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신라향가(新羅鄕歌)
- 득오(得烏) -
去隱春皆林米
(거은춘개림미)
간 봄 그리워하매
毛冬居叱哭屋尸以憂音
(모동거질사곡옥시이우음)
못 살으사 울어 설워하더이다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아동음내질호지사오은)
애닯음 나토시던 모습이
貌史年數就音墮支行齊
(모사년수취음타지행제)
해 거듭하는 즈음에 가이더이다
目煙廻於尸七史伊衣
(목연회어시칠사이의)
눈 돌이킬 새
逢烏支惡知作乎下是
(봉오지악지작호하시)
만나 뵙기 어찌 지으오리까
郞也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
(랑야 모리시심미 행호시도시)
낭이여, 그리는 마음에 가올 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봉차질항중숙시야음유질하시)
다봊 마을에 잘 밤 있사오리까
◆ 이 노래는 8구체 향가이며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2 효소왕(孝昭王)대 죽지랑(竹㫖郎) 조에 실려 있으며, 삼국통일에 공이 큰 죽지랑을 사모하여 그의 낭도인 득오(일명 득오곡)가 지었다고 한다.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의 이름은 양주동(梁柱東)이 칭하였는데, 처음에는 일본 학자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가 「득오곡모랑가(得烏谷慕郎歌)」라 이름을 지었고, 김사엽(金思燁)은 「죽지랑가」 등으로 불렀다.
◎ 1. 삼국유사(三國遺事) 역
去隱春皆理米,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皃史年数就音墮支行齊.
目煙迴扵尸七史伊衣,
逢烏支惡知乎下是.
郎也慕理尸心未行乎尸道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간 봄 그리워하매
못 살으사 울어 설워하더이다
애닯음 나토시던 모습이
해 거듭하는 즈음에 가이더이다
눈 돌이킬 새
만나 뵙기 어찌 지으오리까
낭이여, 그리는 마음에 가올 길
다봊 마을에 잘 밤 있사오리까
◎ 2. 양주동 역
간 봄을 그리워함에
모든 것이 서러워 시름하는구나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 지으려고 하는구나
눈 깜박할 사이에
만나 뵈올 기회를 지으리이다.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에,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인들 있으리이까.
◎ 3. 김완진 역
지나간 봄 돌아오지 못하니
살아계시지 못하여 우올 이 시름.
전각(殿閣)을 밝히오신
모습이 해가 갈수록 헐어 가도다.
눈의 돌음 없이 저를
만나보기 어찌 이루리.
낭 그리는 마음의 모습이 가는 길
다복 굴헝(다북쑥이 우거진 무덤)에서 잘 밤 있으리.
▣『삼국유사(三國遺事)』
三國遺事 卷 第二
紀異第二 孝昭王代竹㫖郎 죽지랑의 신이한 탄생담
初述宗公爲朔州都督使将歸理校勘所, 時三韓兵乱以騎兵三千護送之. 行至竹㫖嶺, 有一居士平理其嶺路. 公見之歎羙, 居士亦善公之威勢赫甚相感扵心. 公赴州理校勘隔一朔夢見居士入于房中, 室家同夢. 驚恠尤校勘甚翌日使人同校勘其居士安否. 人曰 “居士死有日矣.” 使來还告, 其死與夢同日矣. 公曰 “殆居士誕扵吾家爾.” 更發卒修葬扵嶺上北峯, 造石彌勒一軀安扵塜前. 妻氏自夢之日有娠既誕因名竹㫖. 壯而出仕, 與庾信公爲副帥統三韓, 真徳·太校勘宗·文武·神文四代爲冡宰安定厥邦. 初得烏谷慕郎而作
歌曰.
去隱春皆理米,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皃史年数就音墮支行齊.
目煙迴扵尸七史伊衣,
逢烏支惡知乎下是.
郎也慕理尸心未行乎尸道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이전에 술종공(述宗公)이 삭주도독사(朔州都督使)가 되어 장차 임지로 가려 하는데, 이때 삼한에 병란이 있었으므로 기병 3천 명으로 그를 호송하였다. 일행이 죽지령(竹旨嶺)에 이르렀을 때, 한 거사가 그 고갯길을 닦고 있었다. 공은 이를 보고 찬탄하였고, 거사 또한 공의 위세가 성함을 존대하여 서로 마음에 감동되었다. 공이 주의 치소에 부임한 지 한 달이 되던 때 꿈에 거사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 더욱 놀라고 괴이히 여겨 이튿날 사람을 보내 그 거사의 안부를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거사가 죽은 지 며칠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사자가 돌아와서 그 사실을 아뢰었는데, 그가 죽은 날이 꿈꾸던 바로 그날이었다. 공이 말하기를, “아마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군사를 보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지내고, 돌로 미륵불 한 구를 만들어 무덤 앞에 봉안하였다. 부인은 꿈을 꾼 날로부터 태기가 있더니 아이를 낳자 이름을 죽지(竹旨)라고 하였다. 장성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부수(副帥)가 되어 유신공과 함께 삼한을 통일하였고, 진덕(眞德)·태종(太宗)·문무(文武)·신문(神文)의 4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처음에 득오(得烏)곡이 낭[竹㫖]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었는데 노래는 이렇다.
간 봄 그리워하매
못 살으사 울어 설워하더이다
애닯음 나토시던 모습이
해 거듭하는 즈음에 가이더이다
눈 돌이킬 새
만나 뵙기 어찌 지으오리까
낭이여, 그리는 마음에 가올 길
다봊 마을에 잘 밤 있사오리까
▣ 보국사지(輔國寺址) 미륵상
보국사(輔國寺) 터는 죽령 마루턱 용부원리에 있는데 절은 폐사가 되고 미륵석불 만 그 터에 남아있다. 삼국유사 권2에 효소왕대(孝昭王代, 692~702) 죽지랑조에 보면 술종공(述宗公)이 죽지령(竹旨嶺, 죽령)을 넘을적에 죽령 길을 딱는 거사에 감탄하였는데 그가 죽은 뒤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지내고, 돌로 미륵불 한 구(軀)를 만들어 무덤 앞에 봉안하였다.
◎ 보국사지(輔國寺址)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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