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卷十四
【憲問(헌문)】
14-1)憲問恥, 子曰: "邦有道, 穀; 邦無道, 穀, 恥也." "克伐怨欲不行焉, 可以爲仁矣" 子曰: "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
(헌문치, 자왈: "방유도, 곡; 방무도, 곡, 치야." "극벌원욕불행언, 가이위인의" 자왈: "가이위난의, 인즉오부지야.")
헌이 부끄러움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녹을 먹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 녹을 먹음이 부끄러움이다.”
“이기려하고, 자랑하고, 원망하고, 욕심 내는 그러한 행동을 않으면 어짊을 실천한다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려움울 하였다 할 수 있지만, 어진지는 내가 알지 못하겠다.”
14-2)子曰: "士而懷居, 不足以爲士矣."
(자왈: "사이회거, 부족이위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리이면서 머무름을 품으면, 관리를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14-3)子曰: "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
(자왈: "방유도, 위언위행; 방무도, 위행언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말이 위태하고 행함이 위태하지만,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함은 위태하되 말은 공손하다.”
14-4)子曰: "有德者必有言, 有言者不必有德. 仁者必有勇, 勇者不必有仁."
(자왈: "유덕자필유언, 유언자불필유덕. 인자필유용, 용자불필유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씀이 [남아] 있지만, 말씀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덕이 있음은 아니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감한 사람이 반드시 어짊이 있음은 아니다.”
14-5)南宮适問於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而有天下." 夫子不答. 南宮适出, 子曰: "君子哉, 若人! 尙德哉, 若人!"
(남궁괄문어공자왈: "예선사, 오탕주, 구불득기사연. 우·직궁가이유천하." 부자불답. 남궁괄출, 자왈: "군자재, 약인! 상덕재, 약인!")
남궁괄이 공자에게 여쭈어 말했다. “예는 활을 잘 쏘았고 오는 배를 [힘이 세어서]끌었지만, 그들의 천수를 다 누리지 못했습니다. 우 임금과 직 임금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천하를 경영하였습니다.”
스승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셨다. 남궁괄이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로구나, 이 사람은! 덕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은!”
【石潭齋 案】 : 남궁괄(南宮适)은 공자께서 조카를 시집보낼 만큼 신망 받는 제자였다.
예, 오(羿, 奡)의 이야기는 『사기』에 전하는데, 예는 하나라 때 동이족 국가인 유궁국의 제후였다. 천자국인 하나라 태강(太康)왕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르지만 후에 심복인 한착(寒浞)에 의해 암살 당한다. 오는 한착의 아들인데 왕위에 오른 한착도 민심을 얻지 못하여서 소강(小康)이 쿠데타를 일으켜 하나라 왕조를 부활시켰다.
14-6)子曰: "君子而不仁者, 有矣夫, 未有小人而仁者也."
(자왈: "군자이불인자, 유의부! 미유소인이인자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인데 어질지 않은 사람이 그들 중에도 있지만, 아직 소인인데 어진 사람은 있지 않다.”
14-7)子曰: "愛之, 能勿勞乎? 忠焉, 能勿誨乎?"
(자왈: "애지, 능물로호? 충언, 능물회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끼면서, 능히 수고로움을 말겠는가? 그에게 충심이라면, 능히 가르침을 말겠는가?”
14-8)子曰: "爲命, 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修飾之, 東里子産潤色之."
(자왈: "위명, 비심초창지, 세숙토론지, 행인자우수식지, 동리자산윤색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의] 명을 실천하는데, 비심이 초안을 작성하고, 세숙이 [초안을] 논의하여 검토하고 외교를 맡은 사람 자우가 문서를 다듬고, 동쪽 마을의 자산이 문색를 더하였다.”
14-9)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問子西, 曰: "彼哉! 彼哉!" 問管仲, 曰: "人也. 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 沒齒無怨言."
(혹문자산, 자왈: "혜인야." 문자서, 왈: "피재! 피재!" 문관중, 왈: "인야. 탈백씨병읍삼백, 반소식, 몰치무원언.")
어떤이가 자산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로운 사람이다.” 자서를 여쭙자, “저 사람, 저 사람이지”라고 하였다. 관중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사람답다. 백씨의 병읍 삼백가를 빼앗았는데, 거친 밥을 먹고, 치아가 다 빠져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14-10)子曰:「 貧而無怨難,富而無驕易。」
(자왈: "빈이무원난, 부이무교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난하면 원망함이 없기는 어렵지만, 부유하면 교만함이 없음으로 바뀐다.”
14-11)子曰: "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
(자왈: "맹공작위조·위로즉우, 불가이위등·설대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공작은 조씨나 위씨의 가로(家老)가 되면 넉넉하지만, [작은]등나라나 설나라의 대부는 할 수가 없다.”
14-12)子路問成人,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冉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曰: "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자로문성스러운 사람, 자왈: "약장무중지지, 공작지불욕, 변장자지용, 염구지예, 문지이예악, 역가이위성스러운 사람의." 왈: "금지성스러운 사람자, 하필연? 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스러운 사람의.")
자로가 완성된 사람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장무중의 지혜와 맹공작의 욕심 내지 않음과 변장자의 용기와 염구의 재주에, 예와 악으로 무늬를 낸다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 될 수 있다.”
말씀하시기를 “오늘날의 완성된 사람이란 것이 어찌 반드시 그러하겠느냐? 이익을 보게 되면 옳음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된 요령(要領)이라도 평생의 한 말을 잊지 않으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14-13)子問公叔文子於公明賈曰: "信乎? 夫子不言, 不笑, 不取乎?" 公明賈對曰: "以告者過也. 夫子時然後言, 人不厭其言; 樂然後笑, 人不厭其笑; 義然後取, 人不厭其取." 子曰: "其然? 豈其然乎?"
(자문공숙문자어공명가왈: "신호? 부자불언, 불소, 불취호?" 공명가대왈: "이고자과야. 부자시연후언, 인불염기언; 락연후소, 인불염기소; 의연후취, 인불염기취." 자왈: "기연? 개기연호?")
공자께서 공명가에게 공숙문자를 물으셨다. “믿을 만 합니까? 그 분은 말하지 않고 웃지도 않으시며 취하지도 않습니까?”
공명가가 대답하였다. “말을 해준 사람이 지나쳤습니다. 그 분은 때가 된 후에 말하시기에 남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고, 즐거운 연후에 웃으시니 남들이 그 웃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옳은 연후에 취하시므로 남들이 그의 취함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 한가? 어찌 그럴 수 있는가?”
14-14)子曰: "臧武仲以防求爲後於魯, 雖曰不要君, 吾不信也."
(자왈: "장무중이방구위후어로, 수왈불요군, 오불신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무중이 방읍을 믿고서 노나라에 [자신의] 뒤를 세워 주기를 요구했으니, 비록 말하기를 ‘임금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다’하더라도 내가 믿지 않는다.”
14-15)子曰: "晋文公譎而不正, 齊桓公正而不譎."
(자왈: "진문공휼이불정, 제환공정이불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나라 문공은 속이고 바르지 않았지만, 제나라 환공은 바르고 속이지 않았다.”
14-16)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 "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如其仁."
(자로왈: "환공살공자규, 소홀사지, 관중불사." 왈: "미인호?" 자왈: "환공구합제후, 불이병차, 관중지력야. 여기인,여기인.")
자로가 여쭈었다. “[제나라]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그를 위해] 죽었는데 관중은 죽지 않았습니다,” 말하기를 “어질지 않은게 아닙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환공이 제후들을 여러번 규합하면서, 무력을 쓰지 않았는데 관중의 힘이었다. 만약 그것이 어질다면, 그[관중]도 어짊과 같다.”
【石潭齋 案】 : 제나라 희공(僖公)은 세 아들[제아·규·소백]이 있었다. 적장자 제아가 다음 양공(襄公)이 되었는데, 자식이 없어서 이복동생 규(糾)는 관중과 소흘이 스승이 되고 소백(小白)은 포숙아가 스승이 되어 후계를 준비하였다. 제나라 양공은 노나라 환공에게 시집간 누이동생 문강과 음탕한 관계를 하며 실정을 하여서 포숙아가 소백에게 “음탕한 자에게는 반드시 재앙이 뒤 따릅니다”라고 예언하고 소백의 외가인 거나라로 함께 떠난다. 그후 제양공이 사촌 공손무지에게 시해 당하자 관중도 규를 모시고 외가인 노나라로 피신했는데, 신하들의 반발로 공손무지가 죽음을 맞자, 비어있는 제나라 보위에 먼저 도착한 소백이 이어서 제환공(齊桓公)이 되었으며 포숙아가 패장인 관중을 환공에게 추천 등용[관포지교(管鮑之交)]하게 하였으며 관중의 지혜로 환공은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가 되었다.
14-17)子貢曰: "管仲非仁者與? 桓公殺公子糾, 不能死, 又相之." 子曰: "管仲相桓公覇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受其賜. 微管仲, 吾其被髮左袵矣!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자공왈: "관중비인자여? 환공살공자규, 불능사, 우상지." 자왈: "관중상환공패제후, 일광천하, 민도우금수기사. 미관중, 오기피발좌임의! 개약필부필부지위량야, 자경어구독이막지지야?")
자공이 말하였다. “관중은 어질지 않은 사람이지요?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는데, 따라 죽지 않고서 또 그를 도왔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서 제후의 으뜸이 되어 한 차례 천하를 바로잡았기에, 백성들이 지금에 이르도록 그 혜택을 받고 있다. 관중이 미약 했더라면 내가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었다. 어찌 [관중의 어진 보필로]보통 사람들을 믿게 하였음이, 스스로 도랑에서 목매어 죽어[소홀의 의미 없는 죽음] 더럽혀 졌는데 그것[소흘의 죽음]을 알아 줌이 없는 것과 같겠는가?.”
14-18)公叔文子之臣大夫僎, 與文子同升諸公, 子聞之曰: "可以爲文矣."
(공숙문자지신대부선, 여문자동승제공, 자문지왈: "가이위문의.")
공숙문자의 가신인 대부 선이, 문자와 더블어 공경의 벼슬에 함께 올랐는데, 공자께서 이를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시호를] ”문“이라고 할 만하다.”
14-19)子言衛靈公之無道也, 康子曰: "夫如是, 奚而不喪?" 孔子曰: "仲叔圉治賓客, 祝駝治宗廟, 王孫賈治軍旅. 夫如是, 奚其喪?"
(자언위령공지무도야, 강자왈: "부여시, 해이불상?" 공자왈: "중숙어치빈객, 축타치종묘, 왕손가치군려. 부여시, 해기상?")
공자께서 위나라 영공의 무도함을 말씀하시자, 계강자가 말하였다. “이 사람이 이와 같은데 어째서 망하지 않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숙어가 손님과 나그네 접대를 담당하고, 축타는 종가의 사당을 담당하고, 왕손가는 군대를 맡아 다스렸다. 이[영공] 사람이 이와 같은데 어찌 그가 망하겠습니까?”
14-20)子曰: "其言之不怍, 則爲之也難."
(자왈: "기언지불작, 즉위지야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실천하기는 어렵다.”
14-21)陳成子弑簡公, 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曰: "陳恒弑其君, 請討之." 公曰: "告夫三子!"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君曰告夫三子者." 之三子告, 不可.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진성자시간공, 공자목욕이조, 고어애공왈: "진항시기군, 청토지." 공왈: "고부삼자!" 공자왈: "이오종대부지후, 불감불고야. 군왈고부삼자자." 지삼자고, 불가. 공자왈: "이오종대부지후, 불감불고야.")
진성자가 [제나라의] 간공을 시해하자, 공자께서 목욕하고 조회에서 애공에게 아뢰어 말하였다. “진항이 그의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그를 토벌하기를 청합니다.”
애공이 말하였다. “세 사람[삼환,三卿]에게 말하시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말석으로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임금께서 세 사람[삼환,三卿]에게 말하라고 하신 것을’, 삼경(三卿)에게 고하니, 안 된다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대부의 말석으로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14-22)子路問事君, 子曰: "勿欺也, 而犯之."
(자로문사군, 자왈: "물기야, 이범지.")
자로가 임금을 섬김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속이지 말고, [바른 말로] 범 하여라.”
14-23)子曰: "君子上達, 小人下達."
(자왈: "군자상달, 소인하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위로 통달하는데, 소인은 아래로 통달한다.”
14-24)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자왈: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배우는 이는 자기를 위했는데, 지금의 배우는 이는 남을 위한다.”
14-25)蘧伯玉使人於孔子. 孔子與之坐而問焉, 曰: "夫子何爲?" 對曰: "夫子欲寡其過而未能也." 使者出, 子曰: "使乎使乎?"
(거백옥사인어공자. 공자여지좌이문언, 왈: "부자하위?" 대왈: "부자욕과기과이미능야." 사자출, 자왈: "사호사호?")
거백옥이 공자에게 사람을 보냈다. 공자께서 더불어 앉아서 그에게 물으셨다. 말씀하시기를 “그 분께서는 어떻게 지내시오?”
[사신이] 대답하였다. “그 분께서는 그의 잘못을 적게 하려 하시지만 아직 잘 안 되십니다.”
사자가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사신이 아닌가?”
14-26)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曾子曰: "君子, 思不出其位."
(자왈: "불재기위, 불모기정." 증자왈: "군자, 사불출기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책을 도모하지 않는다.”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생각이 그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14-27)子曰:「君子, 恥其言而過其行。」
(자왈: "군자, 치기언이과기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의 말이 그 행함을 지나침을 부끄러워한다.”
14-28)子曰:「君子道者三,我無能焉;仁者不憂,知者不惑,勇者不懼。」 子貢曰:「夫子自道也。」
(자왈: "군자도자삼, 아무능언: 인자불우, 지자불혹, 용자불구." 자공왈: "부자자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도 삼는 것이 셋 인데, 나는 그것을 잘 함이 없다.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헷갈리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공이 말하기를 “스승님께서 스스로 지키시는 도이다.”라고 하였다.
14-29)子貢方人, 子曰: "賜也賢乎哉! 夫我則不暇."
(자공방인, 자왈: "사야현호재? 부아즉불가.")
자공이 사람들을 사방으로 비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자공]는 현명한가? 나라면 그[자공]사람 처럼 한가하지 않다.”
14-30)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
(자왈: "불환인지불기지, 환기불능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않고, [자기의] 잘 하지 못함을 근심하라.”
14-31)子曰: "不逆詐, 不億不信, 抑亦先覺者, 是賢乎?"
(자왈: "불역사, 불억불신, 억역선각자, 시현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속일까 거스르지 않고, 믿지 않을까 억측하지 않는다, 아니면 또한 먼저 깨닫는 사람이 현명하지 않은가?”
14-32)微生畝謂孔子曰: "丘何爲是, 栖栖者與? 無乃爲佞乎?" 孔子曰: "非敢爲佞也. 疾固也."
(미생무위공자왈: "구하위시, 서서자여? 무내위녕호?" 공자왈: "비감위녕야. 질고야.")
미생무가 공자에게 일러 말하였다. “구는 어찌 이렇게 하는가, 서성대는 사람이지? 없으면서 이에 말재주 부리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감히 말재주 부리려함이 아닙니다. 고루함을 아파합니다.”
14-33)子曰: "驥不稱其力, 稱其德也."
(자왈: "기불칭기력, 칭기덕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리마는 그 힘을 칭함이 아니라, 그 덕을 칭찬(稱讚)한다.”
14-34)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혹왈: "이덕보원, 하여?" 자왈: "하이보덕? 이직보원, 이덕보덕.")
어떤 사람이 여쭈었다. “덕으로 원한에 보답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보답을 덕으로 하겠는가? 곧음으로 원한에 보답하고, 덕으로 덕에 보답한다.”
14-35)子曰: "莫我知也夫!"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자왈: "막아지야부!" 자공왈: "하위기막지자야?" 자왈: "불원천, 불우인; 하학이상달, 지아자기천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알아줌이 없구나, 사람들이!”
자공이 말하였다. “어찌 스승님을 알아줌이 없다 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남을 허물하지 않는다. 아래를 배워서 위로 통달하였으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이겠지?”
14-36)公伯寮愬子路於季孫, 子服景伯以告, 曰: "夫子固有惑志於公伯寮, 吾力猶能肆諸市朝." 子曰: "道之將行也, 與命也; 道之將廢也, 與命也. 公伯寮其如命何?"
(공백료소자로어계손, 자복경백이고, 왈: "부자고유혹지어공백료, 오력유능사제시조." 자왈: "도지장행야, 여명야; 도지장폐야, 여명야. 공백료기여명하?")
공백료가 계손씨에게 자로를 모함하였는데, 자복경백이 [스승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그 분[계손씨]께서 공백료의 뜻에 헷갈리는게 확고하지만, 저의 힘이면 오히려 [그들의] 시체를 모두 시정에 내걸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차 도가 행하여 짐은 천명이며, 장차 도가 폐지 됨도 천명이다. 공백료의 그것[권력]이 어찌 천명과 같겠느냐?”
14-37)子曰: "賢者辟世, 其次辟地, 其次辟色, 其次辟言." 子曰: "作者七人矣."
(자왈: "현자피세, 기차피지, 기차벽색, 기차피언." 자왈: "작자칠인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현명한 사람은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은 땅을 피하고, 그 다음은 기색(氣色)을 피하고, 그 다음은 말을 피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산 사람이 일곱 사람이었다.”
【石潭齋 案】 : 『논어』18-6⇒「鳥獸不可與同群」(孔曰:「隱於山林 是同群。<“새와 짐승과 같은 무리로 함께 할 수 없다.”(공안국이 말하였다:산림에 은거함은 이[새와 짐승] 무리와 한 가지이다.)> 즉 공자님 말씀은 ‘세상을 피하여 은거하는 사람은 금수와 같아서 나는 이들과 같이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14-38)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자로숙어석문, 신문왈: "해자?" 자로왈: "자공씨." 왈: "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
자로가 석문에서 묵게 되었는데, 새벽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에서 오셨오?” 자로가 말하였다. “공씨 [문하]에서 왔습니다.”
말하기를 “그 불가함을 옳은 줄 알면서 그것을 하려는 사람이지요?”라고 하였다.
14-39)子擊磬於衛, 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 曰: "有心哉!, 擊磬乎?" 旣而曰: "鄙哉!, 硜硜乎? 莫己知也, 斯已而已矣. 深則厲, 淺則揭." 子曰: "果哉! 末之難矣."
(자격경어위, 유하괴이과공씨지문자, 왈: "유심재!, 격경호?" 기이왈: "비재!, 갱갱호? 막기지야, 사이이이의. 심즉려, 천즉게." 자왈: "과재! 말지난의.")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경쇠를 연주하고 계셨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자의 집 문을 지나가던 사람이 말하였다. “마음에 [맺힘이] 있도다!. 경쇠를 두드리는가?” 조금 지나서 말하였다. “촌스럽도다!, 땡땡이 소리이지? 자기를 알아줌이 없으면, 이를 그만 둘 뿐이다. 깊으면 [옷을] 입고 얕으면 걷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과감하도다!, 그[사람] 끝은 어렵다.”
14-40)子張曰: "『書』云: '高宗諒陰, 三年不言.' 何謂也?" 子曰: "何必高宗? 古之人皆然. 君薨, 百官總己以聽於冢宰三年."
(자장왈: "『서』운: '고종량음, 삼년불언.' 하위야?" 자왈: "하필고종? 고지인개연. 군훙, 백관총기이청어총재삼년.")
자장이 말하였다. “『서경』에 이르기를 ‘고종께서 시묘 3년을 말하지 않았다’하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반드시 고종뿐인가? 옛 사람들은 모두 그러했다. 임금이 돌아가시면 모든 관료들은 자기의 모든 직무를 총재에게 듣는 것이 삼년이었다.”
14-41)子曰: "上好禮, 則民易使也."
(자왈: "상호례, 즉민이사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사람]에서 예를 좋아한다면, 백성은 부리기 쉽다.”
14-42)子路問君子, 子曰: "修己以敬." 曰: "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人." 曰: "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百姓. 修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자로문군자, 자왈: "수기이경." 왈: "여사이이호?" 왈: "수기이안인." 왈: "여사이이호?" 왈: "수기이안백성. 수기이안백성, 요순기유병제!")
자로가 군자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경건함으로 자기를 딱는다.” 말하기를 “이와 같을 뿐입니까?”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닦아서 남을 편안하게 한다.”
말하기를 “이와 같을 뿐입니까?”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닦아서 모든 성씨를 편안하게 한다. 자기를 닦아서 모든 성씨를 편안하게 함은 요임금과 순임금도 그것을 오히려 모두 어려워 하셨다.”
譯註 1. 黃草嶺 眞興王巡守碑(568년)⇒ 世道乖眞?化不敷則耶爲交競□帝王建号莫不脩己以安百姓
(황초령 진흥왕순수비⇒세상의 도리가 진실에서 어긋나고, 그윽한 덕화(德化)가 펴지지 아니하면 사악(邪惡)함이 서로 다툰다. □로 제왕(帝王)은 년호(年號)를 세워 자기를 닦아 많은 성씨를 편안히 하지 않음이 없다.)
14-43)原壤夷俟, 子曰: "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 以杖叩其脛.
(원양이사, 자왈: "유이불손제, 장이무술언, 로이불사, 시위적." 이장고기경.)
원양이 쭈그리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려서는 공손한 아우답지 않고, 자라서는 그에 대해 기술 할 것도 없으며, 늙어서는 죽지도 않으니, 이것은 도적질 함이다”라고 하시며,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두드리셨다.
14-44)闕黨童子將命. 或問之曰: "益者與?" 子曰: "吾見其居於位也, 見其與先生幷行也. 非求益者也, 欲速成者也."
(궐당동자장명. 혹문지왈: "익자여?" 자왈: "오견기거어위야, 견기여선생병행야. 비구익자야, 욕속성자야.")
지방 관청의 동자가 장차 명을 받들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여쭈었다. “정진하는 아이 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의 자리에 머무름을 보았는데, 그가 손윗사람과 더블어 나란히 행함을 보았다. 정진하여 구하려는 아이가 아니라 빨리 이루기를 바라는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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