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좌전 周易占 사례

◎16. 『춘추좌전(春秋 左傳)』 주역점(周易占)/소공(昭公) 12年

석담 김한희 2024. 11. 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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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春秋 左傳)』 주역점(周易占) 사례

ㅡ 노나라 삼환[계씨(季氏)나 맹씨(孟氏), 숙씨(叔氏) 가문]중에 가장 세력이 큰 계씨 가문이 계무자(季武子), 계평자(季平子), 계환자(季桓子), 계강자(季康子), 4대에 걸쳐 노나라의 실권을 잡는데, 계평자(季平子)가 권력을 잡고서 남괴(南蒯)를 홀대하자 남괴(南蒯)가 비(費) 땅을 근거로 반란을 꾀하며 점쳐서 얻은 괘가 곤(遇)괘가 비(比)괘로 변[坤之比]하는 괘이며, 곤(坤)괘의 육오(六五) 효사 “황상원길(黃裳元吉)”의 점괘를 해석하는 글이다. 남괴(南蒯)의 반란은 실패했다.

 

 

『춘추좌전(春秋 左傳)』

○ 소공(昭公) 12年

【昭公 十二年】季平子立, 而不禮於南蒯. 南蒯謂子仲, “吾出季氏, 而歸其室於公, 子更其位, 我以費爲公臣.” 子仲許之. 南蒯語叔仲穆子, 且告之故. 季悼子之卒也, 叔孫昭子以再命爲卿. 及平子伐莒克之, 更受三命. 叔仲子欲構二家, 謂平子曰, “三命踰父兄, 非禮也.” 平子曰, “然.” 故使昭子. 昭子曰, “叔孫氏有家禍, 殺適立庶, 故婼也及此. 若因禍以斃之, 則聞命矣. 若不廢君命, 則固有著矣.” 昭子朝, 而命吏曰, “婼將與季氏訟, 書辭無頗.” 季孫懼, 而歸罪於叔仲子. 故叔仲小、南蒯、公子憖謀季氏. 憖告公, 而遂從公如晉. 南蒯懼不克, 以費叛如齊. 子仲還, 及衛, 聞亂, 逃介而先. 及郊, 聞費叛, 遂奔齊. 南蒯之將叛也, 其鄕人或知之, 過之而歎, 且言曰, “恤恤乎, 湫乎攸乎! 深思而淺謀, 邇身而遠志, 家臣而君圖, 有人矣哉!” 南蒯枚筮之, 遇坤☷☷之比☵☷曰,, “黃裳元吉”, 以爲大吉也. 示子服惠伯, 曰, “卽欲有事, 何如?” 惠伯曰, “吾嘗學此矣, 忠信之事則可, 不然, 必敗. 外彊內溫, 忠也; 和以率貞, 信也, 故曰‘黃裳元吉’. 黃, 中之色也; 裳, 下之飾也; 元, 善之長也. 中不忠, 不得其色; 下不共, 不得其飾; 事不善, 不得其極. 外內倡和爲忠, 率事以信爲共, 供養三德爲善, 非此三者弗當. 且夫易, 不可以占險, 將何事也?且可飾乎? 中美能黃, 上美爲元, 下美則裳, 參成可筮. 猶有闕也, 筮雖吉, 未也. 將適費, 飮鄕人酒. 鄕人或歌之曰, “我有圃, 生之杞乎! 從我者子乎, 去我者鄙乎, 倍其鄰者恥乎! 已乎已乎! 非吾黨之士乎!” 平子欲使昭子逐叔仲小. 小聞之, 不敢朝. 昭子命吏謂小待政於朝, 曰, “吾不爲怨府.”

계평자(季平子)가 대통을 잇고서 남괴(南蒯)를 예우하지 않았다. 남괴(南蒯)가 자중(子仲)에게 말하기를 "내가 계씨(季氏)를 몰아내고 그 가산(家産)을 공실(公室)에게 돌아가게 하겠으니 당신이 그 자리를 고쳐 계승하시고, 나는 비(費)읍을 맏고서 공실(公室)의 신하가 되겠소."라고 했는데, 자중(子仲)이 그것을 허락했다. 남괴(南蒯)는 숙종목자(叔仲穆子)에게 말하며 또 그 연고(緣故)를 일러 주었다.

계도자(季悼子, 계평자의 아버지)가 죽을 때 숙손소자(叔孫昭子)가 재명(再命)으로써 경(卿)이 되었는데, 계평자[平子]가 거(莒)나라를 쳐서 이기고 삼명(三命)으로 고쳐 받음에 이르자, 숙중자(叔仲子)가 두[계씨와 숙손씨] 집안에 [불화가] 역어지게 하려고 계평자[平子]에게 말하기를 "3명(三命)은 부모와 형을 넘으면 예의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계평자[平子]도 "그렇다."고 말하고서, 그 연고(緣故)로 숙손소자[昭子]에게 [사퇴를] 권했으나 숙손소자[昭子]가 말하기를 "우리 숙손씨(叔孫氏) 집안에 재앙(災殃)이 있어서, 적자(適子)를 죽이고 서자(庶子)를 세웠기 때문에 내[婼]가 여기에 으르게 되었는데, 만약 재앙(災殃)으로 말미암아 죽이려 하신다면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만약 군주의 명령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굳게 자리를 지키겠습니다."라고 했다.

숙손소자[昭子]가 조회에 나가서 관리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내[婼]가 장차 계씨(季氏)에게 송사를 하는데 말을 기록할 적에 편파적(偏頗的)으로 함이 없어야 된다."라고 했다.

계손(季孫)이 두려워서 숙중자(叔仲子)에게 죄를 뒤집어씌웠기 때문에 숙중소(叔仲小)와 남괴(南蒯) 그리고 공자은(公子憖)이 계씨(季氏)를 도모하기로 했다.

[공자] 은(憖)이 공(公)에게 아뢰고서 공을 따라 붙좇아 진(晉)나라로 갔고, 남괴(南蒯)는 이기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비(費) 땅에서 배반하고 제(齊)나라로 가 버렸으며, 자중(子仲)은 돌아오다가 위(衛)나라에 이르러 반란이 있음을 듣고 [무리] 사이에서 도망쳐 먼저 교외까지 왔다가 비(費) 땅의 배반[남괴(南蒯)는 이미 제(齊)나라로 도망쳤음]을 듣고 드디어 제(齊)나라로 도망쳤다.

남괴(南蒯)가 장차 배반을 할 적에, 그 마을 사람들이 혹 그것을 알고 그[남괴(南蒯)의 집]를 지나가면서 한탄하고, 또 말하기를 "불쌍하고 불쌍하다, [권력이] 다하여 버려지나요? 생각은 깊지만 행동이 천박하고 몸은 가깝지만 뜻이 멀어졌는데 가신(家臣)이면서 군주를 도모(圖謀)하니 인재가 있었으랴!"라고 하였다.

남괴(南蒯)가 숨기[枚, 명하는 말을 숨김]고 시초점을 쳤는데 곤(遇)괘가 비(比)괘로 변[坤☷☷之比☵☷]하는 괘가 나왔는데, 말하기를 "누런 치마가 길하다[黃裳元吉].“고 하였는데, 그로써 크게 길함으로 여겼다.

자복혜백(子服惠伯)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나아가 일을 하고자 하는데 어떻겠소?"하니, 혜백[子服惠伯]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이[괘]를 배웠었는데 충신의 진실한 일이라면 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패합니다. 밖[外]은 강하고 안[內]은 온화함이 충(忠)이고, 어울림으로써 곧게 거느림이 신(信)이기 때문에 말하기를 “누런 치마가 길하다[黃裳元吉].“고 함입니다.

황(黃)은 가운데[內]의 색이고 치마는 아래[外]의 꾸밈이며 으뜸[元]은 착함의 우두머리입니다. 가운데[內]가 충성하지 않으면 그 황[黃]색을 얻지 못하고, 아랫[外]가 공손하지 않으면 그[裳]의 꾸밈을 얻지 못하며, 일이 착하지 않으면 그 지극함을 얻지 못합니다.

안팎[外內]이 불러 어울림이 충(忠)이 되고, 믿음으로써 일을 좇게함이 공(共)이 되며, 세가지 덕을 받들어 기름이 선(善)이 되는데 이 세 가지가 아닌 것이면 [그 괘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또 그 『주역』은 험(險)함을 점칠 수 있는게 아닌데, 장차 어찌 일을 하겠으며, 또 꾸밀 수 있습니까? 가운데[內]가 아름다우면 황(黃)색이 잘 되며, 위[上]가 아름다우면 으뜸[元]이 되고, 아래[下]가 아름다우면 치마[裳]가 되며, 세 가지를 이루어야 점을 칠 수 있는데, 오히려 빠진 것이 있으면 점쳐서 비록 길하더라도 안됩니다."라고 했다.

장차 [남괴가] 비(費) 땅으로 가려고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대접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혹 노래 부르기를 “나의 채마밭에 생겨난 것이 구기자인가? 나를 따르는 자가 당신인가? 나를 떠나는 놈이 비루한 놈인가? 이웃을 배반한 놈은 부끄럽겠지?

그만두자 그만두자! 우리 동네 관리가 아니겠지?"라고 하였다.

계평자[平子]가 숙손소자[昭子]로 하여금 숙중소(叔仲小)를 쫓아내려 하는데 그 소문을 [숙중소(叔仲小) 가] 듣고 감히 조회에 나오지 않았다. 숙손소자[昭子]가 관리(官吏)에게 일컫기를 ‘숙중소[小]는 조회에 정무를 기다리라.’하고서 말하기를 "우리는 원망의 관청(官廳)이 되려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 주역점(周易占) 사례

○ 소공(昭公) 12年[bc 530]

 

【昭公 十二年】 季平子立, 而不禮於南蒯. 南蒯謂子仲, “吾出季氏, 而歸其室於公, 子更其位, 我以費爲公臣.” 子仲許之. 南蒯語叔仲穆子, 且告之故.

<계평자(季平子)가 대통을 잇고서 남괴(南蒯)를 예우하지 않았다. 남괴(南蒯)가 자중(子仲)에게 말하기를 "내가 계씨(季氏)를 몰아내고 그 가산(家産)을 공실(公室)에게 돌아가게 하겠으니 당신이 그 자리를 고쳐 계승하시고, 나는 비(費)읍을 맏고서 공실(公室)의 신하가 되겠소."라고 했는데, 자중(子仲)이 그것을 허락했다. 남괴(南蒯)는 숙종목자(叔仲穆子)에게 말하며 또 그 연고(緣故)를 일러 주었다.>

季悼子之卒也, 叔孫昭子以再命爲卿. 及平子伐莒克之, 更受三命. 叔仲子欲構二家, 謂平子曰, “三命踰父兄, 非禮也.” 平子曰, “然.” 故使昭子. 昭子曰, “叔孫氏有家禍, 殺適立庶, 故婼也及此. 若因禍以斃之, 則聞命矣. 若不廢君命, 則固有著矣.”

<계도자(季悼子, 계평자의 아버지)가 죽을 때 숙손소자(叔孫昭子)가 재명(再命)으로써 경(卿)이 되었는데, 계평자[平子]가 거(莒)나라를 쳐서 이기고 삼명(三命)으로 고쳐 받음에 이르자, 숙중자(叔仲子)가 두[계씨와 숙손씨] 집안에 [불화가] 역어지게 하려고 계평자[平子]에게 말하기를 "3명(三命)은 부모와 형을 넘으면 예의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계평자[平子]도 "그렇다."고 말하고서, 그 연고(緣故)로 숙손소자[昭子]에게 [사퇴를] 권했으나 숙손소자[昭子]가 말하기를 "우리 숙손씨(叔孫氏) 집안에 재앙(災殃)이 있어서, 적자(適子)를 죽이고 서자(庶子)를 세웠기 때문에 내[婼]가 여기에 으르게 되었는데, 만약 재앙(災殃)으로 말미암아 죽이려 하신다면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만약 군주의 명령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굳게 자리를 지키겠습니다."라고 했다.>

昭子朝, 而命吏曰, “婼將與季氏訟, 書辭無頗.” 季孫懼, 而歸罪於叔仲子. 故叔仲小、南蒯、公子憖謀季氏. 憖告公, 而遂從公如晉. 南蒯懼不克, 以費叛如齊. 子仲還, 及衛, 聞亂, 逃介而先. 及郊, 聞費叛, 遂奔齊.

<숙손소자[昭子]가 조회에 나가서 관리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내[婼]가 장차 계씨(季氏)에게 송사를 하는데 말을 기록할 적에 편파적(偏頗的)으로 함이 없어야 된다."라고 했다.

계손(季孫)이 두려워서 숙중자(叔仲子)에게 죄를 뒤집어씌웠기 때문에 숙중소(叔仲小)와 남괴(南蒯) 그리고 공자은(公子憖)이 계씨(季氏)를 도모하기로 했다.

[공자] 은(憖)이 공(公)에게 아뢰고서 공을 따라 붙좇아 진(晉)나라로 갔고, 남괴(南蒯)는 이기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비(費) 땅에서 배반하고 제(齊)나라로 가 버렸으며, 자중(子仲)은 돌아오다가 위(衛)나라에 이르러 반란이 있음을 듣고 [무리] 사이에서 도망쳐 먼저 교외까지 왔다가 비(費) 땅의 배반[남괴(南蒯)는 이미 제(齊)나라로 도망쳤음]을 듣고 드디어 제(齊)나라로 도망쳤다.>

南蒯之將叛也, 其鄕人或知之, 過之而歎, 且言曰, “恤恤乎, 湫乎攸乎? 深思而淺謀, 邇身而遠志, 家臣而君圖, 有人矣哉!” 南蒯枚筮之, 遇坤☷☷之比☵☷曰,, “黃裳元吉”, 以爲大吉也.

<남괴(南蒯)가 장차 배반을 할 적에, 그 마을 사람들이 혹 그것을 알고 그[남괴(南蒯)의 집]를 지나가면서 한탄하고, 또 말하기를 "불쌍하고 불쌍하다, [권력이] 다하여 버려지나요? 생각은 깊지만 행동이 천박하고 몸은 가깝지만 뜻이 멀어졌는데 가신(家臣)이면서 군주를 도모(圖謀)하니 인재가 있었으랴!"라고 하였다.

남괴(南蒯)가 숨기[枚, 명하는 말을 숨김]고 시초점을 쳤는데 곤(遇)괘가 비(比)괘로 변[坤☷☷之比☵☷]하는 괘가 나왔는데, 말하기를 "누런 치마가 길하다[黃裳元吉].“고 하였는데, 그로써 크게 길함으로 여겼다.>

示子服惠伯, 曰, “卽欲有事, 何如?” 惠伯曰, “吾嘗學此矣, 忠信之事則可, 不然, 必敗. 外彊內溫, 忠也; 和以率貞, 信也, 故曰‘黃裳元吉’. 黃, 中之色也; 裳, 下之飾也; 元, 善之長也.

中不忠, 不得其色; 下不共, 不得其飾; 事不善, 不得其極. 外內倡和爲忠, 率事以信爲共, 供養三德爲善, 非此三者弗當.

<자복혜백(子服惠伯)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나아가 일을 하고자 하는데 어떻겠소?"하니, 혜백[子服惠伯]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이[괘]를 배웠었는데 충신의 진실한 일이라면 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패합니다. 밖[外]은 강하고 안[內]은 온화함이 충(忠)이고, 어울림으로써 곧게 거느림이 신(信)이기 때문에 말하기를 “누런 치마가 길하다[黃裳元吉].“고 함입니다.

황(黃)은 가운데[內]의 색이고 치마는 아래[外]의 꾸밈이며 으뜸[元]은 착함의 우두머리입니다. 가운데[內]가 충성하지 않으면 그 황[黃]색을 얻지 못하고, 아랫[外]가 공손하지 않으면 그[裳]의 꾸밈을 얻지 못하며, 일이 착하지 않으면 그 지극함을 얻지 못합니다.

안팎[外內]이 불러 어울림이 충(忠)이 되고, 믿음으로써 일을 좇게함이 공(共)이 되며, 세가지 덕을 받들어 기름이 선(善)이 되는데 이 세 가지가 아닌 것이면 [그 괘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且夫易, 不可以占險, 將何事也?且可飾乎? 中美能黃, 上美爲元, 下美則裳, 參成可筮. 猶有闕也, 筮雖吉, 未也.

<또 그 『주역』은 험(險)함을 점칠 수 있는게 아닌데, 장차 어찌 일을 하겠으며, 또 꾸밀 수 있습니까? 가운데[內]가 아름다우면 황(黃)색이 잘 되며, 위[上]가 아름다우면 으뜸[元]이 되고, 아래[下]가 아름다우면 치마[裳]가 되며, 세 가지를 이루어야 점을 칠 수 있는데, 오히려 빠진 것이 있으면 점쳐서 비록 길하더라도 안됩니다."라고 했다.>

將適費, 飮鄕人酒. 鄕人或歌之曰, “我有圃, 生之杞乎! 從我者子乎, 去我者鄙乎, 倍其鄰者恥乎! 已乎已乎! 非吾黨之士乎!”

平子欲使昭子逐叔仲小. 小聞之, 不敢朝. 昭子命吏謂小待政於朝, 曰, “吾不爲怨府.”

<장차 [남괴가] 비(費) 땅으로 가려고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대접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혹 노래 부르기를 “나의 채마밭에 생겨난 것이 구기자인가? 나를 따르는 자가 당신인가? 나를 떠나는 놈이 비루한 놈인가? 이웃을 배반한 놈은 부끄럽겠지?

그만두자 그만두자! 우리 동네 관리가 아니겠지?"라고 하였다.

계평자[平子]가 숙손소자[昭子]로 하여금 숙중소(叔仲小)를 쫓아내려 하는데 그 소문을 [숙중소(叔仲小) 가] 듣고 감히 조회에 나오지 않았다. 숙손소자[昭子]가 관리(官吏)에게 일컫기를 ‘숙중소[小]는 조회에 정무를 기다리라.’하고서 말하기를 "우리는 원망의 관청(官廳)이 되려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 02. 곤괘(坤괘)[卦象:중지곤]

☷ 坤上

☷ 坤下

곤(坤)[地.땅]이 아래에 있고 또 곤(坤)[地.땅]이 위에 있다.

【卦辭(괘사)】

坤 元亨利牝馬之貞. 君子 有攸往, 先迷後得主利. 西南得朋 東北喪朋 安貞 吉.

곤(坤)은 시작이 형통하며 암말의 곧아야 이롭다. 군자가 기댈[攸]것이 있어서 가면 먼저 아득하지만 뒤에 주군을 얻어 이롭다. 서남쪽에서 동무를 얻고, 동북쪽에서는 동무를 잃는데, 곧아야 편안하다, 길하다.

 

【爻辭(효사)】

六五,黃裳元吉。

육오(六五)는 황색치마가 크게 길하다.

 

 

◎ 08. 비괘(比卦)[卦象:수지비]

☵ 坎上

☷ 坤下

곤[地.땅]이 아래에 있고, 감[水.물]이 위에 있다.

【卦辭(괘사)】

比,吉,原筮,元永貞,无咎。不寧方來,後夫凶。

비(比;친함)는, 길하며 다시 점쳐서 크고 오래도록 곧아야 허물이 없다. 편안하지 않아서 사방에서 오는데, 뒤에 사람이 흉하다.

◪ 곤(遇)괘가 비(比)괘로 변[坤之比]하는 괘를 얻었는데 곤(坤)괘의 육오(六五) 효사가 “黃裳元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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