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주소(論語註疏)』 《술이(述而)》 卷 7 - 7
▣ 『논어(論語)』
卷 7
◎ 《술이(述而)》篇
◆ 7 - 7)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포 한 묶음 이상을 행하면 내가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논어집해(論語集解)》
【集解】 子曰:「自行束脩以上,吾未嚐無誨焉。」(孔曰:「 言人能奉禮,自行束脩以上,則皆教誨之。」 ◎공안국이 말하였다:사람들이 예(禮)를 잘 받들어 포 한 묶음 이상을 행하면 모두 가르쳐 본받게 했다는 말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 【註疏】 “子曰:自行束脩以上,吾未嘗無誨焉”。
○ 【註疏】 <경문(經文)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포 한 묶음 이상을 행하면 내가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까지"
○正義曰:此章言已誨人不倦也。
○ 正義曰:이 장(章)은 자기(≒孔子)가 남을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束脩,禮之薄者。言人能奉禮,自行束脩以上而來學者,則吾未曾不誨焉,皆教誨之也。
속수(束脩)는 예(禮)가 야박(野薄)한 것이다. 사람들이 예(禮)를 잘 받들어 포 한 묶음 이상을 행하고서 배우려 온 자라면 내가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다는 말이며, 모두 가르쳐 본받게 하신 것이다.
○注“ 孔曰”至“誨之”。
○ <집해(集解)>주(注)의 "[자왈(孔曰)]에서 [회지(誨之)]까지"
○正義曰:云“言人能奉禮,自行束脩以上”者,案書傳言束脩者多矣,皆謂十脡脯也。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예(禮)를 잘 받들어 포 한 묶음 이상을 말함이다[言人能奉禮 自行束脩以上]"라는 것은, 서전(書傳≒經書와 傳注)을 살펴보니 속수(束脩)를 말한 것이 많은데, 모두 열 묶음의 포(≒十脡脯)를 말한다.
《檀弓》曰:“古之大夫束脩之問不出竟。”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말하기를 “옛날의 대부(大夫)는 속수(束脩)의 문안(問安)도 <사사로이> 국경(國境)을 내보내지 않았다.”라고 하였고,
《少儀》曰:“其以乘壺酒束脩一犬賜人。”
《예기(禮記)》 〈소의(少義)〉에 말하기를 “네 항아리의 술(≒乘壺酒)과 포 한 묶음(≒束脩)과 한 마리의 개(≒一犬)를 남에게 주는 경우”라고 하였으며,
《穀梁傳》曰:“束脩之問不行竟中。”是知古者持束脩以為禮。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은공(隱公) 원년(元年) 12月에> 말하기를 “속수(束脩)의 문안(問安)도 <사사로이> 국경(國境) 안에서 행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이로써 옛날에는 속수(束脩)를 예물(禮物)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然此是禮之薄者,其厚則有玉帛之屬,故云“以上”以包之也。
그러나 이것은 바로 예물(禮物)이 약소(弱小)한 것이고, 후(厚)한 것은 옥폐(玉帛) 등이 있기 때문에 이르기를 ‘이상(以上)’이라고 하여 그로써 포함시킨 것이다.
▣ 『論語』 원문
◎ 《述而》篇 7 - 7
◆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논어집해(論語集解)》
子曰:「自行束脩以上,吾未嚐無誨焉。」(孔曰:「 言人能奉禮,自行束脩以上,則皆教誨之。」)
◎《논어주소(論語註疏)》
疏“子曰:自行束脩以上,吾未嘗無誨焉”。
○正義曰:此章言已誨人不倦也。
束脩,禮之薄者。言人能奉禮,自行束脩以上而來學者,則吾未曾不誨焉,皆教誨之也。
○注“ 孔曰”至“誨之”。
○正義曰:云“言人能奉禮,自行束脩以上”者,案書傳言束脩者多矣,皆謂十脡脯也。
《檀弓》曰:“古之大夫束脩之問不出竟。”
《少儀》曰:“其以乘壺酒束脩一犬賜人。”
《穀梁傳》曰:“束脩之問不行竟中。”是知古者持束脩以為禮。
然此是禮之薄者,其厚則有玉帛之屬,故云“以上”以包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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