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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학십도(聖學十圖)』

조선시대 성리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1568년(선조 1) 12월 왕에게 올린 상소문인데, 선조(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자신이 평생 동안 공부하며 쌓아 온 학문의 내용을 정리하여 군왕의 도(道)에 관한 요체를 10가지 도표를 그려서 도식으로 설명하였으며, 명칭은 본래 <진성학십도차병도(進聖學十圖箚幷圖)>로 ≪퇴계문집(退溪文集)≫ 七卷 箚에 수록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성학십도(聖學十圖)≫로 명명되고 있다.

◎ 성학십도(聖學十圖)

서론인 <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箚)>로 시작해서 10개의 도표와 그 해설로 되어 있는데, 도표는 태극도(太極圖)·서명도(西銘圖)·소학도(小學圖)·대학도(大學圖)·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인설도(仁說圖)·심학도(心學圖)·경재잠도(敬齋箴圖)·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이다.

10개의 도표 가운데 7개의 도표는 옛 현인들이 작성한 것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을 골랐고, 나머지 3개[소학도·백록동규도·숙흥야매잠도]의 도표는 자신이 작성한 것이며, 7개의 현인들 도표 가운데 심통성정도는 정복심(程復心)이 작성한 것인데, 이황은 이 도표에 2개의 도표를 첨가하였으며, 첨가한 2개의 도표에서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이기(理氣)의 내용을 곡진하게 도해해 설명하고 있다.

제1도는 도와 도설이 모두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저작이며,

제2도의 「서명」은 장재(張載, 1020~1077)의 글이고, 도는 정복심(程復心, 1257~1341)의 작품이다.

제3도의 제사는 주희( ,1130~1200)의 말이고, 도는 『소학』의 목록에 의한 이황(李滉)의 작품이다.

제4도의 본문은 『대학경(大學經)』 1장(章)이고, 도는 권근(權近, 1352~1409)의 작품이다.

제5도의 규약은 주희()의 글이고, 도는 이황(李滉)의 작품이며,

제6도의 상도(上圖) 및 도설은 정복심(程復心)의 저작이고, 도는 이황(李滉)의 작품이다.

제7도는 도 및 도설이 모두 주희()의 저작이고,

제8도는 도 및 도설이 모두 정복심(程復心)의 저작이며,

제9도에서 잠은 주희()의 말이고, 도는 왕백(王柏)의 작품이며,

제10도의 잠은 진백(陳柏)의 말이고, 도는 이황(李滉)의 작품이다.

십도(十圖)의 내용 서술은 도표와 함께 반드시 앞부분에 경서(經書)와 주희(朱熹) 및 그 밖에 여러 성현의 글 가운데 적절한 내용을 인용한 뒤 자신의 학설을 전개하였으며, 제1도에서 제5도까지는 “천도(天道)에 기본”을 둔 것이고, 제6도에서 제10도까지는 “심성(心性)에 근원”을 둔 것이다.

 

 

◎ 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箚)

 

判中樞府事臣李滉。謹再拜上言。臣竊伏以道無形象。天無言語。自河洛圖書之出。聖人因作卦爻。而道始見於天下矣。然而道之浩浩。何處下手。古訓千萬。何所從入。聖學有大端。心法有至要。揭之以爲圖。指之以爲說。以示人入道之門。積德之基。斯亦後賢之所不得已而作也。而況人主一心。萬幾所由。百責所萃。衆欲互攻。群邪迭鑽。一有怠忽。而放縱繼之。則如山之崩。如海之蕩。誰得而禦之。古之聖帝明王。有憂於此。是以。兢兢業業。小心畏愼。日復一日。猶以爲未也。立師傅之官。列諫諍之職。前有疑後有丞。左有輔右有弼。在輿有旅賁之規。位宁有官師之典。倚几有訓誦之諫。居寢有暬御之箴。臨事有瞽史之導。宴居有工師之誦。以至盤盂,几杖,刀劍,戶牖。凡目之所寓。身之所處。無不有銘有戒。其所以維持此心。防範此身者。若是其至矣。故德日新而業日廣。無纖過而有鴻號矣。後世人主。受天命而履天位。其責任之至重至大爲如何。而所以自治之具。一無如此之嚴也。則其憪然自聖。傲然自肆於王公之上。億兆之戴。終歸於壞亂殄滅。亦何足怪哉。故于斯之時。爲人臣而欲引君當道者。固無所不用其心焉。若張九齡之進金鑑錄。宋璟之陳無逸圖。李德裕之獻丹扆六箴。眞德秀之上豳風七月圖之類。其愛君憂國拳拳之深衷。陳善納誨懇懇之至意。人君可不深念而敬服也哉。臣以至愚極陋。辜恩累朝。病廢田里。期與草木同腐。不意虛名誤達。召置講筵之重。震越惶恐。辭避無路。旣不免爲此叨冒。則是勸導聖學。輔養宸德。以期致於堯舜之隆。雖欲辭之以不敢。何可得也。顧臣學術荒疎。辭辯拙訥。加以賤疾連仍。入侍稀罕。冬寒以來。乃至全廢。臣罪當萬死。憂慄罔措。臣竊伏惟念當初上章論學之言。旣不足以感發天意。及後登對屢進之說。又不能以沃贊睿猷。微臣悃愊。不知所出。惟有昔之賢人君子。明聖學而得心法。有圖有說。以示人入道之門。積德之基者。見行於世。昭如日星。玆敢欲乞以是進陳於左右。以代古昔帝王工誦器銘之遺意。庶幾借重於旣往。而有益於將來。於是。謹就其中揀取其尤著者。得七焉。其心統性情。則因程圖。而附以臣作二小圖。其三者。圖雖臣作。而其文其旨。條目規畫。一述於前賢。而非臣創造。合之爲聖學十圖。每圖下。輒亦僭附謬說。謹以繕寫投進焉。第緣臣㥘寒纏疾之中。自力爲此。眼昏手顫。書未端楷。排行均字。竝無准式。如蒙勿卻。乞以此本。下諸經筵官。詳加訂論。改補差舛。更令善寫者精寫正本。付之該司。作爲御屛一坐。展之淸燕之所。或別作小樣一件粧貼爲帖。常置几案上。冀得於俯仰顧眄之頃。皆有所觀省警戒焉。則區區願忠之志。幸莫大焉。而其義意有所未盡者。臣請得而申言之。竊嘗聞之。孟子之言曰。心之官則思。思則得之。不思則不得也。箕子之爲武王陳洪範也。又曰。思曰睿。睿作聖。夫心具於方。而至虛至靈。理著於圖書。而至顯至實。以至虛至靈之心。求至顯至實之理。宜無有不得者。則思而得之。睿而作聖。豈不足以有徵於今日乎。然而心之虛靈。若無以主宰。則事當前而不思。理之顯實。若無以照管。則目常接而不見。此又因圖致思之不可忽焉者然也。抑又聞之。孔子曰。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學也者。習其事而眞踐履之謂也。蓋聖門之學。不求諸心。則昏而無得。故必思以通其微。不習其事。則危而不安。故必學以踐其實。思與學。交相發而互相益也。伏願聖明深燭此理。先須立志。以爲舜何人也。予何人也。有爲者亦若是。奮然用力於二者之功。而持敬者。又所以兼思學。貫動靜。合內外。一顯微之道也。其爲之之法。必也存此心於齋莊靜一之中。窮此理於學問思辨之際。不睹不聞之前。所以戒懼者愈嚴愈敬。隱微幽獨之處。所以省察者愈精愈密。就一圖而思。則當專一於此圖。而如不知有他圖。就一事而習。則當專一於此事。而如不知有他事。朝焉夕焉而有常。今日明日而相續。或紬繹玩味於夜氣淸明之時。或體驗栽培於日用酬酢之際。其初猶未免或有掣肘矛盾之患。亦時有極辛苦不快活之病。此乃古人所謂將大進之幾。亦爲好消息之端。切毋因此而自沮。尤當自信而益勵。至於積眞之多。用力之久。自然心與理相涵。而不覺其融會貫通。習與事相熟。而漸見其坦泰安履。始者各專其一。今乃克恊于一。此實孟子所論深造自得之境。生則烏可已之驗。又從而俛焉孶孶。旣竭吾才。則顔子之心不違仁。而爲邦之業在其中。曾子之忠恕一貫。而傳道之責在其身。畏敬不離乎日用。而中和位育之功可致。德行不外乎彝倫。而天人合一之妙斯得矣。是其爲圖爲說。僅取敍陳於十幅紙上。思之習之。只做工程於平日燕處。而凝道作聖之要。端本出治之源。悉具於是。惟在天鑑留神加意。反復終始。勿以輕微而忽之。厭煩而置之。則宗社幸甚。臣民幸甚。臣不勝野人芹暴之誠。冒瀆宸嚴。輒以爲獻。惶懼屛息。取進止。

○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리는 차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신 이황은 삼가 재배(再拜)하고 아룁니다. 도(道)는 형상(形象)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나오면서 성인이 이것을 근거로 하여 괘효(卦爻)를 만들었으니, 이때부터 비로소 도가 천하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도는 넓고 크니 어디서부터 착수하여 들어가며, 옛 교훈이 천만 가지인데 어디서부터 따라 들어가겠습니까. 성학(聖學)에는 강령(綱領)이 있고 심법(心法)에는 지극히 요긴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드러내어 도(圖)를 만들고, 이것을 지목하여 해설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기초를 보여 주니, 이것 역시 후현(後賢)이 부득이하여 만들게 된 것입니다. 하물며 임금의 마음은 만 가지 징조가 연유하는 곳이요 백 가지 책임이 모이는 곳이며, 온갖 욕심이 공격하고 온갖 간사함이 서로 침해하는 곳입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 방종이 따르게 되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들끓는 것과 같을 것이니, 이것을 누가 막겠습니까. 옛날의 성군(聖君)과 현명한 왕은 이런 점을 근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항상 조심하고 공경하며 두려워하기를 날마다 하면서도 오히려 미흡하다고 여겨 스승을 정하여 놓고 굳게 간(諫)하는 직책을 만들어서, 앞에는 의(疑)가 있고 뒤에는 승(丞)이 있으며, 왼쪽에는 보(輔)가 있고 오른쪽에는 필(弼)이 있으며, 수레를 탈 때는 여분(旅賁)의 경계함이 있고, 조회를 받을 때는 관사(官師)의 법이 있으며, 책상에 기대고 있을 때는 훈송(訓誦)의 간(諫)이 있고, 침소에는 설어(暬御)의 잠(箴)이 있으며, 일에 당면할 때는 고사(瞽史)의 인도(引導)가 있고, 사사로이 거처할 때는 공사(工師)의 송(誦)이 있으며, 소반과 밥그릇ㆍ책상ㆍ지팡이ㆍ칼ㆍ들창문에 이르기까지 무릇 눈이 가는 곳과 몸이 처하는 곳은 어디든지 훈계를 새겨 놓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마음을 유지하고 몸을 방범(防範)하는 것이 이와 같이 지극하였으므로 덕이 날로 새롭고 공업(功業)이 날로 넓어져서 작은 허물도 없고 큰 이름이 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후세의 군주는 천명을 받고 왕위에 올랐으니 그 책임이 지극히 중하고 지극히 큼에도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구비한 것이 이같이 엄격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왕공(王公)과 수많은 백성들의 추대에 들떠서 버젓이 성인처럼 굴며 오만 방자하게 구니, 결국 난이 일어나고 멸망하는 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남의 신하가 되어서 임금을 인도하여 도에 합당하도록 하려는 이는 온갖 정성을 다 바쳤습니다. 장구령(張九齡)이 《금감록(金鑑錄)》을 올린 것과 송경(宋璟)이 〈무일도(無逸圖)〉를 바친 것과 이덕유(李德裕)가 〈단의육잠(丹扆六箴)〉을 바친 것과 진덕수(眞德秀)가 〈빈풍 칠월도(豳風七月圖)〉를 올린 것 같은 따위는 다 임금을 아끼고 나라를 근심하는 깊은 충의와 선을 베풀고 가르침을 드리는 간절한 뜻이니, 임금으로서 깊이 유념하고 공경히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신은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비루한 몸으로 그간 여러 조(朝)에 입은 은혜를 저버리고 병으로 시골에 들어앉아 초목과 함께 썩어가고자 했는데, 뜻밖에 허명(虛名)이 잘못 알려져서 불려 와 강연(講筵)의 중한 자리에 앉게 되니, 떨리고 황송하며 사양하여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미 면하지 못하고 이 자리를 더럽힌 이상, 이에 성학(聖學)을 권도(勸導)하고 군덕(君德)을 보양하여 요순(堯舜)처럼 융성한 데 이르도록 할 직책을 비록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한들 되겠습니까. 다만 신은 학술이 거칠고 말주변이 어눌한데 여기에다 잇따른 병고로 시강(侍講)도 드물게 하다가 겨울철 이후로는 전폐하게 되었으니, 신의 죄는 만번 죽어도 마땅한지라 근심되고 두려운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신이 삼가 생각해 보건대, 당초에 글을 올려 학문을 논한 말들이 이미 성상의 뜻을 감동시켜 분발하게 해 드리지 못하고, 그 뒤로도 성상을 대하여 여러 번 아뢴 말씀이 또 성상의 예지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였으니, 미력한 신의 정성으로는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옛 현인과 군자들이 성학(聖學)을 밝히고 심법(心法)을 얻어서 도(圖)를 만들고 설(說)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기초를 가르친 것이 오늘날 세상에 행해져 해와 별같이 환합니다. 이에 감히 이것을 가지고 나아가 전하께 진술하여, 옛 제왕(帝王)들의 공송(工誦)과 기명(器銘)의 끼친 뜻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기왕의 성현들에 힘입어 장래에 유익하도록 하려는 바람에서입니다. 이에 삼가 그중에서 더욱 뚜렷한 것만 골라 일곱 개를 얻었습니다. 그중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정임은(程林隱)의 그림에다가 신이 만든 두 개의 작은 그림을 덧붙인 것이요, 이 밖에 또 세 개는 그림은 비록 신이 만들었으나 그 글과 뜻이 조목(條目)과 규획(規畫)에 있어서 한결같이 옛 현인이 만든 것을 풀이한 것이지 신의 창작이 아닙니다. 이것을 합하여 〈성학십도〉를 만들고 각 그림 아래에 또 외람되게 신의 의견을 덧붙여서 삼가 정사(精寫)하여 올립니다. 신은 추위에 떨리고 병으로 꼼짝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힘써서 이것을 하자니 눈이 어둡고 손이 떨려 글씨가 단정하지 못한 데다 줄과 글자도 바르고 고르지 못하여 규격에 맞지 않습니다. 혹여 물리치지 않으신다면, 이것을 경연관(經筵官)에게 내리시어 상세하게 논의해서 바로잡고 사리에 어긋난 것을 수정하여, 다시 글씨 잘 쓰는 사람에게 정본(正本)을 정사해서 해당 관서에 보내어 병풍 한 벌을 만들어서 평소 조용히 거처하시는 곳에 펼쳐 놓으시고, 또 별도로 조그마하게 수첩을 만들어서 항상 책상 위에 놓아두고, 기거동작(起居動作)하실 때에 언제나 보고 살피셔서 경계로 삼으신다면, 신의 간절한 충정(忠情)에 이보다 다행히 없겠습니다. 그 뜻에 있어서 미진한 것은 신이 지금 거듭 설명하겠습니다. 일찍이 듣건대, 맹자(孟子)의 말에, “마음의 직책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못하면 잃어버리고 만다.” 하였고,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을 위하여 홍범(洪範)을 진술할 적에 또, “생각함은 지혜롭다. 지혜로움은 성스러움을 만든다.” 하였습니다. 대개 마음은 방촌(方寸)에 갖추어 있으면서 지극히 허령하고, 이치는 도(圖)와 설(說)에 나타나 있으면서 지극히 현저하고 지극히 진실합니다. 지극히 허령한 마음을 가지고 지극히 현저하고 진실한 이치를 구하면 마땅히 얻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여 얻고 지혜로워 성인이 되는 것이 어찌 오늘날에 징험 되지 못 하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이 허령하다 하더라도 주재(主宰)하는 바가 없으면 일을 당하여도 생각하지 못하고, 이치가 현저하고 진실하다 하더라도 조관(照管)하지 않으면 항상 눈앞에 있을지라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이 도식(圖式) 때문에 깊이 생각하는 것을 소홀히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또 듣건대 공자(孔子)께서는, “배우고도 생각하지 아니하면 어두워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로워진다.” 하였습니다. 학(學)이란 그 일을 습득하여 참되게 실천하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무릇 성문(聖門)의 학이란 마음에서 구하지 않으면 어두워져서 얻지 못하는 까닭에 반드시 생각하여 그 미묘한 이치를 통해야 하고, 그 일을 습득하지 못하면 위태로워져서 불안한 까닭에 반드시 배워서 그 실상대로 실행하여야 합니다. 이리하여 생각하는 것과 배우는 것이 서로 분명히 해 주고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깊이 이 이치를 밝히시고 모름지기 먼저 뜻을 세우시어, “순(舜)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냐, 노력하면 이와 같이 된다.”라고 생각하시어 분연(奮然)히 힘을 내셔서 생각하고 배우는 이 두 가지 공부에 힘쓰십시오. 그리고 또한 경(敬)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과 배움을 겸하고 동(動)과 정(靜)을 일관하며, 안과 밖을 합일하고 드러난 곳과 은미(隱微)한 곳을 한결같이 하는 도(道)입니다. 이것을 하는 방법은 반드시 삼가고 엄숙하고 고요한 가운데 이 마음을 두고,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사이에 이 이치를 궁리하여,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두려워하기를 더욱 엄숙하고 더욱 공경히 하며, 은미한 곳과 혼자 있는 곳에서 성찰하기를 더욱더 정밀히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그림을 두고 생각할 적에는 마땅히 이 그림에만 마음을 오로지해서 다른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고, 어떤 한 가지 일을 습득할 적에는 마땅히 이 일에 오로지하여서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변함이 없이 매일매일 계속하고, 혹 새벽에 정신이 맑을 때에 그것을 되풀이하여 그 뜻을 이해하고 혹 평상시에 사람을 응대할 때에 몸소 경험하고 북돋우면, 처음에는 혹 부자연스럽고 모순되는 불편을 면하지 못하고 또 때로 극히 고통스럽고 쾌활하지 못한 병통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곧 옛사람들이 이른바 장차 크게 향상하려는 징조요 좋은 소식의 징조라고 하겠으니, 절대로 이런 문제로 인해서 스스로 저상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욱 자신을 가지고 힘써서 참된 것을 많이 쌓고 오래 힘써 나가면 자연히 마음과 이치가 서로 물 배듯하여 어느새 이해하고 통달하게 되며, 익히는 것과 일이 서로 익숙해져 점점 순탄하고 편하게 행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엔 각각 그 하나에만 오로지하던 것이 나중에는 하나의 근원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실로 맹자가 논한 바,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하여 자득하게 된 경지”이며 “생겨나면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라는 말의 증험입니다. 또 따라서 부지런히 힘써서 자신의 재주를 다하면, 안자(顔子)가 인(仁)에서 떠나지 않은 것과 나라 다스리는 일을 물은 것이 바로 그 가운데 있고, 증자(曾子)가 충서 일관(忠恕一貫)하여 도(道)를 전함을 맡은 것도 바로 자신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공경함이 일상생활에서 떠나지 않아 중화(中和)를 극치(極致)로 하여 천지 만물의 위육(位育)에 참여하는 공(功)을 이룰 수 있으며, 덕행이 떳떳한 인륜에서 벗어나지 않아 천(天)과 인(人)이 합일하는 묘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 그 도(圖)와 설(說)을 겨우 열 폭밖에 안 되는 종이에 베풀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생각하고 익히는 것은 평소 조용히 혼자 계실 때에 하는 것이지만, 도를 깨달아 성인이 되는 요령과 근본을 반듯하게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 다 여기에서 나옵니다. 오직 전하께서는 정신을 가다듬어 뜻을 더하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반복하되, 하찮은 것이라고 소홀히 하지 마시고 싫증이 나고 번거롭다고 그만두지 않으신다면, 국가로서도 매우 다행한 일이며 신하와 백성들에게도 매우 다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신(臣)은 야인(野人)이 근폭(芹曝)을 올리는 정성을 이기지 못하여, 전하의 위엄을 모독하는 줄 알면서도 이렇게 바치나이다. 황송하고 송구스럽습니다. 처분을 기다립니다.

 

◎ 퇴계선생문집 (退溪先生文集) : 보물 제18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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