不容一物者焉云云。敬者。一心之主宰。而萬事之本根也。知其所以用力之方。則知小學之不能無賴於此以爲始。知小學之賴此以始。則夫大學之不能無賴於此以爲終者。可以一以貫之。而無疑矣。蓋此心旣立。由是格物致知。以盡事物之理。則所謂尊德性而道問學。由是誠意正心。以修其身。則所謂先立其大者。而小者不能奪。由是齊家治國。以及乎天下。則所謂修己以安百姓。篤恭而天下平。是皆未始一日而離乎敬也。然則敬之一字。豈非聖學始終之要也哉。

○右孔氏遺書之首章。 國初。臣權近作此圖。章下所引或問通論大小學之義。說見小學圖下。然非但二說當通看。幷與上下八圖。皆當通此二圖而看。蓋上二圖。是求端擴充體天盡道極致之處。爲小學大學之標準本原。下六圖。是明善誠身崇德廣業用力之處。爲小學大學之田地事功。而敬者。又徹上徹下。著工收效。皆當從事而勿失者也。故朱子之說如彼。而今玆十圖。皆以敬爲主焉。太極圖說。言靜不言敬。朱子註中。言敬以補之。

◯ 대학경(大學經)

《대학》의 도는 타고난 깨끗한 본성[明德]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선(至善)에 머무름에 있다. 머무를 곳을 안 뒤에야 정(定)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고요해질 수 있고, 고요해진 뒤에 편안해질 수 있고, 편안해진 뒤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 얻을 수 있다. 사물에는 본말(本末)이 있고 일에는 시종(始終)이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道)에 가까워질 것이다.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그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을 정돈하였으며, 그 집을 정돈하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았다. 또 그 몸을 닦으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였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하였고,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고 하는 자는 먼저 앎을 지극하게 하였으니, 앎을 지극하게 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사물의 이치가 연구된 뒤에야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뒤에야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진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며,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이 닦여지고, 몸이 닦여진 뒤에야 집이 정돈되고, 집이 정돈된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화평하게 된다.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이 수신(修身)으로 근본을 삼는다. 근본이 어지러우면서 말단이 다스려지는 법은 없으며, 후하게 해야 할 데에 박하게 하고 박하게 해야 할 데에 후하게 할 자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이가 묻기를 “경(敬)을 당신은 어떻게 힘을 씁니까?” 하니, 주자는 말하기를, “정자(程子)는 일찍이 ‘마음을 오로지하여 잡념을 가지지 않는 것[主一無適]’으로 말하였고, 또 ‘정제(整齊)’와 ‘엄숙(嚴肅)’으로 말하였다. 그리고 그의 문인(門人) 사씨[謝氏 사양좌(謝良佐)]의 말에는 ‘항상 깨어 있게 하는 법(常惺惺法)’이라고 한 것이 있으며, 윤씨[尹氏 윤돈(尹焞)]의 말에는 ‘그 마음을 단속하여 어떤 물건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들이 있다. 한 마음의 주재(主宰)이며 만사의 근본이다. 그 힘쓸 방법을 알면 《소학》이 여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소학》이 여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면 《대학》이 여기에서 끝맺는다는 것도 같은 이치로 꿰뚫어서 의심 없이 알게 될 것이다. 대개 이 마음이 이미 확립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사물을 연구하여 앎을 지극히 해서 사물의 이치를 다한다면, 이것이 이른바 ‘덕성을 높이고 학문을 말미암는다.’는 것이요, 이것으로 말미암아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그 몸을 닦으면 이것이 이른바 ‘먼저 그 큰 것을 세우면 작은 것이 빼앗지 못한다.’는 것이요, 이것으로 인하여 집을 정돈하고 나라를 다스려 천하에까지 미치면 이것이 이른바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공손함을 독실히 하여 천하를 화평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하루라도 경(敬)에서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니, 경이라는 한 글자가 어찌 성학(聖學)의 시종이 되는 요긴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 윗글은 공자가 남긴 《대학》의 첫 장인데, 국초에 신하 권근(權近)이 이 도식을 만들었습니다. 장(章) 아래 인용한 《혹문》의 《대학》과 《소학》을 통론한 뜻은 그 설명이 〈소학도(小學圖)〉 아래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설만 훑어볼 뿐만 아니라 아울러 위아래 여덟 그림도 모두 이 두 그림과 통합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개 처음 두 그림은 단서를 찾아 확충하여 하늘을 본받고 도를 다하는 극치인 것으로 《소학》ㆍ《대학》의 표준과 본원이 되는 것이요, 다음 여섯 그림은 선(善)을 깨닫고 몸을 성실히 하며 덕을 높이고 업(業)을 넓히는 데 힘쓰는 것이니, 이것이 《소학》ㆍ《대학》의 바탕이며 사공(事功)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은 위에서부터 끝까지 통하는 것이니, 공부를 하여 효과를 거두는 데 있어 모두 종사하고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자의 말이 그와 같으니, 지금 이 십도도 모두 경으로써 주를 삼았습니다. 〈태극도설〉에 정(靜)만 말하고 경(敬)을 말하지 아니하였는데, 주자의 주(註)에서 경(敬)을 말하여 이것을 보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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