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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詩經)/2.毛詩正義[공영달]

◎ 시경(詩經) 211. 보전(甫田, 넓은 밭이여)/毛詩正義(공영달)

by 석담 김한희 202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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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

≪소아(小雅) 제6 보전지습(甫田之什)≫

◎ 211. 보전(甫田, 넓은 밭이여)

倬彼甫田、歲取十千。

(탁피보전, 세취십천)

크고 저 넓은 밭에서 해마다 만여 석을 받아들이네

我取其陳、食我農人、自古有年。

(아취기진, 식아농인, 자고유년)

묵은 곡식 가져다가 우리 농민을 먹이니 예부터 풍년이 드네

今適南畝、或耘或耔、黍稷薿薿。

(금적남무, 혹운증자, 서직의의)

이제 남쪽 밭에 나가 김매고 북돋우니 메기장 차기장이 무성하네

攸介攸止、烝我髦士。

(유개유지, 증아모사)

경계의 처소와 쉬는 곳에서 훌륭한 관리를 만나네

以我齊明、與我犧羊、以社以方。

(이아제명, 여아희양, 이사이방)

가득 담은 제삿밥과 희생 양으로 토지신과 사방에 제사지내네

我田既臧、農夫之慶。

(아전기장, 농부지경)

우리 밭은 농사가 잘되니 농부들의 경사라네

琴瑟擊鼓、以御田祖。

(금슬격고, 이어전조)

금슬 뜯고 북을 치며 밭의 신을 맞아들이네

以祈甘雨、以介我稷黍、以穀我士女。

(이기감우, 이개아직서, 이곡아사녀)

단비를 빌고 경계에 기장을 심어서 관리와 여자들이 먹는다

曾孫來止、以其婦子、饁彼南畝。

(증손내지, 이기부자, 엽피남무)

후손들이 오시자 그 부녀자들이 저 남쪽 밭에 밥을 내가네

田畯至喜 攘其左右、嘗其旨否。

(전준지희, 양기좌우, 상기지부)

권농관이 크게 기뻐하며 좌우에 보내서 어떤가 맛을 보네

禾易長畝、終善且有。

(채역장무, 종선차유)

벼가 자라서 밭에 가득하니 마침내 농사가 풍성하네

曾孫不怒、農夫克敏。

(증손부노, 농부극민)

후손들은 성내지 않고 농부들은 열심히 일하네

曾孫之稼、如茨如梁。

(증손지가, 여자여량)

후손들의 곡식이 지붕처럼 다리처럼 쌓였다네

曾孫之庾、如坻如京。

(증손지유, 여지여경)

후손들의 노적가리 언덕처럼 산처럼 쌓였구나

乃求千斯倉、乃求萬斯箱。

(내구천사창, 내구만사상)

이에 창고 천 개 구하고 수레 만 개를 구하네

黍稷稻梁、農夫之慶。

(서직도량, 농부지경)

기장과 피 벼와 수수 모두 농부들의 경사라네

報以介福、萬壽無疆。

(보이개복, 만수무강)

큰 복을 내려 보답 받으니 만수무강 하시겠네

​《甫田》 四章,章十句。

◎ 《모시정의(毛詩正義)》

ㅡ 한()나라 毛亨傳 鄭玄箋, 당()나라 孔穎達疏.

한()나라 모형(毛亨)이 『시경(詩經)』에 전()을 짓고 정현(鄭玄)이 전()을 붙였으며 당()나라 공영달(孔穎達)이 소()를 지어 모시정의(毛詩正義)를 완성 하였다.

 

甫田》,刺幽王也君子傷今而思古焉。(刺者刺其倉廩空虛政煩賦重農人失職。)

 

毛詩 】 《甫田》,刺幽王也君子傷今而思古焉

【모시 서】 《보전(甫田)》은 유왕(幽王)을 풍자한 시()이다. 군자가 지금 옛날을 생각하면서 애달파함이다.

鄭玄 刺者刺其倉廩空虛政煩賦重農人失職

【정현 서】 자()라는 것은, 그 창고가 텅 비었으며 정사가 번거롭고 세금이 무거워 농민들이 직을 잃었음을 풍자한 것이다.

疏《甫田》四章,章十句。○箋「刺者」至 「失職」。○正義曰:經言成王庾稼,千倉萬箱,是倉廩實,反明幽王之時,倉廩虛也。言適彼南畝,耘耔黍稷,是農人得職,反明幽王之時,農人失職也。政煩賦重,《楚茨序》文。次四篇文勢大同,此及下篇箋皆引之,言由政煩賦重,故農人失其常職也。若然,賦重則倉應實,倉虛則賦應輕,而同刺之者,以王貪而無藝,故賦重用而無節,故倉虛。由倉虛而賦更重,以賦重而民逃散。農人失職,由政煩賦重所致。其倉虛,則別有費散,不由賦重,故箋先言倉廩虛,則言政煩賦重也。

 

倬彼甫田、歲取十千。

(탁피보전, 세취십천)

크고 저 넓은 밭에서 해마다 만여 석을 받아들이네

【毛亨 傳】 倬,明貌。甫田,謂天下田也。十千,言多也。

【모형 전】 탁(倬: 클 탁)은 밝은 모양이다. 보전(甫田)은 천하의 밭을 말하는 것이다. 십천(十千)은 많은 것을 말함이다.

【鄭玄 箋】 箋云:甫之言丈夫也。明乎彼大古之時,以丈夫稅田也。歲取十千,於井田之法,則一成之數也。九夫爲井,井稅一夫,其田百畝。井十爲通,通稅十夫,其田千畝。通十爲成,成方十里,成稅百夫,其田萬畝。欲見其數,從井、通起,故言十千。上地穀畝一鍾。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보(甫)는 장부(丈夫)를 말함이다. 저 태고(大古)의 시대이며 그로써 장부의 세전(稅田)을 밝힘이다. 해마다 많이 거두니, 정전법(井田法)에는 일 성(成≒方十里爲成)의 수이다. 부(夫≒畝百爲夫) 아홉이 정(井)이 되고 정(井)은 한 부(夫)에서 세금을 거두며 부(夫)는 밭이 100묘(畝)이다. 십 정(井)이 통(通)이 되고 통(通)은 십 부(夫)에서 세금을 거두며 통(通)은 밭이 천묘(千畝)이다. 십 통(通)이 성(成)이 되고 성(成)은 백 부(夫)에서 세금을 거두며 성(成)은 밭이 만묘(萬畝)이다. 그 수를 보고자 하면 정전법(井田法)에 따라 통하여 합하기 때문에 십천(十千)이라고 말했다. 땅 위의 곡식[穀]과 이랑[穀]은 하나의 단위(單位)이다.”라고 하였다.

我取其陳、食我農人、自古有年。

(아취기진, 식아농인, 자고유년)

묵은 곡식 가져다가 우리 농민을 먹이니 예부터 풍년이 드네

【毛亨 傳】 尊者食新,農夫食陳。

【모형 전】 웃어른이 새 곡식을 먹고 농부는 묵은 곡식을 먹는다.

【鄭玄 箋】 箋云:倉廩有餘,民得賒貰取食之,所以紓官之蓄滯,亦使民愛存新穀。自古者豐年之法如此。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창고에 여유가 있으면 백성들이 백성들이 세를 빌리고 먹고살 수 있으니, 이 때문에 관아의 곡식이 적체되는 것을 느슨히 하고, 또한 백성을 사랑하고 햇 곡식을 보존하도록 한다. 예로부터 풍년의 법은 이와 같았다.”라고 하였다.

今適南畝、或耘或耔、黍稷薿薿。

(금적남무, 혹운증자, 서직의의)

이제 남쪽 밭에 나가 김매고 북돋우니 메기장 차기장이 무성하네

【毛亨 傳】 耘,除草也。耔,雍本也。

【모형 전】 운(耘: 김맬 운)은 풀을 제거함이다. 옹(耔: 북 돋울 자)은 뿌리[本]를 북 돋움이다.

【鄭玄 箋】 箋云:今者,今成王之法也。使農人之南畝,治其禾稼,功至力盡,則薿薿然而茂盛。於古言稅法,今言治田,互辭。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금(今)이라는 것은, 지금 성왕(成王)의 법이다. 농부들이 남쪽 밭에 곡식을 수확하도록 하는데 공이 지극하고 힘이 다하면 매우 우거져서 무성(茂盛)해 진다. 옛날 세법(稅法)을 말하고 지금 밭 농사를 말함은 호응(呼應)하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攸介攸止、烝我髦士。

(유개유지, 증아모사)

경계의 처소와 쉬는 곳에서 훌륭한 관리를 만나네

【毛亨 傳】 烝,進。髦,俊也。治田得穀,俊士以進。

【모형 전】 증(烝: 김 오를 증)은 나아감이고, 모(髦: 다팔머리 모)는 준수(俊秀)함이다. 밭을 다스려 곡식을 얻어서 훌륭한 관리를 그로써 만남이다.

【鄭玄 箋】 箋云:介,舍也。禮,使民鋤作耘耔,閒暇則於廬舍及所止息之處,以道藝相講肄,以進其爲俊士之行。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개(介≒畍)는 집이다. 예(禮)에 백성으로 하여금 호미로 김 매고 북 돋우게 하는데, 한가하면 농막 집에 가서 휴식을 하는 곳에 처하며 도예(道藝)를 가지고 서로 외우고 익히며 그로써 뛰어난 관리가 되는 행실에 나아간다.”라고 하였다.

疏「倬彼」至 「髦士」。○毛以為,倬然明大者,彼古太平之時,天下之大田也。一歲之收,乃取十千。以其天下皆豐,故不係之於夫井,不限之於鬥斛,要言多取田畝之收,舉十千多數而已。以其大熟如此,故詩人雲:我取其陳者以食農人,使一家之內尊老得食其新粟,卑稚食其陳粟。是為老壯之別,孝養之義也。自古太平有豐年,其時如此。故今成王之時,亦奉而修之。其萬民適彼南畝之內,或耘除草木,或擁其根本,功至力盡,故令黍稷得薿薿然而茂盛。收獲既多,國用充足,所以成大功,所以自安止,又得進我民人成為髦俊之士。由倉廩實,知禮節,故豐年多獲,髦士所以得進也。而幽王不修之,故舉以刺焉。鄭唯「今適南畝」三句同,其首尾皆異。言倬然明著者,彼太古之時,於丈夫之所稅田,一歲之中,於一成之地,取十千畝也。言賦斂不重,倉廩盈實。故於時之民,見官有餘,遂雲:我從官取其倉廩之陳者,而食我農夫之民,所以紓官之畜滯,亦使民愛存新穀,故令國以足用,下無睏乏。自古豐有之年,其法如此,故今成王之時,奉而修之。其萬民適彼南畝之中,或耘或耔,黍稷薿薿然茂盛。其農人所居廬舍,及所止息之處,閒暇則以道藝相講肄,故得進我農人,成其為俊士之行。是農人盡力而治田,上依古法而稅斂,政省賦輕,倉廩以實。今王不能然,故反以刺之。○傳「倬明」至 「言多」。○正義曰:以《雲漢》雲「倬彼雲漢」,是明貌也。言明者,疾今不能。言古之明信,故雲明也。《齊·甫田》傳曰:「甫,大也。」以言大田,故謂為天下田也。十千者,數之大成,舉其成數,故雲十千,言多也。王肅雲:「太平之時,天下皆豐,故不係之於夫井,不限之於鬥斛,要言多取田畝之收而已。」孫毓曰:「凡詩賦之作,皆總舉眾義,從多大之辭,非如記事立製,必詳度量之數。『甫田』猶下篇言『大田』耳。言歲取十千,亦猶頌雲『萬億及秭』,舉大數,且以協句。言所在有大田,皆有十千之收。推而廣之,以見天下皆豐。」此皆申述毛說也。○箋「甫之」至「畝一鍾」。○正義曰:以此意言自古有年。又雲「今適南畝」一章之內,而有古今相對。「今適南畝」,言民之治田,則「歲取十千」,宜為官之稅法。稅法而言十千,為有限之數,則不據天下,不可言大,不得與齊之。甫田同訓,故雲「甫之言丈夫也」。《穀梁傳》曰:「夫猶傳也,男子之美稱。」《士冠禮》注亦雲:「甫,丈夫之美稱。甫或作父,是為丈夫也。」《易》曰:「師貞,丈人吉。」言以禮法長於人,可倚丈也。是夫者有傳相之德而可倚丈,謂之丈夫,通天下男子之辭。《喪服》曰「丈夫婦人」是也。言明乎彼太古之時者,以此詩據幽王之時,而思古謂思成王也。成王既古矣,而雲 「今適南畝」,以成王之時為今,則古又古於成王,是為太古也。案《禮記·郊特牲》與《士冠禮》皆曰:「太古冠布,齊則緇之。」下即雲:「牟追,夏後氏之道。章甫,殷道。委貌,周道。」然則太古冠布,在三代之前,故注雲:「唐、虞以上曰太古。」然世代推移,後之仰先皆為古矣。古有遠近,其言無常,故《易》以文王為中古,《禮記》以神農為中古,各有所對,為古不同,則太古之名,亦無定限。此言太古古於成王則可,未必要唐、虞以上也。《孟子》曰:「欲重之於堯、舜,大桀、小桀。輕之於堯、舜,大貉、小貉。則什一而稅,堯、舜已然。」此論稅法而言太古,亦以太古為唐、虞,於理雖通,但什一而稅,三代皆然,據今成王所修,不必要本堯、舜。《信南山》言成王奉禹之功,則此太古蓋亦禹也。言丈夫稅田,謂於丈夫而稅其田,以治田者男子,故言於丈夫也。歲取十千,於井田之法則一成之數者,《司馬法》計之而然也。《司馬法》曰:「夫三為屋,屋三為井。」是九夫為井也。「井十為通,通十為成」,亦《司馬法》文。《孟子》雲:「請野九一而助」,謂九夫之內,與公助一夫,田有百畝,故知井稅一夫,其田百畝。從此而累計之,故知通稅千畝,成稅萬畝也。又解不言萬畝,而稱十千,意欲見其數從井、通起,故言十幹,明從井稅一夫為百畝,千是通之稅,故雲十幹以見之,而不言萬畝也。鄭以為,稅法者,亦以此十千故耳。知此為田畝者,以「十千」之文,連「甫田」之下,明取十千之田,故知田畝,非釜斛也。又解田之所收數,言上地穀畝一鍾,明時和而收多,故稅輕而用足也。《史記·河渠書》曰:「韓使水工鄭國間說秦,鑿涇水為渠,並於山東注洛三百餘裏。渠成而用溉瀉鹵之地四萬餘頃,收皆畝一鍾。」彼瀉鹵之地,灌溉之功,畝收一鍾,明太平陰陽和,風雨時,上地畝亦收一鍾也。昭三年《左傳》曰:「齊舊四量,豆、區、釜、鍾。四升為豆,各自其四,以登於釜。釜十則鍾。」是鍾容六斛四鬥也。《漢書·食貨誌》曰:「一夫治田百畝,歲收畝一碩半,為粟百五十碩。歲有上中下,上孰其收自四,中孰自三,下孰自倍。」張晏曰:「平歲百畝收百五十碩,今大孰四倍,收六百碩。」自三百五十碩,自倍三百碩。彼謂中平之地,上孰畝六碩,故本太平之上孰,上地準關中,為畝一鍾也。《孟子》言三代稅法,其實皆什一。若井稅一夫,是九稅一矣。此詩之意,刺幽王賦重,當陳古稅之輕,而言成稅萬畝,反得重於什一者,《孟子》言什一,據通率而言耳。周製有貢有助,助者九夫而稅一夫之田,貢者什一而貢一夫之穀,通之二十夫而稅二夫,是為什中稅一也,故《冬官·匠人》注廣引經傳而論之,雲:「周製畿內用夏之貢法,稅夫無公田。邦國用殷之助法製公田,不稅夫。貢者,自治其所受田,貢其稅穀;助者,借民之力,以治公田,又使收斂焉。諸侯謂之徹者,通其率以什一為正。《孟子》雲:「野九夫而稅一,國中什一。」是邦國亦異外內之法耳。是鄭解通率為什一之事也。又《孟子》雲:「滕文公使畢戰問井田,孟子對曰:『請野九一而助,國中什一使自賦。』」是鄭所引異外內之事也。《孟子》又雲:「方裏而井,井九百畝,其中為公田,八家皆私百畝,同養公田。公事畢,然後治私事,所以別野人也。」是說助法,井別一夫以入公也。言別野人者,別野人之法,使與國中不同也。《爾雅》雲:「郊外曰野。」則野人為郊外也。野人為郊外,則國中謂郊內也。郊內謂之國中者,以近國,故係國言之亦可,地在郊內,居在國中故也。助法既言百畝為公田,則使自賦者,明是自治其田,貢其稅穀也。助則九而助一,貢則什一而貢一,通率為什一也。若然,九一而助者,為九中一。知什一自賦,非什中一者,以言九一即雲而助,明九中一助也。國中言什一,乃雲使自賦,是什一之中,使自賦之,明非什中一為賦也。故鄭玄通其率,以什一為正。若什一自賦為什中賦一,則不得與九一通率為什一也。且鄭引《孟子》雲「野九夫而稅一,國中什一」,不言國中什而稅一,明是國中什一而貢一,故得通率為什一也。如鄭之言,邦國亦異外內,則諸侯郊內貢、郊外助矣。而鄭正言畿內用貢法,邦國用助法,以為諸侯皆助者,以諸侯郊內之地少,郊外助者,多故以邦國為助,對畿內之貢為異外內也。案《王製》雲:「千裏之內曰甸,其外曰采。」注雲:「取其美物以當穀稅。」又《尚書》,《鄭誌》說「貢篚」之義雲:「凡所貢篚之物,皆以稅物市之,隨時物價,以當邦賦。」然畿外諸侯不以穀入天子。此若成稅萬畝,是畿外助法,則詩說天子之事,得雲「歲取十千」者,以天子天下為家,故美其收入之多,則廣舉天下之田。若貢之天子,自可隨其所須,變為貨物,皆是稅穀市之,亦得為天子所取也。史傳說助、貢之法,唯《孟子》為明。鄭據其言,以什十而徹,為通外內之率,理則然矣。而《食貨誌》雲:「井方一裏,是九夫。八家共之,各受私田百畝,公田十畝,是為八百八十畝,餘二十畝為廬舍。」其言取《孟子》為說,而失其本旨。班固既有此言,由是群儒遂謬。何休之注《公羊》,範甯之解《穀梁》,趙岐之注《孟子》,宋均之說《樂緯》,鹹以為然,皆義異於鄭,理不可通。何則?言井九百畝,其中為公田,則中央百畝共為公田,不得家取十畝也。又言八家皆私百畝,則百畝皆屬公矣,何得複以二十畝為廬舍也?言同養公田,是八家共理公事,何得家分十畝自治之也?若家取十畝,各自治之,安得謂之同養也?若二十畝為廬舍,則家別二畝半,亦入私矣,則家別私有百二畝半,何得為八家皆私百畝也?此皆諸儒之謬。鄭於《匠人》注雲:「野九夫而稅一。」此箋雲:「井稅一夫,其田百畝。」是鄭意無家別公田十畝及二畝半為廬舍之事。俗以鄭說同於諸儒,是又失鄭旨矣。此井稅一夫,是為定法,而《禹貢》注「上上出九夫稅,下下出一夫稅,通率九州一井稅五夫」者,以《禹貢》九州之賦法凡有九等,鄭欲品其多少,無所比況,遂以九井擬之,以示稅之多少耳,非其實稅之也。何則?九州之地,不至九倍。若第一之州為三等,豈第九州之上者,一家受田九百畝,中者千八百畝,下者二千七百畝?斯不然矣!若亦以百畝、二百畝、三百畝為三等給之,以地有薄厚,差降其稅,不可下州九家而共積一夫之稅。此乃不近人情也。明是以九等井稅擬之耳。箋必易毛者,以此詩之作,刺幽王政煩賦重,廢民農業,而此章下言治田,則此為稅法,互言其事,以相發明耳。且取者,自此取彼之辭耳。歲取既為稅斂之言,十千即是期限之數,若子孫千億萬億及秭,文無指定,可為多大之辭。其此文與「十千維耦」,「百室盈止」,周公之東征四國,成湯之式於九圍,皆是數有限量,不得為總舉大辭也。又參之於《司馬》之書,校之於一成之稅,其數正允,其若合符,故不從毛氏也。而孫毓難雲:「一成之收,裁是十裏之豐。」謂箋之說,不足以該天下。然毓以所在天下大田,皆有十千之收,可推而廣之,則每於十裏皆取十千,何獨不可推而廣也?鄭氏之說,亦足通矣。○傳「尊者」至「食陳」。○正義曰:言「食我農人」,是辭有所別。《七月》雲「采荼」薪樗,食我農夫,以對「為此春酒,以介眉壽」,是農夫別於眉壽。彼農夫與此農人一也。言農夫食陳,明對眉壽為尊者食新矣。孫毓雲:「一家之中,尊長食新,農夫食陳,老壯之別,孝養之義也。」 ○箋「倉廩」至「如此」。○正義曰:上言古之稅法,一成而歲取十千,故知此言我取,取於官,是倉廩有餘,賒貸取而食之也。以官有畜積,恐其久而腐敗,所以紓出官粟之畜積久滯者,待秋收然後取民新穀以納官也。於官則積而不腐,亦是使民愛重,存留此新穀也。定本及《集注》「貸」皆作「貰」,義或然也。《地官· 旅師》雲:「凡用粟,春頒而秋斂之。」注雲:「困時施之,饒時收之。」此即「我取其陳」也。此又特言農人,不對眉壽,則老壯總為農人,不與《七月》同也。若然,《王製》雲「古者三年耕,必有一年之食」,則太平豐年,當家自有積,而得有貸官粟者,然古今時運,人亦一也,作製者美古之辭,據多以言,不能使皆有畜積。猶今之豐年,而民有貧而無食者。稅斂有義,用之以道。以倉粟則陳陳相因,民貧則貸取以食,所以上下交濟,海內乂安,豈言皆無畜積,人盡取之也?

 

疏傳「耘,除草。耔,雍本」。○正義曰:《食貨誌》雲:「後稷始畎田,以二耜為耦,廣尺深尺曰畎,長終畝。一畝三畎,一夫三百畎,而播種於畎中。苗葉以上,稍耨壟草,因墤其土以附苗根。比成壟盡而根深,能風與旱,故薿薿而盛也。」是說耘耔之事,「附根」即此「雍本」也。○箋「今者」至「治田互辭」。 ○正義曰:以上言「自古有年」,此言今以別之,而下言「曾孫來止」,故知今者,成王之時也。言不奪農時,故得使農人之其南畝也。○傳「治田」至 「以進」。○正義曰:《管子》雲:「倉廩實,知禮節;衣食足,知榮辱。」明人成俊士,由田之得穀,故雲「治田得穀,俊士以進」也。「攸介攸止」,毛雖不訓,準《生民》之傳,則不為舍而止息。王肅雲:「是君子治道所大,功所定止。」傳意當然。言太平年豐,為功成治定,故俊士以進,以由得穀故耳。○箋「介舍」至「之行」。○正義曰:以此田農之事,介、止相對,止是止息,故介為舍也。《信南山》雲:「中田有廬。」舍則必歸於廬,止則隨其所惓而息,故介、止分為二事也。禮,使民鋤作耘耔,其有閒暇,則於廬舍及所止息之處,相講論而肄習其業。言禮者,以其禮法當然,非有禮文也。《漢書·藝文誌》曰:「古之學者,且耕且養,三年而通一藝,用日少而畜德多,三十而五經立。」即此「烝我髦士」,是也。以文承「或耔」之下,以止舍講習,以成俊士,於理為切,故易傳。

 

以我齊明、與我犧羊、以社以方。

(이아제명, 여아희양, 이사이방)

가득 담은 제삿밥과 희생 양으로 토지신과 사방에 제사지내네

【毛亨 傳】 器實曰齊,在器曰盛。社,后土也。方,迎四方氣於郊也。

【모형 전】 그릇이 가득함을 제(齊: 가지런할 제)라고 말하고 그릇에 있음을 성(盛: 성할 성)이라고 한다. 사(社)는 후토(后土≒토지신)이고, 방(方)은 사방의 기(氣)를 교외에서 맞이함이다.

【鄭玄 箋】 箋云:以絜齊豐盛,與我純色之羊,秋祭社與四方,爲五穀成熟,報其功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깨끗이 제계하고 풍성함으로써 우리가 순색(純色)의 양(羊)을 주고, 가을에 사직(社稷)과 사방(四方)에 제사 지냄은 오곡(五穀)이 성숙하여 그 공에 보답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我田既臧、農夫之慶。

(아전기장, 농부지경)

우리 밭은 농사가 잘되니 농부들의 경사라네

【鄭玄 箋】 箋云:臧,善也。我田事已善,則慶賜農夫。謂大蠟之時,勞農以休息之也。年不順成,則八蠟不通。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장(臧: 착할 장)은 좋음이다. 우리의 밭의 일이 이미 선하다면 농부에게 경사를 하사한다. 대납(大蠟≒臘祭≒12월 제사)을 할 때 농부를 위로하고 휴식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 해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팔납(八蠟≒풍년을 기도하는 여덟 가지 神物)이 통하지 않았음이다.

 

琴瑟擊鼓、以御田祖。

(금슬격고, 이어전조)

금슬 뜯고 북을 치며 밭의 신을 맞아들이네

【毛亨 傳】 田祖,先嗇也。

【모형 전】 전조(田祖)는 신농[神農≒先嗇]이다.

以祈甘雨、以介我稷黍、以穀我士女。

(이기감우, 이개아직서, 이곡아사녀)

단비를 빌고 경계에 기장을 심어서 관리와 여자들이 먹는다

【毛亨 傳】 穀,善也。

【모형 전】 곡(穀: 곡식 곡)은 좋은 곡식이다.

【鄭玄 箋】 箋云:禦,迎。介,助。穀,養也。設樂以迎祭先嗇,謂郊後始耕也。以求甘雨,佑助我禾稼,我當以養士女也。《周禮》曰:「凡國祈年於田祖,吹《豳》雅,擊土鼓,以樂田畯。」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어(禦: 막을 어)는 맞이함이고, 개(介: 낄 개)는 도움이며, 곡(穀: 곡식 곡)은 먹이는 것이다. 음악을 연주하고 선색(先嗇≒神農)에게 제사로 맞이하고서 교제(郊祭)를 지낸 뒤에 비로소 경작한다고 말함이다. 단비를 구함으로써 나의 곡식을 잘 보호해 준다면 나는 마땅히 관리와 부인(婦人)을 양육할 것이다. 《주례(周禮)》에 말하기를 ”여러 나라가 나라에서 밭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고 아악 《빈(豳)》을 불렀으며 땅과 북을 쳐서 그로써 전농관[전준(田畯)]이 즐겼다.”라고 하였다.

疏「以我」至「士女」。○毛以為,絜黍稷茂盛,故今至秋,以用我器實之齊豐而明報,及與我犧而純色之羊,用此齊牲,以祭社稷,以祀四方,以報其能成五穀之功也。五穀成熟,則我田事已善矣。於孟冬之月,其農夫之人受慶賜,謂息田夫而饗勞之也。至前孟春月,以琴瑟及擊其土鼓,以迎田祖先嗇之神而祭之,所以求甘澍之雨,以大得我稷之與黍。其成熟,則人皆修飾,以善我士之與女。今王不能然,故刺之。鄭唯以佑助我禾稼之黍稷,及其成熟,當以養我士之與女為異。餘同。○傳「器實」至 「於郊」。○正義曰:經、傳多「齊盛」連文,故傳因齊解盛。《春官·肆師》:「祭之日,表齍盛,告絜。」注雲:「粢,六穀也。」則六穀總為齊。《天官·甸師》注雲:「粢,稷也。」唯以稷為粢者,以稷是穀之長,為諸穀之總名。六穀皆為器之實,故曰器實曰齊,指穀體也。在器曰盛,據巳盛於器也。故桓六年《左傳》曰:「絜粢豐盛。」言為穀則絜清,在器則豐滿。是指器實為粢,在器為盛也。毛氏解社,其言不明,惟此言「社,後土」,其義當與鄭同。鄭《駁異義》以為,社者,五土之神,能生萬物者,以古之有大功者配之。《祭法》曰:「共工氏之霸九州也,其子曰後土,能平九州,故祀以為社。」昭二十九年《傳》曰:「共工氏有子曰句龍,為後土則社。」《鄭誌》答趙商雲:「後土為社,轉作社神。」趙商問:「《郊特牲》社祭土而主陰氣。《大宗伯職》曰:『王大封則先告後土。』注雲:『後土,土神也。』若此之義,後工則社,社則後土,二者未知雲何?敢問後土祭誰?社祭誰乎?」答曰:「句龍本後土,後遷之為社。大封先告後土,玄注雲『後土,土神』,不雲後土,社也。」田瓊問:「《周禮》『大封,先告後土』。注雲:『後土,社也。』前答趙商曰:『當言後土,土神。言社,非也。』《檀弓》曰:『國亡大縣邑。』或曰:『君舉而哭於後土。』注雲: 『後土,社也。』《月令》:『仲春命民社。』注雲:『社,後土。』《中庸》雲:『郊社之禮,所以事上帝也。』注雲:『社,祭地神。不言後土,省文。』此三者,皆當定之否?」答曰:「後土,土官之名也。死以為社,社而祭之,故曰後土,社句龍為後土,後轉為社,故世人謂社為後土,無可怪也。欲定者,定之亦可,不須由此言。『後土者,地之大名也。』」僖十五年《左傳》曰:「履後土而戴皇天。」指謂地為後土也。句龍職主土地,故謂其官為後土。此人為後土之官,後轉以配社,又謂社為後土。且社亦土地之神。是後土之言,參差不一,故弟子疑而發問也。《宗伯》大封告後土者,以其大封是上地之事,宜告土神,不告句龍,故雲定為「後土,土神」。《檀弓》曰:「國亡大縣邑。哭於後土」者,以諸侯守社稷失地,哭於社,故雲「後土,社也」。此文與《月令》皆謂祭祀後土,則配社之神,故雲「社,後土」也。《中庸》雲郊、社相對,郊是天,則社是地,故雲「社祭土神」。以《宗伯》與《左傳》皆謂地為後土,則土神宜稱後土。而《中庸》言社,不言後土,故雲省文。以理皆可通,故雲「欲定,定之亦可,不須言」也。言迎四方之神於郊者,《下曲禮》雲:「天子祭四方,歲遍。」注雲:「祭四方,謂祭五宮之神於四郊也。句芒在東,祝融、後土在南,蓐收在西,玄冥在北。」是也。實五官而雲四郊者,火、土俱在南,其火、土俱祀黎,故《鄭誌》答趙商雲:「後土轉為者,無複代者。故先師之說黎兼之,亦因火、土位在南。」又《大宗伯》注雲:「五祀者,五官之神在四郊,四時迎五行之氣於郊,而祭五德之帝,亦食此神焉。少昊氏之子曰重,為句芒,食於木。該為蓐收,食於金。修及熙為玄冥,食於水。顓頊氏之子曰黎,為祝融、後土,食於火、土。」是黎兼二祀也。《曲禮》言歲遍,此祀在秋而並言四方,蓋常祀歲遍,此秋成報功則總祭,故並言四方也。○箋「以絜」至「其功」。○正義曰:《楚茨》箋雲:「明,猶潔也。」齊言明,謂絜清;羊言犧,謂純色。故雲「以絜齊豐盛,與純色之羊」。經言「齊明」,箋雲「絜齊」,文倒者,各從其便而言耳。《郊特牲》雲:「社稷太牢。」則四方之神亦太牢。此獨言羊以會句,言犧以見純明,非特羊而已。社為陰祀,其犧用純黑色也。其方祀,則各以其方之色也。知比社與四方皆為秋祭報功者,以上言黍稷之盛,而此言齊羊之祭,明是物成而祭也。下言「農夫之慶」,當孟冬休息;「以禦田祖」,是來春祈穀,故知此祭在秋為時次也,故《大司馬》仲秋雲「遂以獮田,羅弊,致禽以祀祊」。注雲:「祊當為方,聲之誤也。獮田主祭四方,報成萬物。」即引此詩雲:「以社以方。」是報祭四方在仲秋也。《良耜序》雲:「秋報社稷。」鄭《駁異義》引《大司徒》五地之物雲:「此五土地者,土生萬物,養鳥獸草木之類,皆為民利,有貢稅之法。王者秋祭之,以報其功。」是祭社亦在秋也。○箋「我田」至 「不通」。○正義曰:農夫之得慶賜,唯勞賜之耳。歲事不成,則無此勞息,故言「我田事既善,則慶賜農夫」也。「謂大蠟之時,勞農以休息之」者,王者以歲事成熟,搜索群神而報祭之,而謂之大蠟。又為臘先祖五祀,因令黨正屬民飲酒於序,以正齒位,而勞賜農夫,令得極歡大飲,是謂休息之。知如此者,《郊特牲》曰:「天子大蠟八。蠟也者,索也。歲十有二月,合聚萬物,索饗之也。」是說大蠟之祭也。《月令》孟冬雲:「是月也,臘門閭及先祖五祀,勞農以休息之。」是說休息之事也。《郊特牲》蠟祭之下又曰:「黃衣黃冠而祭,息田夫也。」注雲:「既蠟,臘先祖五祀,於是勞農以休息之。」是臘即次蠟之後,與蠟異也。《郊特牲》止雲「息田夫」,不謂之臘。必知《月令》之「臘祭」與《特牲》「息田夫」為一者,《郊特牲》說蠟祭之服雲:「皮弁素服以送終。葛帶榛杖,喪殺也。」其下別雲:「黃衣黃冠而祭。」明非蠟也。又曰:「既蠟而收,民息已。」既蠟乃雲息民,明知息民非蠟。息民與《月令》休息文同,故知黃冠而祭為臘祭也。是以注雲:「息民與蠟異。」則黃衣黃冠而祭,為臘必也。以此知臘在既蠟之後也。《地官·黨正職》曰:「國索鬼神而祭祀,則以禮屬民,而飲酒於序,以正齒位。」以此知黨正飲酒亦此時也。《下雜記》雲:「子貢觀於蠟,曰:『一國之人皆若狂。』」是恣民大飲也。《酒誥》周公戒康叔禁民飲酒,民無故不飲酒歡樂。今以歲穀豐熟,場功畢入,而特聽之,故謂之慶賜勞息。漢世每有國慶而賜民大酺,亦此義也。臘與息民,蠟後為之,以其與蠟同月。若不為蠟,則此事亦廢。事皆相將,故係之蠟焉。年不順成,八蠟不通。《郊特牲》文引此者,解言「我田既臧」,乃雲「農夫之慶」之意也。彼注數八蠟雲:「先嗇一也,司嗇二也,農三也,郵表叕四也,貓虎五也,坊六也,水庸七也,昆蟲八也。」此八蠟為其主耳,所祭不止於此。四方百物皆祭之。《春官·大司樂》雲:「凡六樂者,一變而致羽物及川澤之示,再變而致臝物及山林之示,三變而致鱗物及丘陵之示,四變而致毛物及墳衍之示,五變而致介物及土示,六變而致象物及天神。」注雲:「此謂大蠟,索鬼神而致百物,六奏樂而禮畢。」又《大宗伯》雲:「[QRXQ]辜祭四方百物。」注雲:「謂磔攘及蠟祭。」是蠟祭,四方百物皆祭之。○傳「田祖」至「穀善」。○ 正義曰:《郊特牲》注雲:「先嗇,若神農。」《春官·籥章》注雲:「田祖,始耕田者,謂神農。」是一也。以祖者,始也。始教造田,謂之田祖。先為稼穡,謂之先嗇。神其農業,謂之神農。名殊,而實同也。以神農始造田謂之田祖,而後稷亦有田功,又有事於尊可以及卑,則祭田祖之時,後稷亦食焉。後土則五穀所生,本雲句龍能平之,則句龍亦在祭中。而《籥章》雲「以樂田畯」,尚及典田之大夫,明兼後土、後稷矣。故《大司徒》注雲:「田主,田神後土及田正之神所依也。」詩人謂之田祖,以句龍為後土,後稷為田正,而言詩人謂之田祖,則田祖之文,雖主於神農,而祭尊可以兼卑,其祭田祖之時,後土、田正皆在焉,故鄭總言詩人謂之田祖也。言此田祖,其文得兼有後土、後稷,而《司徒》言田主,則其文不得兼神農。何則?彼雲「設其社稷之壝而樹之田主」,則田主唯社稷,不得有神農,故鄭唯雲「後土、田正」,其言不及神農,是其意也。「穀,善」,《釋詁》文。王肅雲:「大得我稷黍,以善我男女,言倉廩實而知禮節也。」○箋「設樂」至「田畯」。○正義曰:言設樂者,總琴瑟擊鼓。鼓言擊,明琴瑟亦擊可知。《籥章》雲「吹《豳》雅」則有籥吹之。此不雲籥,彼《籥章》不言琴瑟,皆文不備耳。知迎先嗇謂郊後始耕者,《月令》:「孟春,天子乃以元日祈穀於上帝。」注雲:「謂以上辛郊祭天。」即引襄七年《左傳》曰:「夫郊祀後稷以祈農事,是故啟蟄而郊,郊而後耕。」又曰:「乃擇元辰,天子親載耒耜,躬耕帝籍。」注雲:「元辰,郊後吉亥。」是郊後始耕也。謂於始耕時而祭之也。知者,以先嗇,人神,不宜先天而祭,故當郊後也。祈雨又宜早,不可以至二月。而田祖是始教田者,故知是始耕時祭之也。雲甘雨者,以長物則為甘,害物則為苦。昭四年《左傳》曰:「秋無苦雨。」服虔曰:「害物之雨,民所苦。」是也。雨以甘故,故得祐助我禾稼,當以養士女也。以此事在孟春,則事最在後,時次於上,故以此結章,見後當恆然,反明此年之春已有此事,以興嗣歲亦此義也。引《周禮》者,《籥章》文也。彼注雲:「祈年,求豐年也。《豳》雅、《七月》也。《七月》有 『於耜舉趾,饁彼南畝』之事,歌其類也。謂之雅,以其言男女之正。鄭司農雲:『田畯,古之先教田者。』《爾雅》曰:『畯,農夫也。』」以此言之,雲吹《豳》雅,謂籥吹之,故其職「掌土鼓豳籥」。杜子春雲:「土鼓,以瓦為匡,以革為兩麵,可擊也。」鄭司農雲:「豳籥,豳,國之地竹。」玄謂「籥,豳人吹籥之聲章」。是也。祭田祖而並祭田畯者,以神農始造田法,典田大夫以其法教民,亦是先教田,其祭並及之。先言祈年於田祖,是此祭主祭田祖,末言以樂田畯,見其次及之,故異其文也。

 

曾孫來止、以其婦子、饁彼南畝。

(증손내지, 이기부자, 엽피남무)

후손들이 오시자 그 부녀자들이 저 남쪽 밭에 밥을 내가네

田畯至喜 攘其左右、嘗其旨否。

(전준지희, 양기좌우, 상기지부)

권농관이 크게 기뻐하며 좌우에 보내서 어떤가 맛을 보네

【鄭玄 箋】箋云:曾孫,謂成王也。攘讀當爲饟。饁、饟,饋也。田畯,司嗇,今之嗇夫也。喜讀爲饎。饎,酒食也。成王來止,謂出觀農事也。親與後、世子行,使知稼穡之艱難也。爲農人之在南畝者,設饋以勸之。司嗇至,則又加之以酒食,饟其左右從行者。成王親爲嘗其饋之美否,示親之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증손(曾孫)은 성왕(成王)을 말한 것이다. 양(攘)은 마땅히 향(饟: 건량 향)으로 하여 읽어야 한다. 엽(饁:들밥 엽)과 향(饟: 건량 향)은 음식을 먹임이다. 전준(田畯전농관)은 사색(司嗇)이며 지금의 색부(嗇夫)이다. 희(喜)는 희(饎: 주식 희)로 읽어야 하며 희(饎)는 술과 음식이다. 성왕(成王)이 와서 머물며, 나가서 농사를 살펴본다는 말이다. 어버이와 함께 뒤에 세자가 가서 농사의 몹시 어려움을 알게 하는 것이다. 농부가 남쪽 밭에 있게 한다는 것은 술과 음식을 베풀어 권하는 것이다. 권농관[사색(司嗇)]이 이르면 또 술과 음식을 더하여 좌우에 따라가는 자들에게 음식을 먹인다. 성왕(成王)이 친히 그 음식의 맛이 있고 없음을 맛본 것처럼 하여 직접 보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禾易長畝、終善且有。

(채역장무, 종선차유)

벼 밭의 이랑을 다 매니 마침내 농사가 풍성하네

【毛亨 傳】 易,治也。長畝,竟畝也。

【모형 전】 역(易)은 다스림이다. 장무(長畝)는 긴 이랑이다.

曾孫不怒、農夫克敏。

(증손부노, 농부극민)

후손들은 성내지 않고 농부들은 열심히 일하네

【毛亨 傳】 敏,疾也。

【모형 전】 민(敏: 민첩할 민)은 재 빠름이다.

【鄭玄 箋】 箋云:禾治而竟畝,成王則無所責怒,謂此農夫能自敏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벼를 다스려서 이랑을 이랑에 두었는데 성왕(成王)이 꾸짖는 바가 없었으니, 이는 농부가 스스로 민첩하게 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라고 하였다.

疏「曾孫」至「克敏」。○毛以為,成王之時,非直為民報祭祈年,又曾孫成王亦自來止,親循畎畝,以勸稼穡也。君既勸之於上,民又勤之於下。農夫務事,遂以其婦之與子並來饋饁於彼南畝之中,家盡歡樂矣。其田畯之官典田大夫既至,見其勤勞,則喜樂其事矣。即教農夫以間暇之時攘除田之左右,辟其草萊,嚐其氣旨土地和美與否也,故使禾生易而治理長,而次列遍竟畝中,終至成善,且收而大有。曾孫成王見其如此,不有恚怒,乃謂此農夫,其田事既有工能,而且敏疾,故不怒之,以是致黍稷茂盛而年豐矣。今王不能然,故刺之。○鄭以為,曾孫成王之來止也,則以其己之婦與子,謂後與世子,出觀農事,使知稼穡之艱難也。又以飲食而行饋餉彼在南畝之農人,設食以勸之,使其樂事也。田畯之官至,又加之酒食之饎,以慰其典田之勤也。又饟其左右從已之行者,以賞其行途之勞,令喜於巡勸不厭也。又親為嚐其饋之美否,示親而愛之。故上下用命,農畯勸樂。餘同。○箋「曾孫」至「親之」。○正義曰:以《信南山》準之,故知「曾孫,成王」也。上言饁,下言嚐,皆飲食之事,故攘讀當為饟也。《釋詁》雲:「饁、饟,饋也。」舍人曰:「饟自家之野也。」此攘字在饁、喜之下,而先言之者,以詩中未有其事,故先明之。田畯,田官,在田司主稼穡,故謂司嗇。漢世亦有此官,謂之嗇夫,故言今之嗇夫也。《郊特牲》曰:「蠟之祭也,主先嗇而祭司嗇也。」注雲:「先嗇,若神農。司嗇,若後稷。」以神農始造其田,後稷教民播種,此二人有田事之大功者也。蠟者,為田報祭,故知謂此二人。稷為人臣教稼,亦是田官,故謂之司嗇。此言田畯,乃是當時主稼之人,故以司嗇言之,與《郊特牲》名同而實異也。「饁彼南畝,田畯至喜」,此及《大田》文與《七月》正同,故亦讀喜為饎。饎,酒食也。此為田事,而言曾孫之來,故知成王來止。謂出觀農事,曾孫來止,即言以其婦子,明曾孫自以已之婦子,故知親與後、世子行也。王之婦必是後。知子唯世子者,以將欲傳之國祚,明其教戒尢深,故知非餘子也。稼穡之艱難,《尚書·無逸》周公戒成王之辭也。此經曾孫之下而雲「以其」,明以下皆曾孫之事,故雲「為農人之在南畝者;設饋以勸之」,謂成王為之設也。言司嗇至則又加之以酒食,則農人之饋無酒,故雲加之也。其左右之行,雖各有糧食,王欲其勸農忘苦,從行不厭,故饟之也。王之從者,必有公卿大臣,親為嚐其饋之美否,亦所以親之也。此經毛不為傳,但毛氏於詩無破字者,與鄭不得同。王肅雲:「曾孫來止,親循畎畝勸稼穡也。農夫務事,使其婦子並饁饋也。田畯之至,喜樂其事,教農以間暇攘田之左右,除其草萊,嚐其氣旨土和美與否也。」傳意當然。王肅又雲:「婦人無閫外之事。」又帝王乃躬自食農人,周則力不供,不遍則為惠不普,玄說非也。孫毓雲:「古者婦人無外事,送兄弟不逾閾。唯王後親桑,以勸蠶事,又不隨天子而行。成王出勸農事,何得將婦兒自隨?而雲使知稼穡之艱難,王後寧複與稼穡事者乎?此與《豳風》『同我婦子,饁彼南畝,田畯至喜』之義皆同。農人遽於其事,婦子俱饟也。田畯見其勤修,喜樂其事。又王者從官,自有常餼,非獨於南畝之中,乃饟左右,而親為之嚐,又非人君待下之義。」皆以鄭說為短,斯不然矣。此刺今思古之詩,言古人之所難行,以傷今之廢業也。首章言輕其稅斂,二章為之祈報,此章言恩澤深厚,卒章言收穫弘多。曆觀其次,粲然有敘,寧當於此甫說農人之家行饁之事?又《大田》卒章,上言曾孫,下言禋祀,並是成王之事,不當以農人婦子輒廁其間也。且言「曾孫來止」,即言「以其婦子」,則是曾孫以之也。上無農人之文,何得為農人婦子乎?既言曾孫以其婦子,則後之從行,於文自見,複何所言,而雲無事也?若王後必無外事,不當蠶於北郊。王基以親蠶決之,非無理矣。衣食,人之所資,田蠶並為急務。蠶則後之所專,故後當獨行。田則王之所勸,後從行耳。此乃外內之別,職司之義,而孫毓反言親桑不隨王,非其難矣。王者憂深思遠,以世子者生於深宮之內,長於婦人之手,故與之俱行,知稼穡之艱難,欲其重國用而愛黎民,保王業而全宗祀也。以子所親,莫過於母,使之俱觀辛勤,內相規諫,此聖賢明訓,可與日月俱縣。《豳風》「同我婦子」,事連於「舉趾」,此雲「以其婦子」,文係於「曾孫」,辭既不同,義固當異,又安得皆為農人婦子也?田畯所喜,當喜農人之勤事,文在「饁彼」之下,是則喜其饟食,非複說其勤勞,何有國史吟詠立文若是哉!王者從官,非無常餼,直以同循稼穡,共食旨甘,與夫《秦風》所謂「與子同袍」,亦複何異?而雲非待下之義乎?此饋南畝之農人,賜田畯以酒食者,天子所省,固無周遍,值其所幸,便即賜之,使天下知我王之愛農也,則莫不盡力。農人之見饟也,則人各用心。賞一勸百,可使海內從風,何必每地皆往,農人盡賚?而雲力不供、惠不普也?王基因於不遍之言,而引《周語》以此為藉田之事,謬矣。然此詩止說豐年之義,無刺廢藉之文。箋之上下言不及藉。下篇刺矜寡不能自存,其文亦同於此。豈令矜寡之人,就藉田捃拾也?又下章庾、稼,共此接連,箋稱「古之稅法」,非為藉田,明矣。

 

曾孫之稼、如茨如梁。

(증손지가, 여자여량)

후손들의 곡식이 지붕처럼 다리처럼 쌓였다네

【毛亨 傳】 茨,積也。梁,車梁也。

【모형 전】 자(茨: 지붕 일 자)는 쌓음이다. 량(梁: 들보 량)은 수레의 들보이다.

曾孫之庾、如坻如京。

(증손지유, 여지여경)

후손들의 노적가리 언덕처럼 산처럼 쌓였구나

毛亨 高丘也

【모형 전】 경(京)은 높은 언덕이다.

【鄭玄 箋】 箋云:稼,禾也,謂有槁者也。茨,屋蓋也。上古之稅法,近者納怱,遠者納粟米。庾,露積穀也。坻,水中之高地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가(稼: 심을 가)는 벼이며, 말라가고 있는 것을 말한다. 자(茨: 지붕 일 자)는 지붕을 덮는 것이다. 상고(上古) 시대의 세법(稅法)은 가까운 자는 納怱하고 먼 곳은 조(粟)와 쌀(米)을 바쳤다. 유(庾: 곳집 유)는 노적가이의 곡식이다. 지(坻: 모래톱 지)는 물 가장자리의 높은 땅이다.”라고 하였다.

乃求千斯倉、乃求萬斯箱。

(내구천사창, 내구만사상)

이에 창고 천 개 구하고 수레 만 개를 구하네

【鄭玄 箋】 箋云:成王見禾穀之稅,委積之多,於是求千倉以處之,萬車以載之,是言年豐收入逾前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성왕(成王)이 곡식의 세(稅)를 보고 쌓아 둔 것이 많으므로 이에 1000창(倉)의 창고를 구하여 처리하고 만개의 수레로써 싣고 가니, 이는 거두어 들인 수입이 전년 보다 많은 풍년임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黍稷稻梁、農夫之慶。

(서직도량, 농부지경)

기장과 피 벼와 수수 모두 농부들의 경사라네

【鄭玄 箋】 箋云:慶,賜也。年豐則勞賜,農夫益厚,旣有黍稷,加以稻粱。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경(慶)은 하사하는 것이다. 풍년이면 내려 수고에 하사하니 농부는 더욱 많아지며, 이미 찰기장[黍]과 메기장[稷]이 있는데 벼[稻]와 조[粱]를 더해 줌이다.”라고 하였다.

報以介福、萬壽無疆。

(보이개복, 만수무강)

큰 복을 내려 보답 받으니 만수무강 하시겠네

​​【鄭玄 箋】 箋云:報者爲之求福,助於八蠟之神,萬壽無疆竟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보(報)라는 것은, 복을 구하려고 하는 것인데, 팔랍(八蠟)의 신에게 도움을 받으니, 만수무강(萬壽無疆)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疏「曾孫」至 「無疆」。○毛以為,上言曾孫之親循畎畝,此言稅獲之多。曾孫成王所稅得禾穀之稼,其積聚高大如屋茨,如車梁也。曾孫成王所稅得米粟之庾,其唯高大如渚坻,如丘京也。成王既見禾稼之積,粟庾之多,於是乃求千倉以處其庾也,乃求萬箱以載其稼也。以其收入逾前,故求倉廩車箱以載置之。喜其收獲之廣,湣念農夫之勤,故以黍稷稻粱為農夫之慶。謂黨正飲酒,加其饌食以稻粱也,非直勞而息之,又為之求福於八蠟之神,而報我農夫以大大之福,使之得萬年之壽,無有疆境。今幽王不能然,故刺之也。二「斯」皆為語助。○鄭唯以介為助。餘同。○傳「茨積」至「高丘」。○正義曰:墨子稱茅茨不剪,謂以茅覆屋,故箋以茨為屋蓋。傳言茨積,非訓茨為積也,言其積聚高大如屋茨耳。其意與箋同也。《孟子》「十二月車梁成」,梁謂水上橫橋。橋有廣狹,得容車渡,則高廣者也,故以比禾積。《釋丘》雲:「絕高為之京。」是「京,高丘」也。○箋「稼禾」至「高地」。○正義曰:庾是平地委粟,而與稼相對,則知稼有槁草矣。故雲「稼,禾稼,謂有槁者也」。此言曾孫所有,則是稅而得之。而有庾、稼二種,明是稅有兩法。故言古之稅法,近者納總,謂並禾稼納之;遠者納粟米,謂路遠者唯納粟,又遠者唯納米。以運輸為難,故輕之也。此文稼、庾相對,麵下言千倉、萬箱,是箱以載稼,倉以納庾,故知「庾,露地積穀也」。《釋水》雲:「水中可居者曰洲,小洲曰渚,小渚曰沚,小沚曰坻。」是水中之高地也。此言禾庾,當在畿內。若畿外,則採取美物以當邦賦,不入穀矣。畿內雖用貢法,亦校其歲以為率。依稅法,近郊十一,遠郊二十而三,甸、稍、縣都無過十二。以禾及米貢入於王。《掌客》有芻薪倍禾之言,是明周法有禾稼之稅矣。《禹貢》有納銍、納秸,周之有無,無以言也。依《禹貢》雲:「五百裏甸服。百裏賦納總,二百裏納銍,三百裏秸服,四百裏粟,五百裏米。」注雲:「甸服者,堯製賦其田使入穀。禹弼其外,百裏者賦入總,謂入刈禾也;二百裏銍,銍,斷去槁也;三百裏秸,秸又去穎也;四百裏入粟;五百裏入米者,遠彌輕也。甸服之製,本自納總。禹為之差,使百裏者從之耳。以此言之,有輕遠之法,故為近者納總,遠者粟米。既無銍、秸之文,不知遠近以何為差也。若然,後世之役宜繁於上代。周止千裏納穀。唐、虞則弼其外五百裏,為方二千裏,是方千裏者四納穀。多於周者,唐、虞萬國,諸侯歲朝,其用或費於後代,故納穀多也。又《鄭誌》答趙商雲:「畿內四百國。」則周郊內亦封諸侯矣。於周法十國而入其一於天子,然則雖千裏者四其稅,猶少於周,故使方二千裏入粟米。世代不同,故異法也。○箋「年豐」至「疆竟」。○正義曰:《特牲》、《少牢》之祭皆無稻粱,此特言黍稷稻粱,故知勞賜農夫加以稻粱也。報者,自神之辭,明求神而得報。為農夫之求神,唯蠟祭耳,故雲「為之求助於八蠟之神」。以祭有屍祝,故雲「萬壽無疆竟」,為得福之辭,與三章互相成也。蠟在息農夫前,而後言之者,以祭者雖在前,而福慶是將來之事,故後言之,以結篇也。定本「疆境」字作「境」。

 

​《甫田四章章十句

 

 

◎ 《모시정의(毛詩正義)》 원문

甫田》,刺幽王也君子傷今而思古焉。(刺者刺其倉廩空虛政煩賦重農人失職。)

 

疏《甫田》四章,章十句。○箋「刺者」至 「失職」。○正義曰:經言成王庾稼,千倉萬箱,是倉廩實,反明幽王之時,倉廩虛也。言適彼南畝,耘耔黍稷,是農人得職,反明幽王之時,農人失職也。政煩賦重,《楚茨序》文。次四篇文勢大同,此及下篇箋皆引之,言由政煩賦重,故農人失其常職也。若然,賦重則倉應實,倉虛則賦應輕,而同刺之者,以王貪而無藝,故賦重用而無節,故倉虛。由倉虛而賦更重,以賦重而民逃散。農人失職,由政煩賦重所致。其倉虛,則別有費散,不由賦重,故箋先言倉廩虛,則言政煩賦重也。

 

倬彼甫田,歲取十千。(倬,明貌。甫田,謂天下田也。十千,言多也。箋雲:甫之言丈夫也。明乎彼大古之時,以丈夫稅田也。歲取十千,於井田之法,則一成之數也。九夫為井,井稅一夫,其田百畝。井十為通,通稅十夫,其田千畝。通十為成,成方十裏,成稅百夫,其田萬畝。欲見其數,從井、通起,故言十千。上地穀畝一鍾。○倬,陟角反,《韓詩》作「箌」,音同,雲:「[A144],卓也。」甫之言丈夫也,直兩反,依義「丈夫」是也。本又作「大夫」,一本 「甫之言夫也」,又一本「甫之言大也」。大古,音泰。見,賢遍反。)

我取其陳,食我農人,自古有年。(尊者食新,農夫食陳。箋雲:倉廩有餘,民得賒貰取食之,所以紓官之蓄滯,亦使民愛存新穀。自古者豐年之法如此。○食音嗣。賒音奢。貰音世,又食夜反,《說文》雲:「貸也。」紓音舒,何常汝反。蓄,敕六反。)

今適南畝,或耘或耔,黍稷薿薿。(耘,除草也。耔,雍本也。箋雲:今者,今成王之法也。使農人之南畝,治其禾稼,功至力盡,則薿薿然而茂盛。於古言稅法,今言治田,互辭。○耘音芸,沈又音運,本又作「芸」,音同。耔音子,沈音茲,壅禾根也。薿,魚起反,徐又魚力反。)

 

攸介攸止,烝我髦士。(烝,進。髦,俊也。治田得穀,俊士以進。箋雲:介,舍也。禮,使民鋤作耘耔,閒暇則於廬舍及所止息之處,以道藝相講肄,以進其為俊士之行。○介音界,王「大也」。烝,之承反。髦音毛。鋤,本或作「助」,同仕魚反。閒音閑。處,昌慮反。肆,以四反,字亦作「肄」,同。行,下孟反。)

 

疏「倬彼」至 「髦士」。○毛以為,倬然明大者,彼古太平之時,天下之大田也。一歲之收,乃取十千。以其天下皆豐,故不係之於夫井,不限之於鬥斛,要言多取田畝之收,舉十千多數而已。以其大熟如此,故詩人雲:我取其陳者以食農人,使一家之內尊老得食其新粟,卑稚食其陳粟。是為老壯之別,孝養之義也。自古太平有豐年,其時如此。故今成王之時,亦奉而修之。其萬民適彼南畝之內,或耘除草木,或擁其根本,功至力盡,故令黍稷得薿薿然而茂盛。收獲既多,國用充足,所以成大功,所以自安止,又得進我民人成為髦俊之士。由倉廩實,知禮節,故豐年多獲,髦士所以得進也。而幽王不修之,故舉以刺焉。鄭唯「今適南畝」三句同,其首尾皆異。言倬然明著者,彼太古之時,於丈夫之所稅田,一歲之中,於一成之地,取十千畝也。言賦斂不重,倉廩盈實。故於時之民,見官有餘,遂雲:我從官取其倉廩之陳者,而食我農夫之民,所以紓官之畜滯,亦使民愛存新穀,故令國以足用,下無睏乏。自古豐有之年,其法如此,故今成王之時,奉而修之。其萬民適彼南畝之中,或耘或耔,黍稷薿薿然茂盛。其農人所居廬舍,及所止息之處,閒暇則以道藝相講肄,故得進我農人,成其為俊士之行。是農人盡力而治田,上依古法而稅斂,政省賦輕,倉廩以實。今王不能然,故反以刺之。○傳「倬明」至 「言多」。○正義曰:以《雲漢》雲「倬彼雲漢」,是明貌也。言明者,疾今不能。言古之明信,故雲明也。《齊·甫田》傳曰:「甫,大也。」以言大田,故謂為天下田也。十千者,數之大成,舉其成數,故雲十千,言多也。王肅雲:「太平之時,天下皆豐,故不係之於夫井,不限之於鬥斛,要言多取田畝之收而已。」孫毓曰:「凡詩賦之作,皆總舉眾義,從多大之辭,非如記事立製,必詳度量之數。『甫田』猶下篇言『大田』耳。言歲取十千,亦猶頌雲『萬億及秭』,舉大數,且以協句。言所在有大田,皆有十千之收。推而廣之,以見天下皆豐。」此皆申述毛說也。○箋「甫之」至「畝一鍾」。○正義曰:以此意言自古有年。又雲「今適南畝」一章之內,而有古今相對。「今適南畝」,言民之治田,則「歲取十千」,宜為官之稅法。稅法而言十千,為有限之數,則不據天下,不可言大,不得與齊之。甫田同訓,故雲「甫之言丈夫也」。《穀梁傳》曰:「夫猶傳也,男子之美稱。」《士冠禮》注亦雲:「甫,丈夫之美稱。甫或作父,是為丈夫也。」《易》曰:「師貞,丈人吉。」言以禮法長於人,可倚丈也。是夫者有傳相之德而可倚丈,謂之丈夫,通天下男子之辭。《喪服》曰「丈夫婦人」是也。言明乎彼太古之時者,以此詩據幽王之時,而思古謂思成王也。成王既古矣,而雲 「今適南畝」,以成王之時為今,則古又古於成王,是為太古也。案《禮記·郊特牲》與《士冠禮》皆曰:「太古冠布,齊則緇之。」下即雲:「牟追,夏後氏之道。章甫,殷道。委貌,周道。」然則太古冠布,在三代之前,故注雲:「唐、虞以上曰太古。」然世代推移,後之仰先皆為古矣。古有遠近,其言無常,故《易》以文王為中古,《禮記》以神農為中古,各有所對,為古不同,則太古之名,亦無定限。此言太古古於成王則可,未必要唐、虞以上也。《孟子》曰:「欲重之於堯、舜,大桀、小桀。輕之於堯、舜,大貉、小貉。則什一而稅,堯、舜已然。」此論稅法而言太古,亦以太古為唐、虞,於理雖通,但什一而稅,三代皆然,據今成王所修,不必要本堯、舜。《信南山》言成王奉禹之功,則此太古蓋亦禹也。言丈夫稅田,謂於丈夫而稅其田,以治田者男子,故言於丈夫也。歲取十千,於井田之法則一成之數者,《司馬法》計之而然也。《司馬法》曰:「夫三為屋,屋三為井。」是九夫為井也。「井十為通,通十為成」,亦《司馬法》文。《孟子》雲:「請野九一而助」,謂九夫之內,與公助一夫,田有百畝,故知井稅一夫,其田百畝。從此而累計之,故知通稅千畝,成稅萬畝也。又解不言萬畝,而稱十千,意欲見其數從井、通起,故言十幹,明從井稅一夫為百畝,千是通之稅,故雲十幹以見之,而不言萬畝也。鄭以為,稅法者,亦以此十千故耳。知此為田畝者,以「十千」之文,連「甫田」之下,明取十千之田,故知田畝,非釜斛也。又解田之所收數,言上地穀畝一鍾,明時和而收多,故稅輕而用足也。《史記·河渠書》曰:「韓使水工鄭國間說秦,鑿涇水為渠,並於山東注洛三百餘裏。渠成而用溉瀉鹵之地四萬餘頃,收皆畝一鍾。」彼瀉鹵之地,灌溉之功,畝收一鍾,明太平陰陽和,風雨時,上地畝亦收一鍾也。昭三年《左傳》曰:「齊舊四量,豆、區、釜、鍾。四升為豆,各自其四,以登於釜。釜十則鍾。」是鍾容六斛四鬥也。《漢書·食貨誌》曰:「一夫治田百畝,歲收畝一碩半,為粟百五十碩。歲有上中下,上孰其收自四,中孰自三,下孰自倍。」張晏曰:「平歲百畝收百五十碩,今大孰四倍,收六百碩。」自三百五十碩,自倍三百碩。彼謂中平之地,上孰畝六碩,故本太平之上孰,上地準關中,為畝一鍾也。《孟子》言三代稅法,其實皆什一。若井稅一夫,是九稅一矣。此詩之意,刺幽王賦重,當陳古稅之輕,而言成稅萬畝,反得重於什一者,《孟子》言什一,據通率而言耳。周製有貢有助,助者九夫而稅一夫之田,貢者什一而貢一夫之穀,通之二十夫而稅二夫,是為什中稅一也,故《冬官·匠人》注廣引經傳而論之,雲:「周製畿內用夏之貢法,稅夫無公田。邦國用殷之助法製公田,不稅夫。貢者,自治其所受田,貢其稅穀;助者,借民之力,以治公田,又使收斂焉。諸侯謂之徹者,通其率以什一為正。《孟子》雲:「野九夫而稅一,國中什一。」是邦國亦異外內之法耳。是鄭解通率為什一之事也。又《孟子》雲:「滕文公使畢戰問井田,孟子對曰:『請野九一而助,國中什一使自賦。』」是鄭所引異外內之事也。《孟子》又雲:「方裏而井,井九百畝,其中為公田,八家皆私百畝,同養公田。公事畢,然後治私事,所以別野人也。」是說助法,井別一夫以入公也。言別野人者,別野人之法,使與國中不同也。《爾雅》雲:「郊外曰野。」則野人為郊外也。野人為郊外,則國中謂郊內也。郊內謂之國中者,以近國,故係國言之亦可,地在郊內,居在國中故也。助法既言百畝為公田,則使自賦者,明是自治其田,貢其稅穀也。助則九而助一,貢則什一而貢一,通率為什一也。若然,九一而助者,為九中一。知什一自賦,非什中一者,以言九一即雲而助,明九中一助也。國中言什一,乃雲使自賦,是什一之中,使自賦之,明非什中一為賦也。故鄭玄通其率,以什一為正。若什一自賦為什中賦一,則不得與九一通率為什一也。且鄭引《孟子》雲「野九夫而稅一,國中什一」,不言國中什而稅一,明是國中什一而貢一,故得通率為什一也。如鄭之言,邦國亦異外內,則諸侯郊內貢、郊外助矣。而鄭正言畿內用貢法,邦國用助法,以為諸侯皆助者,以諸侯郊內之地少,郊外助者,多故以邦國為助,對畿內之貢為異外內也。案《王製》雲:「千裏之內曰甸,其外曰采。」注雲:「取其美物以當穀稅。」又《尚書》,《鄭誌》說「貢篚」之義雲:「凡所貢篚之物,皆以稅物市之,隨時物價,以當邦賦。」然畿外諸侯不以穀入天子。此若成稅萬畝,是畿外助法,則詩說天子之事,得雲「歲取十千」者,以天子天下為家,故美其收入之多,則廣舉天下之田。若貢之天子,自可隨其所須,變為貨物,皆是稅穀市之,亦得為天子所取也。史傳說助、貢之法,唯《孟子》為明。鄭據其言,以什十而徹,為通外內之率,理則然矣。而《食貨誌》雲:「井方一裏,是九夫。八家共之,各受私田百畝,公田十畝,是為八百八十畝,餘二十畝為廬舍。」其言取《孟子》為說,而失其本旨。班固既有此言,由是群儒遂謬。何休之注《公羊》,範甯之解《穀梁》,趙岐之注《孟子》,宋均之說《樂緯》,鹹以為然,皆義異於鄭,理不可通。何則?言井九百畝,其中為公田,則中央百畝共為公田,不得家取十畝也。又言八家皆私百畝,則百畝皆屬公矣,何得複以二十畝為廬舍也?言同養公田,是八家共理公事,何得家分十畝自治之也?若家取十畝,各自治之,安得謂之同養也?若二十畝為廬舍,則家別二畝半,亦入私矣,則家別私有百二畝半,何得為八家皆私百畝也?此皆諸儒之謬。鄭於《匠人》注雲:「野九夫而稅一。」此箋雲:「井稅一夫,其田百畝。」是鄭意無家別公田十畝及二畝半為廬舍之事。俗以鄭說同於諸儒,是又失鄭旨矣。此井稅一夫,是為定法,而《禹貢》注「上上出九夫稅,下下出一夫稅,通率九州一井稅五夫」者,以《禹貢》九州之賦法凡有九等,鄭欲品其多少,無所比況,遂以九井擬之,以示稅之多少耳,非其實稅之也。何則?九州之地,不至九倍。若第一之州為三等,豈第九州之上者,一家受田九百畝,中者千八百畝,下者二千七百畝?斯不然矣!若亦以百畝、二百畝、三百畝為三等給之,以地有薄厚,差降其稅,不可下州九家而共積一夫之稅。此乃不近人情也。明是以九等井稅擬之耳。箋必易毛者,以此詩之作,刺幽王政煩賦重,廢民農業,而此章下言治田,則此為稅法,互言其事,以相發明耳。且取者,自此取彼之辭耳。歲取既為稅斂之言,十千即是期限之數,若子孫千億萬億及秭,文無指定,可為多大之辭。其此文與「十千維耦」,「百室盈止」,周公之東征四國,成湯之式於九圍,皆是數有限量,不得為總舉大辭也。又參之於《司馬》之書,校之於一成之稅,其數正允,其若合符,故不從毛氏也。而孫毓難雲:「一成之收,裁是十裏之豐。」謂箋之說,不足以該天下。然毓以所在天下大田,皆有十千之收,可推而廣之,則每於十裏皆取十千,何獨不可推而廣也?鄭氏之說,亦足通矣。○傳「尊者」至「食陳」。○正義曰:言「食我農人」,是辭有所別。《七月》雲「采荼」薪樗,食我農夫,以對「為此春酒,以介眉壽」,是農夫別於眉壽。彼農夫與此農人一也。言農夫食陳,明對眉壽為尊者食新矣。孫毓雲:「一家之中,尊長食新,農夫食陳,老壯之別,孝養之義也。」 ○箋「倉廩」至「如此」。○正義曰:上言古之稅法,一成而歲取十千,故知此言我取,取於官,是倉廩有餘,賒貸取而食之也。以官有畜積,恐其久而腐敗,所以紓出官粟之畜積久滯者,待秋收然後取民新穀以納官也。於官則積而不腐,亦是使民愛重,存留此新穀也。定本及《集注》「貸」皆作「貰」,義或然也。《地官· 旅師》雲:「凡用粟,春頒而秋斂之。」注雲:「困時施之,饒時收之。」此即「我取其陳」也。此又特言農人,不對眉壽,則老壯總為農人,不與《七月》同也。若然,《王製》雲「古者三年耕,必有一年之食」,則太平豐年,當家自有積,而得有貸官粟者,然古今時運,人亦一也,作製者美古之辭,據多以言,不能使皆有畜積。猶今之豐年,而民有貧而無食者。稅斂有義,用之以道。以倉粟則陳陳相因,民貧則貸取以食,所以上下交濟,海內乂安,豈言皆無畜積,人盡取之也?

 

疏傳「耘,除草。耔,雍本」。○正義曰:《食貨誌》雲:「後稷始畎田,以二耜為耦,廣尺深尺曰畎,長終畝。一畝三畎,一夫三百畎,而播種於畎中。苗葉以上,稍耨壟草,因墤其土以附苗根。比成壟盡而根深,能風與旱,故薿薿而盛也。」是說耘耔之事,「附根」即此「雍本」也。○箋「今者」至「治田互辭」。 ○正義曰:以上言「自古有年」,此言今以別之,而下言「曾孫來止」,故知今者,成王之時也。言不奪農時,故得使農人之其南畝也。○傳「治田」至 「以進」。○正義曰:《管子》雲:「倉廩實,知禮節;衣食足,知榮辱。」明人成俊士,由田之得穀,故雲「治田得穀,俊士以進」也。「攸介攸止」,毛雖不訓,準《生民》之傳,則不為舍而止息。王肅雲:「是君子治道所大,功所定止。」傳意當然。言太平年豐,為功成治定,故俊士以進,以由得穀故耳。○箋「介舍」至「之行」。○正義曰:以此田農之事,介、止相對,止是止息,故介為舍也。《信南山》雲:「中田有廬。」舍則必歸於廬,止則隨其所惓而息,故介、止分為二事也。禮,使民鋤作耘耔,其有閒暇,則於廬舍及所止息之處,相講論而肄習其業。言禮者,以其禮法當然,非有禮文也。《漢書·藝文誌》曰:「古之學者,且耕且養,三年而通一藝,用日少而畜德多,三十而五經立。」即此「烝我髦士」,是也。以文承「或耔」之下,以止舍講習,以成俊士,於理為切,故易傳。

 

以我齊明,與我犧羊,以社以方。(器實曰齊,在器曰盛。社,後土也。方,迎四方氣於郊也。箋雲:以絜齊豐盛,與我純色之羊,秋祭社與四方,為五穀成熟,報其功也。○齊,本又作「齎」,又作「齍」,同音資。注同。犧,許宜反。為,於偽反。下「為農」、「親為」、「為之」皆同。)

我田既臧,農夫之慶。(箋雲:臧,善也。我田事已善,則慶賜農夫。謂大蠟之時,勞農以休息之也。年不順成,則八蠟不通。○蠟,仕詐反。勞,力報反。篇末「勞賜」同。)

 

琴瑟擊鼓,以禦田祖,以祈甘雨,

以介我稷黍,以穀我士女。(田祖,先嗇也。穀,善也。箋雲:禦,迎。介,助。穀,養也。設樂以迎祭先嗇,謂郊後始耕也。以求甘雨,佑助我禾稼,我當以養士女也。《周禮》曰:「凡國祈年於田祖,吹《豳》雅,擊土鼓,以樂田畯。」○禦,牙嫁反。注同。豳,彼貧反,本亦作「邠」。以樂,音洛。)

 

疏「以我」至「士女」。○毛以為,絜黍稷茂盛,故今至秋,以用我器實之齊豐而明報,及與我犧而純色之羊,用此齊牲,以祭社稷,以祀四方,以報其能成五穀之功也。五穀成熟,則我田事已善矣。於孟冬之月,其農夫之人受慶賜,謂息田夫而饗勞之也。至前孟春月,以琴瑟及擊其土鼓,以迎田祖先嗇之神而祭之,所以求甘澍之雨,以大得我稷之與黍。其成熟,則人皆修飾,以善我士之與女。今王不能然,故刺之。鄭唯以佑助我禾稼之黍稷,及其成熟,當以養我士之與女為異。餘同。○傳「器實」至 「於郊」。○正義曰:經、傳多「齊盛」連文,故傳因齊解盛。《春官·肆師》:「祭之日,表齍盛,告絜。」注雲:「粢,六穀也。」則六穀總為齊。《天官·甸師》注雲:「粢,稷也。」唯以稷為粢者,以稷是穀之長,為諸穀之總名。六穀皆為器之實,故曰器實曰齊,指穀體也。在器曰盛,據巳盛於器也。故桓六年《左傳》曰:「絜粢豐盛。」言為穀則絜清,在器則豐滿。是指器實為粢,在器為盛也。毛氏解社,其言不明,惟此言「社,後土」,其義當與鄭同。鄭《駁異義》以為,社者,五土之神,能生萬物者,以古之有大功者配之。《祭法》曰:「共工氏之霸九州也,其子曰後土,能平九州,故祀以為社。」昭二十九年《傳》曰:「共工氏有子曰句龍,為後土則社。」《鄭誌》答趙商雲:「後土為社,轉作社神。」趙商問:「《郊特牲》社祭土而主陰氣。《大宗伯職》曰:『王大封則先告後土。』注雲:『後土,土神也。』若此之義,後工則社,社則後土,二者未知雲何?敢問後土祭誰?社祭誰乎?」答曰:「句龍本後土,後遷之為社。大封先告後土,玄注雲『後土,土神』,不雲後土,社也。」田瓊問:「《周禮》『大封,先告後土』。注雲:『後土,社也。』前答趙商曰:『當言後土,土神。言社,非也。』《檀弓》曰:『國亡大縣邑。』或曰:『君舉而哭於後土。』注雲: 『後土,社也。』《月令》:『仲春命民社。』注雲:『社,後土。』《中庸》雲:『郊社之禮,所以事上帝也。』注雲:『社,祭地神。不言後土,省文。』此三者,皆當定之否?」答曰:「後土,土官之名也。死以為社,社而祭之,故曰後土,社句龍為後土,後轉為社,故世人謂社為後土,無可怪也。欲定者,定之亦可,不須由此言。『後土者,地之大名也。』」僖十五年《左傳》曰:「履後土而戴皇天。」指謂地為後土也。句龍職主土地,故謂其官為後土。此人為後土之官,後轉以配社,又謂社為後土。且社亦土地之神。是後土之言,參差不一,故弟子疑而發問也。《宗伯》大封告後土者,以其大封是上地之事,宜告土神,不告句龍,故雲定為「後土,土神」。《檀弓》曰:「國亡大縣邑。哭於後土」者,以諸侯守社稷失地,哭於社,故雲「後土,社也」。此文與《月令》皆謂祭祀後土,則配社之神,故雲「社,後土」也。《中庸》雲郊、社相對,郊是天,則社是地,故雲「社祭土神」。以《宗伯》與《左傳》皆謂地為後土,則土神宜稱後土。而《中庸》言社,不言後土,故雲省文。以理皆可通,故雲「欲定,定之亦可,不須言」也。言迎四方之神於郊者,《下曲禮》雲:「天子祭四方,歲遍。」注雲:「祭四方,謂祭五宮之神於四郊也。句芒在東,祝融、後土在南,蓐收在西,玄冥在北。」是也。實五官而雲四郊者,火、土俱在南,其火、土俱祀黎,故《鄭誌》答趙商雲:「後土轉為者,無複代者。故先師之說黎兼之,亦因火、土位在南。」又《大宗伯》注雲:「五祀者,五官之神在四郊,四時迎五行之氣於郊,而祭五德之帝,亦食此神焉。少昊氏之子曰重,為句芒,食於木。該為蓐收,食於金。修及熙為玄冥,食於水。顓頊氏之子曰黎,為祝融、後土,食於火、土。」是黎兼二祀也。《曲禮》言歲遍,此祀在秋而並言四方,蓋常祀歲遍,此秋成報功則總祭,故並言四方也。○箋「以絜」至「其功」。○正義曰:《楚茨》箋雲:「明,猶潔也。」齊言明,謂絜清;羊言犧,謂純色。故雲「以絜齊豐盛,與純色之羊」。經言「齊明」,箋雲「絜齊」,文倒者,各從其便而言耳。《郊特牲》雲:「社稷太牢。」則四方之神亦太牢。此獨言羊以會句,言犧以見純明,非特羊而已。社為陰祀,其犧用純黑色也。其方祀,則各以其方之色也。知比社與四方皆為秋祭報功者,以上言黍稷之盛,而此言齊羊之祭,明是物成而祭也。下言「農夫之慶」,當孟冬休息;「以禦田祖」,是來春祈穀,故知此祭在秋為時次也,故《大司馬》仲秋雲「遂以獮田,羅弊,致禽以祀祊」。注雲:「祊當為方,聲之誤也。獮田主祭四方,報成萬物。」即引此詩雲:「以社以方。」是報祭四方在仲秋也。《良耜序》雲:「秋報社稷。」鄭《駁異義》引《大司徒》五地之物雲:「此五土地者,土生萬物,養鳥獸草木之類,皆為民利,有貢稅之法。王者秋祭之,以報其功。」是祭社亦在秋也。○箋「我田」至 「不通」。○正義曰:農夫之得慶賜,唯勞賜之耳。歲事不成,則無此勞息,故言「我田事既善,則慶賜農夫」也。「謂大蠟之時,勞農以休息之」者,王者以歲事成熟,搜索群神而報祭之,而謂之大蠟。又為臘先祖五祀,因令黨正屬民飲酒於序,以正齒位,而勞賜農夫,令得極歡大飲,是謂休息之。知如此者,《郊特牲》曰:「天子大蠟八。蠟也者,索也。歲十有二月,合聚萬物,索饗之也。」是說大蠟之祭也。《月令》孟冬雲:「是月也,臘門閭及先祖五祀,勞農以休息之。」是說休息之事也。《郊特牲》蠟祭之下又曰:「黃衣黃冠而祭,息田夫也。」注雲:「既蠟,臘先祖五祀,於是勞農以休息之。」是臘即次蠟之後,與蠟異也。《郊特牲》止雲「息田夫」,不謂之臘。必知《月令》之「臘祭」與《特牲》「息田夫」為一者,《郊特牲》說蠟祭之服雲:「皮弁素服以送終。葛帶榛杖,喪殺也。」其下別雲:「黃衣黃冠而祭。」明非蠟也。又曰:「既蠟而收,民息已。」既蠟乃雲息民,明知息民非蠟。息民與《月令》休息文同,故知黃冠而祭為臘祭也。是以注雲:「息民與蠟異。」則黃衣黃冠而祭,為臘必也。以此知臘在既蠟之後也。《地官·黨正職》曰:「國索鬼神而祭祀,則以禮屬民,而飲酒於序,以正齒位。」以此知黨正飲酒亦此時也。《下雜記》雲:「子貢觀於蠟,曰:『一國之人皆若狂。』」是恣民大飲也。《酒誥》周公戒康叔禁民飲酒,民無故不飲酒歡樂。今以歲穀豐熟,場功畢入,而特聽之,故謂之慶賜勞息。漢世每有國慶而賜民大酺,亦此義也。臘與息民,蠟後為之,以其與蠟同月。若不為蠟,則此事亦廢。事皆相將,故係之蠟焉。年不順成,八蠟不通。《郊特牲》文引此者,解言「我田既臧」,乃雲「農夫之慶」之意也。彼注數八蠟雲:「先嗇一也,司嗇二也,農三也,郵表叕四也,貓虎五也,坊六也,水庸七也,昆蟲八也。」此八蠟為其主耳,所祭不止於此。四方百物皆祭之。《春官·大司樂》雲:「凡六樂者,一變而致羽物及川澤之示,再變而致臝物及山林之示,三變而致鱗物及丘陵之示,四變而致毛物及墳衍之示,五變而致介物及土示,六變而致象物及天神。」注雲:「此謂大蠟,索鬼神而致百物,六奏樂而禮畢。」又《大宗伯》雲:「[QRXQ]辜祭四方百物。」注雲:「謂磔攘及蠟祭。」是蠟祭,四方百物皆祭之。○傳「田祖」至「穀善」。○ 正義曰:《郊特牲》注雲:「先嗇,若神農。」《春官·籥章》注雲:「田祖,始耕田者,謂神農。」是一也。以祖者,始也。始教造田,謂之田祖。先為稼穡,謂之先嗇。神其農業,謂之神農。名殊,而實同也。以神農始造田謂之田祖,而後稷亦有田功,又有事於尊可以及卑,則祭田祖之時,後稷亦食焉。後土則五穀所生,本雲句龍能平之,則句龍亦在祭中。而《籥章》雲「以樂田畯」,尚及典田之大夫,明兼後土、後稷矣。故《大司徒》注雲:「田主,田神後土及田正之神所依也。」詩人謂之田祖,以句龍為後土,後稷為田正,而言詩人謂之田祖,則田祖之文,雖主於神農,而祭尊可以兼卑,其祭田祖之時,後土、田正皆在焉,故鄭總言詩人謂之田祖也。言此田祖,其文得兼有後土、後稷,而《司徒》言田主,則其文不得兼神農。何則?彼雲「設其社稷之壝而樹之田主」,則田主唯社稷,不得有神農,故鄭唯雲「後土、田正」,其言不及神農,是其意也。「穀,善」,《釋詁》文。王肅雲:「大得我稷黍,以善我男女,言倉廩實而知禮節也。」○箋「設樂」至「田畯」。○正義曰:言設樂者,總琴瑟擊鼓。鼓言擊,明琴瑟亦擊可知。《籥章》雲「吹《豳》雅」則有籥吹之。此不雲籥,彼《籥章》不言琴瑟,皆文不備耳。知迎先嗇謂郊後始耕者,《月令》:「孟春,天子乃以元日祈穀於上帝。」注雲:「謂以上辛郊祭天。」即引襄七年《左傳》曰:「夫郊祀後稷以祈農事,是故啟蟄而郊,郊而後耕。」又曰:「乃擇元辰,天子親載耒耜,躬耕帝籍。」注雲:「元辰,郊後吉亥。」是郊後始耕也。謂於始耕時而祭之也。知者,以先嗇,人神,不宜先天而祭,故當郊後也。祈雨又宜早,不可以至二月。而田祖是始教田者,故知是始耕時祭之也。雲甘雨者,以長物則為甘,害物則為苦。昭四年《左傳》曰:「秋無苦雨。」服虔曰:「害物之雨,民所苦。」是也。雨以甘故,故得祐助我禾稼,當以養士女也。以此事在孟春,則事最在後,時次於上,故以此結章,見後當恆然,反明此年之春已有此事,以興嗣歲亦此義也。引《周禮》者,《籥章》文也。彼注雲:「祈年,求豐年也。《豳》雅、《七月》也。《七月》有 『於耜舉趾,饁彼南畝』之事,歌其類也。謂之雅,以其言男女之正。鄭司農雲:『田畯,古之先教田者。』《爾雅》曰:『畯,農夫也。』」以此言之,雲吹《豳》雅,謂籥吹之,故其職「掌土鼓豳籥」。杜子春雲:「土鼓,以瓦為匡,以革為兩麵,可擊也。」鄭司農雲:「豳籥,豳,國之地竹。」玄謂「籥,豳人吹籥之聲章」。是也。祭田祖而並祭田畯者,以神農始造田法,典田大夫以其法教民,亦是先教田,其祭並及之。先言祈年於田祖,是此祭主祭田祖,末言以樂田畯,見其次及之,故異其文也。

 

曾孫來止,以其婦子,饁彼南畝。

田畯至喜,攘其左右,嚐其旨否。(箋雲:曾孫,謂成王也。攘讀當為饟。饁、饟,饋也。田畯,司嗇,今之嗇夫也。喜讀為饎。饎,酒食也。成王來止,謂出觀農事也。親與後、世子行,使知稼穡之艱難也。為農人之在南畝者,設饋以勸之。司嗇至,則又加之以酒食,饟其左右從行者。成王親為嚐其饋之美否,示親之也。○饁,於輒反。畯,子峻反,本又作「峻」。後篇同。喜,毛如字,鄭為「饎」,尺誌反。下篇同。攘,如羊反,鄭讀為饟,式尚反,王如字。饋,巨愧反。從,才用反。)禾易長畝,終善且有。(易,治也。長畝,竟畝也。○易,以豉反,徐以赤反。)

 

曾孫不怒,農夫克敏。(敏,疾也。箋雲:禾治而竟畝,成王則無所責怒,謂此農夫能自敏也。)

 

疏「曾孫」至「克敏」。○毛以為,成王之時,非直為民報祭祈年,又曾孫成王亦自來止,親循畎畝,以勸稼穡也。君既勸之於上,民又勤之於下。農夫務事,遂以其婦之與子並來饋饁於彼南畝之中,家盡歡樂矣。其田畯之官典田大夫既至,見其勤勞,則喜樂其事矣。即教農夫以間暇之時攘除田之左右,辟其草萊,嚐其氣旨土地和美與否也,故使禾生易而治理長,而次列遍竟畝中,終至成善,且收而大有。曾孫成王見其如此,不有恚怒,乃謂此農夫,其田事既有工能,而且敏疾,故不怒之,以是致黍稷茂盛而年豐矣。今王不能然,故刺之。○鄭以為,曾孫成王之來止也,則以其己之婦與子,謂後與世子,出觀農事,使知稼穡之艱難也。又以飲食而行饋餉彼在南畝之農人,設食以勸之,使其樂事也。田畯之官至,又加之酒食之饎,以慰其典田之勤也。又饟其左右從已之行者,以賞其行途之勞,令喜於巡勸不厭也。又親為嚐其饋之美否,示親而愛之。故上下用命,農畯勸樂。餘同。○箋「曾孫」至「親之」。○正義曰:以《信南山》準之,故知「曾孫,成王」也。上言饁,下言嚐,皆飲食之事,故攘讀當為饟也。《釋詁》雲:「饁、饟,饋也。」舍人曰:「饟自家之野也。」此攘字在饁、喜之下,而先言之者,以詩中未有其事,故先明之。田畯,田官,在田司主稼穡,故謂司嗇。漢世亦有此官,謂之嗇夫,故言今之嗇夫也。《郊特牲》曰:「蠟之祭也,主先嗇而祭司嗇也。」注雲:「先嗇,若神農。司嗇,若後稷。」以神農始造其田,後稷教民播種,此二人有田事之大功者也。蠟者,為田報祭,故知謂此二人。稷為人臣教稼,亦是田官,故謂之司嗇。此言田畯,乃是當時主稼之人,故以司嗇言之,與《郊特牲》名同而實異也。「饁彼南畝,田畯至喜」,此及《大田》文與《七月》正同,故亦讀喜為饎。饎,酒食也。此為田事,而言曾孫之來,故知成王來止。謂出觀農事,曾孫來止,即言以其婦子,明曾孫自以已之婦子,故知親與後、世子行也。王之婦必是後。知子唯世子者,以將欲傳之國祚,明其教戒尢深,故知非餘子也。稼穡之艱難,《尚書·無逸》周公戒成王之辭也。此經曾孫之下而雲「以其」,明以下皆曾孫之事,故雲「為農人之在南畝者;設饋以勸之」,謂成王為之設也。言司嗇至則又加之以酒食,則農人之饋無酒,故雲加之也。其左右之行,雖各有糧食,王欲其勸農忘苦,從行不厭,故饟之也。王之從者,必有公卿大臣,親為嚐其饋之美否,亦所以親之也。此經毛不為傳,但毛氏於詩無破字者,與鄭不得同。王肅雲:「曾孫來止,親循畎畝勸稼穡也。農夫務事,使其婦子並饁饋也。田畯之至,喜樂其事,教農以間暇攘田之左右,除其草萊,嚐其氣旨土和美與否也。」傳意當然。王肅又雲:「婦人無閫外之事。」又帝王乃躬自食農人,周則力不供,不遍則為惠不普,玄說非也。孫毓雲:「古者婦人無外事,送兄弟不逾閾。唯王後親桑,以勸蠶事,又不隨天子而行。成王出勸農事,何得將婦兒自隨?而雲使知稼穡之艱難,王後寧複與稼穡事者乎?此與《豳風》『同我婦子,饁彼南畝,田畯至喜』之義皆同。農人遽於其事,婦子俱饟也。田畯見其勤修,喜樂其事。又王者從官,自有常餼,非獨於南畝之中,乃饟左右,而親為之嚐,又非人君待下之義。」皆以鄭說為短,斯不然矣。此刺今思古之詩,言古人之所難行,以傷今之廢業也。首章言輕其稅斂,二章為之祈報,此章言恩澤深厚,卒章言收穫弘多。曆觀其次,粲然有敘,寧當於此甫說農人之家行饁之事?又《大田》卒章,上言曾孫,下言禋祀,並是成王之事,不當以農人婦子輒廁其間也。且言「曾孫來止」,即言「以其婦子」,則是曾孫以之也。上無農人之文,何得為農人婦子乎?既言曾孫以其婦子,則後之從行,於文自見,複何所言,而雲無事也?若王後必無外事,不當蠶於北郊。王基以親蠶決之,非無理矣。衣食,人之所資,田蠶並為急務。蠶則後之所專,故後當獨行。田則王之所勸,後從行耳。此乃外內之別,職司之義,而孫毓反言親桑不隨王,非其難矣。王者憂深思遠,以世子者生於深宮之內,長於婦人之手,故與之俱行,知稼穡之艱難,欲其重國用而愛黎民,保王業而全宗祀也。以子所親,莫過於母,使之俱觀辛勤,內相規諫,此聖賢明訓,可與日月俱縣。《豳風》「同我婦子」,事連於「舉趾」,此雲「以其婦子」,文係於「曾孫」,辭既不同,義固當異,又安得皆為農人婦子也?田畯所喜,當喜農人之勤事,文在「饁彼」之下,是則喜其饟食,非複說其勤勞,何有國史吟詠立文若是哉!王者從官,非無常餼,直以同循稼穡,共食旨甘,與夫《秦風》所謂「與子同袍」,亦複何異?而雲非待下之義乎?此饋南畝之農人,賜田畯以酒食者,天子所省,固無周遍,值其所幸,便即賜之,使天下知我王之愛農也,則莫不盡力。農人之見饟也,則人各用心。賞一勸百,可使海內從風,何必每地皆往,農人盡賚?而雲力不供、惠不普也?王基因於不遍之言,而引《周語》以此為藉田之事,謬矣。然此詩止說豐年之義,無刺廢藉之文。箋之上下言不及藉。下篇刺矜寡不能自存,其文亦同於此。豈令矜寡之人,就藉田捃拾也?又下章庾、稼,共此接連,箋稱「古之稅法」,非為藉田,明矣。

 

曾孫之稼,如茨如梁。

曾孫之庾,如坻如京。(茨,積也。梁,車梁也。京,高丘也。箋雲:稼,禾也,謂有槁者也。茨,屋蓋也。上古之稅法,近者納 怱,遠者納粟米。庾,露積穀也。坻,水中之高地也。○茨,徐私反。庾,羊主反。坻,直基反。積如字,又子賜反。下皆同。槁,古老反。怱,作孔反。)

乃求千斯倉,乃求萬斯箱。(箋雲:成王見禾穀之稅,委積之多,於是求千倉以處之,萬車以載之,是言年豐收入逾前也。 ○委積,如字,又於偽反。年收,手又反,又如字。)

 

黍稷稻粱,農夫之慶。

報以介福,萬壽無疆!(箋雲:慶,賜也。年豐則勞賜,農夫益厚,既有黍稷,加以稻粱。報者為之求福,助於八蠟之神,萬壽無疆竟也。○疆,居良反。竟如字。)

 

疏「曾孫」至 「無疆」。○毛以為,上言曾孫之親循畎畝,此言稅獲之多。曾孫成王所稅得禾穀之稼,其積聚高大如屋茨,如車梁也。曾孫成王所稅得米粟之庾,其唯高大如渚坻,如丘京也。成王既見禾稼之積,粟庾之多,於是乃求千倉以處其庾也,乃求萬箱以載其稼也。以其收入逾前,故求倉廩車箱以載置之。喜其收獲之廣,湣念農夫之勤,故以黍稷稻粱為農夫之慶。謂黨正飲酒,加其饌食以稻粱也,非直勞而息之,又為之求福於八蠟之神,而報我農夫以大大之福,使之得萬年之壽,無有疆境。今幽王不能然,故刺之也。二「斯」皆為語助。○鄭唯以介為助。餘同。○傳「茨積」至「高丘」。○正義曰:墨子稱茅茨不剪,謂以茅覆屋,故箋以茨為屋蓋。傳言茨積,非訓茨為積也,言其積聚高大如屋茨耳。其意與箋同也。《孟子》「十二月車梁成」,梁謂水上橫橋。橋有廣狹,得容車渡,則高廣者也,故以比禾積。《釋丘》雲:「絕高為之京。」是「京,高丘」也。○箋「稼禾」至「高地」。○正義曰:庾是平地委粟,而與稼相對,則知稼有槁草矣。故雲「稼,禾稼,謂有槁者也」。此言曾孫所有,則是稅而得之。而有庾、稼二種,明是稅有兩法。故言古之稅法,近者納總,謂並禾稼納之;遠者納粟米,謂路遠者唯納粟,又遠者唯納米。以運輸為難,故輕之也。此文稼、庾相對,麵下言千倉、萬箱,是箱以載稼,倉以納庾,故知「庾,露地積穀也」。《釋水》雲:「水中可居者曰洲,小洲曰渚,小渚曰沚,小沚曰坻。」是水中之高地也。此言禾庾,當在畿內。若畿外,則採取美物以當邦賦,不入穀矣。畿內雖用貢法,亦校其歲以為率。依稅法,近郊十一,遠郊二十而三,甸、稍、縣都無過十二。以禾及米貢入於王。《掌客》有芻薪倍禾之言,是明周法有禾稼之稅矣。《禹貢》有納銍、納秸,周之有無,無以言也。依《禹貢》雲:「五百裏甸服。百裏賦納總,二百裏納銍,三百裏秸服,四百裏粟,五百裏米。」注雲:「甸服者,堯製賦其田使入穀。禹弼其外,百裏者賦入總,謂入刈禾也;二百裏銍,銍,斷去槁也;三百裏秸,秸又去穎也;四百裏入粟;五百裏入米者,遠彌輕也。甸服之製,本自納總。禹為之差,使百裏者從之耳。以此言之,有輕遠之法,故為近者納總,遠者粟米。既無銍、秸之文,不知遠近以何為差也。若然,後世之役宜繁於上代。周止千裏納穀。唐、虞則弼其外五百裏,為方二千裏,是方千裏者四納穀。多於周者,唐、虞萬國,諸侯歲朝,其用或費於後代,故納穀多也。又《鄭誌》答趙商雲:「畿內四百國。」則周郊內亦封諸侯矣。於周法十國而入其一於天子,然則雖千裏者四其稅,猶少於周,故使方二千裏入粟米。世代不同,故異法也。○箋「年豐」至「疆竟」。○正義曰:《特牲》、《少牢》之祭皆無稻粱,此特言黍稷稻粱,故知勞賜農夫加以稻粱也。報者,自神之辭,明求神而得報。為農夫之求神,唯蠟祭耳,故雲「為之求助於八蠟之神」。以祭有屍祝,故雲「萬壽無疆竟」,為得福之辭,與三章互相成也。蠟在息農夫前,而後言之者,以祭者雖在前,而福慶是將來之事,故後言之,以結篇也。定本「疆境」字作「境」。

 

甫田四章章十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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