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11. 태괘(泰卦)[卦象:지천태]/周易正義
『주역정의(周易正義)』
《주역정의(周易正義)》는 왕필(王弼, 226~249)의 주(注)와 한강백(韓康伯)의 주(注)를 채용하여 공영달(孔穎達, 574~648)이 주석(注釋)을 하여 지었다.
11. 태괘(泰卦)[卦象:지천태]
☷ 坤上
☰ 乾下
건[天.하늘]이 아래에 있고, 곤[地.땅]이 위에 있다.
泰,小往大來,吉亨。 태(泰)는, 작음[小]이 가고 큼[大]이 오니, 길하고 형통하다. |
[孔穎達 疏]正義曰:陰去故「小往」,陽長故「大來」,以此吉而亨通。此卦亨通之極,而四德不具者,物既太通,多失其節,故不得以為元始而利貞也。所以《象》云「財成」、「輔相」,故四德不具。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음(陰)이 가기 때문에 ‘소왕(小往)’이고, 양(陽)이 자라기 때문에 ‘대래(大來)’이며, 이로써 길하면서도 형통하다. 이 괘(卦)는 형통함이 지극하면서도 네가지 덕[德: 元‧亨‧利‧貞]을 갖추지 못한 것은, 사물이 이미 크게 통하면 그 절도를 많이 잃기 때문에 원시(元始)와 이정(利貞)이 되지는 못한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재성(財成)”과 “보상(輔相)”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네가지 덕(德)이 갖추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
《彖》曰:泰,小往大來,吉亨。則是天地交,而萬物通也,上下交而其志同也。內陽而外陰,內健而外順,內君子而外小人。君子道長,小人道消也。 《단전(彖傳)》에서 말하였다:“태(泰)는 소(小)가 가고 대(大)가 오니 길하고 형통함은, 곧 이는 천지가 사귀어서 만물이 통하고 위와 아래가 사귀어서 그 뜻이 같아짐이다. 양(陽)이 안[아래]에 있고 음(陰)이 밖[위]에 있으며, 안이 굳세고 밖이 유순하며, 군자가 안에 있고 소인이 밖에 있음이니, 군자의 도는 자라나고 소인의 도는 사라짐이다.” |
[孔穎達 疏]「《彖》曰泰小往大來」至「小人道消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단왈태소왕대래(彖曰泰小往大來)에서 소인도삭야(小人道消也)까지.} ○正義曰:「泰,小往大來,吉亨,則是天地交而萬物通」者,釋此卦「小往大來吉亨」名為「泰」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태(泰)는 소(小)가 가고 대(大)가 오니 길하고 형통함은, 곧 이는 천지가 사귀어서 만물이 통함이고[泰小往大來吉亨 則是天地交而萬物通]”라는 것은, 이 괘(卦)가 소(小)가 가고 대(大)가 오니 길하고 형통하여 이름을 ‘태(泰)’라 하였음을 해석한 것이다. 所以得名為「泰」者,止由天地氣交而生養萬物,物得大通,故云「泰」也。 이름을 얻기를 태(泰)라고 한 것의 까닭은, 하늘과 땅의 기운이 말미암아 사귀어서 만물을 낳고 길러 사물이 크게 통함을 그치기 때문에 “태(泰)”라고 한 것이다. 「上下交而其志同」者,此以人事象天地之交。上謂君也。下謂臣也,君臣交好,故志意和同。 “위와 아래가 사귀어서 그 뜻이 같아짐이다[上下交而其志同]”라는 것은, 이는 사람의 일로써 하늘과 땅의 사귐을 형상한 것이다. ‘상(上)’은 군주를 말하고 ‘하(下)’는 신하를 말하며, 군주와 신하가 사귀어 좋아하기 때문에 뜻이 화합하여 마음이 같음이다. 「內陽而外陰,內健而外順」,內健則內陽,外順則外陰。內陽外陰據其象,內健外順明其性,此說泰卦之德也。 “양(陽)이 안[아래]에 있고 음(陰)이 밖[위]에 있으며, 안이 굳세고 밖이 유순하며[內陽而外陰 內健而外順]”라는 것은, 굳셈이 안에 있으면 양(陽)이 안이고 순함이 밖에 있으면 음(陰)이 밖이며, 양(陽)이 안이고 음(陰)이 밖에 있음은 그 모습[象]을 근거함이고, 굳셈이 안이고 순함이 밖에 있음은 그 성질을 밝힘이며, 이는 태괘(泰卦)의 덕(德)을 설명함이다. 陰陽言爻,健順言卦。此就卦爻釋「小往大來吉亨」也。 음(陰)과 양(陽)은 효(爻)를 말하고 굳셈[健]과 순함[順]은 괘(卦)를 말한 것이며, 이는 괘(卦)와 효(爻)에 나아가 ‘소(小)가 가고 대(大)가 오니 길하고 형통함[小往大來吉亨]’을 해석한 것이다. 「內君子而外小人,君子道長,小人道消」者,更就人事之中,釋「小往大來吉亨」也。 “군자가 안에 있고 소인이 밖에 있음이니, 군자의 도는 자라나고 소인의 도는 사라짐이다[內君子而外小人 君子道長 小人道消]”라는 것은, 다시 사람의 일 가운데에 나아가 ‘소(小)가 가고 대(大)가 오니 길하고 형통함[小往大來吉亨]’을 해석한 것이다.」 |
[孔穎達 疏]「《彖》曰泰小往大來」至「小人道消也」。
○正義曰:「泰,小往大來,吉亨,則是天地交而萬物通」者,釋此卦「小往大來吉亨」名為「泰」也。所以得名為「泰」者,止由天地氣交而生養萬物,物得大通,故云「泰」也。「上下交而其志同」者,此以人事象天地之交。上謂君也。下謂臣也,君臣交好,故志意和同。「內陽而外陰,內健而外順」,內健則內陽,外順則外陰。內陽外陰據其象,內健外順明其性,此說泰卦之德也。陰陽言爻,健順言卦。此就卦爻釋「小往大來吉亨」也。「內君子而外小人,君子道長,小人道消」者,更就人事之中,釋「小往大來吉亨」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단왈태소왕대래(彖曰泰小往大來)에서 소인도삭야(小人道消也)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태(泰)는 소(小)가 가고 대(大)가 오니 길하고 형통함은, 곧 이는 천지가 사귀어서 만물이 통함이고[泰小往大來吉亨 則是天地交而萬物通]”라는 것은, 이 괘(卦)가 소(小)가 가고 대(大)가 오니 길하고 형통하여 이름을 ‘태(泰)’라 하였음을 해석한 것이다.
이름을 얻기를 태(泰)라고 한 것의 까닭은, 하늘과 땅의 기운이 말미암아 사귀어서 만물을 낳고 길러 사물이 크게 통함을 그치기 때문에 “태(泰)”라고 한 것이다.
“위와 아래가 사귀어서 그 뜻이 같아짐이다[上下交而其志同]”라는 것은, 이는 사람의 일로써 하늘과 땅의 사귐을 형상한 것이다. ‘상(上)’은 군주를 말하고 ‘하(下)’는 신하를 말하며, 군주와 신하가 사귀어 좋아하기 때문에 뜻이 화합하여 마음이 같음이다.
“양(陽)이 안[아래]에 있고 음(陰)이 밖[위]에 있으며, 안이 굳세고 밖이 유순하며[內陽而外陰 內健而外順]”라는 것은, 굳셈이 안에 있으면 양(陽)이 안이고 순함이 밖에 있으면 음(陰)이 밖이며, 양(陽)이 안이고 음(陰)이 밖에 있음은 그 모습[象]을 근거함이고, 굳셈이 안이고 순함이 밖에 있음은 그 성질을 밝힘이며, 이는 태괘(泰卦)의 덕(德)을 설명함이다.
음(陰)과 양(陽)은 효(爻)를 말하고 굳셈[健]과 순함[順]은 괘(卦)를 말한 것이며, 이는 괘(卦)와 효(爻)에 나아가 ‘소(小)가 가고 대(大)가 오니 길하고 형통함[小往大來吉亨]’을 해석한 것이다.
“군자가 안에 있고 소인이 밖에 있음이니, 군자의 도는 자라나고 소인의 도는 사라짐이다[內君子而外小人 君子道長 小人道消]”라는 것은, 다시 사람의 일 가운데에 나아가 ‘소(小)가 가고 대(大)가 오니 길하고 형통함[小往大來吉亨]’을 해석한 것이다.」
《象》曰:天地交,泰,后以財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以左右民。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천지가 사귐이 태(泰)이니, 임금이 천지의 도를 재물로 이룸으로써, 천지의 마땅함을 서로 도우며(輔相) 그로써 백성을 좌우[보호]로 한다." 【王弼 注】 泰者,物大通之時也。上下大通,則物失其節,故財成而輔相,以左右民也。 【왕필 주】 태(泰)라는 것은 사물이 크게 통하는 때이다. 위와 아래가 크게 통하면 사물은 그 마디를 잃기 때문에 재물을 이루어서 서로 도우며 그로써 백성을 좌우[보호]로 한다. |
[孔穎達 疏]「《象》曰天地交泰」至「以左右民」。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상왈천지교태(象曰天地交泰)에서 이좌우민(以左右民)까지.} ○正義曰:「后以財成天地之道」者,由物皆通泰,則上下失節。后,君也。於此之時,君當翦財,成就天地之道。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임금이 천지의 도를 재물로 이룸으로써[后以財成天地之道]”라는 것은, 사물이 말미암음은 모두 크게 통하면 상하가 절도를 잃게 된다. ‘후(后)’는 군주이다. 이러한 때에 군주는 마땅히 재물을 나누어 천지의 도(道)를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輔相天地之宜」者,相,助也。當輔助天地所生之宜。 “천지의 마땅함을 서로 도우며[輔相天地之宜]”라는 것은, ‘상(相)’은 도움이며, 마땅히 천지가 낳는 바의 마땅함을 거들어 도와야 하는 것이다. 「以左右民」者,左右,助也,以助養其人也。 “그로써 백성을 좌우로 한다[以左右民]”라는 것은, ‘좌우(左右)’는 도움이며, 그로써 그 사람들을 돕고 기르는 것이다. 「天地之道」者,謂四時也,冬寒、夏暑、春生、秋殺之道。若氣相交通,則物失其節。 “천지의 도[天地之道]”라는 것은, 사 계절[四時]을 말하며,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우며 봄에는 낳고 가을에는 죽이는 도(道)이다. 만약 기운이 서로사귀어 통하면 사물은 그 절도를 잃는다. 物失其節,則冬溫、夏寒、秋生、春殺。君當財節成就,使寒暑得其常,生殺依其節,此天地自然之氣,故云「天地之道」也。 사물이 절도를 잃으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추우며 가을에 낳고 봄에 죽인다. 군주는 마땅히 재물을 절재함을 성취해서 추위와 더위로 하여금 떳떳함을 얻고, 낳고 죽임이 그 절도에 의해야 하는데, 이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의 도(道)[天地之道]”라고 한 것이다. 「天地之宜」者,謂天地所生之物各有其宜。 “천지의 마땅함[天地之宜]”라는 것은, 하늘과 땅이 낳는 바의 사물이 각기 그 마땅함이 있음을 말한다. 若《大司徒》云「其動物植物」,及《職方》云楊州其貢宜稻麥,雍州其貢宜黍稷。若天氣大同,則所宜相反。 예컨대 《주례(周禮)》 〈대사도(大司徒)〉에 이르기를 “그 동물과 식물”이라는 것과, 〈직방(職方)〉에 “양주(揚州)는 그 벼와 보리를 세금으로 함이 마땅하고, 옹주(雍州)는 그 기장과 피를 세금으로 함이 마땅하다.”라고 함과 같다. 만약 하늘의 기운이 크게 같으면 마땅한 바가 서로 반대이다. 故人君輔助天地所宜之物,各安其性,得其宜,據物言之,故稱「宜」也。 그러므로 군주된 사람이 하늘과 땅의 마땅한 사물을 도와서 각각 그 성질을 편안하게 하여 그 마땅함을 얻는데, 사물에 근거하여 말을 했기 때문에 ‘마땅함[宜]’라고 칭한 것이다. 此卦言「后」者,以不兼公卿大夫,故不云君子也。兼通諸侯,故不得直言先王,欲見天子諸侯,俱是南面之君,故特言「后」也。 이 괘(卦)에서 ‘후(后)’를 말한 것은, 그로써 공경(公卿)과 대부(大夫)를 겸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자(君子)라고 말하지 않았고, 제후(諸侯)를 겸하여 통하였기 때문에 곧바로 선왕(先王)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천자(天子)와 제후(諸侯)가 모두 이 남면(南面)하는 군주임을 나타내고자 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후(后)’라고 말한 것이다.」 |
[孔穎達 疏]「《象》曰天地交泰」至「以左右民」。
○正義曰:「后以財成天地之道」者,由物皆通泰,則上下失節。后,君也。於此之時,君當翦財,成就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者,相,助也。當輔助天地所生之宜。「以左右民」者,左右,助也,以助養其人也。「天地之道」者,謂四時也,冬寒、夏暑、春生、秋殺之道。若氣相交通,則物失其節。物失其節,則冬溫、夏寒、秋生、春殺。君當財節成就,使寒暑得其常,生殺依其節,此天地自然之氣,故云「天地之道」也。「天地之宜」者,謂天地所生之物各有其宜。若《大司徒》云「其動物植物」,及《職方》云楊州其貢宜稻麥,雍州其貢宜黍稷。若天氣大同,則所宜相反。故人君輔助天地所宜之物,各安其性,得其宜,據物言之,故稱「宜」也。此卦言「后」者,以不兼公卿大夫,故不云君子也。兼通諸侯,故不得直言先王,欲見天子諸侯,俱是南面之君,故特言「后」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상왈천지교태(象曰天地交泰)에서 이좌우민(以左右民)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임금이 천지의 도를 재물로 이룸으로써[后以財成天地之道]”라는 것은, 사물이 말미암음은 모두 크게 통하면 상하가 절도를 잃게 된다. ‘후(后)’는 군주이다. 이러한 때에 군주는 마땅히 재물을 나누어 천지의 도(道)를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천지의 마땅함을 서로 도우며[輔相天地之宜]”라는 것은, ‘상(相)’은 도움이며, 마땅히 천지가 낳는 바의 마땅함을 거들어 도와야 하는 것이다.
“그로써 백성을 좌우로 한다[以左右民]”라는 것은, ‘좌우(左右)’는 도움이며, 그로써 그 사람들을 돕고 기르는 것이다.
“천지의 도[天地之道]”라는 것은, 사 계절[四時]을 말하며,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우며 봄에는 낳고 가을에는 죽이는 도(道)이다. 만약 기운이 서로사귀어 통하면 사물은 그 절도를 잃는다.
사물이 절도를 잃으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추우며 가을에 낳고 봄에 죽인다. 군주는 마땅히 재물을 절재함을 성취해서 추위와 더위로 하여금 떳떳함을 얻고, 낳고 죽임이 그 절도에 의해야 하는데, 이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의 도(道)[天地之道]”라고 한 것이다.
“천지의 마땅함[天地之宜]”라는 것은, 하늘과 땅이 낳는 바의 사물이 각기 그 마땅함이 있음을 말한다.
예컨대 《주례(周禮)》 〈대사도(大司徒)〉에 이르기를 “그 동물과 식물”이라는 것과, 〈직방(職方)〉에 “양주(揚州)는 그 벼와 보리를 세금으로 함이 마땅하고, 옹주(雍州)는 그 기장과 피를 세금으로 함이 마땅하다.”라고 함과 같다. 만약 하늘의 기운이 크게 같으면 마땅한 바가 서로 반대이다.
그러므로 군주된 사람이 하늘과 땅의 마땅한 사물을 도와서 각각 그 성질을 편안하게 하여 그 마땅함을 얻는데, 사물에 근거하여 말을 했기 때문에 ‘마땅함[宜]’라고 칭한 것이다.
이 괘(卦)에서 ‘후(后)’를 말한 것은, 그로써 공경(公卿)과 대부(大夫)를 겸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자(君子)라고 말하지 않았고, 제후(諸侯)를 겸하여 통하였기 때문에 곧바로 선왕(先王)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천자(天子)와 제후(諸侯)가 모두 이 남면(南面)하는 군주임을 나타내고자 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후(后)’라고 말한 것이다.」
初九,拔茅茹,以其彙,征吉。 초구(初九)는 띠풀을 뽑으니 엉켜있는데, 그 무리로써 나가야 길하다. 【王弼 注】 茅之為物,拔其根而相牽引者也。茹,相牽引之貌也。三陽同志,俱志在外;初為類首,己舉則從,若茅茹也。上順而應,不為違距,進皆得志,故以其類征吉。 【왕필 주】 띠풀의 사물 됨은, 그 뿌리를 뽑으면 서로 끌어 당기는 것이다. 여(茹)는 서로 끌어 당기는 모양이다. 세 양(陽)은 뜻이 같고 모두 뜻이 밖에 있으며, 초구(初九)가 부류의 머리가 되어 자기가 일어나면 따르니 띠풀이 엉켜있음과 같다. 위쪽이 순하여 응하고 어겨서 막으려 하지 않으니 나아가면 모두 뜻을 얻기 때문에 그 부류로써 나가면 길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拔茅茹」者,初九欲往於上,九二、九三,皆欲上行,已去則從,而似拔茅舉其根相牽茹也。「以其彙」者,彙,類也,以類相從。「征吉」者,征,行也。上坤而順下,應於乾,己去則納,故征行而吉。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띠풀을 뽑으니 엉켜있는데[拔茅茹]”라는 것은, 초구(初九)가 위로 나아가려 하는데 구2(九二)와 구3(九三)이 모두 위로 가고자 하여 자기가 떠나면 따라오니, 띠풀을 뽑음에 그 뿌리를 들면 서로 끌어서 엉켜있는 것을 닮았음이다. “그 무리로써[以其彙]”라는 것의, ‘휘(彙, 무리 휘)’는 동류이며, 무리로써 서로 따르는 것이다. “나가야 길하다[征吉]”라는 것의, ‘정(征, 칠 정)’은 감이며, 위가 곤(坤)이어서 아래에 순종하고 건(乾)에 응하므로 자기가 떠나면 받아주기 때문에 나아가면 길한 것이다.」 |
《象》曰:拔茅征吉,志在外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띠풀을 뽑고서 나가야 길함은 뜻이 밖에 있음이다.” [孔穎達 疏]正義曰:「志在外」者,釋「拔茅征吉」之義。以其三陽志意皆在於外,己行則從,而似「拔茅征行」而得吉。此假外物以明義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뜻이 밖에 있음[志在外]”라는 것은, ‘띠풀을 뽑고서 나가야 길함[拔茅征吉]’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그로써 세 양(陽)의 뜻하는 마음이 모두 밖에 있고, 자기가 가면 따라오니, 띠풀을 뽑고서 나아감을 닮아서 길함을 얻는 것이다. 이는 밖의 사물을 빌려서 뜻을 밝힌 것이다.」 |
九二,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尚于中行。 구이효는 거칠어도 품는다. 황하를 업신여겨[무모함]도 등용하고 멀리까지 남기지 않아야 패거리[벗]가 없어지며, 가운데[六五]로 가서 높은 이[짝]를 얻는다. 【王弼 注】 體健居中而用乎泰,能包含荒穢,受納馮河者也。用心弘大,无所遐棄,故曰不遐遺也。无私无偏,存乎光大,故曰朋亡也。如此乃可以得尚于中行。尚,猶配也。中行,謂五。 【왕필 주】 굳센 몸[體]의 가운데[中]에 거주하면서 통함[泰]을 쓰고 거칠고 더러움을 잘 싸서 담으니 사나운 황하가 받아 들이는 것이다. 마음 씀이 크게 넓으면 멀리 버려지는 바 없기 때문에 "멀리 버려지지 않는다[不遐遺]"라고 말하였고, 사사로움이 없고 치우침이 없으며 크게 빛남[光大]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동문을 멀리한다[朋亡]"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이에 가운데로 가서 높은 이[짝]를 얻을 수 있음이다. "상(尚)"은 짝과 같고, 가운데로 감은 육5(六五)를 가리킨다. |
[孔穎達 疏]正義曰:「包荒用馮河」者,體健居中,而用乎「泰」,能包含荒穢之物,故云「包荒」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거칢을 품고 황하를 [맨몸으로] 사납게 건너며[包荒 用馮河]”라는 것은, 굳센 몸[體]의 가운데[中]에 거주하면서 통함[泰]을 쓰니, 거칠고 더러운 사물을 잘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르기를 “거칢을 품는다[包荒]”라고 하였다. 「用馮河」者,無舟渡水,馮陵於河,是頑愚之人,此九二能包含容受,故曰「用馮河」也。 “황하를 [맨몸으로] 사납게 건너며[用馮河]”라는 것은, 배가 없이 물을 건너서 황하를 사납게 능멸함인데, 이는 완악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며, 이 구2(九二)가 잘 포함하고 허용하여 받아들였기 때문에 “황하를 [맨몸으로] 사납게 건넌다[用馮河]”라고 말한 것이다. 「不遐遺」者,遐,遠也。遺,棄也。用心弘大,無所疏遠棄遺於物。 “먼데를 버리지 않고[不遐遺]”라는 것은, ‘하(遐, 멀 하)’는 멂이고 ‘유(遺, 남길 유)’는 버림이다. 마음을 씀이 크고 넓어서 사물을 버리고 소통을 멀리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朋亡」者,得中無偏,所在皆納,無私於朋黨之事,「亡,無也」,故云「朋亡」也。 “동문[九一,九三]을 멀리해야[朋亡]”라는 것은, 가운데[中]을 얻어 치우침이 없어서 있는 곳 모두를 받아들여 붕당(朋黨)의 일에 사사로움이 없음이며, ‘망(亡)’은 없음이기 때문에 이르기를 “동문[九一,九三]을 멀리한다[朋亡]”라고 한 것이다. 「得尚於中行」者,「中行」謂六五也,處中而行,以九二所為如此。尚,配也,得配六五之中也。 “가운데로 가서 높은 이[짝]를 얻는다[得尙於中行]”라는 것의, ‘중행(中行)’은 육5(六五)를 가리킴이며, 가운데[中]에 처하면서 행함인데, 그로써 구2(九二)의 하는 바가 이와 같음이다. ‘상(尙)’은 짝함이며, 육5(六五)의 가운데[中]를 짝으로 얻음이다.」 |
《象》曰:包荒,得尚于中行,以光大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거칢을 품고 가운데로 가서 높은 이[짝]를 얻음은, 그로써 크게 빛남이다.” [孔穎達 疏]正義曰:釋「得尚中行」之義。所以包荒、得配此六五之中者,以無私無偏,存乎光大之道,故此包荒。皆假外物以明義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가운데로 가서 높은 이[짝]를 얻음[得尚中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거칢을 품어서 이 육5(六五)의 가운데[中]에 짝을 얻는 것의 까닭은, 사사로움이 없고 편벽됨이 없음으로써 빛나고 큼의 도(道)를 보존하기 때문에 이 거칢을 품는 것이다. 모두 밖의 사물을 빌려서 그로써 뜻을 밝힌 것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包荒用馮河」者,體健居中,而用乎「泰」,能包含荒穢之物,故云「包荒」也。「用馮河」者,無舟渡水,馮陵於河,是頑愚之人,此九二能包含容受,故曰「用馮河」也。「不遐遺」者,遐,遠也。遺,棄也。用心弘大,無所疏遠棄遺於物。「朋亡」者,得中無偏,所在皆納,無私於朋黨之事,「亡,無也」,故云「朋亡」也。「得尚於中行」者,「中行」謂六五也,處中而行,以九二所為如此。尚,配也,得配六五之中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거칢을 품고 황하를 [맨몸으로] 사납게 건너며[包荒 用馮河]”라는 것은, 굳센 몸[體]의 가운데[中]에 거주하면서 통함[泰]을 쓰니, 거칠고 더러운 사물을 잘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르기를 “거칢을 품는다[包荒]”라고 하였다.
“황하를 [맨몸으로] 사납게 건너며[用馮河]”라는 것은, 배가 없이 물을 건너서 황하를 사납게 능멸함인데, 이는 완악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며, 이 구2(九二)가 잘 포함하고 허용하여 받아들였기 때문에 “황하를 [맨몸으로] 사납게 건넌다[用馮河]”라고 말한 것이다.
“먼데를 버리지 않고[不遐遺]”라는 것은, ‘하(遐, 멀 하)’는 멂이고 ‘유(遺, 남길 유)’는 버림이다. 마음을 씀이 크고 넓어서 사물을 버리고 소통을 멀리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동문[九一,九三]을 멀리해야[朋亡]”라는 것은, 가운데[中]을 얻어 치우침이 없어서 있는 곳 모두를 받아들여 붕당(朋黨)의 일에 사사로움이 없음이며, ‘망(亡)’은 없음이기 때문에 이르기를 “동문[九一,九三]을 멀리한다[朋亡]”라고 한 것이다.
“가운데로 가서 높은 이[짝]를 얻는다[得尙於中行]”라는 것의, ‘중행(中行)’은 육5(六五)를 가리킴이며, 가운데[中]에 처하면서 행함인데, 그로써 구2(九二)의 하는 바가 이와 같음이다. ‘상(尙)’은 짝함이며, 육5(六五)의 가운데[中]를 짝으로 얻음이다.」
九三,无平不陂,无往不復,艱貞无咎。勿恤其孚,於食有福。 구삼(九三)은 평평함은 기울지 않음이 없고,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으니, 어려워도 곧아야 허물이 없다.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말아야 먹는데 복(福)이 있다. 【王弼 注】 乾本上也,坤本下也,而得泰者,降與升也。而三處天地之際,將復其所處。復其所處則上守其尊,下守其卑,是故无往而不復也,无平而不陂也。處天地之將閉,平路之將陂,時將大變,世將大革,而居不失其正,動不失其應,艱而能貞,不失其義,故无咎也。信義誠著,故不恤其孚而自明也,故曰「勿恤其孚,于食有福」也。 【왕필 주】 건(乾)의 근본은 위쪽이고, 곤(坤)의 근본은 아래쪽이며, 그리고 통함(泰)을 얻은 것은 내려감[陰]과 올라감[陽]이다. 그런데 구삼(九三)은 하늘과 땅의 경계에 처하며 장차 그 처하는 곳으로 돌아 온다. 그 처하는 곳으로 돌아오면 위로 그 높음을 지키고 아래로는 그 낮음을 지키는데, 이 때문에 가는데가 없으니 돌아오지 않으며 평평함이 없으니 기울지도 않는다. 천지가 장차 닫힘에 처하고 평평한 길이 장차 기울며, 시절이 장차 크게 변하고 세상이 장차 크게 개혁되면서 거주함에 그 바름을 잃지 않고, 움직여도 그 응함을 잃지 않으며, 어려워도 곧게 잘하고 그 옳음을 잃지 않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믿음과 의리(義理)가 성실(誠實)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 믿음을 근심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밝아진다. 그러므로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말아야, 먹는 데에 복(福)이 있다."라고 말했다. |
[孔穎達 疏]「九三無平不陂」至「於食有福」。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구삼무평불파(九三无平不陂)에서 우식유복(于食有福)까지.} ○正義曰:「無平不陂」者,九三處天地相交之際,將各分復其所處。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평평함은 기울지 않음이 없고[无平不陂]”라는 것은, 구3(九三)이 하늘과 땅이 서로 사귀는 경계에 처하여 장차 각각 그 처하던 곳에 나누어 돌아가는 것이다. 乾體初雖在下,今將復歸於上,坤體初雖在上,今欲復歸於下,是初始平者,必將有險陂也。初始往者,必將有反復也。 건(乾)의 몸[體]이 처음에는 비록 아래에 있었으나 이제 장차 다시 위로 돌아가고, 곤(坤) 몸[體]은 처음에는 비록 위에 있었으나 이제 다시 아래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이는 처음에 평탄함을 시작한 것이지만 반드시 장차 험한 기욺이 있고, 처음에 감을 시작한 것은 반드시 장차 되돌아옴이 있는 것이다. 無有平而不陂,無有往而不復者,猶若元[无]在下者而不在上,元[无]在下者而不歸下也。 평탄하면서 기울지 않음이 없고, 가면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는 것은, 만약 아래에 있는 것이면 위에는 있지 않음이 없고, 위에 있는 것이면 아래로 돌아가지 않음이 없음과 같은 것이다. 譯註 1:『說文解字』"无"⇒无,奇字無,通於元者。 『설문해자(說文解字)』"무(无)"⇒무(无)는, 무(無, 없을 무)의 다른 글자이고 원(元, 으뜸 원)과 통용하는 것이다. 「艱貞無咎」者,已居變革之世,應有危殆,只為己居得其正,動有其應,艱難貞正,乃得「無咎」。 “어려워도 곧아야 허물이 없다[艱貞 无咎]”라는 것은, 자기가 변혁하는 세상에 거주하여 응(應)함이 위태로운이 있지만, 단지 자기가 그 바름을 얻어 거주하고 그 응(應)에게로 움직여 괴롭고 어려움을 곧게 바로잡으니, 비로소 허물 없음을 얻은 것이다. 「勿恤其孚,於食有福」者,恤,憂也;孚,信也。信義先以誠著,故不須憂其孚信也。信義自明,故於食祿之須,自有福慶也。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말아야 먹는데 복(福)이 있다[勿恤其孚 于食有福]”라는 것의, ‘휼(恤, 불쌍할 휼)’은 근심함이고, ‘부(孚, 미쁠 부)’는 믿음이다. 의(義)를 믿음이 먼저 그로써 성대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그 품은 믿음을 결국 근심하지 않음이며, 신의(信義)가 저절로 밝아졌기 때문에 논봉[祿]을 먹는 도(須)에 스스로 경사스러운 복(慶)이 있는 것이다.」 ○注「將復其所處」至「於食有福也」。 ○ 【왕필 주(王弼 注)】의 “장복기소처(將復其所處)에서 우식유복야(于食有福也)까지” ○正義曰:「將復其所處」者,以泰卦「乾體」在下,此九三將棄三而向四,是將復其乾之上體所處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장차 그 처하는 곳으로 돌아 온[將復其所處]”라는 것은, 태괘(泰卦)의 건(乾)의 몸[體]이 아래에 있음으로써 이 구3(九三)이장차 셋[三, 일이삼爻]을 버리고서 육4(六四)로 향하니, 이는 장차 건(乾)의 상체(上體)가 처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泰卦「坤體」在上,此六四今將去四而歸向初,復其「坤體」所處也。 태괘(泰卦)의 곤(坤)의 몸[體]이 위에 있는데, 이 육4(六四)가 지금 사(四)를 버리고 초구(初九)로 향하여 돌아가려 하니, 그 곤(坤)의 몸[體]이 처했던 곳으로 돌아가려 함이다. 「處天地之將閉,平路之將陂」者,天將處上,地將處下,閉而不通,是「天地之將閉」也。 “천지가 장차 닫힘에 처하고 평평한 길이 장차 기울며[處天地之將閉 平路之將陂]”라는 것은, 하늘이 장차 위에 처하고 땅이 장차 아래에 처하여 막히고 통하지 않으니, 이는 ‘하늘과 땅이 장차 닫힘[天地之將閉]’이다. 所以往前通泰,路無險難,自今巳後,時既否閉,路有傾危,是「平路之將陂」也。 이 때문에 앞으로 감은 태(泰)에 통하여 길이 험난함이 없고, 지금 이후로 부터는 때가 이미 막히고 닫혀서 길이 기울어 위태로움이 있으며, 이는 ‘평탄한 길이 장차 기욺[平路之將陂]’의 까닭이다. 此因三之向四,是下欲上也。則上六將歸於下,是上欲下也,故云「復其所處」也。 이는 구3(九三)이 육4(六四)로 향하기 때문이니, 바로 아래가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것이며, 즉 상육(上六)이 장차 아래로 돌아오려 하니, 이는 위가 아래로 내려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처하던 곳으로 돌아간다[復其所處]”라고 한 것이다. 「信義誠著」者,以九三居不失正,動不失應,是信義誠著也。 “믿음과 의리(義理)가 성실(誠實)하게 드러남[信義誠著]”라는 것은, 구3(九三)이 거주함을 바름을 잃지 않음으로써 움직여 응(應)을 잃지 않았으니, 이는 신의(信義)가 성대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故不恤其孚而自明」者,解「於食有福」,以信義自明,故飲食有福。 “때문에 그 믿음을 근심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밝아진다[故不恤其孚而自明]”라는 것은, ‘먹음에 福이 있음[於食有福]’을 해석한 것이며, 그로써 신의(信義)가 스스로 밝아지기 때문에 마시고 먹음에 복(福)이 있는 것이다.」 |
《象》曰:无往不復,天地際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가는데가 없고 돌아오지도 않음은, 하늘과 땅의 경계[사귐]이기 때문이다." 【王弼 注】 天地將各分,復之際。 【왕필 주】 하늘과 땅이 장차 각각 나누어, 돌아가는 경계이다. [孔穎達 疏]正義曰:「天地際」者,釋「無往不復」之義。而三處天地交際之處,天體將上,地體將下,故往者將復,平者將陂。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하늘과 땅의 경계[사귐]이기 때문이다[天地際]”라는 것은,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음이 없음[無往不復]’의 뜻을 해석한 것이며, 구3(九三)이 하늘과 땅이 사귀는 즈음에 처하여 하늘의 몸[體]이 장차 올라가려 하고 땅의 몸[體]은 장차 내려가려 하기 때문에 간 것은 장차 돌아오고 평탄한 것은 장차 기우는 것이다.」 |
[孔穎達 疏]「九三無平不陂」至「於食有福」。
○正義曰:「無平不陂」者,九三處天地相交之際,將各分復其所處。乾體初雖在下,今將復歸於上,坤體初雖在上,今欲復歸於下,是初始平者,必將有險陂也。初始往者,必將有反復也。無有平而不陂,無有往而不復者,猶若元[无]在下者而不在上,元[无]在下者而不歸下也。「艱貞無咎」者,已居變革之世,應有危殆,只為己居得其正,動有其應,艱難貞正,乃得「無咎」。「勿恤其孚,於食有福」者,恤,憂也;孚,信也。信義先以誠著,故不須憂其孚信也。信義自明,故於食祿之道,自有福慶也。
○注「將復其所處」至「於食有福也」。
○正義曰:「將復其所處」者,以泰卦「乾體」在下,此九三將棄三而向四,是將復其乾之上體所處也。泰卦「坤體」在上,此六四今將去四而歸向初,復其「坤體」所處也。「處天地之將閉,平路之將陂」者,天將處上,地將處下,閉而不通,是「天地之將閉」也。所以往前通泰,路無險難,自今巳後,時既否閉,路有傾危,是「平路之將陂」也。此因三之向四,是下欲上也。則上六將歸於下,是上欲下也,故云「復其所處」也。「信義誠著」者,以九三居不失正,動不失應,是信義誠著也。「故不恤其孚而自明」者,解「於食有福」,以信義自明,故飲食有福。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구삼무평불파(九三无平不陂)에서 우식유복(于食有福)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평평함은 기울지 않음이 없고[无平不陂]”라는 것은, 구3(九三)이 하늘과 땅이 서로 사귀는 경계에 처하여 장차 각각 그 처하던 곳에 나누어 돌아가는 것이다.
건(乾)의 몸[體]이 처음에는 비록 아래에 있었으나 이제 장차 다시 위로 돌아가고, 곤(坤) 몸[體]은 처음에는 비록 위에 있었으나 이제 다시 아래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이는 처음에 평탄함을 시작한 것이지만 반드시 장차 험한 기욺이 있고, 처음에 감을 시작한 것은 반드시 장차 되돌아옴이 있는 것이다.
평탄하면서 기울지 않음이 없고, 가면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는 것은, 만약 아래에 있는 것이면 위에는 있지 않음이 없고, 위에 있는 것이면 아래로 돌아가지 않음이 없음과 같은 것이다.
“어려워도 곧아야 허물이 없다[艱貞 无咎]”라는 것은, 자기가 변혁하는 세상에 거주하여 응(應)함이 위태로운이 있지만, 단지 자기가 그 바름을 얻어 거주하고 그 응(應)에게로 움직여 괴롭고 어려움을 곧게 바로잡으니, 비로소 허물 없음을 얻은 것이다.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말아야 먹는데 복(福)이 있다[勿恤其孚 于食有福]”라는 것의, ‘휼(恤, 불쌍할 휼)’은 근심함이고, ‘부(孚, 미쁠 부)’는 믿음이다. 의(義)를 믿음이 먼저 그로써 성대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그 품은 믿음을 결국 근심하지 않음이며, 신의(信義)가 저절로 밝아졌기 때문에 논봉[祿]을 먹는 도(須)에 스스로 경사스러운 복(慶)이 있는 것이다.」
○ 【왕필 주(王弼 注)】의 “장복기소처(將復其所處)에서 우식유복야(于食有福也)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장차 그 처하는 곳으로 돌아 온[將復其所處]”라는 것은, 태괘(泰卦)의 건(乾)의 몸[體]이 아래에 있음으로써 이 구3(九三)이장차 셋[三, 일이삼爻]을 버리고서 육4(六四)로 향하니, 이는 장차 건(乾)의 상체(上體)가 처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태괘(泰卦)의 곤(坤)의 몸[體]이 위에 있는데, 이 육4(六四)가 지금 사(四)를 버리고 초구(初九)로 향하여 돌아가려 하니, 그 곤(坤)의 몸[體]이 처했던 곳으로 돌아가려 함이다.
“천지가 장차 닫힘에 처하고 평평한 길이 장차 기울며[處天地之將閉 平路之將陂]”라는 것은, 하늘이 장차 위에 처하고 땅이 장차 아래에 처하여 막히고 통하지 않으니, 이는 ‘하늘과 땅이 장차 닫힘[天地之將閉]’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감은 태(泰)에 통하여 길이 험난함이 없고, 지금 이후로 부터는 때가 이미 막히고 닫혀서 길이 기울어 위태로움이 있으며, 이는 ‘평탄한 길이 장차 기욺[平路之將陂]’의 까닭이다.
이는 구3(九三)이 육4(六四)로 향하기 때문이니, 바로 아래가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것이며, 즉 상육(上六)이 장차 아래로 돌아오려 하니, 이는 위가 아래로 내려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처하던 곳으로 돌아간다[復其所處]”라고 한 것이다.
“믿음과 의리(義理)가 성실(誠實)하게 드러남[信義誠著]”라는 것은, 구3(九三)이 거주함을 바름을 잃지 않음으로써 움직여 응(應)을 잃지 않았으니, 이는 신의(信義)가 성대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때문에 그 믿음을 근심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밝아진다[故不恤其孚而自明]”라는 것은, ‘먹음에 福이 있음[於食有福]’을 해석한 것이며, 그로써 신의(信義)가 스스로 밝아지기 때문에 마시고 먹음에 복(福)이 있는 것이다.」
六四,翩翩,不富以其鄰,不戒以孚。 육사(六四)는 훨훨[翩翩] 나부끼니 그 이웃이 부유하지 않은데도 경계하지 않고 그로써 믿는다. 【王弼 注】 乾樂上復,坤樂下復,四處坤首,不固所居,見命則退,故曰翩翩也。坤爻皆樂下,己退則從,故不待富而用其鄰也。莫不與己同其志願,故不待戒而自孚也。 【왕필 주】 건(乾)은 위로 돌아가야 즐겁고 곤(坤)은 아래로 돌아가야 즐거운데, 육4(六四)가 곤(坤)의 첫 머리에 처하여 거주하는 곳이 견고하지 않아서 명령을 들으면 물러나기 때문에 “훨훨 翩翩”이라고 말했다. 곤(坤)의 효(爻)는 모두 아래하기를 즐겨하고 자기가 물러가면 따르기 때문에 부유하기를 기다리지 않고서 그 이웃을 쓴다. 그 뜻을 원함을 자기와 더블어 같이하기 때문에 경계함을 기다리지 않고서 스스로 믿는다. |
[孔穎達 疏]正義曰:「六四翩翩」者,四主坤首,而欲下復,見命則退,故翩翩而下也。「不富以其鄰」者,以,用也。「鄰」謂五與上也。今己下復,眾陰悉皆從之,故不待財富而用其鄰。「不戒以孚」者,鄰皆從己,共同志願,不待戒告而自孚信以從已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육사(六四)가 훨훨 나부낌[六四翩翩]”라는 것은, 육4(六四)가 곤(坤)의 첫 머리를 주관하여서 아래로 돌아가고자 하며 명령하면 물러감을 보이기 때문에 훨훨 나부끼면서 아래로 가는 것이다. “그 이웃이 부유하지 않는데도[不富以其隣]”라는 것의, ‘이(以)’는 사용함이며, ‘이웃[隣]’은 육5(六五)와 상육(上六)을 말한다. 지금 자기가 아래로 돌아감에 여러 음(陰)이 모두 따라 가기 때문에 재물이 부유하기를 기다리지 않고서 그 이웃을 쓰는 것이다. “경계하지 않고 그로써 믿는다[不戒以孚]”라는 것은, 이웃[六五, 上六]이 모두 자기를 따라서 원하는 뜻을 함께하므로 경계하여 기다리지 않고 고하여서 스스로 믿음을 품고 그로써 자기를 따르는 것이다.」 |
《象》曰:翩翩不富,皆失實也。不戒以孚,中心願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훨훨 나부끼고 부유하지 않음은 모두 실질을 잃었음이다. 경계하지 않고서 믿음은 마음 속에서 원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皆失實」者,解「翩翩不富」之義,猶眾陰皆失其本實所居之處,今既見命,翩翩樂動,不待財富,並悉從之,故云「皆失實」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모두 실질을 잃었음이다[皆失實]”라는 것은, ‘훨훨 나부끼고 부유하지 않음[翩翩不富]’의 뜻을 해석한 것이며, 다만 여러 음(陰)이 모두 본래 실제 거주하던 곳을 잃었다가 지금 이미 명(命)을 보고서 훨훨 나부끼며 즐거이 움직여 재물이 부유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나란히 모두 따라가기 때문에 이르기를 “모두 실질을 잃었다[皆失實也]”고 말한 것이다. 「不戒以孚中心願」者,解「不戒以孚」之義,所以不待六四之戒告,而六五、上六,皆以孚信者,由中心皆願下復,故不待戒而自孚也。 “경계하지 않고서 믿음은 마음 속에서 원함이다[不戒以孚 中心願]”라는 것은, ‘경계하지 않고서 믿음[不戒以孚]’의 뜻을 해석한 것이며, 육4(六四)의 경계하여 고함을 기다리지 않고도 육5(六五)와 상육(上六)이 모두 믿음을 품는 것의 까닭이고, 속 마음을 따라서 모두 아래로 돌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경계함을 기다리지 않고서 스스로 믿는 것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皆失實」者,解「翩翩不富」之義,猶眾陰皆失其本實所居之處,今既見命,翩翩樂動,不待財富,並悉從之,故云「皆失實」也。「不戒以孚中心願」者,解「不戒以孚」之義,所以不待六四之戒告,而六五、上六,皆以孚信者,由中心皆願下復,故不待戒而自孚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모두 실질을 잃었음이다[皆失實]”라는 것은, ‘훨훨 나부끼고 부유하지 않음[翩翩不富]’의 뜻을 해석한 것이며, 다만 여러 음(陰)이 모두 본래 실제 거주하던 곳을 잃었다가 지금 이미 명(命)을 보고서 훨훨 나부끼며 즐거이 움직여 재물이 부유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나란히 모두 따라가기 때문에 이르기를 “모두 실질을 잃었다[皆失實也]”고 말한 것이다. “경계하지 않고서 믿음은 마음 속에서 원함이다[不戒以孚 中心願]”라는 것은, ‘경계하지 않고서 믿음[不戒以孚]’의 뜻을 해석한 것이며, 육4(六四)의 경계하여 고함을 기다리지 않고도 육5(六五)와 상육(上六)이 모두 믿음을 품는 것의 까닭이고, 속 마음을 따라서 모두 아래로 돌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경계함을 기다리지 않고서 스스로 믿는 것이다.」
六五,帝乙歸妹,以祉元吉。 육오(六五)는 제을(帝乙)이 누이를 시집보내니, 그로써 복(福)을 받아 크게 길하다. 【王弼 注】 婦人謂嫁曰歸,泰者,陰陽交通之時也。女處尊位,履中居順,降身應二,感以相與,用中行願,不失其禮。帝乙歸妹,誠合斯義。履順居中,行願以祉,盡夫陰陽交配之宜,故元吉也。 【왕필 주】 부인이 시집감을 일컬어 귀(歸)라고 말하고, 태(泰)라는 것은 음(陰)과 양(陽)이 사귀어 통하는 때이다. 여자가 높은 지위에 처하고 가운데(中)에 올라서 순함에 거주하며, 자신을 낮추어 구2(九二)에 응(應)해서 감응하여 서로 함께하며, 중간을 써서 원함을 행하여 그 예를 잃지 않으니, 재을(帝乙)이 누이를 시집보냄이 진실로 이 뜻에 부합한다. 유순함을 이행하고 가운데 거주하여 원함을 행하여 그로써 복을 받아서 음(陰)과 양(陽)이 사귀어 짝함이 마땅함을 다하기 때문에 크게 길함이다. |
[孔穎達 疏]「六五」至「以祉元吉」。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육오(六五)에서 이사원길(以祉元吉)까지.} ○正義曰:「帝乙歸妹」者,女處尊位,履中居順,降身應二,感以相與,用其中情,行其志願,不失於禮。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제을(帝乙)이 누이를 시집보내니[帝乙歸妹]”라는 것은, 여자가 높은 지위에 처하여 가운데[中]를 밟고 순(順)함에 거주하며 자신을 낮추어 구2(九二)에 응(應)하며 감응함으로써 서로 더블어, 그 가운데[中] 마음을 사용하고 그 원하는 뜻을 행하여 예(禮)를 잃지 않않는 것이다. 爻備斯義者,唯帝乙歸嫁于妹而能然也。故作《易》者,引此「帝乙歸妹」以明之也。 효(爻)에 이러한 뜻을 구비한 것은, 오직 재을(帝乙)이 누이를 시집보내면서 능히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을 지은 자가 이 재을(帝乙)이 누이를 시집보냄을 인용하여 그로써 밝힌 것이다. 「以祉元吉」者,履順居中,得行志願,以獲祉福,盡夫陰陽交配之道,故大吉也。 “그로써 복(福)을 받아 크게 길하다[以祉元吉]”라는 것은, 순(順)함을 밟고 가운데[中]에 거주하며 원하는 뜻을 행하니 그로써 내려주는 복(福)을 얻어 그 음(陰)과 양(陽)이 사귀어 짝하는 도(道)를 다하였기 때문에 크게 길한 것이다.」 ○注「婦人謂嫁曰歸」。 ○ 【왕필 주(王弼 注)】의 “부인위가왈귀(婦人謂嫁曰歸)까지” ○正義曰:「婦人謂嫁曰歸」,隱二年《公羊傳》文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부인이 시집감을 일컬어 귀(歸)라고 말하고[婦人謂嫁曰歸]”라고 함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은공(隱公) 2년의 글이다.」 |
《象》曰:以祉元吉,中以行願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복을 받음으로써 크게 길함은, 가운데[中]로써 원함을 행하기 때문이다." [孔穎達 疏]正義曰:「中以行願」者,釋「以祉元吉」之義,正由中順,行其志願,故得福而元吉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가운데[中]로써 원함을 행하기 때문이다[中以行願]”라는 것은, ‘그로써 복(福)을 받아 크게 길함[以祉元吉]’의 뜻을 해석한 것이며, 바름을 말미암으니 가운데[中]를 따라[順]서 그 원하는 뜻을 행하기 때문에 복(福)을 얻어서 크게 길한 것이다.」 |
[孔穎達 疏]「六五」至「以祉元吉」。
○正義曰:「帝乙歸妹」者,女處尊位,履中居順,降身應二,感以相與,用其中情,行其志願,不失於禮。爻備斯義者,唯帝乙歸嫁于妹而能然也。故作《易》者,引此「帝乙歸妹」以明之也。「以祉元吉」者,履順居中,得行志願,以獲祉福,盡夫陰陽交配之道,故大吉也。
○注「婦人謂嫁曰歸」。
○正義曰:「婦人謂嫁曰歸」,隱二年《公羊傳》文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육오(六五)에서 이사원길(以祉元吉)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제을(帝乙)이 누이를 시집보내니[帝乙歸妹]”라는 것은, 여자가 높은 지위에 처하여 가운데[中]를 밟고 순(順)함에 거주하며 자신을 낮추어 구2(九二)에 응(應)하며 감응함으로써 서로 더블어, 그 가운데[中] 마음을 사용하고 그 원하는 뜻을 행하여 예(禮)를 잃지 않않는 것이다.
효(爻)에 이러한 뜻을 구비한 것은, 오직 재을(帝乙)이 누이를 시집보내면서 능히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을 지은 자가 이 재을(帝乙)이 누이를 시집보냄을 인용하여 그로써 밝힌 것이다.
“그로써 복(福)을 받아 크게 길하다[以祉元吉]”라는 것은, 순(順)함을 밟고 가운데[中]에 거주하며 원하는 뜻을 행하니 그로써 내려주는 복(福)을 얻어 그 음(陰)과 양(陽)이 사귀어 짝하는 도(道)를 다하였기 때문에 크게 길한 것이다.」
○ 【왕필 주(王弼 注)】의 “부인위가왈귀(婦人謂嫁曰歸)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부인이 시집감을 일컬어 귀(歸)라고 말하고[婦人謂嫁曰歸]”라고 함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은공(隱公) 2년의 글이다.」
上六,城復于隍,勿用師,自邑告命,貞吝。 상육(上六)은 성(城)이 [무너져] 해자[隍]로 돌아가니, 무리[군대]를 쓰지 말아야 하고 자기 고을에 명을 내리니 곧으면 부끄럽다. 【王弼 注】 居泰上極,各反所應,泰道將滅,上下不交,卑不上承,尊不下施,是故城復于隍,卑道崩也。勿用師,不煩攻也。自邑告命,貞吝,否道已成,命不行也。 【왕필 주】 태(泰)의 맨 꼭대기에 거주하고 각각 응하는 곳에 돌아가며 통함[泰]의 도(道)가 장차 감해져서 위[坤]와 아래[乾]가 서로 사귀지 않고 낮은데도 위쪽에 받들지 않으며 높으면서 아래에 배풀지 않으니 이 때문에 성이 [무너져] 해자로 돌아가 낮은 도(道)가 무너짐이다. ‘무리[군대]를 쓰지 말아야’는 번잡한 공격을 않음이다. ‘자기 고을에 명을 내리니 곧으면 부끄럽다’함은 막힘의 도(道)가 이미 명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
[孔穎達 疏]「上六城復於隍」至「自邑告命貞吝」。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상육성복우황(上六城復于隍)에서 자읍고명정인(自邑告命貞吝)까지.} ○正義曰:「城復於隍」者,居泰上極,各反所應,泰道將滅,上下不交,卑不上承,尊不下施,猶若「城復於隍」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성(城)이 [무너져] 해자[隍]로 돌아가니[城復于隍]”라는 것은, 상육(上)六이 태(泰)의 꼭대기에 거주하고 각각 응하는 곳에 돌아가며 통함[泰]의 도(道)가 장차 감해져서 위[坤]와 아래[乾]가 서로 사귀지 않고 낮은데도 위쪽에 받들지 않으며 높으면서 아래에 배풀지 않으니 마치 성(城)이 [무너져] 해자[隍]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子夏傳》云:「隍是城下池也」。城之為體,由基土陪扶,乃得為城。 《자하역전(子夏易傳)》에 이르기를 “황(隍)은 바로 성(城) 아래의 못이다.”라고 하였으며, 성(城)의 몸체를 쌓을적에 터를 말미암아 흙을 보태어 붙들어주어야 비로소 성(城)이 될 수 있다. 今下不陪扶,城則隕壞,以此崩倒,反復於隍,猶君之為體,由臣之輔翼。 지금 아래에서 보태어 붙들어주지 않으니 성(城)이 곧 떨어져 무너지며, 이로써 무너지고 뒤집어져서 다시 해자로 돌아가는데, 군주의 몸체[體]를 세우면 신하가 돕는 날개를 말미암는 것과 같음이다. 今上下不交,臣不扶君。君道傾危,故云「城復於隍」。此假外象以喻人事。 지금 상하(上下)가 서로 사귀지 않고 신하가 군주를 붙들어주지 않으니 군주의 도(道)가 위태롭게 기울기 때문에 이르기를 “성(城)이 [무너져] 해자[隍]로 돌아가니[城復于隍]”라고 한 것이다. 이는 밖의 모습[象]을 빌려서 사람의 일을 비유한 것이다. 「勿用師」者,謂君道已傾,不煩用師也。 “무리[군대]를 쓰지 말아야 하고[勿用師]”라는 것은, 군주의 도(道)가 이미 기울었으니, 번거롭게 군대를 사용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自邑告命貞吝」者,否道己成,物不順從,唯於自已之邑而施告命,下既不從,故「貞吝」。 “자기 고을에 명을 내리니 곧으면 부끄럽다[自邑告命 貞吝]”라는 것은, 막힘의 도(道)가 이미 이루어져서 사물이 순종하지 않으므로 오직 자기의 고을에만 명(命)을 내려서 베푸니, 아래에서 이미 따르지 않기 때문에 ‘곧으면 부끄러움’이다.」 ○注「卑道崩也」。 ○ 【왕필 주(王弼 注)】의 “비도붕야(卑道崩也)까지” ○正義曰:「卑道崩也」者,卑道向下,不與上交,故卑之道崩壞,不承事於上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낮은 도(道)가 무너짐이다[卑道崩也]”라는 것은, 낮은 도(道)가 아래로 향하고 위와 더블어 사귀지 않기 때문에 낮은 도(道)가 붕괴되어 윗쪽을 받들어 섬기지 않는 것이다.」 |
《象》曰:城復于隍,其命亂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성(城)이 [무너져] 해자[隍]로 돌아감은, 그 명(命)이 혼란하기 때문이다.” [孔穎達 疏]正義曰:「其命亂」者,釋「城復於隍」之義。若教命不亂,臣當輔君,猶土當扶城。由其命錯亂,下不奉上,猶上不陪城,使復於隍,故云「其命亂」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그 명(命)이 혼란하기 때문이다[其命亂]”라는 것은, ‘성(城)이 [무너져] 해자[隍]로 돌아감[城復於隍]’의 뜻을 해석한 것이며, 만약 명(命)을 본받기가 혼란하지 않으면 신하가 마땅히 군주를 도울 것이니, 흙이 마땅히 성을 붙드는 것과 같음이다. 그 명령을 따르는데 어그러지고 혼란하면 아래가 윗쪽을 받들지 않으며, 윗쪽이 성(城)을 도와주지 않아 해자로 돌아가게 함과 같기 때문에 이르기를 “그 명령이 혼란하다[其命亂也]”고 한 것이다.」 |
[孔穎達 疏]「上六城復於隍」至「自邑告命貞吝」。
○正義曰:「城復於隍」者,居泰上極,各反所應,泰道將滅,上下不交,卑不上承,尊不下施,猶若「城復於隍」也。《子夏傳》云:「隍是城下池也」。城之為體,由基土陪扶,乃得為城。今下不陪扶,城則隕壞,以此崩倒,反復於隍,猶君之為體,由臣之輔翼。今上下不交,臣不扶君。君道傾危,故云「城復於隍」。此假外象以喻人事。「勿用師」者,謂君道已傾,不煩用師也。「自邑告命貞吝」者,否道己成,物不順從,唯於自已之邑而施告命,下既不從,故「貞吝」。
○注「卑道崩也」。
○正義曰:「卑道崩也」者,卑道向下,不與上交,故卑之道崩壞,不承事於上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상육성복우황(上六城復于隍)에서 자읍고명정인(自邑告命貞吝)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성(城)이 [무너져] 해자[隍]로 돌아가니[城復于隍]”라는 것은, 상육(上)六이 태(泰)의 꼭대기에 거주하고 각각 응하는 곳에 돌아가며 통함[泰]의 도(道)가 장차 감해져서 위[坤]와 아래[乾]가 서로 사귀지 않고 낮은데도 위쪽에 받들지 않으며 높으면서 아래에 배풀지 않으니 마치 성(城)이 [무너져] 해자[隍]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하역전(子夏易傳)》에 이르기를 “황(隍)은 바로 성(城) 아래의 못이다.”라고 하였으며, 성(城)의 몸체를 쌓을적에 터를 말미암아 흙을 보태어 붙들어주어야 비로소 성(城)이 될 수 있다.
지금 아래에서 보태어 붙들어주지 않으니 성(城)이 곧 떨어져 무너지며, 이로써 무너지고 뒤집어져서 다시 해자로 돌아가는데, 군주의 몸체[體]를 세우면 신하가 돕는 날개를 말미암는 것과 같음이다.
지금 상하(上下)가 서로 사귀지 않고 신하가 군주를 붙들어주지 않으니 군주의 도(道)가 위태롭게 기울기 때문에 이르기를 “성(城)이 [무너져] 해자[隍]로 돌아가니[城復于隍]”라고 한 것이다. 이는 밖의 모습[象]을 빌려서 사람의 일을 비유한 것이다.
“무리[군대]를 쓰지 말아야 하고[勿用師]”라는 것은, 군주의 도(道)가 이미 기울었으니, 번거롭게 군대를 사용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자기 고을에 명을 내리니 곧으면 부끄럽다[自邑告命 貞吝]”라는 것은, 막힘의 도(道)가 이미 이루어져서 사물이 순종하지 않으므로 오직 자기의 고을에만 명(命)을 내려서 베푸니, 아래에서 이미 따르지 않기 때문에 ‘곧으면 부끄러움’이다.」
○ 【왕필 주(王弼 注)】의 “비도붕야(卑道崩也)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낮은 도(道)가 무너짐이다[卑道崩也]”라는 것은, 낮은 도(道)가 아래로 향하고 위와 더블어 사귀지 않기 때문에 낮은 도(道)가 붕괴되어 윗쪽을 받들어 섬기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