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주소(注疏)[刑昺]/3.팔일(八佾)편

◎ 『논어주소(論語註疏)』 팔일(八佾) 卷​ 3 - 9

석담 김한희 2024. 5. 1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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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팔일(八佾) 卷​ 3 - 9

3-9) 子曰: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자왈: "하례오능언지, 기부족징야; 은례오능언지, 송부족징야. 문헌부족고야. 족즉오능징지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夏)나라의 예(禮)는 내가 말할 수 있지만 [그 후손인] 기(杞)나라는 징험(徵驗)이 부족하고, 은(殷)나라의 예(禮)는 내가 말할 수 있지만 송(宋)나라는 징험이 부족한데, 글과 현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충분했다면 내가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子曰:「夏禮,吾能言之,杞不足徵也。殷禮,吾能言之,宋不足徵也。(包曰:「徵,成也。杞、宋,二國名,夏、殷之後。夏、殷之禮,吾能說之,杞、宋之君不足以成也。」 ◎포함이 말하였다:“징(徵: 부를 징)”은 이룸이다. “기(杞)” 와 “송(宋)”은 두 나라의 이름이며,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의 후예이다. 하나라 와 은나라의 예(禮)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데, 기나라 와 송나라의 군주는 그로써 이룸이 부족하다.)文獻不足故也。足,則吾能徵之矣。」(鄭曰:「獻,猶賢也。我不以禮成之者,以此二國之君文章賢才不足故也。」 ◎정현이 말하였다:“헌(獻: 드릴 헌)”은 현명함과 같다. 내가 그로써 예를 이룰 수 없는 것은, 그로써 이 두나라의 군주가 빛나는 글과 현명한 재주가 부족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註疏】 「 子曰」至「征之矣」。

○【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자왈(子曰)]에서 [징지의(徵之矣)]까지"

○正義曰:此章言夏、商之後不能行先王之禮也。

○正義曰:이 장(章)은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의 후손이 선왕의 예(禮)를 행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夏禮吾能言之,杞不足徵也。殷禮,吾能言之,宋不足徵也」者,徵,成也。杞、宋二國,言夏、殷之後也。

[경문(經文)에서] "하(夏)나라의 예(禮)는 내가 말할 수 있지만 기(杞)나라는 징험(徵驗)이 부족하고, 은(殷)나라의 예(禮)는 내가 말할 수 있지만 송(宋)나라는 징험이 부족한데[夏禮 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라는 것의, 징(徵: 부를 징)은 이룸이다. 기(杞) 와 송(宋) 두 나라는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孔子言,夏、殷之禮,吾能說之,但以杞、宋之君闇弱,不足以成之也。

공자께서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의 예(禮)를 내가 설명할 수 있으나, 단지 기(杞)나라와 송(宋)나라 군주가 어둡고 나약함을 가지고는 그로써 [예(禮)를] 이루기에 부족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文獻不足故也。足,則吾能征之矣」者,此又言不足征之意。獻,賢也。

<경문(經文)에서> "글과 현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충분했다면 내가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라는 것은, 이는 또 증명을 하기에 부족한 뜻을 말씀하신 것이다. 헌(獻: 드릴 헌)은 현명함이다.

孔子言,我不以禮成之者,以此二國之君文章賢才不足故也。

공자께서 내가 그로써 예(禮)를 이루지 못한다고 한 것은, 이 두 나라의 군주가 빛나는 글과 재주있는 현자가 부족함을 가지고 하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注「包曰」至「成也」。

○ 【집해(集解)】 주(注)의 “[포왈(包曰)]에서 [성야(成也)]까지"

○正義曰:「徵,成」,《釋詁》文。

○正義曰: "징(徵: 부를 징)”은 이룸이다.[徵 成]"라고 한 것은,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云「杞、宋二國名,夏、殷之後」者,《樂記》云:「武王克殷,下車而封夏後氏之後於杞,封殷之後於宋」是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기(杞) 와 송(宋)은 두 나라의 이름이며,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의 후예이다[杞宋 二國名 夏殷之後]라는 것은,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이르기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정벌하고서 수레에서 내려 하후씨(夏后氏)의 후손을 기(杞)나라에 봉(封)하고 은(殷)나라의 후손을 송(宋)나라에 봉하였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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