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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좌전(春秋 左傳)』

『춘추』는 본래 노나라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궁정 연대기(宮廷年代記)였는데, 여기에 공자(孔子)가 필삭(筆削)을 하여 지었으며, 춘추시대 은공(隱公) 원년(BC 722)에서 애공(哀公) 14년(481)까지 242년간의 제후국인 노(魯)나라의 편년체(編年體) 역사서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은 공자와 동시대 인물인 좌구명(左丘明)이 『춘추』에 전(傳)을 붙여 지은 주석서인데 명칭을 「좌씨춘추」(左氏春秋), 「좌전」(左傳)이라고도 한다.

 

◎ 『춘추좌전』 주역 점[시초筮] 사례

1) 장공(莊公) 22년, B.C 672

《觀》之《否》: 陳侯使筮之,遇《觀》之《否》

2) 민공(閔公) 원년, B.C 661

《屯》之《比》 : 畢萬筮仕於晉, 遇 屯之比

3) 민공(閔公) 2년, B.C 660

⇒《大有》之《》 : 筮之, 遇 大有之乾

4) 희공(僖公) 15년, B.C 645

⇒《 : 卦遇蠱 : 卜徒父筮之, 其卦遇蠱

5) 희공(僖公) 15년, B.C 645

⇒《歸妹之《睽 : 晉獻公筮嫁伯姬於秦, 遇歸妹之睽

6) 희공(僖公) 25년, B.C 635

⇒《大有之《睽 : 筮之, 遇大有之睽

7) 선공(宣公) 6년, B.C 603

《豐》之《離》 : 其在周易豐之離

8) 선공(宣公) 12년, B.C 597

《師》之《臨》 : 周易有之, 在師之臨

9) 성공(成公) 16년, B.C 575

⇒《》 : 公筮之. 史曰, “吉. 其卦遇復

10) 양공(襄公) 9년, B.C 564

⇒《之《隨 : 筮之, 遇艮之八.史曰, "是謂艮之隨"

11) 양공(襄公) 25년, B.C 548

⇒《之《大過 : 武子筮之, 遇困之大過

12) 양공(襄公) 28년, B.C 545

《復》之《頤》 : 周易有之, 在復之頤

13) 소공(昭公) 원년, B.C 541

《蠱》 : 在周易, 女惑男、風落山謂之蠱

14) 소공(昭公) 5년, B.C 537

明夷之《謙: 遇明夷之謙

15) 소공(昭公) 7년, B.C 535

之《比: 遇屯之比

16) 소공(昭公) 12년, B.C 530

之《比: 遇坤之比

17) 소공(昭公) 29년, B.C 513

《乾》과《坤》괘를 인용함

18) 소공(昭公) 32년, B.C 510

《大壯》 : 在易卦雷乘乾曰大壯

19) 애공(哀公) 9년, B.C 486

》之《》: 遇泰之需

춘추좌전의 주역 점 기록은 열아홉 번의 사례가 있는데 장공(莊公) 22년이 최초의 주역[시초]점 사례이며 열아홉 번 중에 6건(7,8,12,13,17,18)은 실제 점을 친것이 아니고 단지 주역을 인용하여 교훈으로 삼은 사례이다.

 

 

1.『춘추좌전』주역점(周易占) 사례

⇒《觀》之《否》: 陳侯使筮之,遇《觀》之《否》

◪ 《觀》卦의 六四 爻辭로 풀었다.

六四,觀國之光,利用賓于王。

육사(六四)는 나라의 빛남을 봄이니, 왕에게 손님이 되도록 해야 이롭다.

 

◎ 춘추좌전 장공(莊公) 22年

莊, 二十二年春,陳人殺其大子禦寇,陳公子完與顓孫奔齊。顓孫自齊來奔。

齊侯使敬仲為卿。辭曰:「羈旅之臣,幸若獲宥,及於寬政,赦其不閑於教訓而免於罪戾,弛於負擔,君之惠也,所獲多矣。敢辱高位,以速官謗。請以死告。《詩》云:『翹翹車乘,招我以弓,豈不欲往,畏我友朋。』」使為工正。

飲桓公酒,樂。公曰:「以火繼之。」辭曰:「臣卜其晝,未卜其夜,不敢。」君子曰:「酒以成禮,不繼以淫,義也。以君成禮,弗納於淫,仁也。」

初,懿氏卜妻敬仲,其妻占之,曰:「吉,是謂『鳳皇於飛,和鳴鏘鏘,有媯之後,將育于薑。五世其昌,並於正卿。八世之後,莫之與京。』」陳厲 公,蔡出也。故蔡人殺五父而立之,生敬仲。其少也。周史有以《周易》見陳侯者,陳侯使筮之,遇《觀》之《否》。曰:「是謂『觀國之光,利用賓于王。』代陳 有國乎。不在此,其在異國;非此其身,在其子孫。光,遠而自他有耀者也。《坤》,土也。《巽》,風也。《乾》,天也。風為天於土上,山也。有山之材而照之 以天光,於是乎居土上,故曰:『觀國之光,利用賓于王。』庭實旅百,奉之以玉帛,天地之美具焉,故曰:『利用賓于王。』猶有觀焉,故曰其在後乎。風行而著 於土,故曰其在異國乎。若在異國,必姜姓也。姜,大嶽之後也。山嶽則配天,物莫能兩大。陳衰,此其昌乎。」

及陳之初亡也,陳桓子始大於齊。其後亡成,成子得政。

장공 22년 봄에 진(陳)나라 사람이 그 태자(太子) 어구(御寇)를 죽이니 진(陳)나라 공자(公子) 완(完)이 전손(顓孫)과 함께 제(齊)나라로 도망했는데, 전손(顓孫)은 제(齊)나라에서 [노魯나라로] 도망해 왔다.

제(齊)나라 군주[侯]가 경중(敬仲)을 경(卿)으로 삼으려 하니, 사양하며 말하기를 “나그네로 객지(客地)살이 하는 신(臣)이 다행히 너그러움을 얻은 듯하고 너그러운 정치에 힘입어, 교훈에 익숙하지 않은데 용서해 주시면서 어그러진 죄를 면해주시고 짊어진 부담을 풀어주시니 군주의 은혜입니다. 얻은 바가 많은데, 감히 높은 자리를 욕되게 하며 그로써 관리들의 비방을 부릅니다. 청하건데 죽음으로써 고합니다.

시(詩)》에 말하기를 ‘깃대 높은 수레를 타고 활로서 나를 부르는데 어찌 가고 싶지 않으랴마는 내 친구들이 [조롱할까] 두렵다네.'라고 하였습니다. [환공이] 그를 공정(工正)으로 삼았다.

[경중이 베푼 주연(酒宴)에] 환공(桓公)이 술을 마시고 즐거워하며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불을 밝히고 계속 마시자.”고 하니, [경중이] 사양하기를 “신(臣)은 그 낮에 [모시는 것은] 점쳤지만 밤에 모실 것은 점치지 않았으니, 감히 [모시지] 못하겠습니다.”고 하였다.

군자(君子)가 [평하여] 말하기를 “술로써 예(禮)를 이루었는데 탐(貪)하여 계속하지 않았음은 의(義)이고, 군주를 모시고서 예(禮)를 이루는데 지나침에 들지 않았음은 인(仁)이다.”고 했다.

당초에 의씨(懿氏)가 경중(敬仲)을 사위 삼으려고 점칠 적에 그의 아내가 점을 치고서 말하기를 “길(吉)하다. 이[점괘(占卦)]가 일컫기를 ‘봉황(鳳凰)이 날으며 어우러져 우는소리 짱짱하게 맑도다. 규씨(嬀氏)의 후손이 장차 강성(姜姓)에서 길러져 5代에는 번창하여 정경(正卿)과 견주어지고, 8대 뒤에는 [벼슬을] 견주어서 더 높은 이가 없게 된다.’고 했다."라고 하였다.

진(陳)나라 여공(厲公)은 채(蔡)나라 출신이다. 그래서 채나라 사람들이 오보(五父)를 죽이고 그[여공]를 옹립했는데 경중(敬仲)을 낳았다. 그[경중]가 어릴적에 주(周)나라 사관(周史)이《주역(周易)》을 가지고 진(陳)나라 군주[候]를 접견하려는 자가 있었는데, 진(陳)나라 군주[候]가 시초점을 치게하여 관괘(觀卦, ☴☷)가 비괘(否卦, ☰☷)로 변한 괘(卦)를 만났다.

[사관이] 말하기를 "이 점괘에 ‘나라의 빛남을 보니 왕의 손님 되기에 이롭다.’고 한다.”라고 하였으며, 이[사람]는 그 진(陳)나라를 대신하여 나라를 갖게 되는데, 이곳에 있는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있을 것이며, 이는 그 자신 아니라 그 자손에게 있을 것입니다.

빛[光]은 멀리 있으며 다른데서 부터 빛남이 있는 것입니다. 곤(坤)은 땅이고 손(巽)은 바람이며 건(乾)은 하늘인데, 바람[風]은 땅 위에서 하늘[天]이 되었으니 산(山)입니다. 산(山)은 재목이 있으면서, 하늘[天]의 빛으로써 비추어 주고 이에 사는데가 땅 위이기 때문에 말하기를 ‘나라의 빛남을 보니 왕의 손님 되기에 이롭다.’고 하였고, 뜰에 나그네[빈객]를 가득 채우고 옥백(玉帛)으로써 받들며, 그곳에 천지(天地)의 아름다움을 모두 구비(具備)하였기 때문에 말하기를 ‘왕의 손님 되기에 이롭다.’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그곳에는 관(觀)이 있기 때문에 말하기를 ‘그 후손(後孫)에게 있을 것이다.’고 하였고, 바람은 다니다가 땅에 나타나기 때문에 말하기를 ‘다른 나라에서 있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다른 나라에 있다면 반드시 강성(姜姓) 일 것입니다. 강성(姜姓)은 태악(太嶽)의 후손이니 산악(山嶽)은 곧 하늘에 짝하는데 사물은 두 개가 잘 클 수 없으니, 진(陳)나라가 쇠(衰)하여야 이 그[후손]가 창성(昌盛)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진(陳)나라가 처음 망함에 미쳐서 진(陳)나라 환자(桓子)가 비로소 제(齊)나라에서 강대(强大)해졌고, 그 뒤 [진나라가] 망하고 이루었으며 성자(成子)가 제(齊)나라의 정권(政權)을 잡았다.

 

 

1. 주역점(周易占) 사례

진(陳)나라 여공(厲公)의 아들 완(完)의 시호(諡號)는 경중(敬仲)인데 제(齊)나라 환공(桓公)14년에 여공의 아들 완(完)이 난을 피해 제나라로 도망쳐 왔다. 제나라 환공이 그를 경(卿)으로 삼고자 했으나 굳이 사양함으로 이에 공정(工正)으로 삼아서 환공의 신하가 되었다. 아래 주역점은 여공의 아들 경중(敬仲)의 어릴때 기록이다.

 

◎ 춘추좌전 장공(莊公) 22年[bc 672]

[左傳] 莊公, 二十二年春,陳人殺其大子禦寇,陳公子完與顓孫奔齊。顓孫自齊來奔。<장공 22년 봄에 진(陳)나라 사람이 그 태자(太子) 어구(御寇)를 죽이니 진(陳)나라 공자(公子) 완(完)이 전손(顓孫)과 함께 제(齊)나라로 도망했는데, 전손(顓孫)은 제(齊)나라에서 [노魯나라로] 도망해 왔다.>

齊侯使敬仲為卿。辭曰:「羈旅之臣,幸若獲宥,及於寬政,赦其不閑於教訓而免於罪戾,弛於負擔,君之惠也,所獲多矣。敢辱高位,以速官謗。請以死告。<제(齊)나라 군주[侯]가 경중(敬仲)을 경(卿)으로 삼으려 하니, 사양하며 말하기를 “나그네로 객지(客地)살이 하는 신(臣)이 다행히 너그러움을 얻은 듯하고 너그러운 정치에 힘입어, 교훈에 익숙하지 않은데 용서해 주시면서 어그러진 죄를 면해주시고 짊어진 부담을 풀어주시니 군주의 은혜입니다. 얻은 바가 많은데, 감히 높은 자리를 욕되게 하며 그로써 관리들의 비방을 부릅니다. 청하건데 죽음으로써 고합니다.>

《詩》云:『翹翹車乘,招我以弓,豈不欲往,畏我友朋。』」使為工正。<시(詩)》에 말하기를 ‘깃대 높은 수레를 타고 활로서 나를 부르는데 어찌 가고 싶지 않으랴마는 내 친구들이 [조롱할까] 두렵다네.'라고 하였습니다. [환공이] 그를 공정(工正)으로 삼았다.>

飲桓公酒,樂。公曰:「以火繼之。」辭曰:「臣卜其晝,未卜其夜,不敢。」<[경중이 베푼 주연(酒宴)에] 환공(桓公)이 술을 마시고 즐거워하며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불을 밝히고 계속 마시자.”고 하니, [경중이] 사양하기를 “신(臣)은 그 낮에 [모시는 것은] 점쳤지만 밤에 모실 것은 점치지 않았으니, 감히 [모시지] 못하겠습니다.”고 하였다.>

君子曰:「酒以成禮,不繼以淫,義也。以君成禮,弗納於淫,仁也。」<군자(君子)가 [평하여] 말하기를 “술로써 예(禮)를 이루었는데 탐(貪)하여 계속하지 않았음은 의(義)이고, 군주를 모시고서 예(禮)를 이루는데 지나침에 들지 않았음은 인(仁)이다.”고 했다.>

初,懿氏卜妻敬仲,其妻占之,曰:「吉,是謂『鳳皇於飛,和鳴鏘鏘,有媯之後,將育于薑。五世其昌,並於正卿。八世之後,莫之與京。』」 <당초에 의씨(懿氏)가 경중(敬仲)을 사위 삼으려고 점칠 적에 그의 아내가 점을 치고서 말하기를 “길(吉)하다. 이[점괘(占卦)]가 일컫기를 ‘봉황(鳳凰)이 날으며 어우러져 우는소리 짱짱하게 맑도다. 규씨(嬀氏)의 후손이 장차 강성(姜姓)에서 길러져 5代에는 번창하여 정경(正卿)과 견주어지고, 8대 뒤에는 [벼슬을] 견주어서 더 높은 이가 없게 된다.’고 했다."라고 하였다.>

陳厲公,蔡出也。故蔡人殺五父而立之,生敬仲。其少也。周史有以《周易》見陳侯者,陳侯使筮之,遇《觀》之《否》。<진(陳)나라 여공(厲公)은 채(蔡)나라 출신이다. 그래서 채나라 사람들이 오보(五父)를 죽이고 그[여공]를 옹립했는데 경중(敬仲)을 낳았다. 그[경중]가 어릴적에 주(周)나라 사관(周史)이《주역(周易)》을 가지고 진(陳)나라 군주[候]를 접견하려는 자가 있었는데, 진(陳)나라 군주[候]가 시초점을 치게하여 관괘(觀卦, ☴☷)가 비괘(否卦, ☰☷)로 변한 괘(卦)를 만났다.>

曰:「是謂『觀國之光,利用賓于王。』代陳 有國乎。不在此,其在異國;非此其身,在其子孫。<[사관이] 말하기를 "이 점괘에 ‘나라의 빛남을 보니 왕의 손님 되기에 이롭다.’고 한다.”라고 하였으며, 이[사람]는 그 진(陳)나라를 대신하여 나라를 갖게 되는데, 이곳에 있는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있을 것이며, 이는 그 자신 아니라 그 자손에게 있을 것입니다.>

光,遠而自他有耀者也。《坤》,土也。《巽》,風也。《乾》,天也。風為天於土上,山也。有山之材而照之 以天光,於是乎居土上,故曰:『觀國之光,利用賓于王。』庭實旅百,奉之以玉帛,天地之美具焉,故曰:『利用賓于王。』猶有觀焉,故曰其在後乎。風行而著 於土,故曰其在異國乎。<빛[光]은 멀리 있으며 다른데서 부터 빛남이 있는 것입니다. 곤(坤)은 땅이고 손(巽)은 바람이며 건(乾)은 하늘인데, 바람[風]은 땅 위에서 하늘[天]이 되었으니 산(山)입니다. 산(山)은 재목이 있으면서, 하늘[天]의 빛으로써 비추어 주고 이에 사는데가 땅 위이기 때문에 말하기를 ‘나라의 빛남을 보니 왕의 손님 되기에 이롭다.’고 하였고, 뜰에 나그네[빈객]를 가득 채우고 옥백(玉帛)으로써 받들며, 그곳에 천지(天地)의 아름다움을 모두 구비(具備)하였기 때문에 말하기를 ‘왕의 손님 되기에 이롭다.’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그곳에는 관(觀)이 있기 때문에 말하기를 ‘그 후손(後孫)에게 있을 것이다.’고 하였고, 바람은 다니다가 땅에 나타나기 때문에 말하기를 ‘다른 나라에서 있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若在異國,必姜姓也。姜,大嶽之後也。山嶽則配天,物莫能兩大。陳衰,此其昌乎。」 <만약 다른 나라에 있다면 반드시 강성(姜姓) 일 것입니다. 강성(姜姓)은 태악(太嶽)의 후손이니 산악(山嶽)은 곧 하늘에 짝하는데 사물은 두 개가 잘 클 수 없으니, 진(陳)나라가 쇠(衰)하여야 이 그[후손]가 창성(昌盛)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及陳之初亡也,陳桓子始大於齊。其後亡成,成子得政。<진(陳)나라가 처음 망함에 미쳐서 진(陳)나라 환자(桓子)가 비로소 제(齊)나라에서 강대(强大)해졌고, 그 뒤 [진나라가] 망하고 이루었으며 성자(成子)가 제(齊)나라의 정권(政權)을 잡았다.>

【石潭 案】 : 점(占)은 진(陳)나라 여공(厲公)이 늦게 아들 완(完, 諡號:敬仲)을 얻었는데 주 왕실의 태사(太史)가 진나라를 방문하자 아들의 운명에 대해 점 쳐 줄 것을 부탁해서 얻은 점괘가 《관》之《비》괘 이며, 그 경중(敬仲)의 후손이 나중에 진(陳)씨에서 전(田)씨로 성을 바꾸어 제(齊)나라를 찬탈하는 전성자(田成子)이다.

 

 

◎ 《觀》之《否》괘

ㅡ 최초의 주역점[筮] 사례이다.

『춘추좌전』 장공 22년(bc 672)의 기록에 처음으로 주역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때의 주역은 경문(經文) 만 있고 전문[傳文, 10翼]은 없을 때이다.

 

20. 관괘(觀卦)[卦象:풍지관]

☴ 巽上

☷ 坤下

곤[地.땅]이 아래에 있고, 손[風.바람]이 위에 있다.

 

【卦辭(괘사)】

觀 盥而不薦 有孚 顒若.

보는[觀]데, [강신재(降神祭)]에 손을 씻었으면 음식을 올리지 않아도 우뚝함과 같아서 믿음이 있다.

 

【爻辭(효사)】 주공作

六四,觀國之光,利用賓于王。

육사(六四)는 나라의 빛남을 봄이니, 왕에게 손님이 되도록 해야 이롭다.

 

12. 비괘(否卦)[卦象:천지비]

☰ 乾上

☷ 坤下

곤[地.땅]이 아래에 있고, 건[天.하늘]이 위에 있다.

 

【卦辭(괘사)】

否之匪人。不利君子貞,大往小來。

비(否)는, 막히는 사람이 아니므로, 군자가 곧으면 크게 가고 작게 와서 이롭지 않다.

 

◆ 곤(坤)은 땅이고 손(巽)은 바람이며 건(乾)은 하늘인데, 바람[風]은 땅 위에서 하늘[天]이 되었으니 산(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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