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주소(注疏)[刑昺]

◎ 『논어주소(論語註疏)』 《옹야(雍也)》 卷​ 6 - 2

석담 김한희 2024. 11. 1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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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論語)』

        卷​ 6

◎ 《옹야(雍也)》 - 2

◆ 6-2)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 簡."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子曰: "雍之言然."

(중궁문자상백자, 자왈: "가야. 간." 중궁왈: "거경이행간, 이림기민, 불역가호? 거간이행간, 무내태간호?" 자왈: "옹지언연.")

중궁(仲弓)이 자상백자(子桑伯子)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면(南面)> 할 수 있지만, 간략(簡略)하다.” 중궁이 말하였다. “살기를 경건히 하면서 행실이 간략함으로써 백성에 임하면 또한 <남면(南面)>할 수 있지 않겠으며, 살기를 간략히 하면서 행실이 간략하다면 크게 간략함이 아니 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궁(≒雍)의 말이 맞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 仲弓問子桑伯子。(王曰:「伯子,書傳無見焉。」 ◎왕숙이 말하였다:“백자(伯子)”는 경서(經書)와 전주(傳注)에 보이지 않는다.)子曰:「可也簡。」(孔曰:「 以其能簡,故曰可也。」 ◎공안국이 말하였다:그로써 간략함을 잘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仲弓曰:「居敬而行簡,以臨其民,不亦可乎?(孔曰:「 居身敬肅 ,臨下寬略,則可。」 ◎공안국이 말하였다:자신이 살기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하고 아래<사람>에 임하여 너그럽고 간략하다면 <남면(南面)>할 수 있다.)居簡而行簡,無乃大簡乎?」(包曰:「伯子之簡太簡。」 ◎포함이 말하였다:백자(伯子)의 간략함은 크게 간략하다.)子曰:「雍之言然。」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 【註疏】 “仲弓”至“言然”。

○ 【註疏】 <경문(經文)의> "[중궁(仲弓)]에서 [언연(言然)]까지"

○正義曰:此章明行簡之法。

○正義曰:이 장(章)은 행실이 간략함의 법도를 밝혔다.

“仲弓問子桑伯子”者,仲弓,冉雍字也。問子桑伯子其人德行何如。

<경문(經文)에서> "중궁(仲弓)이 자상백자(子桑伯子)에 대해 묻자[仲弓問子桑伯子]"라는 것은, 중궁(仲弓)은 염옹(冉雍)의 자(字)이다. 그 사람 자상백자(子桑伯子)의 덕행이 어떠냐고 물었다.

“子曰:可也簡”者,孔子為仲弓述子桑伯子之德行也。簡,略也。言其人可也,以其行能寬略故也。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면(南面)> 할 수 있지만, 간략(簡略)하다.'[子曰 可也簡]"라는 것은, 공자께서 중궁(仲弓)을 위해 자상백자(子桑伯子)의 덕행을 진술하신 것이다. 간(簡: 간략할 간)은 간략(簡略)한 것이다. 그 사람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의 행실로써 너그럽고 간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仲弓曰:居敬而行簡,以臨其民,不亦可乎”者,仲弓因辨簡之可否,言若居身敬肅,而行寬略以臨其下民,不亦可乎?言其可也。

<경문(經文)에서> "중궁이 말하였다. '살기를 경건히 하면서 행실이 간략함으로써 백성에 임하면 또한 <남면(南面)>할 수 있지 않겠으며[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라는 것은, 중궁(仲弓)이 <부자의 말씀으로> 인하여 간략함의 가부(可否)를 변론하기를 “만약 자신이 살기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하면서 행실을 너그럽고 간략하게 하며 그로써 아래 백성들에 임하면 또한 또한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는데, 그<남면(南面)>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居簡而行簡,無乃太簡乎”者,言居身寬略,而行又寬略,乃大簡也。則子桑伯子之簡是太簡也。

<경문(經文)에서> "살기를 간략히 하면서 행실이 간략하다면 크게 간략함이 아니 겠습니까?[居簡而行簡 無乃太簡乎]"라는 것은, 자신이 너그럽고 간략하게 살면서 행실 또한 너그럽고 간략하며 이에 크게 간략하니, 즉 자상백자(子桑伯子)의 간략함은 바로 크게 간략함을 말한 것이다.

“子曰:雍之言然”者,然,猶是也。夫子許仲弓之言,是故曰然。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궁(≒雍)의 말이 맞다.'[子曰 雍之言然]"라는 것은, 연(然: 그럴 연)은 옳음과 같은 것이다. 부자(夫子)께서 중궁(仲弓)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셨기 때문에 “그렇다[然]”라고 하셨다.

○注“王曰:伯子,書傳無見焉。

○ 【집해(集解)】주(注)의 "왕숙이 말하였다:'백자(伯子)는 경서(經書)와 전주(傳注)에 보이지 않는다'[王曰 伯子 書傳無見焉]까지"

○正義曰:書傳無見,不知何人也。

○正義曰: 경서(經書)와 전주(傳注)에 보이지 않음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子桑伯子當是一人,故此注及下包氏皆唯言伯子而已。

자상백자(子桑伯子)는 마땅히 이 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주(注)와 아래 포씨(包氏)의 주(注)에 모두 오히려 ‘백자(伯子)’라고 말했을 뿐이다.

鄭以《左傳》秦有公孫枝字子桑,則以此為秦大夫,恐非。

정현(鄭玄)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진(秦)나라에 자(字)가 자상(子桑)인 공손기(公孫枝)가 있다고 했는데, 즉 그로써 이를 진(秦)나라 대부(大夫)라고 하기에는 옳지 않은 듯하다.

▣ 『論語』 원문

◎ 《雍也》篇 ​ 6 - 2

◆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 簡."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子曰: "雍之言然."

◎《논어집해(論語集解)》

仲弓問子桑伯子。(王曰:「伯子,書傳無見焉。」)子曰:「可也簡。」(孔曰:「 以其能簡,故曰可也。」 )仲弓曰:「居敬而行簡,以臨其民,不亦可乎?(孔曰:「 居身敬肅 ,臨下寬略,則可。」 )居簡而行簡,無乃大簡乎?」(包曰:「伯子之簡太簡。」 )子曰:「雍之言然。」

◎《논어주소(論語註疏)》

疏“ 仲弓”至“言然”。

○正義曰:此章明行簡之法。

“仲弓問子桑伯子”者,仲弓,冉雍字也。問子桑伯子其人德行何如。

“子曰:可也簡”者,孔子為仲弓述子桑伯子之德行也。簡,略也。言其人可也,以其行能寬略故也。

“仲弓曰:居敬而行簡,以臨其民,不亦可乎”者,仲弓因辨簡之可否,言若居身敬肅,而行寬略以臨其下民,不亦可乎?言其可也。

“居簡而行簡,無乃太簡乎”者,言居身寬略,而行又寬略,乃大簡也。則子桑伯子之簡是太簡也。

“子曰:雍之言然”者,然,猶是也。夫子許仲弓之言,是故曰然。

○注“王曰:伯子,書傳無見焉。

○正義曰:書傳無見,不知何人也。

子桑伯子當是一人,故此注及下包氏皆唯言伯子而已。鄭以《左傳》秦有公孫枝字子桑,則以此為秦大夫,恐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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