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주소(論語註疏)』 팔일(八佾) 卷 3 - 2
▣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팔일(八佾) 卷 3 - 2
3-2) 三家者以「雍」徹, 子曰: "'相維辟公,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
(삼가자이「옹」철, 자왈: "'상유벽공, 천자목목,' 해취어삼가지당?")
세 가신(家臣)들이 옹(雍) 시(詩)를 노래하면서 제기를 거두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벽공(辟公≒제후)들이 제사를 돕는데, 천자께서는 장엄 하시다’를 어찌 세 가신(家臣)의 대청[堂]에서 취하여 쓰는가?”
《논어집해(論語集解)》
【集解】三家者以《雍》徹。(馬曰:「三家,謂仲孫,叔孫,季孫。《雍》,《周頌•臣工》篇名。天子祭於宗廟,歌之以徹祭。今三家亦作此樂。」 ◎마융이 말하였다:“3가(三家)”는 중손(仲孫)씨,숙손(叔孫)씨,계손(季孫)씨를 일컫는다. 《옹(雍)》은 『시경』≪주송.신공지습(周頌•臣工)≫ 편의 이름이다. 천자가 종묘(宗廟)에서 제사지낼적에 제사를 거두면서 노래 불렀는데, 지금 세 가신(家臣)이 또한 이 음악을 연주하였다.)子曰:「『相維公,天子穆穆』,奚取於三家之堂?」(包曰:「辟公,謂諸侯及二王之後。穆穆,天子之容貌。《雍》篇歌此者,有諸侯及二王之後來助祭故也。今三家但家臣而已,何取此義而作之於堂邪?」 ◎포함이 말하였다:“벽공(辟公)”은 제후(諸侯)와 두 왕[文王․武王]의 후손을 일컫는다. “목목(穆穆)”은 천자의 용모이다. 《옹(雍)》편에서 이[詩]를 노래한 것은 제후와 두 왕[文王․武王]의 후손들이 와서 제사를 도운 연고가 있었음이다. 지금 삼가(三家)는 단지 가신(家臣)일 뿐인데, 어찌 이러한 뜻을 취하여 대청[堂]에서 그것[雍]을 연주하는가?)
《논어주소(論語註疏)》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註疏】 「三家」至「之堂」。
○【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삼가(三家)]에서 [지당(之堂)]까지"
○正義曰:此章譏三家之僭也。
○正義曰:이 장(章)은 3가(三家)의 참람함을 비난한 것이다.
「三家者以《雍》徹」者,此弟子之言,將論夫子所譏之語,故先設此文以為首引。
[경문(經文)에서] "세 가신(家臣)들이 옹(雍) 시(詩)를 노래하면서 제기를 거두자[三家者以雍徹]"라는 것은, 이것은 제자의 말이며, 장차 제자가 부자(夫子)께서 비난하신 바의 말씀을 거론(擧論)하려 했기 때문에 먼저 이렇게 글을 만들어 그로써 끌어서 머리를 삼은 것이다.
三家,謂仲孫、叔孫、季孫。《雍》,《周頌·臣工》篇名。
3가(三家)는 중손(仲孫),숙손(叔孫),계손(季孫)씨를 일컫는다. 옹(雍)은 《모시(毛詩)》 〈주송•신공(周頌 臣工)〉편(篇)의 이름이다.
天子祭於宗廟,歌之以徹祭。今三家亦作此樂以徹祭,故夫子譏之。
천자가 종묘에 제사지내며 그것[옹시(雍詩)]을 노래하면서 제사를 거두는데, 지금 삼가 또한 이 악(樂≒雍詩)을 연주하면서 제기를 거두었기 때문에 공자께서 비난하신 것이다.
「子曰:『相維辟公,天子穆穆』,奚取於三家之堂」者,此夫子所譏之語也。先引《詩》文,後言其不可取之理也。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벽공(辟公≒제후)들이 제사를 돕는데, 천자께서는 장엄 하시다’를 어찌 세 가신(家臣)의 대청에서 취하여 쓰는가?[子曰 相維辟公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라는 것은, 이것은 부자께서 비난하신 말씀인데, 먼저 시(詩)의 글을 끌어오고 뒤에 그[雍詩]를 써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하였다.
「相維辟公,天子穆穆」者,此《雍》詩之文也。相,助也;維,辭也;辟公,謂諸侯及二王之後;穆穆,天子之容貌。
[경문(經文)에서] "오직 벽공(辟公≒제후)들이 제사를 돕는데, 천자께서는 장엄 하시다[相維辟公 天子穆穆]"라는 것은, 이것은 옹시(雍詩)의 글이다. 상(相)은 도움이고, 유(維)는 어사(語辭)이며, 벽공(辟公)은 제후와 두 왕조[夏‧商]의 후손을 일컫고, 목목(穆穆)은 천자의 용모이다.
《雍》篇歌此者,有諸侯及二王之後來助祭故也。今三家但家臣而已,何取此義而作之於堂乎?
옹(雍) 편에서 이렇게 노래한 것은, 제후와 두 왕조의 후손이 와서 제사를 도왔기 때문이다. 지금 삼가(三家)는 단지 가신(家臣)일 뿐인데, 어찌 이 뜻을 취하여 묘당에서 그것[雍詩]을 노래하는가?
○注「 馬曰」至「此樂」。
○ 【집해(集解)】 주(注)의 “[마왈(馬曰)]에서 [차락(此樂)]까지"
○正義曰:三孫同是魯桓公之後。桓公適子莊公為君,庶子公子慶父、公子叔牙、公子季友。
○正義曰: 3 손(三孫)은 함께 바로 노(魯)나라 환공(桓公)의 후손이다. 환공의 적자(適子)는 장공(莊公)인데 군주가 되었고, 서자(庶子)는 공자 경보(慶父)‧공자 숙아(叔牙)‧공자 계우(季友)이다.
仲孫是慶父之後,叔孫是叔牙之後,季孫是季友之後。其後子孫皆以其仲、叔、季為氏,故有此氏。並是桓公子孫,故俱稱孫也。
중손(仲孫)은 경보의 후손이고, 숙손(叔孫)은 숙아의 후손이며, 계손(季孫)은 계우의 후손이다. 그 뒤에 자손들이 모두 중(仲)‧숙(叔)‧계(季)로 씨(氏)를 삼았기 때문에 이러한 씨(氏)가 있게 되었다. 아울러 이들은 환공의 자손이기 때문에 모두 손(孫)이라고 칭한 것이다.
至仲孫氏後世改仲曰孟。孟者,庶長之稱也。言已是庶,不敢與莊公為伯仲叔季之次,故取庶長為始也。
중손(仲孫)씨는 후세에 이르러 중(仲)을 고쳐서 맹(孟)이라 했는데, 맹(孟)은 서자의 맏이를 칭함이다. 자기[孟孫]가 바로 서족(庶族)이니 감히 장공(莊公)과 더블어 백‧중‧숙‧계(伯‧仲‧叔‧季)의 차례를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자의 맏이를 취하여 시작(始作)을 삼았다.
云:《雍》,《周頌·臣工》篇名」者,即《周頌·臣工之什》第七篇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옹(雍)은 주송.신공(周頌•臣工)편의 이름이다[雍 周頌臣工篇名]"라는 것은, 바로 〈주송 신공지습(周頌 臣工之什)〉의 제 7편이다.
「天子祭於宗廟,歌之以徹祭」者,案《周禮·樂師》云:「及徹,帥學士而歌徹。」鄭玄云:「徹者,歌《雍》。」又《小師》云:「徹歌。」鄭云:「於有司徹而歌《雍》。」是知天子祭於宗廟,歌之以徹祭也。今三家亦作此樂,故夫子譏之也。
[집해(集解)] 주(注)에 "천자가 종묘(宗廟)에서 제사지낼적에 제사를 거두면서 노래 불렀는데[天子祭於宗廟 歌之以徹祭]"라는 것은, 상고하건대 《주례(周禮)》 〈악사(樂師)〉에 이르기를 “제기(祭器)를 거둘적에 [악사(樂師)가] 학사(學士)를 거느리고서 [옹시(雍詩)를] 노래하면서 제기를 거둔다.”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제기를 거두는 자가 옹시를 노래한다.”고 하였고, 또 《주례(周禮)》 〈소사(小師)〉에 이르기를 “제기를 거두면서 노래한다.”고 하였는데, 정현이 이르기를 “유사(有司)에게 제기를 거두면서 옹시를 노래하게 한다.”라고 했는데, 이는 천자가 종묘제사에 그것[雍詩]을 노래하며 그로써 제기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삼가 또한 이 악(樂雍詩)을 연주하기 때문에 부자(夫子)께서 비난하신 것이다.
○注「 包曰」至「堂邪」。
○ 【집해(集解)】 주(注)의 “[포왈(包曰)]에서 [당야(堂邪)]까지"
○正義曰:云:「辟公,謂諸侯及二王之後」者,此與《毛傳》同。鄭玄以「辟為卿士,公謂諸侯」為異,餘亦同也。
○正義曰: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벽공(辟公)은 제후(諸侯)와 두 왕의 후손을 일컫는다[辟公 謂諸侯及二王之後]"라는 것은, 이것은 《모전(毛傳)》과 함께 같다. 정현(鄭玄)은 “벽(辟)은 경사(卿士)이고, 공(公)은 제후(諸侯)를 일컫는다.”를 가지고 달리 하였고, 나머지는 [모전(毛傳)과] 또한 같다.
云「穆穆,天子之容貌」者,《曲禮》云:「天子穆穆。」《爾雅·釋詁》云:「穆穆,美也。」是天子之容貌,穆穆然美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목목(穆穆)은 천자의 용모이다[穆穆 天子之容貌]"라는 것은, 《예기(禮記)》 〈곡례(曲禮)-下〉에 이르기를 “천자목목(天子穆穆)”고 했는데,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이르기를 “목목(穆穆)은 아름다움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천자의 용모가 온화(溫和)한 것처럼 아름다움이다.
云「《雍》篇歌此者,有諸侯及二王之後來助祭故也」者,將言無諸侯及二王之後助祭,則不可歌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옹(雍)편에서 이를 노래한 것은 제후와 두 왕의 후손들이 와서 제사를 도운 연고가 있었음이다[雍篇歌此者 諸侯及二王之後來助祭故也]"라는 것은, 장차 제후 와 두 왕조의 후손이 제사를 도움이 없으면 옹시를 노래[雍詩]할 수 없음을 말함이다.
云「今三家但家臣而已,何取此義而作之於堂邪」者,卿大夫稱家。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지금 삼가(三家)는 단지 가신(家臣)일 뿐인데, 어찌 이러한 뜻을 취하여 대청에서 그것을 연주하는가?[今三家但家臣而已 何取此義而作之於堂邪]"라는 것은, 경(卿)과 대부(大夫)를 가(家)라 칭한다.
家臣,謂家相邑宰之屬來助祭耳,何取此《雍》詩之義而奏作於堂邪?邪,語辭。魯用天子禮樂以《雍》徹,由是三家僭之也。
가신(家臣)은 가상(家相)과 읍재(邑宰) 등이 와서 제사를 도울 뿐인데 어찌 이 옹시(雍詩)의 뜻을 취해 묘당에서 연주하느냐는 말이다. 사(邪)는 어사(語辭)이다. 노(魯)나라가 천자의 예악(禮樂)을 사용하여 옹시를 노래하면서 제기를 거두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3가(三家)도 그것[雍詩]을 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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