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주소(論語註疏)』 팔일(八佾) 卷 3 - 7
▣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팔일(八佾) 卷 3 - 7
3-7)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자왈: "군자무소쟁, 필야사호? 읍양이승, 하이음, 기쟁야군자.")
공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경쟁하는 바가 없지만 필요하다면 활쏘기 이겠지? 읍하여 사양하면서 오르며, 내려와서는 벌주(罰酒) 마시는데, 그 경쟁이 군자다움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
【集解】子曰:「君子無所爭。必也射乎?(孔曰:「言於射而後有爭。」 ◎공안국이 말하였다:활 쏜 이후에야 경쟁이 있다는 말이다.)揖讓而升,下而飲。(王曰:「射於堂,升及下皆揖讓而相飲。」 ◎왕숙이 말하였다:사대(射臺)에서 활을 쏘는 데, 올라가고 내려올 적에 모두 읍하여 사양하고 서로 마신다.)其爭也君子。」(馬曰:「多筭飲少筭,君子之所爭。」 ◎마융이 말하였다:많이 맞춘이가 적게 맞춘이에게 마시도록 함이, 군자의 경쟁하는 바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註疏】 「 子曰」至「君子」。
○【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자왈(子曰)]에서 [군자(君子)]까지"
○正義曰:此章言射禮有君子之風也。
○正義曰:이 장(章)은 활 쏘는 예(禮)에 군자의 풍도(風度)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君子無所爭」者,言君子之人,謙卑自牧,無所競爭也。
[경문(經文)에서] "군자는 경쟁하는 바가 없지만[君子無所爭]"라는 것은, 군자의 사람됨은 겸손히 낮추고 자신을 수양하니 경쟁하는 바가 없다는 말이다.
「必也射乎」者,君子雖於他事無爭,其或有爭,必也於射禮乎!言於射而後有爭也。
[경문(經文)에서] "필요하다면 활쏘기 이겠지?[必也射乎]"라는 것은, 군자가 비록 다른 일에는 경쟁이 없지만 혹 필요한 경쟁이 있다면 활쏘는 예(禮)이겠지는, 활쏘기가 있은 뒤에야 경쟁이 있다는 말이다.
「揖讓而升,下而飲」者,射禮於堂,將射升堂,及射畢而下,勝飲不勝,其耦皆以禮相揖讓也。
[경문(經文)에서] "읍하여 사양하면서 오르며, 내려와서는 벌주(罰酒) 마시는데[揖讓而升 下而飮]"라는 것은, 사대(射臺≒堂)에서 활쏘는 예(禮)는 장차 사대(射臺)에 올라가 활쏘기와 활쏘기를 마치고 내려와 이긴 자가 진 자에게 술을 먹일 적에 한 조(組≒耦)가 모두 예로써 서로 읍하여 사양하는 것이다.
「其爭也君子」者,射者爭中正鵠而已,不同小人厲色援臂,故曰「其爭也君子」。
[경문(經文)에서] "그 경쟁이 군자다움이다[其爭也君子]"라는 것은, 활쏘는 자는 정곡(正鵠)을 맞히기만을 경쟁할 뿐이니, 소인이 낮빛을 붉히고 팔을 끌어당기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에 말하기를 “그 다툼이 군자답다.”고 한 것이다.
○注「孔曰:言於射而後有爭」。
○ 【집해(集解)】 주(注)의 “공안국이 말하였다. '활 쏜 이후에 경쟁이 있다는 말이다'[孔曰 言於射而後有爭]까지"
○正義曰:鄭注《射義》云:「飲射爵者亦揖讓而升降。
○正義曰:《예기(禮記)》 〈사의(射義)〉의 정현(鄭玄) 주(注)에 이르기를 “벌주(罰酒≒射爵)를 먹이는 자도 또한 읍하고 사양하고서 올라가고 내려온다.
勝者袒,決遂,執張弓。不勝者襲,說決拾,卻左手,右加弛弓於其上而升飲。君子恥之,是以射則爭中。」是於射而後有爭。
이긴 자는 웃통을 벗고[袒, 상의의 왼쪽 소매] 깍지[決]와 토시[遂]를 끼고서 활을 당겨 잡으며, 이기지 못한 자는 옷통를 입고[襲, 벗었던 소매], 깍지와 토시[拾]를 벗으며, 왼손을 벌리고 그 위에 시위를 푼 활을 잡고서 올라가서 벌주를 마신다. 군자는 그것이 수치이기 때문에 활쏘기를 하면 맞히기를 경쟁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활쏘기에서는 뒤에 경쟁함이 있는 것이다.
○注「 王曰」至「相飲」。
○ 【집해(集解)】 주(注)의 “[왕왈(王曰)]에서 [상음(相飮)]까지까지"
○正義曰:云「射於堂,升及下皆揖讓而相飲」者,《儀禮·大射》云:「耦進,上射在左並行,當階北面揖,及階揖,升堂揖,皆當其物,北面揖,及物揖。射畢,北面揖,揖如升射。」是射時升降揖讓也。
○正義曰: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사대(射臺)에서 활을 쏘는 데, 올라가고 내려올 적에 모두 읍하여 사양하고 서로 마신다.[射於堂 升及下 皆揖讓而相飮]"라는 것은, 《의례(儀禮)》 〈대사례(大射禮)〉에 이르기를 “한 조(組≒耦)가 나아갈 적에 상사(上射)도 왼쪽에서 함께 가는데, 계단에 이르러 북쪽을 향해 읍하고 계단에서 또 읍하며, 사대(射臺≒堂)에 올라가 읍하고 한 조가 모두 그 표지에 이르러 북쪽을 향해 읍하고, 표지에 이르면 읍한다. 활쏘기를 마치고는 북쪽을 향해 읍하고 활쏘려고 올라갈 때와 같이 읍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활쏘기를 할 때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에 읍양(揖讓)하는 것이다.
《大射》又云:「飲射爵之時,勝者皆袒,決遂,執張弓,不勝者皆襲,說決拾,卻左手,右加弛弓於其上,遂以執付,揖如始升射。
《의례(儀禮)》 〈대사례(大射禮)〉에 또 이르기를 “활쏘고 벌주를 먹일 때에 이긴 자는 웃통을 벗고[袒, 상의의 왼쪽 소매] 깍지[決]와 토시[遂]를 끼고서 활을 당겨 잡으며, 이기지 못한 자는 옷통를 입고[襲, 벗었던 소매], 깍지와 토시[拾]를 벗으며, 왼손을 벌리고 그 위에 시위를 푼 활을 잡고 올려놓고 토시로써 줌통(활 중간에 손으로 쥐는 곳)을 잡고서 처음 사대(射臺≒堂)로 올라갈 때와 같이 읍한다.
及階,勝者先升,升堂少右,不勝者進北面坐,取豐上之觶,立,卒觶,坐奠於豐下。興揖,不勝者先降。」是飲射爵之時揖讓升降也。
계단에 미쳐 이긴 자가 먼저 올라가 조금 오른쪽 사대(射臺≒堂)에 올라가고, 이기지 못한 자는 나아가 북쪽을 향해 앉아서 잔대 위에 놓인 벌주 잔을 들고 서서 마시며, 마신 뒤에 잔을 잔대 아래에 놓고 일어나 읍하고서 진 자가 먼저 내려온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활쏘기 벌주를 마실 때에 읍양(揖讓)하면서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이다.
○注「馬曰多」至「所爭」。
○ 【집해(集解)】 주(注)의 “[마왈다(馬曰多)]에서 [소쟁(所爭)]까지"
○正義曰:云:「多筭飲少筭」者,筭,籌也。
○正義曰: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많이 맞춘이가 적게 맞춘이에게 마시도록 함이[多筭飮少筭]"라는 것은, 산(筭: 산가지 산)은 산가지이다.
《鄉射記》曰「箭籌八十,長尺有握,握素」是也。
《의례(儀禮)》 〈향사례(鄕射記)〉에 말하기를 “전주(箭籌, 화살을 만든 산가지)는 80개인데, 길이가 1尺 4寸이고 쥐는 곳이 있으며 손에 쥐는데를 희게 하였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多筭謂勝者,少筭謂不勝者,勝飲不勝而相揖讓,故曰君子之所爭也。
산가지[筭]가 많으면 이긴 자를 일컫고, 산가지가 적으면 진 자를 말하며, 이긴 자가 진 자에게 벌주를 먹이면서 서로 읍양(揖讓)하기 때문에 말하기를 "군자의 경쟁하는 바이다."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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