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47. 곤괘(困卦)[택수곤]/王弼 注
▣ 왕필 주역주
○ 왕필(王弼.226~249)
위(魏)나라 산음(山陰, 산동성) 사람이며 자는 보사(輔嗣)이다. 풍부한 재능을 타고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찍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24살에 요절한 뛰어난 학자이다.
47. 곤괘(困卦)[卦象:택수곤]
☱ 兌上
☵ 坎下
감(坎)[水.물]이 아래에 있고, 태(兌)[澤.못]가 위에 있다.
困,亨。
곤(困)은 형통하지만,
【王弼 注】 窮必通也,處窮而不能自通者,小人也。
【왕필 주】궁하면 반드시 통함은, 궁함에 처하여도 스스로 잘 통하지 못하는 자이며 소인(小人)이다.
貞,大人吉,无咎。
곧아야 대인(大人)이 길하고 허물이 없으며,
【王弼 注】 處困而得无咎,吉乃免也。
【왕필 주】곤궁함에 처하여서 허물없음을 얻고 길하니 마침내 면함이다.
有言不信。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彖》曰:困,剛揜也。
《단전(彖傳)》에서 말하였다. "곤궁함은, 굳셈이 [부드러움에] 가려졌는데,
【王弼 注】 剛見揜於柔也。
【왕필 주】굳셈이 부드러움에 가려짐을 당하였다.
險以說困而不失其所亨。
험함으로써 설득하여도 곤궁하지만 그 형통한 바를 잃지 않으니,
【王弼 注】 處險而不改其說,困而不失其所亨也。
【왕필 주】험함에 처하여서도 그 설득에 고치지 않으니 곤궁하면서 그 형통한 바를 잃지 않음이다.
其唯君子乎!貞大人吉,以剛中也。
그는 오직 군자이겠지! 곧은 대인(大人)이 길함은 굳셈으로써 가운데[中] 함이고,
【王弼 注】 處困而用剛,不失其中,履正而能體大者也。能正而不能大愽,未能濟困者也,故曰貞大人吉也。
【왕필 주】곤궁함에 처하면서 굳셈을 사용하고 그 가운데[中]를 잃지 않으니 바른데를 밟고서 몸[體]을 크게 잘하는 자이다. 바로잡기를 잘하면서도 크게 넓게 잘하지 않으니 곤궁함을 잘 구제하는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곧아야 대인이 길하다."라고 말했다.
有言不信,尚口乃窮也。
말을 해도 믿지 않음은 입을 숭상하면 마침내 궁함이다."
【王弼 注】 處困而言,不見信之時也。非行言之時,而欲用言以免,必窮者也。其吉在於貞大人,口何為乎?
【왕필 주】곤궁함에 처하여서 말하니 믿음을 받지 못하는 때이다. 말을 행하는 때가 아닌데도 말을 사용하여 면하기를 바라니 반드시 궁한 자이다. 그 길함은 대인(大人)의 곧음에 있는데 입이 무엇을 하겠는가?
《象》曰:澤无水,困,君子以致命遂志。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못에 물이 없음이 곤(困)괘인데, 군자가 그로써 목숨을 바쳐 뜻을 완수(完遂)한다."
【王弼 注】 澤无水,則水在澤下。水在澤下,困之象也。處困而屈其志者,小人也。君子固窮,道可忘乎?
【왕필 주】못에 물이 없다면 물이 못 아래에 있으며, 물이 못 아래에 있음은 곤궁함의 모습[象]이다. 곤궁함에 처하여서 그 뜻을 굽히는 자는 소인(小人)이다. 군자(君子)는 궁함에 확고(確固)한데 도(道)를 잊을 수 있겠는가?
初六,臀困于株木,入于幽谷,三歲不覿。
초육(初六)은 나무 그루터기에 궁둥이가 곤궁하니, 그윽한 골짜기로 들어가서 삼년을 만나보지 못한다.
【王弼 注】 最處底下,沉滯卑困,居无所安,故曰臀困于株木也。欲之其應,二隔其路。居則困于株木,進不獲拯,必隱遯者也,故曰入于幽谷也。困之為道,不過數歲者也。以困而藏,困解乃出,故曰三歲不覿也。
【왕필 주】가장 낮은 아래에 처하여 가라앉아 막히어 낮고 곤궁하며 거주함에 편안한 곳이 없기 때문에 “나무 그루터기에 궁둥이가 곤궁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 응(應)에 가고자 하는데 구2(九二)가 그 길을 가로막아서, 거주하면 나무 그루터기에 곤궁하고 나아가면 구원을 얻지 못하니 반드시 은둔할 자이다. 그러므로 “그윽한 골짜기로 들어간다.”라고 말한 것이다. 곤궁[困]함이 도(道)가 됨은, 몇 년을 지나지 않는 것이고, 그로써 곤궁하여서 숨었는데 곤궁함이 풀리면 마침내 나오기 때문에 “3년을 만나보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象》曰:入于幽谷,幽不明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그윽한 골짜기로 들어감은, 그윽하여 밝지 않음이다."
【王弼 注】 言幽者,不明之辭也。入于不明,以自藏也。
【왕필 주】 그윽함을 말하는 것은, 밝지 않음을 말함이다. 밝지 않음으로 들어감은 그로써 자신을 감춤이다.
九二,困于酒食,朱紱方來,利用亨祀。征凶, 无咎。
구이(九二)는 술과 밥에 곤궁한데도 주불(朱紱; 귀인)이 바야흐로 오니 제사를 올림이 이로우며, 가면 흉하지만 허물은 없다.
※ 朱紱(주불) : 제복(祭服)의 무릎 덮개[폐슬(蔽膝)]이다.
【王弼 注】 以陽居陰,尚謙者也。居困之時,處得其中,體夫剛質,而用中履謙,應不在一,心无所私,盛莫先焉。夫謙以待物,物之所歸。剛以處險,難之所濟。履中則不失其宜,无應則心无私恃。以斯處困,物莫不至,不勝豐衍,故曰困于酒食,美之至矣。坎,北方之卦也。朱紱,南方之物也。處困以斯,能招異方者也,故曰朱紱方來也。豐衍盈盛,故曰利用亨祀。盈而又進,傾之道也,以此而征,凶誰咎乎?故曰征凶,无咎。
【왕필 주】양(陽)으로써 음(陰)에 거주하니 겸손을 숭상하는 자이며, 곤궁한 때에 거주하고 가운데[中]를 얻어 처하며, 그 굳센 자질을 몸[體]하면서 가운데[中]가 겸손함을 이행하고 응(應)이 한곳에 만 있지 않으며 마음에 사사로운 바가 없으니, 성함이 이것 보다 앞선데가 없다. 겸손함으로써 남[사물]을 대하면 남[사물]이 귀의하는 곳이고, 굳셈으로써 험함에 처하면 어려움이 구제되는 곳이다. 가운데[中]를 이행하면 그 마땅함을 잃지 않고, 응(應)이 없으면 마음에 사사로이 믿음이 없으며, 이로써 곤궁함에 처하면 남[사물]이 이르지 않음이 없으니 풍부하고 넓음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술과 밥에 곤궁하지만 아름다움이 지극한 것이다.
감(坎)은 북쪽 방향의 괘(卦)이고, 주불(朱紱)은 남쪽 방향의 물건이다. 곤궁에 처하기를 이로써 하면 이는 다른 지방을 잘 불러오는 자이다. 그러므로 “주불(朱紱)이 바야흐로 온다.”라고 말한 것이다. 풍부하고 넓음이 가득하고 성하기 때문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 이로운 것이다. 가득한데 또 나아감은 기울어지는 도(道)이니, 이로써 하여 가면 흉하지만 누구의 허물인가? 그러므로 “가면 흉하지만 허물은 없다.”라 말한 것이다.
《象》曰:困于酒食,中有慶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술과 밥에 곤궁함은 가운데[中]에 경사가 있음이다."
六三,困于石,據于蒺蔾。入于其宮,不見其妻。凶!
육삼(六三)은 돌에 곤궁하고 남가새풀에 근거하니, 그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만나지 못하며 흉하다.
【王弼 注】 石之為物,堅而不納者也,謂四也。三以陰居陽,志武者也。四自納初,不受己者。二非所據,剛非所乘。上比困石,下據蒺藜,无應而入,焉得配偶?在困處斯,凶其宜也。
【왕필 주】 돌이 사물이 됨은, 단단하여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며 구4(九四)를 말함이다. 육3(六三)은 음(陰)으로써 양(陽)에 거주하여 뜻이 무인(武人)인 자이다. 구4(九四)는 스스로 초육(初六)을 받아들여서 자기[六三]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이고, 구2(九二)는 근거할 곳이 아니며, 굳셈[九二]은 탈 곳이 아니다. 위로 곤궁한 돌에 가깝고, 아래는 남가새풀[蒺藜]에 근거하여 응(應)이 없는데도 들어가니 어찌 짝 만남을 얻겠는가? 곤궁함에 있으면서 이러함에 처하니 흉함이 당연하다.
《象》曰:據于蒺蔾,乘剛也。入于其宮,不見其妻,不祥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남가새풀에 근거함은 굳셈을 올라탐이다. 그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보지 못함은 상서롭지 못함이다.”
九四,來徐徐,困于金車,吝,有終。
구사(九四)가 서서히 오니 쇠 수레[金車]에 곤궁하여, 부끄럽지만 마침은 있다.
【王弼 注】 金車,謂二也。二剛以載者也。故謂之金車。徐徐者,疑懼之辭也。志在於初,而隔於二,履不當位,威命不行。棄之則不能,欲往則畏二,故曰「來徐徐,困于金車」也。有應而不能濟之,故曰吝也。然以陽居陰,履謙之道,量力而處,不與二爭,雖不當位,物終與之,故曰有終也。
【왕필 주】쇠 수레[金車]는 구2(九二)를 말함이며, 구2(九二)는 굳셈으로써 싣는 자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금거(金車)’라고 하였다. 서서(徐徐)라는 것은,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말이다. 뜻이 초육(初六)에 있는데도 구2(九二)에게 막히고, 밟은데가 지위에 합당하지 않으며 위엄과 명령이 행해지지 못한다. 그것[初六]을 버리려고 하나 잘하지 못하고 가고자 하면 구2(九二)가 두렵기 때문에 “서서히 오니 쇠 수레에 곤궁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응(應)이 있으나 구제를 잘 안 해주기 때문에 “부끄럽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양(陽)으로써 음(陰)에 거주하고 겸손한 도(道)를 이행하며 힘을 헤아려서 처하고 구2(九二)와 다투지 않으니, 비록 지위가 마당하지 않지만 남[사물]이 끝내 함께 하기 때문에 “마침은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象》曰:來徐徐,志在下也,雖不當也,有與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서서히 옴은, 뜻이 아래에 있으니, 비록 마땅하지 않으나 함께 하는 이가 있다.”
【王弼 注】 下,謂初也。
【왕필 주】아래는 초육(初六)을 가리킨다.
九五,劓刖,困于赤紱,乃徐有說,利用祭祀。
구오(九五)는 코와 발을 베이고 적불(赤紱; 신하)에 곤궁하지만 마침내 서서히 설득이 되며, 제사를 지냄이 이롭다.
【王弼 注】 以陽居陽,任其壯者也。不能以謙致物,物則不附。忿物不附而用其壯猛,行其威刑,異方愈乖,遐邇愈叛,刑之欲以得,乃益所以失也,故曰「劓刖,困于赤紱」也。二以謙得之,五以剛失之,體在中直,能不遂迷,困而後能用其道者也。致物之功,不在於暴,故曰徐也。困而後乃徐,徐則有說矣,故曰「困于赤紱,乃徐有說」也。祭祀,所以受福也。履夫尊位,困而能改,不遂其迷,以斯祭祀,必得福焉,故曰利用祭祀也。
【왕필 주】양(陽)으로써 양(陽)에 거주하고 그 건장함에 임하는 자이며, 겸손함으로써 남[사물]을 오도록 잘 못하니 남[사물]이 따르지 않는다. 남[사물]이 따르지 않음에 분해서 그 건장함과 사나움을 사용하고 그 위엄과 형벌을 행하면 다른 방향이 더욱 어긋나고 멀고 가까운데가 더욱 배반하는데, 형벌로 나아가 얻고자 하니 마침내 더함이 잃게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코와 발을 베이고 적불(赤紱)에 곤궁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구2(九二)가 겸손함으로써 얻는데 구5(九五)는 굳셈으로써 잃으며 몸[體]이 가운데[中] 곧음에 있어서 혼미함을 잘 이루지 못하니, 곤궁한 이후에 그 도(道)를 잘 사용하는 자이다. 남[사물]을 오게 하는 공(功)은 사나움에 있지 않기 때문에 “서서히”라고 말한 것이다. 곤궁한 이후에 마침내 서서히 하면 벗어남이 있다. 그러므로 “적불(赤紱; 신하)에 곤궁하지만 마침내 서시히 벗겨진다.”라고 말한 것이다. 제사는 복(福)을 받는 까닭인데, 높은 지위를 밟고 곤궁하면서도 잘 고쳐서 그 혼미함을 이루지 않으며, 이로써 제사하면 반드시 그곳에서 복을 얻기 때문에 “제사에 씀이 이롭다.”라고 말한 것이다.
《象》曰:劓刖,志未得也。乃徐有說,以中直也。利用祭祀,受福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코와 발을 베임은, 뜻을 얻지 못했음이다. 마침내 천천히 벗어남이 있음은, 그로써 가운데가 곧음이다. 제사를 지냄이 이로움은, 복을 받음이다.”
上六,困于葛藟,于臲卼,曰動悔有悔,征吉。
상육(上六)은 칡넝쿨과 위태로움에 곤궁하지만, 후회를 움직이게 말하여 후회가 있게 하면 가더라도 길하다.
【王弼 注】 居困之極,而乘於剛,下无其應,行則愈繞者也。行則纏繞,居不獲安,故曰困于葛藟于臲卼也。下句无困,因於上也。處困之極,行无通路,居无所安,困之至也。凡物,窮則思變,困則謀通,處至困之地,用謀之時也。曰者,思謀之辭也。謀之所行,有隙則獲,言將何以通至困乎?曰動悔,令生有悔,以征則濟矣,故曰「動悔有悔,征吉」也。
【왕필 주】곤궁함의 꼭대기에 거주하면서 굳셈을 타고 아래에 그 응(應)이 없으니 가면 더욱 둘러싸는 자이다. 가면 얽어서 둘러싸니 거주함에 편안함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칡넝쿨과 위태로움에 곤궁하지만”라고 말한 것이다. 아래 구(句)에 곤(困)이 없음은 위의 곤(困)자이다. 곤궁[困]의 꼭대기에 처하여 감에 통하는 길이 없고 거주함에 편안한 곳이 없음은 곤궁함이 지극함이다. 모든 사물이 궁하면 변함을 생각하고 곤궁하면 통할 것을 도모하는데, 지극히 곤궁한 자리에 처하였으니 계책을 사용하는 때이다. ‘왈(曰)’라는 것은, 계책을 생각하여 말함이며, 계책이 행해질 곳에는 틈이 있으면 얻어지는데, “장차 어떻게 하면 지극히 곤궁함을 통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후회하는 말을 움직임은, 후회가 있음을 생겨나게 하여서 그로써 가면 구제된다. 그러므로 “후회를 움직여 후회가 있게 하면 가더라도 길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困于葛藟,未當也。動悔有悔,吉行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칡넝쿨에 곤궁함은, 아직 마땅하지 않음이고,
【王弼 注】 所處未當,故致此困也。
【왕필 주】 처하고 머무름이 아직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괴로움을 불러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