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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향가(新羅鄕歌)

통일신라시대 때 성행하다가 말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고려 초까지 존재하였던 한국 고유의 정형시가(定型詩歌)이다.

순수한 우리 글로 표현되지 못하고 향찰(鄕札) 및 이두(吏讀), 즉 한자(漢字)의 음(:소리)과 훈(:새김)을 빌어서 표기되었으며, 삼국유사 14, 균여전 11수 도합 25수가 전해지고 있다

 

서동요(薯童謠)

- 서동(薯童) -

 

善化公主主隱 

(선화공주주은)

他密只嫁良置古

(타밀지가량치고)

薯童房乙夜矣

(서동방을야의)

卯乙抱遣去如

(유을포견거여)

선화(善化)공주 님은

남 몰래 새 서방 두고

서동(薯童)의 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는 가요?

 

 

善化(인칭) 公主(공주) ()()

선화공주 님은

()(은밀)() (시집갈 가)(남편)(둘 치)()

남 몰래 시집갈 서방 두고

薯童(인칭)(방 방)() (밤 야)()

서동의 방을 밤에

()() (안을 포)() ()()

몰래 안고 가는 가요?

 

 

 서동요(薯童謠)

 이 노래는 삼국유사 기이(紀異) 2 무왕(武王)조에 수록되어 있는 서동설화(薯童說話)에 끼어 전하는 향가(鄕歌)이다.

 

 이 노래는 백제 무왕이 소년시절에 서동으로서 신라 서울에 들어가 선화공주를 얻으려고 지어 부르게 되었다라고 하는데, 이 노래는 민담 이므로, 그 주인공 서동이나 선화공주는 백성들이 부르는 민요의 대상일 뿐 특정한 사람의 이름일 수는 없다. 따라서 누구도 이 노래의 작자가 될 수 없는 민담의 민요이다.

향가(鄕歌)는 삼국시대 말기부터 고려 초까지 존속하였으며 순수한 우리 글로 표현되지 못하고 향찰(鄕札) 및 이두(吏讀), 곧 한자(漢字)의 음[소리]과 훈(:새김)을 빌어서 표기된 한국 고유 정형시가(定型詩歌)이며, 향가라는 명칭은 삼국사기 11 삼국유사 5, 균여전(均如傳) 등의 문헌에서 발견되며 중국의 시가() 대비한 한국의 노래[향가(鄕歌)3]란 뜻이다.

 

 서동요(薯童謠)의 여러 견해

1. 배경 설화를 받아들여 '무왕의 이야기'로 본다.

2. 서동을 백제 동성왕의 이름으로 보고, 동성왕의 이야기'로 본다.

3. 미륵사의 연기설화(緣起說話)의 근거로, 미륵사를 신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퍼뜨린 것으로 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紀異第二 武王: 서동이 노래로 선화공주를 얻다

 

聞新羅真平王第三公主善花 一作善化羙艶無雙, 剃髮來京師. 以薯蕷餉閭里羣童, 羣童親附之. 乃作謡誘羣童而唱之云.

善化公主主隠,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夜矣, 卵乙抱遣去如.

童謡滿京逹扵宫禁, 百官極諌竄流公主扵逺方. 将行, 王后以純金一斗贈行. 公主將至竄所, 薯童出拜途中將欲侍衛而行. 公主雖不識其從來, 偶爾信恱. 因此隨行潛通焉. 然後知薯童名, 乃信童謡之驗.

신라 진평왕(眞平王, 26대 왕 579~632)의 셋째공주 선화(善花) 혹은 선화(善化)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로 갔다.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노래를 지어 여러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니 그것은 이러하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새 서방 두고

서동의 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는 가요?

동요가 서울에 가득 퍼져서 대궐 안에까지 들리자 백관(百官)들이 임금에게 극력 간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보내게 했다. 장차 떠나려 하는 데 왕후(王后)는 순금 한 말을 주어 노자로 쓰게 했다. 공주가 장차 귀양지에 도착하려는데 서동이 도중에 나와 절하면서 장차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공주는 비록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우연히 믿고 좋아했다. 이로 말미암아 서동을 따라가면서 몰래 정을 통하였다. 그런 뒤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았고, 동요의 영험을 믿었다.

 

▣ 『삼국유사에 수록된 신라 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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