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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팔일(八佾) 卷​ 3 - 22

3-22) 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然則管仲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자왈: "관중지기소재!" 혹왈: "관중검호?" 왈: "관씨유삼귀, 관사불섭, 언득검?" "연즉관중지례호?" 왈: "방군수색문, 관씨역수색문. 방군위량군지호, 유반점, 관씨역유반점. 관씨이지례, 숙불지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管仲)의 그릇이 작았도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말씀하셨다. “관씨는 첩실이 셋이나 있으면서, 관리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겠는가?” “그렇다면 관중은 예(禮)를 알았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의 군주가 나무로 문을 가리는데 관씨도 또한 나무로 문을 가렸으며, 나라의 군주이어야 두 임금을 즐겁게 하는 술잔 돌리는 잔대(盞臺)가 있는데 관씨도 또한 술잔 돌리는 잔대(盞臺)가 있었는데, 관씨가 예(禮)를 안다면 누군들 예를 모르겠는가?”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子曰:「管仲之器小哉!」(言其器量小也。◎何晏 注 : 그의 그릇 량이 작다는 말이다.)或曰:「管仲儉乎?」(包曰:「或人見孔子小之,以為謂之大儉。」 ◎포함이 말하였다:어떤 사람이 공자께서 <관중이> 작다고 하시는 것을 보고서, 크게 검소함을 말씀하신 것으로 여겼다.)曰:「管氏有三歸,官事不攝,焉得儉?」(包曰:「三歸,娶三姓女。婦人謂嫁曰歸。攝,猶兼也。禮,國君事大,官各有人;大夫兼並,今管仲家臣備職,非為儉。」 ◎포함이 말하였다:“삼귀(三歸)”는 세 성씨의 여자에 장가들었다. 부인이 시집 감을 일컬어서 “귀(歸)”라고 말한다. “섭(攝; 다스릴 섭)”은 겸함과 같다. 『예(禮)』에, 나라 군주는 일이 많으므로 관직마다 각각 사람이 있지만, 대부는 아울러 겸하는데 지금 관중이 직무마다 가신(家臣)을 갖추었으니 검소함을 한 것이 아니다.) 「然則管仲知禮乎?」 (包曰:「或人以儉問,故答以安得儉。或人聞不儉,便謂為得禮。」 ◎포함이 말하였다:어떤 사람이 검소하냐고 묻기 때문에, 어찌 검소하겠느냐고 대답하셨는데, 어떤 사람이 검소하지 않다고 들었으나 한편으로 일컫기를 예를 실천했다고 하였다.)

曰:「邦君樹塞門,管氏亦樹塞門。邦君為兩君之好,有反坫,管氏亦有反坫。鄭曰:「反坫,反爵之坫,在兩楹之間。人君別內外於門,樹屏以蔽之。若與鄰國為好會,其獻酢之禮更酌,酌畢則各反爵於坫上。今管仲皆僭為之,如是,是不知禮。」 ◎정현이 말하였다:“반점(反坫)”은 술잔을 되돌리는 받침대인데, 두 기둥 사이에 있다. 군주가 문에서 안과 밖을 구분할 때 병풍 나무로써 그것[안]을 가린다. 만약 이웃 나라와 더블어 우호적인 회동을 할 적에, 술을 따라주는 예법에 의해 다시 따라주고, 술 따르는 것이 끝나면 각자 받침대 위에 잔을 돌려 놓는다. 지금 관중이 모두 그렇게 하여 주제 넘음이 이와 같았는데, 이것이 예법을 알지 못함이다.)管氏而知禮,孰不知禮?」

 
 

《논어주소(論語註疏)》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註疏】 「 子曰」至「知禮」。

○【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자왈(子曰)]에서 [지례(知禮)]까지"

○正義曰:此章言管仲僭禮也。

○正義曰:이 장(章)은 관중(管仲)의 분수에 지나친 예(禮)를 말한 것이다.

「子曰:管仲之器小哉」者,管仲,齊大夫管夷吾也。孔子言其器量小也。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管仲)의 그릇이 작았도다!'[子曰 管仲之器小哉]"라는 것은, 관중은 제(齊)나라 대부 관이오(管夷吾)이며 공자께서 그는 그릇의 량이 작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或曰:管仲儉乎」者,或人見孔子言管仲器小,以為謂其大儉,故問曰:「管氏儉乎?」

<경문(經文)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或曰 管仲儉乎]"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공자께서 관중의 그릇이 작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그로써 그[관중]가 크게 검소함을 말씀하신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묻기를 “관씨는 검소하였습니까?”라고 하였다.

「曰:管氏有三歸,官事不攝,焉得儉」者,孔子答或人以管仲不儉之事也。

<경문(經文)에서> "말씀하셨다. '관씨는 첩실이 셋이나 있으면서, 관리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겠는가?'[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라는 것은, 공자께서 어떤 사람에게 관중이 검소하지 않았던 일을 가지고 대답하신 것이다.

婦人謂嫁曰歸。攝,猶兼也。焉,猶安也。禮,大夫雖有妾媵,嫡妻唯娶一姓。今管仲娶三姓之女,故曰有三歸。

부인(婦人)이 시집가는 것을 ‘귀(歸)’라 말한다. 섭(攝; 다스릴 섭)은 겸함과 같다. 언(焉)은 어찌와 같다. 『예(禮)』에 대부가 비록 첩(妾)과 잉(媵)을 두지만, 적처(嫡妻)는 오직 한 성씨의 여인만을 취하는데, 지금 관중은 세 성씨의 여인을 취하였기 때문에 “유삼귀(有三歸)”라고 말한 것이다.

禮,國君事大,官各有人,大夫雖得有家臣,不得每事立官,當使一官兼攝餘事。今管仲家臣備職,奢豪若此,安得為儉也?

『예(禮)』에 의하면 나라 군주는 일이 많으니 관직(官職)마다 사람을 두지만, 대부는 비록 가신(家臣)을 둘 수는 있으나 매 일마다 관리를 둘 수는 없으니, 마땅히 하나의 관리로 하여금 여러 일을 겸임시켜야 한다. 지금 관중이 관직마다 가신을 두어 호사스러움이 이와 같았으니, 어찌 검소함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然則管仲知禮乎」者,或人聞孔子言管仲不儉,便謂為得禮,故又問曰:「然則管仲是知禮之人乎?」

<경문(經文)에서> "그렇다면 관중은 예(禮)를 알았습니까?[然則管仲知禮乎]"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관중은 검소하지 않았다는 공자의 말씀을 듣고 예(禮)를 실천했다는 뜻으로 치우쳤기 때문에 또 묻기를 “그렇다면 관중은 이 예(禮)를 아는 사람입니까?”라고 한 것이다.

「曰:邦君樹塞門,管氏亦樹塞門。邦君為兩君之好,有反坫,管氏亦有反坫」者,此孔子又為或人說管仲不知禮之事也。

<경문(經文)에서> "말씀하셨다. '나라의 군주가 나무로 문을 가리는데 관씨도 또한 나무로 문을 가렸으며, 나라의 군주이어야 두 임금을 즐겁게 하는 술잔 돌리는 잔대(盞臺)가 있는데 관씨도 또한 술잔 돌리는 잔대(盞臺)가 있었는데'[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라는 것은, 이는 공자께서 또 어떤사람을 위해 관중이 예(禮)를 알지 못한 일을 들어 설명해주신 것이다.

邦君,諸侯也。屏,謂之樹。人君別內外於門,樹屏以蔽塞之。大夫當以簾蔽其位耳。今管仲亦如人君,樹屏以塞門也。

방군(邦君)은 제후(諸侯)이다. 屛(屛: 병풍 병)을 말하기를 수(樹)라 한다. 군주된 사람이 대문에서 안과 밖을 구별하여 병풍 나무를 가지고 그것[문]을 가리고 막지만, 대부는 마땅히 발[簾]을 가지고 그 자리를 가릴 뿐이다. 지금 관중이 또한 군주된 사람처럼 병풍 나무를 가지고 문을 가렸다.

反坫,反爵之坫,在兩楹之間。人君與鄰國為好會,其獻酢之禮更酌,酌畢則各反爵於坫上。大夫則無之。今管仲亦有反爵之坫。僭濫如此,是不知禮也。

반점(反坫)은 술잔을 되돌려놓는 받침대인데 두 기둥 사이에 있다. 군주된 사람이 이웃 나라와 좋은 회합을 할적에 그 술잔을 올리는 예(禮)를 거행하고 다시 술을 채우고 술을 다 마시면 각기 반점(反坫)에 잔을 돌려놓는 것이니, 대부라면 그것[반점]이 없다. 지금 관중 또한 술잔을 되돌리는 반점이 있으니 참람(僭濫)함이 이와 같았으며 이는 예(禮)를 알지 못한 것이다.

「管氏而知禮,孰不知禮」者,孔子舉其僭禮於上,而以此言非之。孰,誰也。言若謂管氏而為知禮,更誰為不知禮!言唯管氏不知禮也。

<경문(經文)에서> "관씨가 예(禮)를 안다면 누군들 예를 모르겠는가?[管氏而知禮 孰不知禮]"라는 것은, 공자께서 윗 글에 그 참람(僭濫)한 예(禮)를 들어서 그로써 이것을 비난하신 말씀이다. 숙(孰)은 누구이다. 만약 관중을 일러서 예를 안다고 한다면 다시 누구를 일러 예를 알지 못한다고 하겠느냐고 말씀하셨으니, 오직 관씨가 예를 알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注「包曰」至「為儉」。

○ 【집해(集解)】 주(注)의 “ [포왈(包曰)]에서 [위검(爲儉)]까지"

○正義曰:云「婦人謂嫁曰歸」者,隱二年《公羊傳》文。何休曰:「婦人生以父母為家,嫁以夫為家,故謂嫁曰歸,明有三歸之道也。」

○正義曰: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부인이 시집 감을 일컬어서 '귀(歸)'라고 말한다.[婦人謂嫁曰歸]"라는 것은, 《춘추(春秋)공양전(公羊傳)》 은공(隱公) 2년의 “백희귀우기(伯姬歸于紀)”를 해석한 글인데, 하휴(何休)가 말하기를 “부인(婦人)이 태어나서 부모(父母)를 가지고 집으로 삼고, 시집가면 남편을 가지고 집을 삼기 때문에 시집가는 것을 귀(歸)라 말하니, 3귀(三歸)의 도리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다.

○注「 鄭曰」至「知禮」。

○ 【집해(集解)】 주(注)의 “[정왈(鄭曰)]에서 [지례(知禮)]까지"

○正義曰:云「反坫,反爵之坫,在兩楹之間」者,以鄉飲酒是鄉大夫之禮,於房戶間,燕禮是燕已之臣子,故尊於東楹之西。若兩君相敵,則尊於兩楹間,故其坫在兩楹間也。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반점(反坫)은 술잔을 되돌리는 받침대인데, 두 기둥 사이에 있다[反坫 反爵之坫 在兩楹之間]"라는 것은, 그로써 향음주례(鄕飮酒禮)는 바로 향대부(鄕大夫)의 예(禮)이니 <술 단지를> 방의 쪽문 사이에 두고, 연례(燕禮)는 바로 자기의 신하들을 접대하기 때문에 술 단지를 동쪽 기둥의 서쪽에 두지만, 만약 두 나라 군주가 서로 대작(對酌)하면 술 단지를 두 기둥 사이에 두기 때문에 그 반점(反坫)이 두 기둥 사이에 있는 것이다.

云「人君別內外於門,樹屏以蔽之」者,《釋宮》云:「屏謂之樹。」郭璞曰:「小牆當門中。」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군주된 사람이 문에서 안과 밖을 구분할 때 병풍 나무로써 그것[안]을 가린다[人君別內外於門 樹屛以蔽之]"라는 것은, 《이아(爾雅)》 〈석궁(釋宮)〉에 이르기를 “명(屛)을 일컫기를 수(樹)라 한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곽박(郭璞)이 말하기를 “작은 담은 가운데 문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郊特牲》云:「台門而旅樹。」鄭玄云:「此皆諸侯之禮也。」旅,道也。屏,謂之樹,樹所以蔽行道。管氏樹塞門,塞猶蔽也。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 이르기를 “문의 누대를 만들고 그리고 가림벽을 세운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이는 모두 제후의 예(禮)이다. 여(旅)는 길이다. 병(屛)은 일컫기를 수(樹)라 했으니, 수(樹)는 다니는 길을 막기 위함이다. 관씨의 수(樹)는 문을 막았으며 색(塞)은 가리는 것과 같다.

禮,「天子外屏,諸侯內屏,大夫以簾,士以帷」是也。

『예(禮)』에 "천자는 병屛)을 밖에 하고 제후는 병을 안에 세우며, 대부는 발[簾]을 치고 관리[士]는 휘장을 친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若與鄰國為好會,其獻酢之禮更酌,酌畢則各反爵於坫上」者,熊氏云:「主君獻賓。賓筵前受爵,飲畢,反坫虛爵於坫上,於西階上拜。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만약 이웃 나라와 더블어 우호적인 회동을 할 적에, 술을 따라주는 예법에 의해 다시 따라주고, 술 따르는 것이 끝나면 각자 받침대 위에 잔을 돌려 놓는다[若與隣國爲好會 其獻酢之禮更酌 酌畢則各反爵於坫上]"라는 것은, 웅씨(熊氏)가 이르기를 “주인(主人)된 군주가 빈(賓)에게 술을 올리면 빈은 앞으로 나와 술잔을 받아 다 마시고서 이 빈 잔을 받침대 위로 되돌려놓고 서쪽 계단 위에서 절을 한다.

主人於阼階上答拜,賓於坫取爵,洗爵,酌,以酢主人。主人受爵,飲畢,反此虛爵於坫上。主人阼階上拜,賓答拜。」是賓主飲畢,反爵於坫上也。而云「酌畢,各反爵於坫上」者,文不具耳,其實當飲畢。

주인이 조계[阼階(東階)] 위에서 절을 하여 답하면 빈이 받침대 위에 있는 잔을 취하여 잔을 씻고서 그 잔에 술을 쳐서 주인에게 올린다.

주인이 잔을 받아 다 마시고 그 빈 잔을 받침대 위로 되돌려놓고 주인이 조계 위에서 재배하면 빈은 서계 위에서 답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빈(賓)과 주(主)가 술을 다 마시고는 술잔을 받침대 위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그런데 <鄭玄의 注에> 이르기를 “술을 다 따르면[酌畢] 각각 잔을 받침대 위로 돌려놓는다.”고 한 것은, 글이 완전하지 못할 뿐이며, 그 실상은 마땅히 음필(飮畢)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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