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38. 규괘(睽卦)[화택규]/王弼 注
▣ 왕필 주역주
○ 왕필(王弼.226~249)
위(魏)나라 산음(山陰, 산동성) 사람이며 자는 보사(輔嗣)이다. 풍부한 재능을 타고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찍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24살에 요절한 뛰어난 학자이다.
38. 규괘(睽卦)[卦象:화택규]
☲ 離上
☱ 兌下
태(兌)[澤.못]가 아래에 있고, 리(離)[火.불]가 위에 있다.
睽,小事吉。
규(睽)는 작은 일은 길하다.
《彖》曰:睽,火動而上,澤動而下。二女同居,其志不同行。說而麗乎明,柔進而上行,得中而應乎剛,是以小事吉。
《단전(彖傳)》에서 말하였다. “규(睽)괘는 불은 움직여서 위쪽이고 못이 움직여서 아래이다. 두 여자[離중녀+兌소녀]가 함께 거주하는데 그 뜻을 한 가지로 행하지 않으니, 벗어나서 밝음에 붙고, 부드러움이 나아가서 위로 행하며 가운데를 얻어서 굳셈에 응(應)하니, 이로써 작은 일은 길함이다.”
【王弼 注】 事皆相違,害之道也。何由得小事吉?以有此三德也。
【왕필 주】 일을 모두 서로 어김은, 해침을 하는 도(道)이다. 어찌 적은 일을 말미암아 길하겠는가? 그로써 이 세가지 덕(德)이 있다.
天地睽而其事同也,男女睽而其志通也,萬物睽而其事類也,睽之時用大矣哉!
하늘과 땅이 반목(反目)하지만 그 일은 같고, 남녀가 반목하면서도 그 뜻은 통하며, 만물이 반목하지만 그 일은 유사(類似)하니, 규(睽)괘의 때와 쓰임이 크도다!"
【王弼 注】 睽離之時,非小人之所能用也。
【왕필 주】규(睽)괘는 이별의 때이니, 소인이 잘 사용하는 바가 아니다.
《象》曰:上火下澤,睽,君子以同而異。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위쪽은 불이고 아래쪽에 못이 규(睽)괘이니, 군자는 그로써 같으면서도 다르게 한다."
【王弼 注】 同於通理,異於職事。
【왕필 주】통하는 이치는 같으나 일하는 직분에서는 다르다.
初九,悔亡喪馬, 勿逐自復,見惡人,无咎。
초구(初九)는 후회가 없어지니 말[馬]을 잃더라도 스스로 돌아오니 쫓지 말라, 악한 사람을 뵙지만 허물은 없다.
【王弼 注】 處睽之初,居下體之下,无應獨立,悔也。與四合志,故得悔亡。馬者,必顯之物。處物之始,乖而喪其馬,物莫能同,其私必相顯也,故勿逐而自復也。時方乖離,而位乎窮下,上无應可援,下无權可恃,顯德自異,為惡所害,故見惡人乃得免咎也。
【왕필 주】규(睽)괘의 처음에 처하고, 아래 몸[體]의 아래에 거주하며 응(應)이 없이 홀로 서서 후회한다. 구4(九四)와 더블어 뜻을 합하기 때문에 후회가 없어짐이다. 말[馬]이라는 것은 반드시 나타나는 사물이다. 사물의 시작에 처하고 어그러져서 그 말[馬]을 잃었지만 사물은 같음이 잘 없으니 그 사사로움이 반드시 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쫓지 않았는데 스스로 돌아옴이다. 때가 바야흐로 어그러지고 떠나면서 아래에 다한 자리이니 위에 도울 수 있는 응(應)이 없고 아래에 의지 할 수 있는 권력이 없지만 덕(德)을 드러내어 스스로 달리하면 해치는 바를 미워하게 되기 때문에 미운 사람이 만나지만 마침내 허물을 면함이다.
《象》曰:見惡人,以辟咎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악한 사람을 뵙는 것은, 그로써 허물을 피함이다.”
九二,遇主于巷,无咎。
구이(九二)는 주인을 거리에서 만나면 허물이 없다.
【王弼 注】 處睽失位,將无所安。然五亦失位,俱求其黨,出門同趣,不期而遇,故曰遇主于巷也。處睽得援,雖失其位,未失道也。
【왕필 주】어긋남[睽]에 처하여 지위를 잃으니, 장차 편안한 곳이 없다. 그러나 육5(六五) 또한 지위를 잃고 함께 그 무리를 구하여 문을 나가 취지(趣志)가 같아서 기약하지 않고서 만나기 때문에 "주인을 거리에서 만났다."라고 말을 했다. 어긋남[睽]에 처하여 도움을 얻었는데, 비록 그 지위를 잃었지만 아직 도(道)를 잃지는 않았다.
《象》曰:遇主于巷,未失道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주인을 거리에서 만남은, 아직 도(道)를 잃지 않았음이다."
六三,見輿曳,其牛掣,其人天且劓。无初有終。
육삼(六三)은 수레가 [구이(九二)에게] 끌림을 당하여 그 소가 끌려가며 그 사람이 이마에 묵형(墨刑)하고 또 코를 베었으나, 처음은 없지만 마침은 있다.
【王弼 注】 凡物近而不相得則凶。處睽之時,履非其位,以陰居陽,以柔乘剛,志在於上,而不和於四。二應於五,則近而不相比,故見輿曳。輿曳者,履非其位,失所載也。其牛掣者,滯隔所在,不獲進也。其人天且劓者,四從上取,二從下取,而應在上九,執志不回,初雖受困,終獲剛助。
【왕필 주】무릇 사물이 가까운데도 서로 얻지 못하면 흉하다. 어그러짐[睽]의 시작에 처하여 그 지위가 아닌데를 밟고 음(陰)으로써 양(陽)에 거주하며 부드러움으로써 굳셈[九二]을 타고 뜻이 상구(上九)에 있어서 구4(九四)에 어울리지 못한다. 구2(九二)는 육5(六五)에 응(應)하니, 즉 [구2(九二)와]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 친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레가 끌림을 당함이다. 수레가 끌린다는 것은, 지위가 아닌데를 밟아서 실을 곳을 잃었음이다. 그 소가 끌려간다는 것은, 있는 곳에 막히고 사이가 떠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천벌(天罰) 받고 또 코를 베인다는 것은, 구4(九四)는 올라감을 취하여 따르고 구2(九二)는 내려감을 취하는데 [육삼(六三)은] 응(應)이 상구(上九)에 있어서 잡은 뜻을 돌리지 않으니, 처음은 비록 곤궁함을 받으나 마침은 굳셈의 도움을 얻게 된다.
《象》曰:見輿曳,位不當也。无初有終,遇剛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수레가 [구이(九二)에게] 끌림을 당함은, 지위가 마땅하지 않음이다. 처음은 없지만 마침은 있음은, 굳셈을 만나기 때문이다.”
九四,睽孤,遇元夫,交孚,厲无咎。
구사(九四)는 어그러져[睽] 외로운데 동지[元夫]를 만나서 믿음으로 사귀니, 위태롭지만 허물은 없다.
【王弼 注】 无應獨處,五自應二,三與己睽,故曰睽孤也。初亦无應特立。處睽之時,俱在獨立,同處體下,同志者也。而己失位,比於三五,皆與己乖,處无所安,故求其疇類而自託焉,故曰遇元夫也。同志相得而无疑焉,故曰交孚也。雖在乖隔,志故得行,故雖危无咎。
【왕필 주】 [구사(九四)가] 응(應)이 없이 홀로 처하는데, 육5(六五)는 스스로 육2(六二)에 응(應)하고 구3(九三)은 자기와 어긋나기 때문에 “어그러져[睽] 외롭다.”라고 말한 것이다. 초구(初九) 또한 응(應)이 없이 홀로 특히 서 있고, 어그러짐[睽]의 때에 처하여 모두[九四와 初九] 홀로 서 있으며 같이 몸[體]의 아래에 처하여 뜻이 같은[同志] 자이다. 그리고 자기가 지위를 잃었지만 육3(六三)과 육5(六五)에 가까워서 모두 자기와 어긋나니 처함에 편안할 곳이 없기 때문에 그 짝하는 무리를 구하여서 스스로 그에게 의탁을 하기 때문에 동지[元夫]를 만났다고 말했다. 같은 뜻[同志]을 서로 얻어서 그곳에 의심함이 없기 때문에 “믿음으로 사귄다.”라고 말함이다. 비록 어긋나서 사이가 뜸에 있으나 뜻하는 연고가 행함을 얻기 때문에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음이다.
《象》曰:交孚无咎,志行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믿음으로 사귀니 허물이 없음은, 뜻이 행해짐이다.”
六五,悔亡。厥宗噬膚,往何咎?
육오(六五)는 후회가 없어지는데, 그 종족[九二]이 살을 깨무는데 가더라도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王弼 注】 非位,悔也。有應,故亡。厥宗,謂二也。噬膚者,齧柔也。三雖比二,二之所噬,非妨己應者也。以斯而往,何咎之有?往必合也。
【왕필 주】자리가 아니어서 후회하고, 응(應)이 있으니 연고[후회]가 없어짐이다. 그 종(宗)은 구2(九二)를 말함이고, 살갗을 씹음이라는 것은 부드럽게 깨뭄이다. 육3(六三)이 비록 구2(九二)에 친하여서 구2(九二)의 씹는 바가 자기가 응(應)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함으로써 가는데 어찌 허물이 있겠는가? 가면 반드시 합해진다.
《象》曰:厥宗噬膚,往有慶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그 종족(宗族)이 살을 [부드럽게] 깨묾은, 가면 경사가 있음이다."
上九,睽孤,見豕負塗,載鬼一車,先張之弧,後說之弧。匪寇婚媾,往,遇雨則吉。
상구(上九)는 반목(反目)하여 외로우니 귀신이 한 수레 실려 있는데도 진흙을 짊어진 돼지를 보고 먼저 활을 당기지만 뒤에는 활을 풀어놓았다. 도적이 아니라 혼인을 청함이니 가서 비를 만나면 길하다.
【王弼 注】 處睽之極,睽道未通,故曰睽孤。己居炎極,三處澤盛,睽之極也。以文明之極,而觀至穢之物,睽之甚也。豕而負塗,穢莫過焉。至睽將合,至殊將通,恢詭譎怪,道將為一。未至於洽,先見殊怪,故見豕負塗,甚可穢也。見鬼盈車,吁可怪也。先張之弧,將攻害也。後說之弧,睽怪通也。四剠其應,故為寇也。睽志將通,非寇婚媾,往不失時,睽疑亡也。貴於遇雨,和陰陽也。陰陽既和,群疑亡也。
【왕필 주】규(睽)괘의 꼭대기에 처하고, 반목(反目)하여 도(道)에 통하지 않기 때문에 “반목(反目)하여 외롭다.”라고 말했다. 자기[上九]는 불꽃[離]의 꼭대기에 거주하고 육3(六三)은 윤택함[澤]이 성대함에 처하여 반목[睽]이 지극함이다. 문명의 지극함으로써 지극히 더러운 사물을 보니 반목[睽]이 심함이며, 돼지가 진흙을 짊어짐은 더러움이 이보다 지나침이 없다. 반목[睽]이 지극하면 장차 합쳐치고 다름이 지극하면 장차 통하며 속이면 넓어지고 괴이하면 속지만 도(道)는 장차 하나가 된다. 아직 흡족함에 지극하지 않으면 먼저 다름과 괴이함을 보기 때문에 돼지가 진흙을 지고 있음을 봄은 매우 더러울 수 있음이다. 귀신이 수레에 가득함을 봄은 괴이할 만하여 탄식함이고, 먼저 활을 당김은 장차 공격하여 해치려함이며, 뒤에 활을 풀어놓음은 괴이함에 반목(反目)함이 통한 것이다.
구4(九四)가 그의 응(應)을 노략질했기 때문에 도적이 되며, 반목(反目)함의 뜻이 장차 통하여 도적이 아니고 혼인을 구함이니, 감에 때를 잃지 않으면 의심하는 반목[睽疑]이 없어진다. 비를 만남에 귀하게 됨은 음(陰)과 양(陽)이 화합해서이고, 음양(陰陽)이 이미 화합하면 여러 의심이 없어진다.
譯註 1: 『莊子』 齊物論⇒ 故爲是, 擧莛與楹 厲與西施, 恢恑憰怪 道通爲一.
『장자』 제물론⇒그러므로 이를 위해서 몽둥이와 기둥 그리고 문둥이와 서시를 예로 들면, 변하면 넓어지고 괴상하면 속는데 도(道)를 통하면 하나가 된다.
《象》曰:遇雨之吉,群疑亡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비를 만남의 길함은, 여러 의심이 없어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