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팔일(八佾) 卷 3 - 24
3-24) 儀封人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出, 曰: "二三子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의봉인청견왈: "군자지지어사야, 오미상불득견야." 종자현지. 출, 왈: "이삼자하환어상호? 천하지무도야구의, 천장이부자위목탁.")
의(儀) 땅의 국경 관리가 뵙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군자께서 이 곳에 이르시면 내가 일찍이 만나보지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고 하니, 따르던 제자가 뵙도록 해 주었다. <봉인(封人)이>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째서 잃을 것을 걱정하시오? 천하의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하늘이 장차 공부자를 목탁(木鐸)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논어집해(論語集解)》
【集解】儀封人請見,(鄭曰:「儀,蓋衛邑。封人,官名。」 ◎정현이 말하였다:“의(儀)”는 위(衛)나라 읍인 듯하다. “봉인(封人)”은 관직 이름이다.)曰:「君子之至於斯也,吾未嚐不得見也。」從者見之。(包曰:「從者,弟子隨孔子行者,通使得見。」 ◎포함이 말하였다:“종자(從者)”는 공자가 행하는 것을 따르는 제자인데, 통해서 <공자를>뵙도록 했다.)出曰:「二三子何患於喪乎?天下之無道也久矣,(孔曰:「語諸弟子言,何患於夫子? 聖德之將喪亡邪?天下之無道已久矣,極衰必盛。」 ◎공안국이 말하였다:여러 제자에게 논하여 말하기를 “어찌 공부자에 대해 걱정합니까? 성스러운 덕(德)이 장차 없어지겠습니까? 천하의 도(道)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쇠함이 지극하면 반드시 성대하게 됩니다”라고 하였다.)天將以夫子為木鐸。」(孔曰:「木鐸,施政教時所振也。言天將命孔子製作法度,以號令於天下。」 ◎공안국이 말하였다:“목탁(木鐸)”은 정책을 펼쳐서 본받게 할 때에 두드리는 것이다. 하늘이 장차 공자에게 법도를 제작하도록 명하여, 그로써 천하를 호령하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註疏】 「 儀封」至「木鐸」。
○【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의봉(儀封)]에서 [목탁(木鐸)]까지"
○正義曰:此章明夫子之德,天將命之使其定禮樂也。
○正義曰:이 장(章)은 부자(夫子)의 덕(德)이 밝으니, 하늘이 장차 명하여 예악(禮樂)을 제정하도록 할 것이다.
「儀封人請見」,衛國儀邑典封疆之人請告於孔子從者欲見孔子也。
<경문(經文)에서> "의(儀) 땅의 국경 관리가 뵙기를 청하며[儀封人請見]"는, 위(衛)나라 의읍(儀邑)의 봉토 국경을 맡아 지키는 사람이 공자를 따르는 제자에게 고해주기를 청하여 공자를 만나보고자 한 것이다.
「曰:君子之至於斯也,吾未嘗不得見也」者,此所請辭也。
<경문(經文)에서> "말하기를 '군자께서 이 곳에 이르시면 내가 일찍이 만나보지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고 하니[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라는 것은, 이것은 요청한 말이다.
嘗,曾也。言往者有德之君子至於我斯地也,吾嘗得見之,未曾有不得見者也。
상(嘗: 맛볼 상)은 일찍이 이다. 지난 일을 말한 것은, 나의 이 지역에 덕이 있는 군자가 오면 내가 일찍이 그를 만나보았으며, 만나보지 보지 못한 자가 없었음이다.
「從者見之」者,從者,謂弟子隨孔子行者。既見其請,故為之紹介通使得見也。
<경문(經文)에서> "따르던 제자가 뵙도록 해 주었다[從者見之]"라는 것은, 종자(從者)는 공자를 수행한 제자들을 말함이다. 이미 그[封人]의 청을 받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소개를 하여 통하여 만나뵙도록 한 것이다.
「出曰:二三子何患於喪乎」者,儀封人既請見夫子,出門乃語諸弟子曰:「二三子何須憂患於夫子聖德之將喪亡乎?」
<경문(經文)에서>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째서 잃을 것을 걱정하시오?'[出曰 二三子何患於喪乎]"라는 것은, 의읍의 봉인이 이미 청하여 부자를 만나뵙고 문을 나와 비로소 여러 제자에게 말했는데 “여러분들은 모름지기 부자의 성스러운 덕(德)이 장차 사라져 없어질 것을 어찌 걱정합니까?”라고 말했다.
「天下之無道也久矣」者,此封人又說孔子聖德不喪之由也。
<경문(經文)에서> "천하의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는데[天下之無道也久矣]"라는 것은, 이 봉인이 또 공자의 성스러운 덕(德)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言事不常一,盛必有衰,衰極必盛。今天下之衰亂無道亦已久矣,言拯弱興衰屬在夫子。
일은 한가지로 일정하지 않아서 성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고 쇠함이 지극하면 반드시 성대해진다. 지금 천하가 쇠하여 혼란하고 도(道)가 없어진지 또한 이미 오래이니, 약함을 구하고 쇠함을 일으킴이 부자에게 속해 있음을 말함이다.
「天將以夫子為木鐸」者,木鐸,金鈴木舌,施政教時所振也。
<경문(經文)에서> "하늘이 장차 공부자를 목탁(木鐸)으로 삼으실 것입니다[天將以夫子爲木鐸]"라는 것은, 목탁(木鐸)은 쇠 방울고 나무 혀이며, 정치와 교화를 펼 때에 흔드는 것이다.
言天將命孔子製作法度,以號令於天下,如木鐸以振文教也。
하늘이 장차 공자에게 명하여 법도를 제정하여 그로써 천하에 호령하여 문화(文化)의 교육(敎育)을 떨치는 듯이 한다는 말이다.
○注「 鄭曰儀蓋」至「官名」。
○ 【집해(集解)】 주(注)의 “[정왈 의개(鄭曰 儀蓋)]에서 [관명(官名)]까지"
○正義曰:云「儀,蓋衛邑」者,以《左傳》「衛侯入於夷儀」,疑與此是一,故云「蓋衛邑」也。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의(儀)는 위(衛)나라 읍인 듯하다[儀蓋衛邑]"라는 것은, 〈정현(鄭玄)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5년>의 “위(衛)나라 제후가 이의(夷儀)로 들어갔다[衛侯入於夷儀]”를 가지고 ‘이의(夷儀)’를 이곳의 ‘의(儀)’와 같은 것으로 의심했기 때문에 이르기를 “위(衛)나라 읍(邑)인 듯하다.”고 한 것이다.
云「封人,官名」者,《周禮》:「封人掌為畿封而樹之。」鄭玄云:「畿上有封,若今時界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봉인(封人)은 관직 이름이다[封人 官名]"라는 것은, 《주례(周禮)》 〈지관 사도(地官 司徒)〉에 “봉인(封人)은 왕기(王畿)를 봉지로 하여서 경계 나무 심는 일을 관장한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왕기(王畿)의 위에 봉지가 있는데 지금의 경계와 같다.”고 하였다.
天子封人職典封疆,則知諸侯封人亦然也。
천자의 봉인(封人)은 봉지의 강역을 관장하는 직이니, 그렇다면 제후의 봉인도 또한 그러함을 알 수 있다.
《左傳》言潁穀封人,祭仲足為祭封人,宋高哀為蕭封人,此云儀封人,皆以地名。封人蓋職典封疆,居在邊邑,潁穀、儀、祭皆是國之邊邑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말하기를 <은공 원년(隱公 元年)의> “영곡 봉인[潁谷封人]”과, <환공(桓公) 11년의> “채중족(祭仲足)이 제(祭)의 봉인이 되다[祭仲足爲祭封人]”과, <문공(文公) 14년의> “송(宋)나라 고애(高哀)가 소(蕭)의 봉인이 되다[宋高哀爲蕭封人]”라고 하였으며, 이곳에 이르기를 “의 봉인[儀封人]”라고 하여 모두 지명(地名)을 붙였으니, 봉인(封人)은 대체로 봉토의 강역을 관리하는 직책이며 변방 읍에서 거주하는 듯하다. 영곡(潁谷)‧의(儀)‧제(祭)는 모두 그 나라의 변방 읍(邑)이다.
○注「包曰」至「得見」。
○ 【집해(集解)】 주(注)의 “ [포왈(包曰)]에서 [득견(得見)]까지"
○正義曰:云「通使得見」者,見,謂為之紹介,使之見也。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통해서 <공자를>뵙도록 했다[通使得見]"라는 것은, 현(見)은 그를 위해 소개를 하여 뵙도록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若《左傳》云「乃見鱄設諸焉」,「齊豹見宗魯於公孟」亦然。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르기를 <소공(昭公) 20년에> “이에 전설제(鱄設諸)를 그곳에 알현(謁見)시키다[乃見鱄設諸焉]”와, “제표(齊豹)가 종로(宗魯)를 공맹(公孟)에게 알현시키다[齊豹見宗魯於公孟]”라고 했는데 또한 그러함과 같다.
○注「 孔曰」至「天下」。
○ 【집해(集解)】 주(注)의 “ [공왈(孔曰)]에서 [천하(天下)]까지"
○正義曰:云「木鐸,施政教時所振也」者,禮有金鐸、木鐸、鐸是鈴也,其體以金為之,明舌有金、木之異,知木鐸,是木舌也。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목탁(木鐸)”은 정책을 펼쳐서 본받게 할 때에 두드리는 것이다[木鐸 施政敎時所振也]"라는 것은, 『예(禮)』에 금탁(金鐸)과 목탁(木鐸)이 있는데, 탁(鐸: 방울 탁)은 바로 방울이다. 그 몸체는 쇠를 가지고 만들지만 혀는 쇠와 나무가 있음이 다름을 밝혔으며, 목탁은 바로 나무 혀임을 알 수 있다.
《周禮》教鼓人「以金鐸通鼓」。《大司馬》:「教振旅,兩司馬執鐸。」《明堂位》云:「振木鐸於朝。」是武事振金鐸,文事振木鐸。此云「木鐸,施政教時所振」者,所以振文教是也。
《주례(周禮)》 〈고인(鼓人)〉에 “고인(鼓人)이 금탁(金鐸)을 가지고 북을 치도록 가르친다.”고 하였으며, 《주례(周禮)》 〈대사마(大司馬)〉에 “군대를 떨치는데 두 사마(司馬)가 방울을 잡고 가르친다.”고 하였으며,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 “조정에서 목탁을 흔든다.”고 하였는데, 이는 군무의 일에는 금탁(金鐸)을 흔들고, 문반의 일에는 목탁(木鐸)을 흔드는 것이다. 이곳 주(注)에 이르기를 “목탁은 정책을 펼쳐 가르칠 때에 흔드는 것이다[木鐸 施政敎時所振]"라는 것은, 문교(文敎)를 떨치는 까닭이며 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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