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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례(喪禮)

 (성균관에 질문&답변)

 

ㅡ 출처:()성균관 홈페이지 자료실 

성균관의 옛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그 전에 있던 좋은 자료가 없어짐이 안타까워서 옴겨놓은 자료입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자손들이 '아이고'함은 애()로 아오나 제3자들은 '어이-'하고 곡()을 하는데,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알고자 문의합니다.

()사람이 죽어 곡()을 할 때 '아이고'라 함은 自己의 직계존속(直系尊屬)에게 할 수 있는 으로 한자로는 '애고(哀孤)'라고 쓰고 이것은 고애자(孤哀子)에서 유래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 외의 경우에는 '어이-'하는 곡()을 하는데 한자(漢字)로는 '여의'라고 씁니다.

 

[](1) 초상시(初喪時) 시체(屍體)를 입관후(入棺後) 성복시(成服時) 성복 축문(祝文)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문(禮文)을 보아도 알 수가 없습니다.  祝文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2) 상여(喪輿)가 출발시(出發時) 발인제(發靷祭)를 지낼 때 그 절차법을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3) 세월이 변천함에 따라 사망후(死亡後) 백일제나 49재로 탈복제(脫服祭)를 지내는 예가 많습니다. 백일 사십구제 탈복제 축문(百日 四十九齊 脫服祭 祝文)을 알려 주십시오. (4) 묘제시(墓祭時) 산신제(山神祭)를 먼저 지내는 데가 있고 묘제(墓祭)를 지내고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는 데가 있는데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요? (5) 산신제(山神祭)에는 분향(焚香)을 안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1) 성복례(成服禮)란 주상, 주부 이하 모든 복인들이 슬픔에 젖어 아직 서로 조문하지 못했으므로 비로소 정신을 가다듬고 각기 정한 상복을 입은 뒤에 서로가 복인(服人)이 된 것에 대해 인사하는 예()이지, 죽은 이에게 제사 지내는 성복제(成服祭)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복례(成服禮) 때는 축문(祝文)이 있을 수 없습니다.

(2) 발인(發靷)의 절차는 상여(喪輿, 또는 영구차)앞에 영좌를 설치하고 차례를 지낼 때와 같이 상을 차리고, 주상 이하 모두가 정한 자리에 선 다음 집례가 술을 따르고 아뢰는 것입니다.

(3) 현재 가정의례준칙에는 백일탈상(百日脫喪)으로 나와 있고 49재는 유교의 제사가 아니라 불교(佛敎)에서 재를 올리는 것이므로 언급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백일탈상(百日脫喪)을 할 경우에는 대상축문(大祥祝文)에서 '엄급대상(奄及大祥)' '엄급탈상(奄及脫喪)'으로 고쳐 쓸 수밖에 없습니다.

(4) '산신제(山神祭)'란 산소에 가서 묘제(墓祭)를 지낼 때, 또는 산역(山役)을 할 때에 그 묘소를 무사히 보살펴 주십사 하는 기구(祈求)로 그 토지를 주관하는 토지지신(土地之神)에게 지내는 제사입니다. 묘제와 산신제 중 어느 것을 먼저 지내는가 하는 문제는 각 문중마다 서로 다릅니다. 어느 문중은 산신제를 먼저 지내고, 또 다른 문중은 묘제를 먼저 지냅니다. 그러나 산신제란 조상의 묘소가 있는 토지를 주관하는 신에 대한 제사이므로 산신제를 먼저 지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5) 산신제에서 분향(焚香)을 안하는 이유는 원래 향()을 사르는 것은 상천(上天)에 계신 신령이 신위에 임하기를 인도하는 절차인데 토지(土地)의 신()은 지하에 계시지 하늘에 계실 까닭이 없다고 여겨서입니다. 따라서 분향은 하지 않고 강신뇌주만 하는 것입니다.

 

[](1) 발인제 지낼 때 발인축을 독축합니다. 축문 끝부분에 '영결종천(永訣終天)'이라고 하는데, 어느 문중은 남편이 살아 있는 상태의 부인상에는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요? (2) 상여 앞이나 뒤, 널판에다 '()'자를 지어 들거나 달아매고 가는데 그 ''자가 무슨 뜻이고 그 유래가 무엇인지요?

()(1) 발인(發靷) 축문(祝文) 끝에 '영결종천(永訣終天)'이라 하지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남편이 살아 있는 상태의 부인 상()에는 쓰지 않습니다. '昊天罔極' 父母의 기일제사(忌日祭祀) 祝文에 쓰고, 조부모(祖父母) 이상에는 불승영모(不勝永慕)'로 쓰고, 아내에게는 '불승비염(不勝悲念)'이라 쓰고, 방계친족 기타에는 '불승감창(不勝感愴)'이라고 씁니다. (2) ''자 형상을 그린 널판을 '운아삽(雲亞)' 또는 '운불삽()'이라 하며 운삽과 불삽으로 나눕니다. 운삽()은 발인(發靷)할 때에 영구(靈柩) 앞 뒤에 세우고 가는 구름 무늬를 그린 부채 모양의 널판이고, 불삽()은 발인(發靷)할 때 상여(喪輿)의 앞뒤에 들고 가는 제구(祭具) 자 형상을 그린 널판에 긴 자루가 달렸습니다.

 

[](1) 세일사(歲一祀) 홀기(笏記)에 대하여, ··(··) 헌관(獻官) 三人 이온데 초헌례(初獻禮) 祝文과 같이 기대조(幾代祖) 신위(神位)'라 창홀(唱笏)하고 아헌관(亞獻官) 위주로 '기대조고(幾代祖考) 신위(神位)'라 창홀(唱笏)해야 하는지요? 아니면 제주(祭主)가 초헌관이니 초헌관 위주로 창홀해야 하는지요? (2) '()' '()'의 구분이 어떻게 다른지요? (3) 가묘(家廟) 神位 봉안(奉安)함에 의 위패(位牌)도 명봉(各奉) 아니면 동일한 位牌에 병서(竝書)하는지요?

()(1) 세일사(歲一祀) 홀기(笏記) 등 모든 홀기(笏記)와 축문(祝文)은 초헌관인 제주(祭主) 위주로 작성되고 창홀(唱笏)합니다. (2) '제자(祭字)' '사자(祀字)'는 같은 뜻입니다. 관례에 따라 '제자(祭字)' 또는 '사자(祀字)'를 쓸 수 있으나 그뜻은 같습니다. (3) 제주(題主, 신주(神主)에 글씨 쓰는 일)는 돌아가신 후 장례(葬禮)가 끝난 후(성분(成墳)을 마치고 산신제(山神祭)를 지낸 다음에 만들고 봉안(奉安)합니다. 즉 각봉(各奉)합니다. 그러나 개제주(改題主)일 때는 동일한 위패(位牌)에 병서(竝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 각처에는 어느 때 어찌어찌하신 충신, 장군, 유명하신 유학자의 사당이 있는데 매년 1회 내지 춘추로 정해진 날에 제사를 올립니다. 그런데 경남, 충남, 경기 지방에 한 곳씩은 참석하여 보았고 이 곳 철원지방의 사우에도 매번 참석하지만 곳곳이 조금씩 다르므로 다음 몇 가지를 알고자 합니다. (1) 변두의 수는 몇으로 해야 됩니까? (2) 삼헌관은 서향립(西向立) 해야 하는지 북향립(北向立)해야 하는지요? 삼헌관은 관복 착용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유건 도포를 착용해야 하는지요?

()(1) ()과 두()의 수는 사변사두(四四豆)로 합니다. (2) 사우에 모신 대상이 군왕(君王)이 아니기 때문에 북향립(北向立)합니다. 그리고 삼헌관의 복식은 유건을 쓰고 도포를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직 행정관서의 장이 헌관을 할 경우 가끔 관복을 입는데 그것은 현재의 품계가 있으니 그 품계에 맞는 복식을 입는다는 취지지만, 원래는 모시는 대상에 따라 복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즉 대상이 왕이나 하늘, 땅 등의 천신지신(天神地神)일 경우에는 헌관들의 복식은 금관제복(金冠祭服)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생존중(生存中)인 모친(母親)이 사망(死亡)하였을때 선고(先考)의 묘소(墓所) 옆에 母親 墓所(雙墳)를 마련할 수 있는지요? 관습상(慣習上) 선산(先山)에는 사망즉시(死亡卽時)의 조묘불가설(造墓不可說)이 의식(意識)되어 문의합니다.

()선산(先山)에 사망(死亡) 즉시의 조묘불가설(造墓不可說)은 전혀 근거(根據)가 없습니다. 모친(母親)이 사망(死亡)하였을 때 선산(先山)에 있는 선고(先考)의 묘소(墓所) 옆에 모친 묘소(母親 墓所(쌍분(雙墳))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부모(父母)님의 60세 정도이시고 자() 30세 정도, () 10세 정도입니다. ()가 생존(生存)하시고 모()가 사망(死亡)했을 때 상주(喪主)는 누가 되는지요? 그리고 부음(訃音)을 알릴 때 부고장은 누가 내며, 또 상사 후 인사장을 낼 때는 누가 내는지 궁금합니다.

()가 생존하고 가 사망했을 시는 가 상주가 되고 가 생존시 가 사망했을 때는 장자(長子)가 상주가 됩니다. 부고와 인사장은 상주가 내는 것이니 이에 따르면 됩니다.

 

[]형제간의 묘지 배열에 관하여 질의합니다. 그리고 부부간의 합장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십시오.

()(1) 사자이서위상(死者 以西爲上, 죽은 사람은 서쪽이 상석(上席)이다.)이기에 일남(一男)을 가장 서쪽에 모시고, 동쪽으로 가면서 2,3,4,5을 모시는 방법, 즉 좌()로부터 로의 방향이 맞습니다. (2) 부인(婦人) 2인 경우에는 남편을 가장 서쪽에 모시고, 동쪽으로 제 1부인(婦人), 2부인(婦人) 순으로 모십니다. 부인(婦人) 1인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남편을 가장 서쪽에 모시고, 동쪽으로 부인(婦人)을 모십니다.

 

[]조상의 산소에 묘비를 세우려고 하는데 묘비에 남자 조상과 여자 조상을 쓰는 위치에 관해 질문합니다. 일반적으로 지방은 고서비동(考西東)에 의하여 남자조상은 서쪽, 여자 조상은 동쪽에 쓰는데 묘비에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요?

()산소 앞에 세우는 묘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 비석과 표석입니다. 비석의 뒷면에 음기 까지 기록하는 것으로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종서로 된 문장을 쓸 때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씁니다. 그러므로 비문도 오른쪽에서부터 쓰기 시작하는 것으로 남자 조상은 오른쪽에, 여자 조상은 왼쪽에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석은 단지 이 산소가 누구의 산소인지를 나타내는 표지석으로 이때는 이서위상(以西爲上)의 방법에 따라 남자 조상은 좌측, 여자 조상은 우측에 쓰는 것입니다.

 

[]예문(禮文)에 있어, 부상(父喪)에는 고자(孤子) 부모구상(父母俱喪)에는 '고애자(孤哀子)'를 쓰라고 했는데 父母俱喪이라 함은 부친상과 모친상을 겹쳐 만났을 때라고 믿고 있사온데 요즘 부친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후에 모친상을 당해도 '孤哀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옳은지요?

()부모상을 당했을 때 부상(父喪)에는 '고자(孤子)', 모상(母喪)에는 '애자(哀子)'라 하며 부모구몰(父母俱沒)한 상주는 '고애자(孤哀子)'라 하는바 父母께서 별세(別世)하신 지 오래더라도 그대로 적용합니다.

 

[]사우(祠宇)에 위패봉안(位牌奉安)함에 있어 2,3,4(,,四位)가 될 경우 순서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1) 주벽(主壁)을 모실 경우에는 소목(昭穆)으로 모십니다. , 主壁을 가운데 모시고 그 다음 위차(位次)되는 분을 (동쪽)에 모시고 , 그 다음은 (서쪽)에 모시는 방법으로 계속해서 位牌 , , , 穆 順으로 모시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군신지간(君臣之間)이나 사제지간(師弟之間)일 경우에 적용됩니다. (2) 또 다른 방법으로 이서위상(以西爲上)으로 位牌를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以西爲上은 서쪽이 높은 자리라는 뜻으로 같은 문인(門人)이나 가묘(家廟) 4(四代)까지 조상(祖上)의 위패(位牌)를 모실 때 적용됩니다.

 

[]묘비를 세우는데 묘의 어느 쪽에 세워야 맞는지요?

()집사자(執事者)가 묘()를 향하여 계절(階節) 안으로 오른쪽에 세웁니다.

 

[]하관할 때 홍대라는 나무판자의 호칭이 맞습니까?

()'횡대(橫帶)'라고 합니다.

 

[]49재로 탈상하려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49재는 불교의식입니다. 불교에서는 49일째 되는 날에 재를 올리고 탈상을 하니 유교의 탈상의식인 대상의 의식입니다.

 

[]친정 모친상에 유교식 장례를 하고 49재로 탈상하라는 주변 의견에 대하여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49재는 불교식 의제이니 가정의례준치에 나와 있는 100일 탈상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어 산소를 모셨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어머니 상이 나면 다른 곳에 산을 사서 같이 모시고자 하는데 하관시 선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먼저 아버지 산소 앞에서 계묘고사(啓墓告辭)를 하고, 아버지 산소를 파묘해서 유골을 개렴하여 새로 모실 묘지에 모셨다가 광중을 마치면 자손이 올려 바라보는 왼쪽에 먼저 아버지를 모시고, 오른쪽에 어머니를 모시고 난 후 간략한 제수를 차려 계장우제축문(啓葬虞祭祝文)을 지어 읽어 산소 쓰는 일이 끝났음을 고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예절입니다.

 

[]초우, 재우, 삼우를 일진에 따라 지내야 한다는데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초우제는 장례를 치른 날에 지내고, 재우제는 초우제를 지내고 처음으로 맞는 유일(柔日:일진에 을····(····)가 드는 날)의 아침에 지내며, 삼우제는 재우제를 지낸 다음 처음으로 맞는 강일(剛日:일진에 갑····(····)이 드는 날) 즉 재우 다음날에 지내는 것입니다.

 

[]모친상중에 100일 탈상을 하고자 합니다. 그 절차를 알고 싶습니다.

()원래는 100일 탈상이 아니고 부재모상(父在母喪)일 경우는 일년상(一年喪)이고 아버지도 돌아가신 경우는 삼년상(三年喪)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현재 가정의례준칙에 보면 100일 탈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00일 탈상을 하실 경우는 100일째 되는 날에 대상제를 지내고, 축문을 대상축문에서 '엄반대상(奄反大祥)' 엄반탈상(奄反脫喪)'으로 바꾸면 됩니다.

 

[]부친상을 당했는데 삭.망예와 생신이 곧 닥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식'이라 하여 조석으로 생전에 진지드리듯 상을 차려드리는 것이 전례 예법이고, 초하루와 보름은 특별히 안주를 차려 술을 한 잔 드리고 모든 자손들이 산소까지 다녀오는 예법이 있으며, 생신은 상식상을 특별히 차려드리고 모든 자손들이 정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탈상 전의 삭망 상식을 제사로 보는지요? 절은 몇 번 해야 맞는지요?

()()은 매월 초하루, ()은 보름을 말하며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면서 일어나는 현상의 뜻이며 의례를 갖추는 단위로 후한서에서 대부인(大夫人)의 안부를 묻는 제도로 부모 복상에도 그 기간을 원용한 것 같습니다. 제사로 볼 수 있으나 단헌무축이고 절은 재배로 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후 탈상 전의 생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탈상 전의 생신은 아침 상식상을 더 차려드리면 됩니다.

 

[]부재모상(父在母喪)에 기년 탈상하려면 소상(小祥) 기일을 어떻게 정해야 되는지요?

()아버지가 계신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1년 만에 탈상을 해야 하므로 죽은 지 10개월 만에 날을 받아 소상을 지냅니다.

 

[]졸곡으로 탈상을 하고자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졸곡축문(卒哭祝文) '효자(孝子)'로 쓴다고 하는데 맞는지요?

()졸곡 때 탈상을 하고자 할 때는 卒哭祝文을 쓰지 말고 탈상축문(脫喪祝文), 즉 대상축문(大祥祝文)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卒哭부터 길사(吉事)라고 보아 '孝子'로 써야 합니다.

 

[]외사촌 동생이 목숨을 잃었는데 조문 예절을 알고 싶습니다.

()분향한 후 추모의식을 묵념으로 하고 절은 하지 않습니다.

 

[]백모님 초상에 조문하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어버이 격이 되시니 영좌에 가면 상제의 안내로 빈소 안에 고인의 얼굴을 보게 할 것입니다. 곡하면서 뵈온 후에 상제와 같이 나와 상사의 협조사항을 협의해야 할 것이고 이미 염습을 한 후라면 곡하면서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린 후 재배하고 상주와 한번 절로 인사하면 됩니다.

 

[]일 년으로 탈상코자 하는데 축문서식과 제례의식을 알고 싶습니다.

()탈상은 대상이니 대상축문을 써야 하고 의식은 전날 저녁때 상식을 올리고 그날 밤 12시를 지나 다음 날 밝기 전 제사와 같이 지내고 복을 벗고 소복한 채 산소에 나아가 성묘하고 마치면 됩니다.

 

[]친구의 아들이 변고를 당하여 문상하려 하는데 하는 의식은?

()지극히 위로해야 하겠습니다. 고인에 대한 의례는 손아래 사람이니 분향, 추모 정도로 정중히 하고 절은 하지 않습니다. 그 부형에게 위로를 거듭 하시면 됩니다.

 

[]한시묘제도가 시행될 예정인 모양인데 성균관의 의견은 어떤지요?

()국토의 이용관리라는 대전제하에 국책으로 시행하려 한다면 단계적 수용이 어쩔 수 없을 것이나 현재 국토상 무연고 묘지의 정리 등의 효율적인 국토관리로 타개책이 가능할 것이고, 또한 아직은 국민정서상 서두를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모친상의 표식으로 검은 양복을 입고 직장에 근무하고자 하는데 예제상 어떨지요? 그리고 상청을 고향에 모셨고 산소도 모셨기에 토요일마다 내려가 곁에서 거처하려 합니다.

()검은 양복에 상표(喪表)를 부착 착용도 가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정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내려가 산소에서 지낸다고 하는데 경의를 표합니다. 옛날에는 당연히 시묘살이를 했지만 지금은 여건상 어려운 처지입니다. 어려운 여건 하에 매주 토요일마다 내려가 어머니 산소 옆에서 지낸다고 하니 가상합니다.

 

[]출가 1개월 만에 병사한 딸의 장례를 친정 부모주관으로 치르고 우제 및 기타 인정에 맞는 행례를 해도 무방한지요?

()괜찮습니다. 다만 손윗분들의 분향추모는 가능하고, 손아래는 절을 해야 합니다.

 

[]연갑(年甲) 족하초상(族下初喪)에 가서 문상(問喪)하는 격식(格式)을 알고 싶습니다.

()분향(焚香)과 곡()은 하되 절은 하지 않습니다. 상제에게 위로 격려도 합니다.

 

[]견전예(遣奠禮) 때 고유(告由)를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상여 앞에 영좌를 설치하고 차례를 지낼 때와 같이 제수를 진설하고, 주상 이하 모두가 정한 자리에 선 다음 집례가 술을 올리고 축을 읽은 후 상주 이하 극진히 곡하고 재배(再拜)하면 됩니다.

 

[]脫喪 절차와 의례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탈상 기일 전날 저녁에 상식을 올리고 손님을 받은 후 그 다음날 아침 해뜰 무렵에 기제사와 같이 차리고 기제사 절차와 같이 지냅니다. 대상을 지내고 난 뒤 상복을 벗고 소복으로 갈아입은 후 산소에 가서 분향, 뇌주 후 재배한 다음 마칩니다.

 

[]석관 장례 때 석관과 시신 사이 공간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요?

()깨끗한 흙을 종이에 싸서 채우되 시신이 움직이지 않게 채워야 합니다.

 

[]장례 때 석회를 쓰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석회를 흙에 일정 비율로 배합하여 관 밖에 채우고 덮으면 광중을 튼튼히 할 뿐 아니라 외부의 침해와 나무 뿌리 등의 침범을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장례 때 남자, 여자는 서로 어떤 위치가 바른 위치인가요?

()후손은 남자는 우측, 여자는 좌측에 섭니다. 그러나 신위는 자손 입장에서 남자는 좌측, 여자는 우측이 바른 위치입니다.

 

[]상을 당한 상제의 입장에서 친구가 친상을 당했을 때 문상을 해도 되는지요?

()시대의 정서는 생활상으로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부모상을 입고 있는 중에 친구가 친상을 당했을 때 그 친구는 당신의 상에 와서 문상을 하고 도와 준 것을 생각하면 당장 달려가 조문을 하고 싶으나 현재 당신의 입장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하니 다른 사람으로 대신 부의나 하고 마음이 허락하면 문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졸곡(卒哭)이 지난 후에는 예외가 될 수 있습니다.

 

[]유명인사가 부상후(夫喪後) 49재를 사찰에서 거행하면서 사회에 알리려 하는데 보좌인 입장에서 바람직한 보좌하는 의례는?

()초상시(初喪時)에 그 직위(職位)를 세워 조위금(弔慰金)을 받은지 49일 만에 다시 탈상예의 부조(扶助)를 받으려는 의지가 있다면 삼가는 것이 좋겠고, 아주 가까운 척분이나 친지 정도는 알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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